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만화다. 너무 유명해서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다. 사실은 읽기를 시도했다가 진도가 나가지를 않아서 포기했다. 그런데 최근 대충 알던 남자애가 일본에 다녀왔다며 휴가 이야기를 하다가 이 만화로 흘러갔는데 이 만화의 열렬한 독자였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일은 고통이다. 모름지기 대화란 공통적인 분모가 있어야한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이 내내 울었다. 호르몬의 이상인지 아니면 이상기후 때문인지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눈물이 쏟아져 훌쩍이고 있다. 무슨 조화인가. 원래부터 감정이입이 빨라서 한번 터진 눈물을 멈추는데 애를 먹곤 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재미있다고 낄낄대고 보는 만화를 왜 나는 질질 콧물 눈물을 쏟을까.


소마가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십이지의 혼령이 깃드는 저주를 받는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고통스런 숙명을 짊어진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잊혀진 채로 어둡고 고통스런 기억을 끌어않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누구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심어주는 소마가의 당주 아키토는 십이지의 혼령을 지배하는 신적인 존재로서 모든 불행의 근원이기도 하다.


저주, 돌연변이, 괴물 같은 존재, 유폐나 은폐, 혹은 망각을 선택하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애정에 굶주림 아이들. 슬프다. 슬프기가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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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2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제목의 경쾌함이나 귀여운 책표지하고는 거리가 꽤 먼 이야기네요.
얼마전 누가 이 책을 참 좋아한다고 권했는데 우울과 몽상님의 글을 보니
꼭 읽어야 할듯합니다.^^

겨울 2004-08-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전에는, 저도 이리 어둡고 무거운 내용인지 몰랐답니다. 아동틱한 그림에 대한 선입견으로 오랫동안 외면한 점이 아쉽더라구요.
 

귀뚜라미가 운다. 아, 가을이다.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이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 오후에는 고대하던 소나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그 여파로 마당은 폭풍이 지나간 듯 어지럽다. 제법 알이 굵어 지붕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한 감과 잎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화단에 심은 고추나무는 휘엉청 허리를 꺾고 드러누웠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서둘러 쓰러진 고추나무부터 일으켜 세웠다. 실하지는 않지만 주렁주렁 매달린 푸른 고추를 아직은 오래도록 따서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에 다녀온 시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너른 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였다. 이번 더위의 혜택을 보는 거라면 고추말리기라며 햇볕과 바람과 먼지로 검게 말라가는 고추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할머니를 보니 덥다고 마냥 푸념을 늘어놓지도 못했다. 한낮엔 너무 뜨거워 마르다 못해 익는 고추를 보호하기위해 햇볕가리개를 덮을 정도란다. 할머니는 새까맣게 타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고추를 매만지느라 도통 쉴 생각을 안 하신 탓이다.


고향은 지금 수난시대다. 산의 허리를 뚝 잘라 고속도로를 낸다고 얼마 전부터 공사가 한창인데 반듯하게 포장된 넓은 길 따위는 아무리 좋게 봐도 정감이 안 간다. 머잖아 저 길로 요란한 경적소리를 내며 화물차며 자가용이 달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리 봐도 득보다는 실이 많은 발전이다. 세상의 온갖 해악들이 저 길을 타고 마을로 올 것만 같다. 윗동네에는 벌써 공장이 들어서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물장구치고 놀던 냇가도 이제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다. 사람 살 곳이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것일까. 늘어가는 빈 집, 아이들이 없는 마을, 분교로 전락한 학교. 차들을 위한 도로는 반듯하게 끝을 모르고 전진하건만 사람이 사는 마을, 집들에서는 어떤 희미한 빛도 새어나오지 않고 점점 몰락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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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8-1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어디나 시골의 현실은 동일한것 같네요. 저의 고향도 님의 고향보다 조금 빨리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과 인간의 동반자적인 의미를 전혀 두지 않는 무분별한 개발은 곧 비참한 결말을 보게 될것같아 안타깝네요.

겨울 2004-08-1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고향도 그러한가요.. 사실 이렇게 불평만 늘어놓을 뿐 적극적으로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과연 농사짓는 법을 배울 가치가 있을까만 회의하죠. 적자인 줄 알면서도 키우던 가축을 버리지 못하고 짓던 농사를 갈아엎지 못하는 우직한 농군들...
 

 

 

 

지인의 책장에서 건져 올린 책이다. 평소에 쉬이 손이 가지 않는 책이랄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와 흥미가 더해져 신나게 읽어치웠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장점과 단점을 절묘하게 버무려 놓은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의 이 책은 전혀 상상도 안했던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훔쳐보는 엿보는 재미를 더했다.


먼저 김영삼 전대통령에 얽힌 일화들인데 하나하나가 어찌나 웃긴지 배꼽을 잡았다. 어쨌거나 내가 아는 상식 안에서의 그의 모습은 젊은 시절 유신독재와 싸운 꼿꼿한 투사의 그것인데, 이 책 안의 그는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뉴스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거나 어찌나 오만하고 독선적인지 기독교신자이면서도 교회에서 기도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니, 정말인가.


김영삼 전대통령과 비교당한 인물은 딴지일보의 총수 김어준인데 사실 책으로 발행된 것을 유쾌하게 읽긴 했어도 깊이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엄두는 나지 않았었다. 말발이 거칠고 센 그렇고 그런 인간정도랄까.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정혜신 박사는 김어준에 관한한 상당히 호의적이다. 앞에서 김영삼을 참혹하게 칼질한 것과는 정말 대조적이다.


“김어준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발상 전환의 필요성을 체득한다. 그가 강조하는 다양한 시각이란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다름 아니며 균형감각의 또다른 표현이다. 그의 균형감각은 경쾌함을 진중하게 표현할 줄아는 모차르트의 재능처럼 다분히 천성적이다.” 800억을 제시하는 딴지일보 인수제의에 대한 ‘8조 원짜리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오만과 독선이 김영삼과는 달리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귀엽고 유쾌하다’는 역설은 정말이지 호의를 넘은 애정이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독자들이 딴지와 관련해서 어떤 ‘제안’을 해올 때는 충분한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딴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해오면 그냥 놔둡니다. 왜냐하면 그 지적이나 비판 자체는 그 독자가 언론으로 기능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1인 언론’의 실현이 딴지의 모토이기 때문에 저는 지적이나 비판을 하는 독자도 하나의 언론으로 간주하고 싶은 겁니다. 딴지라는 하나의 언론매체와 그것을 향유하는 독자의 관계는 거부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대꾸도 안 합니다. 정 귀찮게 구는 독자가 있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그럼 니가 만들어.’” 여기서 폭소가 안 터지면 이상하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괴짜중의 한 사람 정도로 여겼는데 이 정도가 되면 상당히 궁금해진다. 딱히 정치에 관심있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딴지일보식 김어준식 정치와 세상이 몹시 궁금해졌다.


이건희와 조영남도 물론 흥미롭다. 장세동과 전유성도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음’소리가 절로 난다. 이수성과 강준만, 박종웅과 유시민까지 읽으면서 선입견의 상당 부분을 이해의 폭으로 넓혔다. 이수성과 박종웅을 보는 시각이 꽤 달라졌는데 그래도 역시 정치인에 관한 편견은 깨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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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8-1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론에 비춰지는 가면 속에 감추어진 내밀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책이군요. 보관함으로 직행~^^

로드무비 2004-08-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쓴 사람의 시각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요.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마당발 이수성 씨에 대한 코멘트가 두고두고 남더군요.^^

kleinsusun 2004-12-1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참 엉뚱한 사람이죠.

딴지 기자들이랑 총수랑 몇번 술을 같이 마신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랑 얘기하면 아주 유쾌해요.

결혼식을 가족들 몇명이랑 괌에 가서 했다는데, 그런 약간은 낭만적이고 조촐한 결혼식,그런 결혼식을 저도 하고 싶어요.

근데 이 책, 남자 vs 남자는 산지 거의 1년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안 읽고 있어요.

정혜신은 이 책의 주인공들을 몇번이나 만나봤을까요?


겨울 2004-12-1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났다기 보다는 자료에 의존해서 쓴 글이 아닐까요? 수선님이라면 어떤 글을 쓸까요. 무척 궁금.
 

폭염에 애꿎은 감나무가 몸살을 앓는다. 얼마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감나무잎을 갉아먹어 하얗게 줄기를 드러낸 것이다. 더 이상 방관을 하다가는 조만간 새끼손가락 반만한 송충이가 벽을 타고 기어내려올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처음은  있기 마련, 농약과 분무기를 준비하고 긴 소매, 긴 바지에 마스크, 모자까지 갖춘 뒤 약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왠지 어설픈 게 조준도 엉뚱하고 금방이라도 독성이 강한 약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 같았는데, 시행착오를 거쳐 숙달이 되자 약을 치는 손이 점점 능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생각해보니 해충약의 원액과 물의 비율도 대충 맞추어서 낼이나 모래쯤 벌레가 살아있다면 다시 시도를 해야할런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그 일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백배정도 홀가분했다. 감알이 제법 실하게 커서 그 위에 허연 농약을 뿌리기가 저으기 꺼려졌지만 작년에 기하급수적로 불어난 벌레에 기겁을 하고 놀란 것을 떠올리면 절대 눈감아줄 수 없다. 어떨땐 차라리 나무를 베어버릴까하는 충동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가을에 붉게 읽은 단감을 따서 먹는 얍삽함을 생각하며 올해도 저 징그러운 벌레와 맞서야한다.

샤워를 하고 땀을 식히는데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낼 찾아뵙기로 했는데 꼭 올 것인지를 확인하시는 거다. 감나무에 벌레가 생겼다고 징그러워 죽겠다고 하자 껄껄 웃으신다. 나는 몰랐지만 할머니는 해마다 겪으신 일이다. 벌레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세세한 설명도 곁들이신다. 함께 살 땐 매사에 건성건성 듣는 둥 보는 둥이었다. 맛난 열매가 익기까지 자잘한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리석게도 잊고 있었다. 심어놓고 기다린다고 기다리는 고추가 열리지 않듯, 비료를 줘야할 시기가 있고 아침 저녁으로 물도 줘야하고 또 가장 중요한 햇빛이 있어야하는데, 앞뜰에 심어놓은 고추나무는 부러질 듯 가늘고 모양새도 산만하다. 할머니가 보시면 기가막힌 웃음소리를 내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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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8-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이 효과를 발휘하여 가을에 맛난 단감이 열렸으면 좋겠네요^^

겨울 2004-08-0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일어나 보니 꽤 많은 숫자의 벌레가 꿈틀꿈틀 기어다니더라는... 벌레 중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것도 있을 터, 그러나 결코 눈 뜨고는 못볼 것들...
 

비교적 타인의 허물에 관대한 편이다. 약간 헐렁하고 조금 모자르고 적당히 없으면서도 여유는 만땅인 사람을 좋아한다. 때에 따라서 말을 가리지만 꼭 필요한 말은 적절하게 하는 사람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타인의 단점만을 꼬집거나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있거나 살면서 한번은 있을 법한 실수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거리감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천성적으로 타고난 나쁜 습관이나 말버릇은 그 사람의 고유한 개성으로 치부할 수 있다.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무덤덤한 성격, 좋은 게 좋고, 나빠도 최악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봐주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성격, 어떤 불운도 내게 오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일 중의 하나가 되고 또 행운도 역시 그렇다. 크게 기뻐하지도 않지만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을 유심히 보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지도 않고, 차례가 올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렸다가 볼 일을 본다. 끼어들기도 무단횡단도 마냥 서툴고 비교적 먼 거리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먼저 소리내어 부를 줄도 모른다. 그가 알아보기를 기다렸다가 모르고 지나가면 그런가보다한다.

그러나 내가 참고 감싸서 감춰질 성질의 실수가 아닌, 극단적인 처치가 필요한 실수를 한 그녀를 보는 마음이 한없이 무겁다. 아무리 가벼운 인연도 내 쪽에서 끊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경우는 정말이지 우울하다. 마주치면 웃고 말하고 기분좋게 헤어지고 다시 만났던 사람과 어떻게 지금의 웃는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로 대해야할지 난감하다. 나 한사람이 손해를 감수하고 끝나는 문제라면 상관이 없지만 다른 이와 얽힌 이 매듭은 몹시 거북하고 불편하다.

어떤 사람도 돈 앞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대개 한 번은 복권의 당첨을 꿈꾸고 거리에서 눈 먼 돈을 줍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인을 모르는 돈을 슬쩍 주워 갖는 것과는 달리 타인의 주머니에서 꺼내가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불가하다. 그리고 그런 돈에는 재앙이 따른다. 그렇게 쉽게 남의 것이  내 것이 될 리가 없잖은가. 제대로 돈을 쓰는 사람이 제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고,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돈 씀씀이를 관찰하면 대충 답이 나온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는 못해도 그것이 내 게 아닌 남의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만은 기억하는 인간을 지향한다. 아, 그럼에도 꿀꿀하다. 미운 건 사람이 아니라 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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