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했으나 들뢰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 시절엔 프랑스 철학을 다루는 강의가 아예 없었고, 들뢰즈는 당시 한국 강단에 막 수입된 최신(?) 학문이었기에 학부생들이 다룰 만한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학부 때부터 들었고, 졸업한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듣고만 있다. 대학원에 가서도 윤리학을 공부했기에 존재론, 형이상학을 다루는 들뢰즈는 역시 전공 외 영역에 있었다.  

  르네21에서 들뢰즈 강의를 한다. 지난 수요일 첫 강의를 들었고, 들뢰즈의 철학에 입문했다. 정확히 그 강의는 들뢰즈와 바디우를 다룬다. 바디우는 들뢰즈보다 늦게 이름을 접했고, 모르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첫 강의는 들뢰즈 존재론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배웠다. 수강생들은 대학생 또래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했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한 10여명 정도. 그 분들은 모두 왜 이 강의를 들을까. 단지 들뢰즈를 알고 싶어서, 아니면 강유원 선생님의 말마따나 노후를 즐기기 위해서. ^^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적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들뢰즈를 함께 듣는다.  

  강사 박정태 선생님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엮으셨다. 들뢰즈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들뢰즈의 초기부터 이전 철학자들에 대해 쓴 논문을 모아 번역/엮은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를 따라가기에는 적절한 교재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소개했고,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닌 만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다. 입문해보자. 들뢰즈의 철학은 다음 다섯 가지 바탕을 깔고 있다.  

  첫째, 들뢰즈의 존재론은 내재주의의 특징을 보인다. 반대되는 말은 초월주의. 존재는 존재자들에 내재하고, 존재자들은 존재에 내재한다. 신은 양태들 속에, 양태들은 신 속에 들어있다(스피노자를 받아들임).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에 내재하고,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은 생명에 내재한다(베르그송을 받아들임).  

  둘째, 분간불가능성. 식별불가능성이라고도 한다. 반대되는 말은 식별가능성, 분간가능성. 존재와 존재자, 신과 양태, 생명과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들이 서로 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간, 식별 불가능하게 된다. 고로 존재의 일의성이 유지된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와 이데아가 깃든 것은 엄밀히 구분되지만 들뢰즈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은 잠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것. 이때 '동시에'라는 말이 분간불가능성을 일컫는다.  

  셋째, 등가성 또는 동등성. 반대말은 비등가성 또는 비동등성. 들뢰즈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가치가 다 똑같다. 가치의 우위와 서열을 들뢰즈의 일의성이 참아내지 못한다. 존재와 존재자들의 가치를 동일하게 본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가치는 엄밀히 구분되고, 가치 또한 다르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분유한 것이기에 가치 측면에서 이데아 아래 줄을 서게 된다. 이데아를 기준으로 참의 정도에 따라 사물을 줄 세운다. 국가의 지도자 또한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 철인을 설정한 것이다.  

  들뢰즈는 이데아와 현실 사물의 가치 체계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복이다. 현실 사물을 이데아의 위에 놓는 방식으로 뒤집는다면 그건 여전히 비등가적이고, 비동등한 것. 들뢰즈는 이를 동등하게 함으로써 플라톤을 전복한다.  

  넷째, 생기주의. 유기체로 나타나기 이전 생기주의에 따른 머리의 생산이 있어야 한다. 생기주의는 유기체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존재는 존재자들의 역능이고,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의 역능,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의 역능, 신은 양태들의 역능, 존재는 존재자들을 생산함으로써 실재하는 파워.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고 동력이며 구조가 된다. 역능이란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역능은 또한 자기 원인적인 힘이다.  

  플라톤의 경우 영혼이 세 가지로 나뉘어진 것과 같이 국가도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영혼들이, 각 계급들이 제 역할을 잘 할 때 온전한 몸, 온전한 국가가 된다. 들뢰즈는 잠재적인 것을 선험(경험보다 논리적으로 앞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적인 장으로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것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선험적.  

  다섯째, 매개가 배제된 종합. 존재, 신, 생명, 잠재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 존재자들, 양태들,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현실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가 각각 있지 않고, 매개를 배제한 종합으로 이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삼각형에서는 이데아 안에 현실의 여러 삼각형들이 포함되고 포섭된다. 하나가 다수를 엮고 종합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현실 삼각형은 이데아의 삼각형과 유사한 것일뿐이다. 플라톤도 종합을 보여주지만 여기엔 매개가 개입되어 있다. 존재가 집합과 비집합으로 나누어진다. 유사한 이데아의 범주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분화된다. 우리 현실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나와 너와 그에게 어떤 의무,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매개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그 둘이 서로를 해하지 않고 종합이 되려면 매개가 없어야 한다. 다수인데 종합, 두 개인데 종합되는 것. 잠재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에 매개가 개입되어 있지 않고 둘을 묶어 종합한다.

  어렵다. 하지만 플라톤과 대비하여 쉽게 풀어주셨다. 대략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고, 다음 강의를 듣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존재론은 현실의 문제와는 많이 다르다. 철학에서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등은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존재론은 다소 구름에 붕 뜬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존재론은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던 세계의 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존재론, 형이상학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강의를 기대한다. 르네21에는 서양, 동양철학 강좌가 지난주부터 진행 중이고, 금요일마다 매번 다른 책의 저자와 함께 하는 교양 강의가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로. http://www.renai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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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2011-09-0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 살기 바쁜 우리는 '행동하기 위한 사유하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유하기 위한 사유하기'에 어려움을 느끼지요. 하지만 '행동하기 위한 사유하기'에는 반드시 뺄셈 작용이 필요해요, 가장 경제적인 행동 패턴을 만들어야 생산성과 유용성이 높아지니까. '사유하기 위한 사유하기'에는 그러한 뺄셈 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의 사유와 인식은 '있는 그대로의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에서 출발한 인식은 필요에 따른 인식보다 더 정확할 수 있고, 존재 그 자체의 본성에서 출발한 윤리는 유용성에 따른 윤리보다 더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11-09-06 09:03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 존재론 자체는 일상과는 좀 떨어져 있어보이지만, 윤리는 존재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yamoo 2011-09-0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저하고 같군요^^ 진짜 학부때는 프랑스철학을 거의 안 다뤘고, 특강 형식의 강의가 개설되어도, 베르그송과 푸코 사르트르만 다루더군요~ 철학과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영문과과 불문과 대학원 과정에 프랑스 사상사 강의에서 들뢰즈를 다루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들뢰즈는 까막눈이었다는..ㅎㅎ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이 책은 저도 들뢰즈에 입문하기 위해서 들뢰즈를 잘 아시는 분한테 문의해서 구입한 책이에요. 렘브레이트 서양철학사를 거의 다 보고 봤던지라 상대적으로 무척 쉽게 읽었던 책입니다.

르네21에서 강의가 있군요~ 이 강의는 몇시부터 어디에서 하는 건가요?? 저도 한 번 가봤으면 하네요~ 좋은 정보에요!

근데, 아프락사스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잘 아시는지 궁금합니다요..ㅎㅎ

마늘빵 2011-09-06 09:06   좋아요 0 | URL
학부에서 프랑스 철학 다루는 데가 없지 않나 싶어요. 요즘엔 또 모르겠는데. 정말 거의 불문학과 이런 쪽에서만 하는 듯하고. 아무래도 기존 교수들이 미국,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들이다보니.

르네21 동, 서양 철학 강의는 수요일 일곱 시에 있고, 교양 강의는 금요일에 있어요. 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확인할 수 있다는. 위치는 시청역 안쪽(광화문 방향 시청 건너편) 성당입니다. 저야 돌아다니다가 정보를 줍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