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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강의 - 혼돈의 시대에 장자를 읽다
전호근 지음 / 동녘 / 2015년 1월
평점 :
장자 1편 <소요유>는 모두 다섯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온세상이 전쟁에 미쳐 날뛰는 시대에 장자는 첫편부터 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요유편의 마지막 장인 5장에서 장자는 '소요'의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아무 하는 일 없이 그 곁에서 방황하고, 소요하면서, 그 아래서 낮잠을 잔다'고 한다.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위의 개념인데 노자의 무위와는 좀 다른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노자의 무위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즉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즉 하는 것이 없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사실상 지배논리에 가까운 것이라면 장자의 무위는 글자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
장자의 무위는 '방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원래 방황은 어느쪽으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상태, 즉 목적이 없는 상태다. 때문에 그 목적에서조차 자유로운 것이 무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장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낮잠이나 자라고 했을까.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자고 일어나면 전쟁이 있었던 시대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을 죽이게 되니 무위하지 않는 사람, 즉 목적의식이 있고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전쟁터라는 것. 그런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아갈 수록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게 된다. 장자는 그런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뜻으로 낮잠이나 자겠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똑부 멍부 이야기가 생각나서 조금 웃었다 ㅋㅋ)
소요유편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나는 타이핑하기 귀찮아하는 게으른사람이므로 한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소요유 5장, 혜시와 장자의 논쟁이다.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어.
나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중나무라 하더군. 커다란 줄기는 울퉁불퉁해서 먹줄에 맞춰 자를 수 없고 작은 가지는 구불구불해서 그림쇠나 곱자에 맞질 않아. 그래서 길가에 서 있는데도 목수들이 돌아보지도 않는다네. 지금 자네의 말도 이 나무와 같아서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어(大而無用). 그래서 사람들이 듣지 않고 다 떠나버리는게야(衆所同去也).
장자가 이렇게 대꾸했어.
자네는 살쾡이(豺狼)를 본 적이 없나? 몸을 바짝 낮추고 엎드려서 놀러 나온 짐승들을 엿보다 아무 데나 뛰어다니는데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가리지 않다가 결국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잡혀 죽고 말지. 그런데 저 검은 들소는 크기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지만 크기만 할 뿐 쥐새끼 한 마리도 잡질 못해. 지금 자네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그게 쓸모없어서 걱정된다면 어찌하여 무하유의 고을 (無何有之鄕) 아득한 들판에 심어두고 그 곁에서 아무 하는 일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그 아래에서 한동안 거닐다가 잠깐 낮잠이나 자지 않는가(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도끼에 베여 일찍 죽을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 이가 없을 것이니 쓸모없다는 것이 어찌 괴로운 일이기만 하겟는가.(86쪽)
커다란 나무 이야기는 장자에서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나무가 현자의 이미지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생명체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존재이고 장자의 중요한 열쇳말 중 하나인 양생養生을 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혜시가 커다란 나무를 비유로 들면서,장자의 말을 사람들이 듣지 않는 이유는 크기만 하지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인기가 없었던 이야기꾼 장자의 아픈 곳을 팍팍 찌른 것이다. 하지만 장자는 살쾡이를 사람으로 치면 전쟁광에 묘사하고, 쓸모없지만 위대한 존재로 검은 들소를 들면서 남을 해치지도 않고 자신을 해치지도 않는 평화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한다.
어떤것은 위해하고 어떤 것은 하찮다는 식의 획일적 구분을 넘어서서 쓸모에 집착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강조한것은 현대인들의 목표지향적인 삶에 와닿는 부분이 많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