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는 높은 곳에 있었다. 그곳까지 올라가는 길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대학 때, 그러니까 10년 조금 남짓한 시간 전은 복수전공이라는게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너도나도 한 개씩은 복수전공을 하던 그 시기, 경영학과 학생의 80%는 경제학을, 나머지 10%는 행정학이나 정치학을, 나머지 10%는 그들의 선택을 관망하는 뭐 그정도의 흐름이 암묵적으로 형성대던 시기였다. 그 중 심리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고 인문대까지의 오르막을 오르던 사람은 내 기억으로 단 두명, 그 중 한명은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집안의 노골적인 압력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경영학을 선택한 재수생.. 나머지 한명은 그냥 심리학이 궁금한 ‘나’였다. 그리고 그 때, 처음 프로이트를 접했고 그의 이론을 통해 거만하게도 나를, 내 조카들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었던 듯 하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나는 심리학을 복수전공하지 않았다. 마지막 1학기를 두고 불과 3학점만이 남겨진 상태에서 ‘실험심리학’이라는 과목 대신에 ‘고급회계’라는 과목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내 진로를 분명히 하고야 말았다. 심리학과 경영학을 오고가며 불행히도 그 중간점을 찾지 못한 그 즈음의 나로서는 둘 중 하나를 ‘심리적’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서로 다른 시야, 서로 다른 해석방법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그 때의 작기만한 나에게 너무도 버거운 것이었다. 3학점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선택해야만 했다. 친구들 가는 쪽으로가자.. 그건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선택중의 하나로 남는다.


여튼, 한동안 사는 것에 핑계를 두고 나에 대한 고민들을 잊고 있었던 듯 하다. 강의가 내게 유익했던 건 강의자체에서 주는 내용을 넘어서 잊고 있던 고민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다. 유예시킨 생각들을 부여잡고 집에 오는 지하철 내내 시무룩했다. 그 무의식이란게 무언지 평생 살아가면서 알 수는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대로 살면 안된다고, ‘심리적 골’이 있어 세상을 패턴대로 바라보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거 도대체 어떻게 바꾸나..이런저런 생각거리들을 안고 돌아오는 길..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덕꾸리기같은 나의 내장들이 밥을 넣어달라고 우렁차게 소리쳐댔다.  '그래..나 이대로나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결국, 또다시 유예시킨 그것들을 언젠가 꺼내보겠지..하며 다음 강의를 기다린다. 
 

 시간이 없어서, 다른 곳에 끄적여 놓았던 걸 잘라 붙였더니 좀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후기 안써진다고 떼써놓고 기껏 열었더니 아무도 안쓰면 민망한 공간이 될까봐 간략히 선방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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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2010-04-2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학생입니다. :) 저 역시 심리학 복수 전공을 고민했으나, 결국 '학점'과 진로...에 따라 포기 쪽으로 기울었구요. NiNaNo님처럼 강의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더군요. 내딛는 걸음 하나 하나가 나는 결코 풀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고민과 생각거리들만 잔뜩 매달린 것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강의 제목은 분명 '나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될까' 였는데, 강의 후 제가 궁금했던 것은 '나, 여지껏 어찌 살아 왔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살아오는데 급급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대체 어떻게 그것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 저것 분명 기록으로써 해놓은 것은 많은데, 그 기록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정도언 선생님의 책 후반부에 설명된 '진짜 나'를 찾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읽고 나서는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희열보다는 부담이 앞섭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시쳇말로 '잘나간다'고 말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오면서 만들어온 '나'가 '진짜 나'가 아니라면...? 그 껍질 속 진짜 나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두렵습니다. 초라하고 약한 모습일까봐, 그리고 그 모습에 실망하게 될까봐. 그래서 어쩌면 이대로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것이 편할 것이란 자위를 해봅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옛 말처럼...
 강의로 인해 잔뜩 헤집어진 마음도 머리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차마 후기로는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NiNaNo님의 글에 기대어 짧게 남겨봅니다. 어쩌면 강의 후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반가워서 이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인간은, 저는 참 간사한 것 같군요.

분다 2010-04-28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노 님의 수업을 들으니, 그날 야근하느라 못들은 수업이 더욱 아쉽네요. 저는 야근만 하는 인생.. 야근하느라 인문학 수업 못들은 인생.. 어찌 살아야 하나요??

pinkmusic 2010-05-0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문학 강의를 오늘 처음 알게되어 이 수업을 듣지는 못 했지만 참 공감가는 강의 제목이라 이 곳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하기 바랐지만, 부모님과 이모께서 밥 먹기 힘든 학문이라는 말에 20대 때는 내 의지에 대한 뚜렷한 관철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말만 믿고 경제학과에 들어왔지요. 사회과학에 맞는 학생인 듯 한데, 경제학과는 저에게 참 어려운 학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심리학을 복수전공하거나 부전공할 수도 있었는데 '가족심리학' 1개의 수업을 들어놓고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실망해서 다시는 심리학과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졸업을 앞둔 시기, 많은 고민을 하게되었습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남들 다 하는 데로 비슷하게 하는 게 가장 행복한 방식일까?' 하지만 주위에서 보는, 남들 다 하는 데로 자기 마음 죽여가면서 사는 사람들은 결국 30대가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버리는 분들을 세계를 여행하면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1학기 앞둔 지금 정말 많은 고민이 됩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중의 선택에서요. 대학교를 들어올 때부터 내 의지가 아닌 부모님의 조언으로 전공을 선택했는데 또 한 번 그와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는데.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일인가 봅니다. 심리학과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았는 지 졸업 후에는 심리와 예술이 합쳐진 표현예술치유에 관해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침내 들었습니다. 이제는 용기를 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정말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거 참 쉽지 않네요. 결론적으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지라도 내가 하고싶은 것을 찾아냈다는 것 그리고 용기만 내면 그 곳으로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다는 건 참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