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구판절판


분노는 자격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특별한 종류의 화다. 다시 말해, 부당함에 대한 화다. -18쪽

탐욕은 악덕, 즉 나쁜 태도이며, 특히 타인의 고통을 망각하게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때는 개인의 악덕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의 미덕과 충돌한다. 사람들은 최대 이익을 실현하려 애쓰기보다는 서로를 탐색한다. 어려운 시기에 이웃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활개치는 사회는 좋은 공동체가 못 된다. 따라서 지나친 탐욕은 좋은 사회라면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하는 악덕이다. -19쪽

도덕적 추론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가려내는 수단이자, 우리가 어떤 생각을 왜 하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39쪽

벤담에 따르면, 공동체란 "허구의 집단"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55쪽

"욕구와 충동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 아닌 사람은 인격이 없는 사람이며, 그것은 증기기관차에 인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밀)-77쪽

어떤 쾌락이 고급인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고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2쪽

"오직 계약을 집행하고, 사람들을 무력과 절도와 사기에서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최소국가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어떤 일도 강요받지 말아야 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고, 그런 국가는 정당화될 수 없다."(로버트 노직)-92쪽

우리가 배심원을 고용하기보다 징발하는 이유는 법정에서 정의를 집행하는 행위를 모든 시민이 함께 나눠야 할 책임으로 보기 때문이다.-123쪽

인간을 단순히 사고파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지,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중과 사용은 가치를 부여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다. -137쪽

정의가 단지 쾌락을 극대화하여 고통의 양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재화를, 그로 인한 쾌락이나 고통을, 단 하나의 통일된 방법으로 무게를 달아 가치를 평가하면 그만이다. 벤담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공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앤더슨은 모든 것을 공리로(또는 돈으로) 평가한다면 아이, 임신, 부모 노릇처럼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마땅한 사회적 행위와 재화를 비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38쪽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 물건 취급받아서는 안 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시각은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과 (언제나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이를 도덕성의 근본 차이로 인식한다. 이런 시각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한 사람이 … 칸트다.
-139쪽

보편적 인권을 믿는 사람이라면 공리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면, 단순히 집단적 행복의 도구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147쪽

소유권과 제한된 정부를 지지한 위대한 이론가 존 로크도 무한정 자기소유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 삶과 자유는 우리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148쪽

도덕이란 행복 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다. (칸트)-149쪽

칸트는 우리가 흔히 시장의 자유나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자유에는 애초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151쪽

칸트에 따르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154-155쪽

"인간은 자신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인간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다."(칸트)-181쪽

도덕법이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듯이, 정의의 원칙도 공동체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다. -193쪽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롤스)-198쪽

"능력 위주 사회가 사회적 우연을 완전히 제거한다한들,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따라 부와 소득의 분배가 결정되는 상황은 여전히 허용된다."(롤스)-216쪽

롤스는 정의를 능력 위주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유지상주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과 (비록 정도는 약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즉 둘 다 분배되는 몫이 도덕적으로 임의의 요소에 좌우된다. "사회적 우연이 분배 몫을 결정하는 데 미친 영향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타고난 우연이 분배 몫에 미친 영향을 고민하게 된다. 또 타고난 우연의 영향을 고민하다 보면 사회적 우연의 영향을 고민하게 된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그 둘은 똑같이 임의성을 띤다."(롤스)-216쪽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롤스)-218쪽

"노력하고 도전해서 소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다."(롤스)-221쪽

"재능이 분배되는 방식과 사회 환경의 우연성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제도를 강제하는 것은 언제나 문제가 있게 마련이며, 그러한 부당함은 인간의 합의에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더러 부당함을 간과하는 구실로도 이용되는 그 주장은 부당함을 묵인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와 똑같이 취급한다. 자연의 분배 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롤스)-230-231쪽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의 목적은 어느 목적에도 치우치지 않는 권리의 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좋은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다. -270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목적이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중략)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개발하게 만드는 것, 즉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271-272쪽

공개 사죄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 공동체에 의해(또는 정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부당함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하여, 부당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 행위로서 공식 사죄는 과거의 상처를 감싸고 도덕적, 정치적 화해의 기초를 다진다. 사죄와 속죄를 표하는 수단인 손해배상이나 금전 지원도 비슷한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다. 더불어 희생자와 그 후손에게 미치는 부당 행위의 후유증을 줄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96쪽

칸트와 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선을 스스로 선택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305쪽

"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목적의 주체다."(롤스)-305쪽

삶이란 특정한 통합이나 일관성을 갈망하는 서사적 탐색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완전한 삶, 내가 관심을 갖는 삶으로 이끄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에는 선택이 끼어들지만, 그것은 해석에서 나오는 선택일 뿐, 의지에서 나오는 절대적 행위가 아니다. 내 앞에 놓인 어느 길이 내 삶의 궤적과 가장 잘 어울리는지는 나보다 남이 더 분명히 알 수도 있다. 도덕적 행위자를 서사로 설명하는 방식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허용하는 미덕이 있다. (매킨타이어의 입장)-310쪽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362쪽

사회는 좋은 삶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배격하고, 시민의 미덕을 키울 길을 찾아야 한다. -365쪽

도덕적 이견이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상호 존중의 토대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370-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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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5-30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벌써 읽으셨군요. 그런데 저자 이름이 자꾸 샌들로 읽히는지 모르겠네요...--;;;;

마늘빵 2010-05-30 07:41   좋아요 0 | URL
샌덜인지, 샌달인지, 샌들인지 정확한 건 잘 모르겠는데, 보통 그간 샌들로 읽어왔어요. 그래서 저도 태그에 샌들로. ^^ 무척 재밌습니다. 이제 매킨타이어 책 읽으려고요. 이참에 롤스도 다시 한번? 샌들이 칸트와 롤스에게 많은 양을 할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