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좋아보였다. 몇 개월 전의 병색이 완연했던 얼굴은 간 데 없고, 겨울바람에 발갛게 달구어진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잘 지낸다고 했다. 식이요법을 꾸준히 하여 체중도 꾸준히 줄고 있다는, 그녀의 요즘 근황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이어졌다.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채식 위주로 바꾸면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설명하는 그녀는 조금 들떠보였다. 연락이 없던 몇 개월 동안, 행여 심하게 앓는 것은 아닌지 두문불출 심란했던 나로선 마냥 반갑고 기뻤다. 어질고 착하여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사나, 싶었는데 사람에게는 고난이든 상처든 수용하고 치유하는 저마다의 능력이 있음을 그녀를 통해 배웠다. 막 시골에서 올라온 듯한 맨 얼굴로 사람 좋은 웃음을 한 바구니 가득 덜어놓은 사람을 통해 그간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던 몸과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겉모습은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지만, 아는 사람에게 겉모양은 소탈할수록 정겹다는 새롭지 않은 사실도 발견했다.


손끝 야물고 살림꾼인 그녀는 추운 겨울을 산뜻하게 나는 방법으로 차 마시기를 권했다. 모과며 유자, 생강, 대추 등을 직접 사다가 꿀에 재 두었다가 따뜻한 물에 타 먹으라는 그녀에게 알았다고 말은 했지만, 천성이 게을러 뭔가를 만들어 먹는 데는 소질이 없는 걸 어쩌랴. 어찌해서 시작은 한다 해도 하다가 지쳐 중도에 포기하는 인간일 걸. 그녀의 솜씨는 부럽지만 나는 티백으로 만족하련다. 


좋은 것을 골라먹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해로운 것을 먹지 않는 방법으로 건강을 챙기는 방법도 괜찮다. 타인에게 불쾌한 말과 행동을 자제하고, 이웃에게 이롭지 않은 일은 절제하고, 자연과 환경을 훼손하는 오염물질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사소한 습관들을 찾아 고쳐나가는 것도 넓은 의미로는 웰빙이 아닐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더 건강하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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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몽고반점’을 읽었노라 하셔서, 나는 엇비슷한 시기에 읽은 작년도 수상작인 김훈의 ‘화장’ 이야기를 건넸다. 매해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구매하시는 분인지라 꼼꼼히 읽은 뒤에 빌려주겠노라 하셨는데, 솔직히 나는 김훈의 ‘화장’도 상당히 거북하게 읽은 후였다. 그의 에세이는 더러 접했어도 소설로는 아마도 처음일 ‘화장’은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반으로 싹둑 잘리고야 말았다. 


이 소설은 뇌종양에 걸린 아내의 길고 긴 투명생활과 그 죽음의 과정을 다루었는데, 그 지독히도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장에 맞물려 여자,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작가의 시각에 기가 질렸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작품성과는 별개로 남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의 치부들, 실수들, 병이 가져온 생생한 고통의 흔적과 소리, 냄새를 쫓아가는 무감각한 사유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입장을 바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눈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할 정도로. 김훈이라는 작가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남자이니 당연하지 하면서도 불편했다.


소설 속의 남편은 회사에서 유능한 간부사원이면서 같은 회사 여직원을 사모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의 퇴색하고 늘어진 살갗을 보면서 젊고 싱싱한 여직원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은 아내의 영정을 앞에 두고도 사모하는 여직원을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산 것과 죽은 것의 가치 앞에서 절절한 고통 끝에 죽은 반려에 대한 애통함은 그림자도 없다. 그 죽음이 아무리 필연이고 삶보다 나았다고 해도 말이다.


죽음, 늙음은 흔한 소재다. 다루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화장’은 삶과 죽음, 결혼 그리고 부부, 남자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많은 생각을 낳는다.  ‘화장’은 병과 죽음 앞에 선 아내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남겨질 남편을 떠올릴 것 같다. 타인보다 낯선 남편이라는 관찰자의 차갑고 메마른 시선에 노출된 약한 존재로서의 아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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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한달음에 출발점에서 종점까지 달려가지 않는다. 시는 가급적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세면서 혹은 겨울에 보리밭을 밟듯 꾹꾹 눌러주면서 읽어야, 비로소 시답다. 낯선 시집을 건네받고 겉표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제목과 이름, 두께를 온전히 익힌 다음에야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벌려 매끈한 종이를 더듬는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가장 가슴에 와 닿는 한편을 골라내어 천천히 맹물을 씹어 삼키듯,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읽고, 읽고, 또 읽는다.


마흔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

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

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정말 그럴까, 하는 기대감이 마구 솟구친다. 서른을 노래하는 시는 많이 보았어도 마흔은 흔치 않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지라도 일단은 믿고 싶어진다. 들었던 시집을 저 멀리 놓아둔다. 또 언제 바라볼지는 기약할 수 없어도 오늘은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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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를 보니 나이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흔에 가까와져서 그럴까요? 유독히 와닿는군요..
말씀대로 꾹꾹 눌러주며 읽으려고 노력 했습니다..ㅎㅎ

로드무비 2005-01-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의 다가올 마흔 살을 위해.^^

겨울 2005-01-2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지금 '혜잔의 향낭' 읽고 있어요.^^ 두께부터 맘에 드네요.
로드무비님, 마흔 살을 향해 묵묵히, 씩씩하게 가고 있는 중입니다.^^
 

 

시골집에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뿐이다. 깊은 새벽녘, 무슨 일로 집 밖으로 나섰는지 차에 치어 죽었더란다. 산 깊숙한 골짜기에 어인 차가 그리 많아서, 이른 산책을 나간 그 녀석을 죽게 했을까. 눈도, 코도, 입도 모두 몽실몽실한 털 속에 숨어, 멀리서 바라보면 털 뭉치 하나가 또르르 굴러다니는 듯 하여 뭉치라고 불렀는데, 살아있던 짐승의 죽음에 가슴이 시큰하고 답답하다. 비슷한 시기에 살게 된 새끼 고양이는 성깔이 제법이어서, 제 몸의 두 배가 넘는 뭉치 앞에서 갖은 잘난 척을 많이도 했다. 꼬리털을 곤두세우고 으름장을 놓는 쪼끄만 고양이 앞에서 뭉치는 겁먹은 티를 팍팍 내며 몸을 사렸다. 눈치 빠르고 얍삽한 고양이 녀석은 얄미워서 발로 차고 손으로도 던지고 구박을 하면서, 순한 애교덩어리 뭉치는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무슨 명이 그리도 짧은지....... 너른 풀밭에서 쏜살같이 달려갔다가 다시 달려오는 뭉치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을 맴돈다. 엄마의 신발 한 짝을 물어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핥아보고, 깨물어보며 좋아하더니 이제는 시골집도 쓸쓸하겠다. 다행인 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뭉치의 날들은 아낌없이 행복했으리란 것. 저를 가두는 울타리도, 목줄도 없이 산과, 들에서 흙을 지치며 뛰놀았으니, 개로 태어나 누리는 삶 중에서 그만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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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0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통사고로 죽는 동물들이 넘 많아서 가슴 아픕니다.

겨울 2005-01-0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정이 들만큼 자주 보질 못했어요.....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집과 산문집을 꺼내 읽는다. 시인이란 태생이 천형을 짊어진 죄인인가, 어쩌면 이렇게 비감하고 여린가. 시를 반역하는 생활을 한탄하고 또 한탄하는 시인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아리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 사람의 시에는 유난히 ‘설움’이라는 단어가 많다. 삶에, 생활에, 현실에 자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루함, 구차함, 불만족을 토로하는데 철부지 아이 같기도 하고, 이렇게 순수하고 결백하니 시인이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슬며시 웃음도 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


비가 그친 후 어느 날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시골 선물>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긍지의 날>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있는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우에. <영사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헬리콥터>


마음을 쉰다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속임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

쉬어야 하는 설움이여.   <휴식>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

누구나 어른들은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고

구태여 달관하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

샘솟아 나오려는 이 설움은 무엇인가. <국립도서관>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

어떻게 하리

어떻게 하리.   <사무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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