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구판절판


사람들에게는 세속의 권력자 또는 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노예근성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법이나 여론이 특정 행동을 촉구하거나 금지시키는 행동 규칙을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노예근성은 이기심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나 위선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술사나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증오심을 낳는다. 한 사회의 도덕 감정이 형성되는 데는 여러 요소들이 핵심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그 사회 전체가 크게 의미를 부여하며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당연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면밀히 따져보면 그런 이해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공감과 반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의 이해관계와 그다지 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공감과 반감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26쪽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자유이다. 우리의 육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보위하는 최고의 적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각 개인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35-36쪽

사람들이 마음 놓고 믿는 것일수록 온 세상 앞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 믿음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런 검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일단 검증을 받았으나 허점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도, 인간의 현재 이성이 허용하는 수준 안에서 검증을 받은 데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이 절대 진리라고 확신할 일은 결코 아니다.-50쪽

기존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그에 대해 자유 토론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이 그저 사람들이 그 주장의 근거에 대해 잘 모르게 되는 것뿐이라면, 자유 토론을 하지 않은 것이 지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크게 해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면에서 볼 때 그 주장이 갖는 가치에도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 토론이 없다면 단순히 그 주장의 근거만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도 모르게 된다. 그 주장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특별한 생각을 담아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처음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의 일부분만을 옮길 수 있을 뿐이다. 생생한 개념과 분명한 확신 대신에 그저 기계적으로 외운 몇 구절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둘러싼 몇몇 껍데기는 남을지 몰라도 정말 중요한 본질은 잃고만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을 뒤돌아보면 이런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고 심사숙고하더라도 모자랄 지경이다.-78-79쪽

기존의 통성일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와 다른 의견이 진리일 수 있다. 또는 통설이 진리일 경우, 그 반대 의견은 오류일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진리와 오류 사이의 논쟁은 진리를 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또 깊이 깨닫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그러나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 가운데 하나는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으로 확연히 구분되기보다는, 각각 어느 정도씩 진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이럴 때 통설이 채우지 못하는 진리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도록 그 통설에 도전하는 이설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없는 주제에 관한 대중의 주장이 흔히 진리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거의 또는 전혀 없다. 그런 주장은 상황에 따라 진리를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담고 있기는 하나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 대체로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각도에서 존재하는, 그래서 상충되는 내용을 담은 진리들과는 거리가 멀다. -89-90쪽

진보라는 것도 진리를 새로 덧붙이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진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중략) 다수가 받아들이는 의견이 비록 올바른 기초 위에 서 있을지라도 이처럼 부분적인 진리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런 통설이 빠뜨리고 있는 진리의 어떤 부분을 구현하는 다른 모든 생각은, 그것이 아무리 많은 오류와 큰 혼돈을 초래하더라도, 마땅히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세상살이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자칫 우리가 어떤 진리를 빠뜨리고 놓칠까봐 윽박지르면서 정작 우리는 알고 있는 진리의 어느 부분에 대해 모른다고 그에게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수의 주장이 일방적인 한, 일부의 의견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일방이 존재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소수파가 아주 강력하게 유일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실은 부분적인 진리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그 소수 의견에 대해 억지로라도 관시믕ㄹ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90-91쪽

"인간의 목적, 또는 막연하고 덧없는 욕망이 아니라 영원하거나 변함없는 이성은 우리에게, 각자의 능력을 완전하고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최대한, 그리고 가장 조화 있게 발전시킬 것을 명령한다." 그러므로 그는 "각자의 개별성에 맞게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특히 다른 사람을 이끌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 목적을 향해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훔볼트는 이를 위해서 '자유 및 상황의 다양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개별적 활력과 고도의 다양성'이 생기는데, 이들이 곧 '독창성'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101쪽

인간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것들을 획일적으로 묶어두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잘 가꾸고 발전시킴으로써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창작물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듯이,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한껏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인간이 발전하게 되면 우리 삶도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지며 활력이 넘칠 것이다. 고귀한 생각과 고결한 감정을 더욱 북돋워주게 되고,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각자의 개별성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며,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해 더욱 충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각 개인이 이처럼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 역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119쪽

이 원리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서로의 행복이나 성공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이 이기적인 무관심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심각한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 원리는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심없는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심 없이 남을 돕는 것도, 글자 그대로 또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채찍질을 하거나 혼을 내는 것보다는, 그가 자기에게 좋은 것을 스스로 하도록 설득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자기중심적 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사회적 덕목을 꼽아야 할 것이다. -142-143쪽

(위에 이어서)

교육자들은 이 둘을 동일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교육도 강압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확신과 설득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한다. 그래서 일정한 교육 기간이 지나고 나면 오직 후자, 즉 설득과 확신을 통해서만 자기중심적 덕목을 배양해야 한다. 사람은 서로 도와가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며,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취하도록 서로 격려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높은 능력과 감정과 목표가 현명하게, 그리고 품위를 유지한 채 고상한 목표와 계획을 점점 더 지향하도록 서로 자극을 주며 살아야 한다.-143쪽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만 문제가 되고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이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어떤 행동과 성격 때문에 무언가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달리 취급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정당한 권리 없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타격을 입히는 것, 거짓으로 또는 표리부동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 불공정하게 또는 관대하지 못한 방법으로 남에게서 이득을 얻는 것,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위험에 빠져 있는데 이기적인 마음에서 모른척하는 것 등, 이 모두는 도덕적 비난 또는 심각할 경우에는 도덕적 징벌잉나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직접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기질도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잘못하면 혐오감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146-147쪽

사려 깊지 못하고 인간적 존엄을 지니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타인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한 까닭에 비난을 받는 것은, 단순한 명목상의 차이 이상으로 다르다. 어떤 사람이, 우리가 그를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은 일에서 불쾌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행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사람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면 우리는 싫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 일은 물론이고 그 사람도 멀리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로 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모든 벌을 벌써 받고 있다고 또는 받게 되리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일을 잘못 처리해서 이미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는데, 그러한 잘못을 이유로 그의 삶을 더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148-149쪽

(위에 이어서)

그 사람을 처벌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에게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나쁜 일들을 어떻게 피하거나 치유할 수 있을지 가르쳐줌으로써 그가 받는 벌을 경감시켜줄 방도를 열심히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동정이나 혐오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노여움이나 분노의 대상은 아니다. 그를 사회의 공적인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에게 흥미나 관심을 보임으로써 선의로 간섭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정당한 범위 안에서 그를 가장 심하게 대하는 것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규칙을 위반했다면, 그런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하므로, 그에게 응징을 가해야 하고 명백한 징계의 표시로 고통을 주어야 하며 그 처벌이 충분히 무겁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149쪽

사회적 윤리나 타인에 대한 의무 같은 문제를 놓고 공공 여론, 즉 압도적 다수의 의견이 가끔씩 틀리기는 하지만 옳을 때가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ㅁ누제에 대해 자신들의 이익, 그리고 어떤 특정한 행동 양식이 실제로 실천에 옮겨질 경우 자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만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다수 의견이라 하더라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관계되는 행동에 대해 하나의 법으로서 군림하는 의견은, 옳을 때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틀리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공공 여론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고, 실제 대부분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쾌락이나 편의에 대해 그저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은 전부 자신에게 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극단적인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 마치 몹시 완고한 신자가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감정을 무시하낟고 비난을 받자 오히려 그들이 이상한 의식과 교리를 고집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무시한다고 반박하는 것처럼 말이다. -156-157쪽

우리가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박해할 수 있지만 저들은 옳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떤 정의롭지 못한 원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런 것을 함부로 남에게 적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마땅하다.-160쪽

그러나 포주가 되는 자유, 도박장을 운영하는 자유도 허용해야만 하는가? 이런 경우는 정확하게 두 가지 원리 사이의 경계선 위에 있어서 둘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운지 즉각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양쪽 모두 주장할 근거가 있다. 관용을 주장하는 쪽에서 본다면, 생계를 잇거나 이윤을 얻기 위해 직업으로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범죄가 된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전부 허용되든지, 아니면 전부 금지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장해온 원리가 옳은 것이라면, 사회가 - 글자 그대로 사회가 - 한 개인만 관계 되는 일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이라고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다. 누구든지 그런 일을 하도록 또는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데 똑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183-184쪽

다른 사람이 문제 되지 않는 한,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무엇인가 선택했다는 것은, 그 일이 자기에게 바람직한 또는 적어도 참을 만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수단을 동원해서 그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준다는 사실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자신을 노예로 파는 것은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한번 이렇게 하고 나면 나중에 다시는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이는 자신을 팔아버리는 행위도 허용해주는 원리, 즉 자유의 목적을 본인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른없다.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이 자유 상태에 있을 때 누리는 이점을 향유할 수 없다.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자유를 포기한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189쪽

국가는 각 개인에게만 특별히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의 행사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 깊게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의무 사항이 가족들의 관계 속에서는 - 인간의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관계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함에도 - 거의 완전히 무시되다시피 하고 있다.-192쪽

"인간은 그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밀)-223쪽

"인간의 삶에서 각자가 최대한 다양하게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없다."(<자유론>의 표지)-229쪽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밀)-230쪽

각주63)

그러나 밀은 자유를 향유할 '성인'의 자격 요건을 매우 낮게 설정하고 있다. 즉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 또는 '충분히 나이가 들고 보통 수준의 이해 능력'만 갖추면 '확신과 설득에 의해 자기 자신의 발전을 도모할 능력'을 갖추고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에 의해 정신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밀은 자신의 <자유론>이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화되어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를 누릴 만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본다. '문명사회'에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생각하며 살 정도'의 도덕적, 지적 능력을 어느 정도는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낙관론을 바탕으로 밀은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선의의 독재'라는 것이 '악 중의 악'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선의의 독재는 그 포장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사리에 어긋나는, 가공할 만한 위험한 괴물로 탈바꿈하고 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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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2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로운 개인이 중요하지요.
떼거리, 집단, 사회.. 등등을 경멸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옳든 그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