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다녀온 뒤 시름시름 앓았다. 버스를 서너번은 갈아타고 비탈진 길을 따라 걸어서 20여분은 걸어야 보이는 고향집은 허물어질 듯 낡았다. 어린 시절 그토록 크고 넓고 깊어보이던 곳이었는데, 성장한 이후 처음으로 객관적인 시각에 비추는 집은 이상한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집 뒤의 대숲은 여전히 푸르고, 숲 옆에 우뚝 솟은 소나무도 근사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저곳에 서 있었을까. 소나무 옆에는 둥근 바위가 버티고 있다. 그 바위 밑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비바람을 가려주고,  마른 짚단을 펼치고 단잠을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잡초만이 무성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은 쓸쓸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풀이 자랄 틈도 없이 어린아이들의 발자국이 찍히던 정겨운 산이었다. 

때로는 추억이 고통이 되기도 한다. 흐르는 세월만큼 사물은 변하고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뒤의 모습이 주는 괴리감은 이렇게 씁쓸한 아픔이 되는 탓이다. 질퍽질퍽 흙길이 회색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자동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는 시골길이 뭐가 어떻다고. 너는 도시로 나가 되는대로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 머무는 짧은 시간도 불만만 쏟아내느냐고 질책하여도 쓸쓸한 건 쓸쓸한 거다.

그럼에도 시골 밤은 여전히 까맣고 별은 총총했다. 너무 많아서 쏟아질 것만 같은데 어찌나 추운지 별빛 근사한 낭만 따위가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문하나만 열면 곧바로 마당으로 향하는 방의 구조는 아무리 두터운 커튼을 달아도 매서운 칼바람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아침, 낮은 벽돌 담 너머로 텅빈 들녘과 산이 무심한 인사를 건네는 건 과거나 현재나 매한가지. 어느 때 건 돌아올 고향, 집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 네 의무임을 잊지말라고 다짐두었다.  망아지처럼 뛰놀던 유년의 기억이 숨쉬는 산과 들, 마당에 구르는 돌맹이, 부서진 장독대를 기억의 창고에 다시금 꾸역꾸역 눌러담았다. 고향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축복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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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0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향...한폭의 수채화같은 글이네요...추위에 떨던 별빛은 저의 고향인 바다와 똑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