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길 들추어 보기

 

 

 

 

 

 

 

 

 

 

 

책을 먼저 읽은 후, 영화가 개봉하면 안 보는 편이다. 책의 밀도를 두 시간 짜리 영화가 담아내는데는 데 무리가 있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이 궁금했다. 소설이란 틀만 빌린 철학서 같기에 어떻게 이미지로 만들어냈을까, 하는 궁금증과 리스본의 풍광을 배경으로 하는 이미지를 기웃거릴 수 있을 거란 호기심이 만나 극장을 찾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영화는 책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소설은 추리극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느날 아침 우연히 만난 포루투갈 여인이 남긴 책을 찾아 그레고리는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기차를 탄다. 그리고 책을 쓴 저자의 삶, 그러니까, 포루투갈 독재시기(아마도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저자의 흔적을 통해 역사 속에 얽힌 세 주인공의 사랑의 궤적을 찾아낸다. 소설은 줄거리 보다는 문두스의 사유가 중요해서 긴 사유를 옮긴 글에 집중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확실히 이미지라 사건 중심으로 간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많은 갈등과 일반적 도덕성과 개인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하는 저자의 고뇌가 겹겹이 쓰여있는데 영화는 아무래도 시간 제한이 있다보니 고뇌와 갈등은 사라지고 허겁지겁 사건을 나열한다. 원작에 매우 충실하면서도 원작이 주는 무게와 울림에서는 거리가 멀어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심지어 지루하기도 하다.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그 부분을 어떻게 묘사하는 점을 중점으로 봤는데도 지루하다. 스토리를 몰랐다면 달랐을까.

 

원작이 있고 영화로 만들려고 각색을 하는 일은 흔하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면 대체로 실패하는 거 같다. 두 시간 짜리 이미지가 절대로 글의 밀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작의 일부만을 취사선택해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때 영화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는 거 같다. 물론 이러면 원작을 훼손했다는 둥 하는 비난을 받기도 쉽지만 영화는 책이 주는 정서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영화가 완성됐을 때는, 전혀 다른 매체가 갖는 고유한 힘을 전달 할 수 있어야한다. 이 영화는 이런 점이 없어서 원작에 충실하지만 지루하고 깊이 없는 영화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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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6-1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는 안 보았지만, 책은 읽었고, 두어번 더 읽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소중히 아끼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건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넙치님..

사유의 밀도가 들어가면 무엇이든 된장과 고추장처럼 맛에 깊이가 생기는 것 ... 어디즈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넙치 2014-06-13 14:29   좋아요 0 | URL
안 봐도 되는 영화 리스트에 올리셔도 될 거 같아요.^^;

책이 정말 울림이 있어 저도 보물을 찾은 거 같았아요. 글쵸, 키워드는 사유. 새벽숲길님 김치에도 사유가 들어갈 것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