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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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때(그래 여기도 국민이구나.)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울랄라.....방과후까지 남아서 이걸 다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다.나름대로 잘 나가던 난 우리반에서 가장 먼저 이걸 외우고 당당히 책가방을 쌌다. 집으로 돌아갈 마음에 들뜬 내 뒤통수에 대고 선생님 왈 "넌 남아서 못 외운 아이들 도와주고 가렴'  ....'그럼 그렇지.... '   결국 국민학교 5학년이 다되도록 구구단도 못외우던 친구에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암기를 시켰다. 그러나 될 턱이 있나.해도 눈치를 보며 서산으로 넘어가려는 시간, 더듬더듬 외우던 친구들도 돌아가고 그 친구와 둘이 남아서 계속 '길이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외우고 또 외웠다.  결국 선생님도 데이트를 가셔야 했는지 아님 중간고사 채점을 다 끝내셨는지 내일까지 다 외워올 것을 친구에게 다짐 받으며 돌아가도 좋다고 말씀 하셨다. 어스름 운동장엔 미루나무 그림자가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친구는 콧물 덕지 덕지 묻은 소매자락으로 다시 한번 코를 훔치며 미안하다고 했다.또 선생님에 대한 원망도 빠뜨리지 않았다.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대신 니가 내일 축구할때 꼴키파 봐야돼." ^^

 권혁범 교수의 글은 이미 각종 잡지를 통해서 자주 읽었다.그때마다 우리가 평소에 간과하던 부분에 대한 그의 핀셋으로 뽑아낸 것 같은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에서도 그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다.그가 뽑아든 칼날의 대상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와와 한국민의 근대성이다.이 책은 우리가 지극히 당연시 여겨왔던 국가,국민,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성찰적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한다.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국가주의를, 2부에서는 미국에 대한 인식을, 3부에서는 환경이나 젠더 문제를 주로 다룬다. 물론 책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비평의 관점은 탈근대적 정치사회론이다.이미 탈근대적 관점의 한국사회 분석은 무수히 이루어져 왔다.아마 그 선두에 계간지 <당대비평>이 있었을 듯 하다.물론 권혁범 교수도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으로 있었다.(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임지현 교수(물론 당대 소속이다)의 책들과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전설적 인물 문부식의 글등을 통해 2000년 필두부터 민족주의의 허구성과 국민국가의 폐해,한국 사회의 왜곡된 전체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다.특히 진보층에대한 비판적 성찰은 논쟁의 주요 화두가 되어왔다. 인문사회학 책치고 잘팔린 <우리안의 파시즘>같은 책은 이러한 탈근대적 관점의 한국사회분석 압축판이며 근대론자들과 탈근대론자들의 논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권교수는 우선 우리의 국가관에 대한 특징으로 '국가 무오류성'을 지적한다. 물론 여기서 국가는 '대---한민국' 이다. 신성화된 국가가 개인의 충성을 요구하기 위해 만든 것이 '단결'과 '애국'이다. 일상적인 생활 영역에도 깊숙히 침입해 있는 단결과 애국이란 용어는 개개인을 국가와 국민이란 이름으로 총체화 시켜버린다. 권교수가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국민국가라는 이름이 필충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타자화'이다. 사실 모든 근대적 패러다임이 '타자화'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위해 우리가 타자화 시킨 것은 무었인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권교수의 지적 중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가 신성시 하는 국가라는 것이 무의식과 공론의 영역에서 실제보다 과장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권교수는 '위선적 이중성'이라고 말한다. 즉 국민 개개인이 공동체는 선이며 공동체 중 가장 상위에 해당하는 국가나 민족을 중요시 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국가에 대해 불신하며 개인적 혈연이나 학연등 전근대적 요소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근대론자들은 온전한 국민국가의 건설 미비를 그 원인으로 내세운다. 친일파문제라던가 장기간의 우익 독점적 정치구조,냉전이데올로기의 내제화,외국 군대의 주둔,민족 통일의 미완성 등과 같은 문제의 청산이 이루어져야 온전한 국민국가가 완성되어야 국가의 공적영역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사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근대론자들의 주장을 너무 단순화한 느낌이 들어 찝찝하지만 골자는 그렇다는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오래도록 치열한 공방이 되던 주제였고 요즘은 다들 중용적인 태도로 문제를 수용하는 듯하다. 권교수 역시 책 말미에 이 부분에 대해 개념적으로 '진보'와 '탈진보'의 중층적 해결이 선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진중권 역시 <사회비평>에서 엘리아데와 푸코의 예를 들어가며 근대론자들의 발전주의적 해결에 반대하며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를 중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권혁범 교수는 민족주의의 보수성과 그 허구성에 대해 지적한다.그러면서 한발 더 나아가 저항적 민족주의 마저도 결국에는 자민족 중심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민족주의가  더 이상 진보의 개념이 될 수 없다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하지만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의 경험이 있는 우리 역사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칫 반역사적이거나 몰역사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과거  경희대 도정일 교수는 <당대비평>에서  '내셔널리즘의 전면배척'에 대해 반대했다.패권적 민족주의에 반대하지만 피압박민족의 저항적 민족주의에는 찬성한다는 것이다.그러며 한마디 더 붙이기를 문화 다양성을 파괴하는 시장 유일주의 속의 반민족주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권혁범 교수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화의 경제적 부문만 부각되고 이에 대한 민족 경제적 반감에 대해 유의할 것을 주장한다.오히려 다양성이 서로 교류되는 '파이프현상'을 예로 들며 보편적인 세계주의 타당성 관점으로 바라보길 권한다.교조주의적 세계화 반대세력과 대세론적 세계화 수용세력 양자가 다 성찰적으로 돌아보아야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주의적 관점이 적용되는 부문이 3부에 나오는 환경과 민족문제이다. 사실 환경문제와 민족문제는 별개의 문제처럼 작동해 왔다.권교수는 민족이 부국강병의 매커니즘 속에서 환경파괴를 지속적으로 감행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임을 지적한다.그러면서 제3세계가 환경문제에 있어서 환경파괴의 근본원인으로 제1세계를 지적하며 환경이슈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즉 귀책사유의 대부분이 1세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보편적 이성이 요구하고 전지구적인 컨센서스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환경민족론이 해악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야 준주변국으로 여기저기 눈치보며 적당한 수준에서 국제환경문제에 발을 담고 있지만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탈근대적인 사회분석에 매력을 느낀다.우선 지독히도 '우리'와 '하나'와 '대동단결'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의 갑갑성에 대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분명히 그러한 느낌은 내게 간파당했었다.당시 목소리 컸던 사람들은 지난 대선에서 또 대개 큰 목소리로 '비지론'을 주장했다. ^^  물론 소수파도 있지만^^  또 한가지 거시담론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일상생활 영역을 움직이는 힘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반갑다. 하지만 내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여론조사에서는 7:3으로 밀리는 이런 형국에 또 다른 탈근대적 접근이  현실적으로 어떤 힘을 발휘할 지는 의심스럽다.(그리고 ..나 군대 갔다 왔다. 이런 자기방어기제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건 언제일까?)그나마 그런 이슈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이 아니었을까 위안해 본다.

후기) 아...국민교육헌장 못외운 친구...지금 생각해보니 그 집이 생활보호대상자 였던 것 같다.다 쓰러져가는 슬레트 집에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지난해인가 수십년만에 동창싸이트에서 그 친구의 글을 보았다. 여전히 맞춤법은 개판이더군.그래도  이름난 경비업체에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었다. 그 친구의 글 말미에 코 끝이 찡해졋던 기억이난다. ' 우리 국민학교 동기들 중 가장 못난 ㅇㅇ 가 너희들이 보고 싶다." ...그 친구 옛날부터 골키퍼 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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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사


안정사 옥련암 낡은 단청의 추녀 끝
사방지기로 매달린 물고기가
풍경 속을 헤엄치듯
지느러밀 매고 있다
청동바다 섬들은 소릿골 건너 아득히 목메올 테지만
갈 수 없는 곳 풍경 깨어지라 몸 부딪쳐 저 물고기
벌써 수천 대접째의 놋쇠 소릴 바람결에
쏟아 보내고 있다
그 요동으로도 하늘은 금세 눈 올 듯 멍빛이다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앉았다가 한다

가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
놋대접풍으로 쩔렁거려서
그리운 마음 흘러 넘치게 하는
바다 가까운 절간이다

                                               김명인 시집 <바닷가의 장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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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꽃밭 가운데 술 항아리

함께할 사람 없어 혼자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모셔오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

그러나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 또한 그저 내 몸 따라 움직일 뿐

그런 대로 달과 그림자 짝하여서라도

이 봄 가기 전에 즐겨나 보세

내가 노래하면 달 서성이고

내가 춤을 추며 그림자 어지러이 움직인다

깨어 있을 때에는 함께 즐기지만

취하고 나면 또 제각기 흩어져가겠지

아무렴 우리끼리의 이 우정 길이 맺어

이 다음엔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

                                                      이백 <월하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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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문을 닫고서 어찌 산빛 진함을 알 수 있으랴?

산꽃 그림자가 무논에 비치는데

물 속의 꽃들을 꼼꼼히 세어보니

산꽃과 짝이 되어 하나하나 같은 모습

                                                     양만리 <수중산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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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

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위에서

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

구별을 용서하지 않는

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김수영 <여름아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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