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산책 -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고경남 지음 / 북센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남극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펭귄, 빙산, 눈보라......

이 책을 읽고 나면 여기에 태양을 하나 더 넣어야 할 것이다. 남극의 유빙 하나 녹이지 못하는 나약한 태양이 빚어내는 빛의 향연은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말 그대로 하얀 구름을 불태우는 일출과 일몰의 붉은 빛과 그 붉은 빛에 물들기 전 황금빛 하늘은 이 힘없는 태양의 마음이다. 남극의 세찬 바람에 얼어붙은 태양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을 텅 비우게 만들고 그 쓸쓸함 속으로 바람이 휑하니 불어온다.

이 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사진에 먼저 시선이 쏠린다. 펭귄의 깃털 하나, 빙산을 이루는 얼음 조각 하나, 구름의 수증기 한 방울 마저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름답다. 게다가 이 사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편집의 힘이다.

'일상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모든 것에 시큰둥한 채'라는 짧은 글이 들어간 8쪽에는 정말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펭귄 사진이 실려있다. 그리고 사진 이외의 바탕은 까만 색으로 물들어 있고 활자는 선명한 흰 색으로 찍혀 있다. 다시 그 바탕엔 희밋하고 여린 흰 색의 일상=바이러스=일상=바이러스.... 글자들이 깔려 있다. 이 글자들이 머릿속에서 맴을 돌더니 펭귄과 함께 가슴을 찍어댄다. 이런 식의 편집이 중간 중간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타나면 잠시 숨을 가다듬어야만 한다. 고맙게도 이런 감상을 남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유구한 남극의 얼음 들을 마주치면서 유한한 삶을 생각하고, 펭귄과 갈매기들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가벼운 듯 진중하다. 쓸쓸한 듯 따사롭다. 귀여운 듯 사나운 듯 애처로운 듯 보이는 펭귄들의 모습과 먹이로 변해버린 한낱 고기 조각의 펭귄, 그리고 앙상한 뼈만 남은 펭귄 등등 아름답게만 꾸미지 않으려는 지은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남극에 있을 때와 서울에 있을 때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 결국 세상을 대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남극에 있을 때 서울을 그리워하고, 서울에 있으면 남극을 그리워하는 심정은 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남극의 빙산 하나가 햇빛의 장난에 얼음 한 조각 떨쳐내고, 그 얼음 한 조각이 17240km를 내달려와 내 가슴 속에 박힌다.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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