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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 나는 오늘도 1
미셸 퓌에슈 지음, 나타니엘 미클레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오늘도 시리즈도 이제 거의 다 읽어간다. 이 시리즈는, 늘 어떠한 동사에 대하여 여러가지 의미들을 짚어주었기에, 사랑하다는 동사에서도 역시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사랑하다는 이 주제에 대해서만은 남녀의 사랑만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서 사실, 책을 접한 것이 일렀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더러 '책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말이 유난히 와닿는데,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책도 있지만, 특정 시기가 지나야만 읽기에 적절한 책들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다.

 

 상대의 아름다운 외모, 장점들(유머감각, 준비된 태도, 관대함, 정직함 등등)은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사랑은 이런 이유들만으로 완전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할때, 우리는 그의 아름다움이나 유머, 장점, 특별한 점들 또한 좋아하지만,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38,39p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감흥'이 없어져가는 것 같다. 그것이 남들처럼 사랑의 비참함과 고통을 뼛속까지 느껴보고 나서야 사랑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가, 이제 두근거리지 않는것 같아인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 그렇게 가슴아파하는 것도, 자신이 모든 것을 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도, 때로는 이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실상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는 감정은 아니다.

 나는 '사랑이란 우정의 변질'이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하는데, 남녀간의 사랑에도 호르몬이 작용하는 그 강력한 시기를 빼고나면 그다음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우정'과 크게 다른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우정에는 콩깍지가 쓰인 시기가 없지만, 사랑에는 그 시기가 존재할 뿐.

 사람과 지내다보면 동성,이성의 관계를 벗어나서 정말 미운데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과정이전에 호르몬의 작용을 받은 이성관계라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짜증나고 한심하게 여겼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해요! 사랑하니까, 판단해서는 안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어디까지 그래야 하는 거죠?  -62,63p

 나는 그 단계를 넘어섰을때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달라져야한다'는 또 다른 고정관념이 싫어서, 그 단계를 넘어서기가 꺼려진다. 남녀간의 사랑도 어찌보면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인데,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면 억지로 이해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 사람은 내 운명이 아니었나하고 번뇌한다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정이란 관계도 서로의 장단점을 품어가는 과정인데,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사소한 단점들은 술자리등을 통해서 털거나, 큰 감정의 동요없이 품어주지 않는가. 사랑이라는 감정이란, 정말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만 하는 감정인걸까? 내 편을 하나 얻었다는 자연스러운 감정만 남길수는 없는 걸까? 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항상 불안에 떠는 것처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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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7 : 원하다 나는 오늘도 7
미쉘 퓌에슈 지음, 틸 샤를리에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앞서 읽었던 나는 오늘도 시리즈들에 비하여 철학적인 느낌보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느낌이 많이 묻어나서 조금은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것들을 원한다. 사소하게는 점심메뉴부터, 크게는 앞으로의 내 미래까지. 하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가 정말 이 일을 원해서 하는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은 '원해야만 하는'것 인가, 그냥 '원하는' 것인가? -37p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서 있는 길에서 이것이 내 천직이요하면서 달리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대게는 어느 순간 능력의 한계나 의지의 한계라는 벽에 부딧히고 힐끔 돌아봤던 지나온길들이 갑자기 엉망진창으로 보이곤 하는 것이다.

 

 말로는 "이 케이크는 정말 잘 굽고 싶었는데..."라고 했지만, 사실 완전히 망쳤다고 하자. 책장에 있는 요리책을 꺼내 보지도 않았고, 케이크를 만드는 내내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한 눈으로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흘끔거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중엔 계량컵을 씻을 일이 귀찮아서 재료의 양도 정확히 재지 않고 눈대중으로 맞췄다.

 그 결과 케이크는 맛도 모양도 엉망이 되었다. 이럴대는 케이크를 잘 굽기를 '원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나의 행동들은 다른 목표를 향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원한다는 것은 단지 기분 좋은 빈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이 믿게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91p

 우리는 대게 남의 꿈을 꿔주는 일에 익숙한것 같다. 우리가 이타적인 행위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껴서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는 단지 그렇게 배워왔고, 이제는 나의 want를 무시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남의 꿈을 따라 살면,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심지어는 모두가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늘 우리의 일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하는 이유는 실제 내 마음은 그곳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의 문제인 걸까?

 가끔씩은 본인 스스로 꿈이라 믿고 따라왔던 일조차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정말 그것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일이었는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과 의견을 고려해서 적당히 잘 짜맞추어놓은 '그래도 해보면 멋있어 보일만한 일'이었는지... 자신의 의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와 마주보고 정말 나의 마음이 하는 말을 들어볼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도 그럴듯하게 속아넘길수 있는 능력이 있기때문에...

 

 두 사람 모두 집에서 해야할 일을 한다든가, 적당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든가, 다이어트를 한다든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처럼 원해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운 일조자 하지 않는다. 새 청바지를 사러간다든가,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에 나간다든가, 보고 싶어 예매해놨던 영화를 보러 나간다든가 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62p

  우리는 늘 너무 힘을 내면서 살고있고, 그러자 어느 순간 '힐링'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더니, 자신에게 좀더 너그러워져야한다는 이야기가 자기계발서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너그러워져야한다는 말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정말 엄청난 결과가 초래된다. 너그러워지라는 말은 본인을 죽을만큼 혹사시키지 말라는 것이지, 하기 싫어하는 어리광을 모조리 받아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에서는 의지를 '행동'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의지란 귀찮음과 게으름에 의해서 종종 미루어지고 잊혀지곤 한다. 정말 원하는 일인데 그것을 미루는 것은 너그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의지박약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알고, 그것을 해낼수 있을 때, 다른것들은 염두하지 않고 그냥 일단 해보는 것. 정말 간단해보이지만, 참 쉽지 않은 일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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