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애꿎은 감나무가 몸살을 앓는다. 얼마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감나무잎을 갉아먹어 하얗게 줄기를 드러낸 것이다. 더 이상 방관을 하다가는 조만간 새끼손가락 반만한 송충이가 벽을 타고 기어내려올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처음은 있기 마련, 농약과 분무기를 준비하고 긴 소매, 긴 바지에 마스크, 모자까지 갖춘 뒤 약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왠지 어설픈 게 조준도 엉뚱하고 금방이라도 독성이 강한 약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 같았는데, 시행착오를 거쳐 숙달이 되자 약을 치는 손이 점점 능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생각해보니 해충약의 원액과 물의 비율도 대충 맞추어서 낼이나 모래쯤 벌레가 살아있다면 다시 시도를 해야할런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그 일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백배정도 홀가분했다. 감알이 제법 실하게 커서 그 위에 허연 농약을 뿌리기가 저으기 꺼려졌지만 작년에 기하급수적로 불어난 벌레에 기겁을 하고 놀란 것을 떠올리면 절대 눈감아줄 수 없다. 어떨땐 차라리 나무를 베어버릴까하는 충동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가을에 붉게 읽은 단감을 따서 먹는 얍삽함을 생각하며 올해도 저 징그러운 벌레와 맞서야한다.
샤워를 하고 땀을 식히는데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낼 찾아뵙기로 했는데 꼭 올 것인지를 확인하시는 거다. 감나무에 벌레가 생겼다고 징그러워 죽겠다고 하자 껄껄 웃으신다. 나는 몰랐지만 할머니는 해마다 겪으신 일이다. 벌레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세세한 설명도 곁들이신다. 함께 살 땐 매사에 건성건성 듣는 둥 보는 둥이었다. 맛난 열매가 익기까지 자잘한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리석게도 잊고 있었다. 심어놓고 기다린다고 기다리는 고추가 열리지 않듯, 비료를 줘야할 시기가 있고 아침 저녁으로 물도 줘야하고 또 가장 중요한 햇빛이 있어야하는데, 앞뜰에 심어놓은 고추나무는 부러질 듯 가늘고 모양새도 산만하다. 할머니가 보시면 기가막힌 웃음소리를 내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