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1989)

<퍼온 글....>

20세기의 대지휘자들은 ‘카리스마’라는 단어로 특징지어질 수 있었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어떨까. 섬세, 예민, 선병질적, 신경질적, 신경과민, 까다로움, 변덕, 자존심, 만, 고집불통 등의 단어들이 유난히 쉽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는 19세기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보여준 특성들과 거의 고스란히 일치한다. 쇼팽과 리스트를 떠올리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호로비츠를 보라! 마치 느긋하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인 듯 보이는 말년의 사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이런 말들이 이해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까다로웠다!
호로비츠는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유일한 연주가’라는 명제를 뒤집었다. ‘지휘자들마저 자신의 악기인 오케스트라를 대동하고 다니는데, 피아니스트는 왜 안되지?’라는 그의 순간적인 의문은 ‘점보 747을 타고 하늘을 나는 피아노’를 만들어냈다. 전속 요리사와 정수기도 연주회에 꼭 따라다녔다.
그렇지만 그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그 ‘까다로움’에 항상 감사해야 했다. 완벽한 테크닉과 무궁무진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주관에 입각해 빚어낸 호로비츠의 개성적인 피아니즘 역시 보통의 예민함과 보통의 감수성으로는 빚어지지 않는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키에프에서 탄생할 당시 그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고로비츠였다.
아버지는 기술자였고, 어머니와 누이는 피아니스트였으며 동생은 바이올린을 했다. 피아노도 처음에는 어머니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안톤 루빈슈타인의 제자였던 또 하나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펠릭스 블루멘펠트에게서 배운 것이야말로 호로비츠를 러시아 피아니즘 전통의 적자이자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든 시작이었다.
18세의 나이에 가진 데뷔 연주회의 성공으로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1925년, 21세의 나이에 서유럽으로 건너가, 이듬해 함부르크에서 가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대성공으로 명성을 확고히 했다. 28년, 뉴욕 필과 역시 차이코프스키 1번을 협연하며 이루어낸 카네기홀 데뷔 또한 그에게 성공을 안겼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성공만 한 피아니스트가 또 있을까. 33년, 토스카니니의 뉴욕 필과의 베토벤 시리즈는 성공과 함께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를 그의 품에 안겼다. ‘토스카니니의 사위’는 또 하나의 막강한 권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36년, 불과 32세의 나이로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1939년 무대에 복귀한 그는 20년이 채 흐르기 전인 53년, 다시 은퇴한다. 왜 이렇게 자주 은퇴와 복귀를 거듭한 것일까. 역시 그의 까다로운 성품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1965년, 지금은 ‘역사적 귀환’이라 기억되는 연주회를 카네기 홀에서 열었다. 이후 그가 남긴 역사적 연주회는 78년 백악관에서의 ‘미국 데뷔 50주년’ 연주회, 86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61년 만의 귀향 연주회’ 87년 베를린에서의 ‘최후의 연주회’ 등이다. 89년 심장발작으로 사망, 밀라노에 있는 토스카니니의 무덤 옆에 묻혔다.
15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음반을 남긴 호로비츠. 그중에서 ‘이것이 그의 명반이다’라고 꼬집어 내기 무척 힘들다. RCA 레이블의 호로비츠 전집은 그의 예술혼을 엿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역사적 귀환’ 실황녹음(소니), 최만년의 도이치 그라모폰의 소품 위주의 녹음 등도 새겨들을 만한 음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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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쉐링이다. 이미 고인이 된 바이올린연주자다.

1921년 폴란드 출신인데 30대 중반이 될때까지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가 발탁하면서 명성을 쌓게된다. 2차 대전 당시 멕시코가 망명객들을 흔쾌히 받아들여주는 것을 보고 멕시코로 국적을 바꾼다.

그의 연주는 참으로 단아하다.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난도의 테크닉 곡들을 유려하게 연주한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오래 닦아 자연스런 윤기가 나는 어린시절 나무복도가 생각난다.

그의 대표적인 연주로는 단연 바흐의 무반주바이올린 조곡인데 50년대 CBS녹음과 70년대 DG녹음이 많이 알려져있다.어떤 이들은 그의 무반주 연주가 너무나 규범적이어서 조금 심심하다고도 한다. 최근의 원전연주나 무곡의 분위기를 잘 살린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연주에 비하면 너무 모범생같은 연주인것도 사실이다.하지만 바흐 음악의 구조와 엄격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바흐 연주를 최고로 꼽는것 같다.

그가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슈만협주곡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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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잡이 반 니스텔 루이(가운데) ....이번 시즌 영입된 공격수 사하와  수비수 실베스트리..... 맨유는 유니폼이 이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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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가대표이기도 한 파누치. AS로마 수비수다.. 라이벌 인터밀란과의 경기중

파누치를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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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에서 4:2로 레알이 이기더만....결국엔 레알 탈락....지단도 곧 은퇴할 때가 다 됐는데 아쉽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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