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두 번의 재임시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흔들었던 부시가 물러나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놀랍게도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는 대선 당시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주변의 압력 때문인지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이슬람을 향해 화해의 메세지를 보내고, 이슬람은 오바마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손짓과 메세지만 있을 뿐, 사실상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여기 쓰인 관타나모는 진행 중이다.  

  마이애미 대학 로스쿨 여대생인 마바쉬 록사나 칸은 2006년 1월부터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담담하게 써나갔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피를 가진 미국인이다. 태어나기 전, 의사인 그녀의 부모님이 잠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떠난 것이, 영원히 미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형은 아프가니스탄인이지만, 몸에 뵌 습관이나 사고 방식,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철저히 미국인이다. 그녀는 왜 관타나모로 가게 되었고, 관타나모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록사나는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는 정의로운 법학도로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에 분통을 터뜨렸고, "불평만 하지 말고 직접 뭐라고 해보는 게 어때?"라는 약혼자의 말에 자극받아 통역봉사를 자원했다. 세상은 이렇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한다. 언제나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록사나는 그걸 몸으로 실천에 옮겼고, 이 책은 그 행동의 결과물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누가 갇혀 있을까? 쉽게 상상해볼 수 있듯 테러리스트들도 있겠지만, 그 못지 않게 일반 시민들도 많다는 사실. 따지고보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테러리스트이고, 누구는 처음부터 일반 시민인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뿐. 실제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이와 물품을 대는 상인 등 어디까지를 테러리스트라고 볼 건지도 의문이다. 또, 명백히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마치 짓눌러 죽여야 할 해충인양 취급할 권리도 없다. 누구나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줘야 한다. 다시 한번 묻자.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소아과 의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무역 회사 사장,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들이 갇히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다. 미국은 양치기와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을 왜 가두었을까? 서로 관련도 별로 없어보이고, 미국이 딱히 이용할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도 군인도 아닌 이들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일단 조사를 받기 위해 나섰다가 수년 간 이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탈레반을 없앤다는 이유로. 미국은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살포했고, 전단지엔 어느 누구라도 알 카에다와 탈레반 일원들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라고 한다. 이건 분명 로또 이상의 거액이었다. 사람들은 돈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알 카에다 조직원 혹은 탈레반이라고 신고하였다. 이후 미국은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관타나모로 데려갔다. 염소치기와 소아과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은 이렇게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로 둔갑했다.  

  이들은 관타나모에 와서도 왜 갇혀있는지 설명을 들은 바도 없고,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다. 어쩌다 재판이라도 하면, 형식적으로만 재판을 했다뿐, 오히려 재판을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얻었다. 한 번 재판을 하고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박탈 당하고, 영원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며 이곳에서 죽어가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운명이다. 부모와 아내와 자식은 그들이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멀리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관타나모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적어도 어디에 있는지, 살아있는지는 알게 되었으니까. 현실이 이렇다.  

  록사나의 인터뷰와 방문 일지가 <워싱턴포스트>에 커버스토리로 게재되면서 미국은 록사나의 출입을 한때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의외로 록사나에게 몇몇 주의만을 주고서 여전히 방문을 허가해줬다. 록사나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그곳에서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계속 글로 썼다.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관타나모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일부 수감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수년간 그들이 그곳에서 당한 강간과 폭력 등 수치스러운 일들에 문제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게 된 것만으로 감사한다. 다시 부모 형제, 처 자식과 만난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한다. 

  록사나는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화도 났겠지만, 록사나는 그곳에서 경험한 바를 담담히 기술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록사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언론이 해야 할 제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록사나의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고, 관타나모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록사나와 워싱턴포스트가 제 할 일을 다 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많은 이들의 분노와 행동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고, 미국 정부가 외치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한국 땅에도 관타나모만큼이나(관타나모보다) - 관타나모는 적어도 순수 미국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 끔찍한 국가보안법이 있지만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없애지 못했다. 오바마가 지금 주저하고 있지만, 오바마 시절이 아니라면 관타나모는 폐쇄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관타나모 폐쇄를 위해 당장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 여러 곳에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는 것 외에는 - 오바마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미국인들이 관타나모 폐쇄에도 일조하길 희망할 뿐이다. 길 한복판에서 신부가 말 그대로 짓밟히고 사복 경찰이 나타나 아무 말도 없이 순식간에 사람을 연행하는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희망을 가져봐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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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6-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관타나모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를 읽으면서..이 책이 매우 궁금했더랍니다. 꼼꼼한 리뷰에 감사.

마늘빵 2009-06-22 23:42   좋아요 0 | URL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여성의 눈으로 담담하게 서술해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워싱턴포스트지에 연재되는 글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적으로 쓰기보다는 침착하게 보고 느낀 바를 옮겨놨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이 사회문제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면 이런 식으로 담담하게 잘 쓰실텐데 ^^
요즘 리뷰 러쉬군요 ㅎㅎ

마늘빵 2009-06-25 20:48   좋아요 0 | URL
리뷰는 한번 쓰면 계속 쓰게 되고, 한번 안쓰면 계속 안쓰게 돼요. 이게 머리가 '리뷰 모드'가 되면 그 다음 리뷰도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