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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없고/ 낄낄거릴 것도 없고/ 너무 배부를 것도 없고,/ 안다고 알았다고/ 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고/ 누구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없고/ 엉엉 울 것도 없다/ 뭐드지간에 하여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 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 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 그 어떤 모습이거나/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정현종의 시집 '한 꽃송이'에 있는 시다. 오늘, 내 기분이 딱 이 만큼이다.  이 사람의 시에는 유독 슬픈 시가 많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하다싶을 때 읽기에 적당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가 그렇다.

<무슨 슬픔이>

새벽에, /마악 잠 깼을 때, /무슨 슬픔이 퍼져나간다 /퍼지고 또 퍼진다, /생명의 저 맹목성을 적시며 /한없이 퍼져나간다 /메뚜기가 보고 싶다

<어떤 손수건>

슬프구나 /작년에 입었던 옷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손수건

<슬픔>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덤덤하거나 짜릿한 표정들도 보았고 /막히거나 뚫린 몸짓들도 보았으며 /탕진만이 쉬게 할 욕망들도 보았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이열치열 요법이 우울하거나 슬플 때도 효과가 있다. 그래,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버리면 만사는 오케이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짊어지고 살아야할 몫이라면 순응하겠다. 얼키고설킨 인간관계 감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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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책 중 유난히 낡고 바랬음에도 다른 고급 장정의 책에 비해 편애하는  <싸일러스 마아너>의 특이성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이웃들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가는 괴팍한 성격의 직조공에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 눈이 내린 추운 겨울 아기 천사가 아장아장 걸어온 것, 이후 독신남 싸일러스 마아너의 삶은 급속도로 변화한다. 

미녀와 야수, 꽃이 피지 않는 정원 등의 이야기처럼 절대 다수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순진무구한 여자 혹은 아이로 인해 감화되어 세상밖으로 나온다는 설정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영국 농촌의 계급사회와 종교적 갈등은 대충 넘기고 오로지 관심은 싸일러스 마아너와 에피 사이에 일어나는 자그마한 에피소드들로 거칠고 무지한 남자의 아이 돌보기라는 관점에서 이 보다 재미난 소설은 없을 듯 싶다. 물론 지금 다시 이 책을 펼치면 장황한 묘사와 시대적 배경을 유심히 들여다 볼 테지만 그닥 의식을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내겐 예쁘고 감동적인 작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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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다녀온 뒤 시름시름 앓았다. 버스를 서너번은 갈아타고 비탈진 길을 따라 걸어서 20여분은 걸어야 보이는 고향집은 허물어질 듯 낡았다. 어린 시절 그토록 크고 넓고 깊어보이던 곳이었는데, 성장한 이후 처음으로 객관적인 시각에 비추는 집은 이상한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집 뒤의 대숲은 여전히 푸르고, 숲 옆에 우뚝 솟은 소나무도 근사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저곳에 서 있었을까. 소나무 옆에는 둥근 바위가 버티고 있다. 그 바위 밑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비바람을 가려주고,  마른 짚단을 펼치고 단잠을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잡초만이 무성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은 쓸쓸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풀이 자랄 틈도 없이 어린아이들의 발자국이 찍히던 정겨운 산이었다. 

때로는 추억이 고통이 되기도 한다. 흐르는 세월만큼 사물은 변하고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뒤의 모습이 주는 괴리감은 이렇게 씁쓸한 아픔이 되는 탓이다. 질퍽질퍽 흙길이 회색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자동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는 시골길이 뭐가 어떻다고. 너는 도시로 나가 되는대로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 머무는 짧은 시간도 불만만 쏟아내느냐고 질책하여도 쓸쓸한 건 쓸쓸한 거다.

그럼에도 시골 밤은 여전히 까맣고 별은 총총했다. 너무 많아서 쏟아질 것만 같은데 어찌나 추운지 별빛 근사한 낭만 따위가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문하나만 열면 곧바로 마당으로 향하는 방의 구조는 아무리 두터운 커튼을 달아도 매서운 칼바람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아침, 낮은 벽돌 담 너머로 텅빈 들녘과 산이 무심한 인사를 건네는 건 과거나 현재나 매한가지. 어느 때 건 돌아올 고향, 집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 네 의무임을 잊지말라고 다짐두었다.  망아지처럼 뛰놀던 유년의 기억이 숨쉬는 산과 들, 마당에 구르는 돌맹이, 부서진 장독대를 기억의 창고에 다시금 꾸역꾸역 눌러담았다. 고향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축복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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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0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향...한폭의 수채화같은 글이네요...추위에 떨던 별빛은 저의 고향인 바다와 똑같군요...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93년 8월이었다. 작고 얇은 한 권의 책이지만 어지러웠던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고 대변하는 독특한 양식에 매료되어 하룻밤을 샐 만큼 내게는 특별한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다스리지 못하여 울고 웃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이름으로 그림 속에 깃든 역사를 추적하여 다니는 서경식의 여행기는 잠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역사는 고통으로 얼룩져 왔고 그것을 기록하는 화가들의 영혼은 치열할 수밖에 없음이다. 두 형을 독재정권의 손아귀에 빼앗기고 부서진 가족의 파편을 먼 이국의 땅에서 발견하고 감회에 젖어 기록하는 사람 또한 또 하나의 예술가임은 분명하다.

회화에는 일자무식이었던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감동받으며 잊을 수 없는 그림 몇 개를 가슴에 각인 시킨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그림이든 역사를 캐고 읽으며 이야기를 만드는 습관이 생겼으니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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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몫으로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생각하라, 얼마나 무거워야 가벼워지는지를.  내가 아직 자유로운 영혼, 들새처럼 날으는 영혼의 힘으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짐이 아직 충분히 무겁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시를 읽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명쾌하고 유쾌한 언어의 유희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진다. 한 때, 이 사람의 시에 마약처럼 취해 살았다.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를 끌어안고 아직도 꿈을 꾸는 내 나이, 서른 중반.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때로는 이런 명료함이 절실하다. 특히나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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