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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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에 <보건교사 안은영>과 <옥상에서 만나요>를 중도 하차했기 때문이었는데, (오래전에 ) 그 이후로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라 할지라도 이 작가의 책임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마음을 접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내 시간이 빼앗기는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냐 없냐의 문제였는데, 세상에 책은 너무나도 많고 나는 그 책을 죽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없을 것이므로 나는 중도 하차를 하는 것에 마음이 덜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책이 어쩌다가 선물로 내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읽기 전까지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재차 확인을 했다. 이 책은 어떻냐고. 긍정적인 답변이 왔지만, 어쨌든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정 아니다 싶으면 책을 덮어버리기로 하고 나는 어렵사리 책을 폈다.

11.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심시선 씨에서 파생된 이들이 꾸려가는 이야기다.

그동안 장례를 지내지 않았지만 10주기라는 명목하에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반대는 없다. 아니, 반대를 할 수조차 없다. 심시선 씨의 가족이야말로, ‘모계사회’니까.

83.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제사가 아니라, 심시선 씨가 젊었던 시절 걸어 다녔던 하와이를 걸어 다니면서 찾은 보물들을 나누는 방식으로의 제사.

심시선 씨로부터 파생된 인물은 생각보다 꽤 많다.

여러 인물이 나온다.

자식들과 그 자식들.

자식들과 그 자식들은 주연이자 조연이고, 단역이다.

그래서 일일이 기억을 해야만 하기에 가장 앞장에 가계도가 떡하니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인물을 잘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과감하게 패스했고.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에게 특별히 더 마음을 주는 인물이 생기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야 가장 마음에 많이 남는 사람을 골라내야 했는데 어쩐지 그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특별하게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도 했고.

288.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중간에 심시선 씨의 기록들이 챕터의 앞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야기 자체보다 그 기록이 더 좋았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이 부분이었는데, 최근에 나는 울면서 “삶이 재미가 없네. 그래서 재미있는 건 안간힘을 쓰면서 찾아보려는데 잘 안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명쾌하게 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내 변화가, 또 내가 적응하는 기간이 너무나도 잔잔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어떻게 질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질리지 않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노력해서 일구어내는 것도 그 재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나한테도 그 재능을 옷 입히고 싶었다. 지금 나는 삶이라는 거대한 분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지금은 잠시 ‘재미없는 시절’일뿐이라고 생각하며 질리지 않게, 지치지 않게 잘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25. 첫 번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친구들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세 번의 결혼을 했지만, 그 세 번의 결혼이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방금 생각나는, 자기합리화를 해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공누구’와는 달랐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졌고, 그 책임들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었던 심시선 씨.

304. “(…) 한 번에 대단한 시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알게 되었달까. 어두운 곳에서 짚어가며 넘어져가며 탐색할 수박에 없다는 걸.”

“(…) 사랑은 돌멩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여전히 그러고 싶어?”

“나도 원하지만…… 살면서 얻길 바라는 게 달라질 것 같아. 다른 모양의 빵을 만들고 싶을 것 같아. 계획했던 모양이 아니라. 그래도 나랑 빵을 만들길 원해?”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걸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까지는.”

화수가 남편에게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계획했던 모양이 아니라 다른 모양의 빵을 만들고 싶을 것 같다고. 그런데도 나랑 빵을 만들고 싶으냐고. 삶에 유연성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잘되지 않는다. 이렇게 살다가 잘 안되면 저렇게도 살아보고, 그렇게 살아보다가 저렇게 살아보고 싶으면 노선도 바꿔보고 그러고 살고 싶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이제까지 경험한 것들이 나를 만들어 고착화시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틈은 만들어야지, 하고.

322. “네가 아니면 누가 낳아?”

“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 있는 쪽이.”

전부 이해할 수 없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렇게 생각하게 된 마음을.

313. 각자 의미있는 것들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쁘고 내년부터 평소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한 번 정도는 하길 잘한 것 같네요. 서로의 보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과 엄마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지며 오늘밤을 보냅시다.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이 괴팍했던 제사 비슷한 것’이 끝이 났다.

331.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참 좋겠다. 심시선 씨라는 사람에서 파생된 것이.

엄마라는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나도 이런 마음을 가져보고 싶다. 이번 생에는 영 틀린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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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쉽게 하기 - 일본에서 소문난 정리수납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혼다 사오리 지음, 권효정 옮김 / 유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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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짜증과 화를 많이 낸다. 사실 이제까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불현듯 짜증이 치밀어올라서 서평을 쓰기로 하고 책상에 앉았다. 요즘 내 기분을 망가뜨리는 것은 다름 아닌 집안일이다.

나의 배우자는 주말인 오늘도 시간외근무를 하러 아침 일찍부터 나갔다. 오후에 나가도 상관은 없지만, 오후에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오전에 나갔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조금 늦을 것 같아서. 점심 먹고 밖에 나가자.” “밥을 어디서 먹어?” “집에서.” 느닷없이 그 말에 짜증이 확 나버린 거다. (이러고 컴퓨터를 꺼버렸다. 툴툴 난 심통을 목구멍 속까지 꿀꺽 삼키기 위해.)

요즘의 나는, 아니 결혼 이후 줄곧 ‘집에는 먹을 게 뭐가 있더라, 집에 수건이 없던데. 오늘은 택배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집에 빨래가 한가득이라 가자마자 돌려야겠다. 집이 지저분해서 청소기를 돌려야지. 근처 마트에서 오늘은 뭘 사야겠다.’ 등등등 끝도 없이 밀려드는 생각들을 하루 종일 하고 있다. 회사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오늘 점심시간엔 미역을 좀 사러 다녀와야겠다.’... 이제까지 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이것으)로 짜증이 나더라도 크게 낸 적이 없었다. 집안일이라는 건 시간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 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함께 쉬는 날, J는 운동을 하러 가면 그때는 나한테 ‘청소하는 시간’이 됐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내가 집안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고 있었다. 결국은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J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쩐지, 놀러나간 애가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남편이 집에 와도 그냥 그대로 패턴을 이어가면 되지 않냐- 싶은데, 그게 또 안 된다. 혼자일 때 하는 것과 혼자인 척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 이런 집안일로 오는 문제들을 두고, 배우자와의 권태기가 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떡하지, 하면서도 뇌가 가동을 못했다. 그런데 이유가 있는 것이었던 거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집안일 쉽게 하기>라는 책을 꺼내어 내용도 보지 않고 가져왔다. 집안일을 쉽게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감정도 사그라질 것 같아서.

근데 책을 읽다가 멈춰버렸다. 14. “내 머릿속은 집안일로 곽 차 있어. 내일은 비가 내릴 것 같으니 빨래는 하지 말아야지……,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를 다 먹어야 하는데…… 등등 하루 종일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단 말이야.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왜 나만 집안일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라고 책에 쓰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왜 나랑 똑같아?라며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집안일을 쉽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어서 내가 응용할 것은 많지는 않았다. 수납을 위해 수납장을 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여전하기 때문에, 있는 것들로 열심히 돌려 막기(?) 해야겠구나 생각하기는 했다. 그리고 대충 할 수 있는 간단한 청소를 보면서, ‘나도 무선 청소기가 사고 싶다...’하는 생각은 더 강해졌지만, 유선청소기가 고장 나기 전까지 나는 무선 청소기를 사지 않겠지. 더 이상 짐을 늘리지 않겠다!는 나의 확고한 다짐에서도 짐은 점점 늘어가지만 그것만큼은 지키고 싶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무선은 무선대로, 유선은 유선대로 쓸모가 있어 두 개의 청소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내 소비욕구 자꾸 콕콕 건드리지 마~

또 웨이스트 사용법으로, 낡은 티셔츠나 수건을 잘라서 쓰는 것은 나도 이미 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인데, 수건을 잘라서 쓰는 것에는 별 거부감이 없었지만 옷을 잘라서 쓰는 건 아무래도 입었던 옷을 잘라서 쓴다고 생각하니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다. 지금도 여전히 자를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기는 하는데, 우선은 그 마음만 조금 가라앉는다면 먼지를 터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기에.

스페셜 청소로 한 장소당 10분만을 청소하는 건 좀 매력 있게 느껴졌다. 나는 10분 만에 한 장소를 청소하진 못하고 이거 하면 저것도 해야 하고 저거 하면 그것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싱크대 청소를 하면 가스레인지 청소도 하고 주방 타일을 락스 청소로 마무리한다든지, 내키면 주방 수납장 청소까지 하기도 하고... 또 발코니 청소하면 창고도 한번 뒤집어보고 건조대도 걸레로 한번 스윽 닦기도 하고... 그런데 다 그렇지 않나? 나만 그런가(...)

쓰레기통 용량은 커야 한다는 것이나 걸어두는 것 등등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 외에도 크게 도움을 받은 건 없지만,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남들은 이러고 사는구나- 하며 슬렁슬렁 잘 보기는 했다. 어쨌든 결국 집안일을 쉽게 하는 것 역시 내 몫이구나 하는 생각에 금세 우울감에 젖었다고 한다. J는 그만 좀 놓고 살아! 라고 하지만, 놔버리면 영영 놔버릴 것 같아... 이번엔 진짜야... 집안일 사춘기가 이번엔 좀 오래간다.

덧) 미니멀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만, 추천 아이템들이 너무 많아서 이건 혹시 그것에 대한 리베이트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되기는 했다. 그런데 그러기엔 추천템이 너무나도 많았고 어수선했기 때문에 그 의심은 넣어두는 것으로.

오탈자 52. 들어올ㅇ 정도라서 → 들어올 정도라서 (중간에 ㅇ은 실수인 것 같다.)

오탈자 120. 서제 →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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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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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살의 지혜 씨와 열여덟 살 노을의 관계는 엄마와 아들이다. 그들은, 특히 엄마인 지혜 씨는 사람들이 멋대로 규정한 ‘보편적인 가족의 형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차별에 목소리를 드높인다. 50만 7000원짜리의 패딩을 사러 간 매장에서도 누나가 동생 옷도 사 주고 좋겠다는 말에 꿋꿋하게 아들이라고 밝힌다. (실제로 매장 직원이 책에서처럼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나... 저건 선을 넘었는데... 하는 생각은 들었다.)

 

 

 

 

59. 나는 가급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크게 모나지 않도록 딱히 문제 될 리 없도록 하루하루 성실하게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가 미혼모와 한 부모 가정에 뭐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여기곤 한다.

 

 

 

내가 보편적인 삶이라는 것은 뭘까. 하고 종종 생각해 보게 된 건 결혼 이후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의 유무를 말하는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말하면 ‘그것은 틀렸다’라고 말하며 자주 비난하고 힐난하며 충고와 조언을 남발하는 사람들을 보며 화가 난 적도 많았고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 목소리를 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변명하고 해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가늘어진 눈동자 속에서, 침이 뒤섞인 혓바닥 속에서 무참해졌고, 깨지고, 밟히면서 완전히 질려버렸다. 나는 금세 헐거워졌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점점 낮추게 되며 더 이상 나를 소개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의견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보편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꼭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물주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 친구. 많이 힘들었겠지.

 

 

 

 

63. 승리로 맛본 과자는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달고 맛있었다. 엄마는 한 번도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린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었고, 그것이 나에게도 최고가 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덕분에 나에게 유년 시절의 결핍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과연 엄마에게 어떤 최상의 것을 줄 수 있을까?

 

 

정말 이런 아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지혜 씨는 아들을 참 잘 키웠구나. 아니, 서로가 서로를 참 잘 키웠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을 고민하고 내어주려는 것, 사랑.

 

 

 

 

75. “아들, 우리 잘하고 있는 거야. 맞지?”

164. “우리 잘하고 있는 거지, 아들?”

 

열일곱의 지혜 씨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겠지. 열일곱의 지혜 씨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그 외로운 질문들이 주는 대답의 끝에 지금의 노을이 있을 테고, 서로 그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 그들.

 

며칠 전 ‘광주 영아 일시 보호소’와 ‘전남 나주 이화영아원’에 대한 다큐를 차례로 보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영아원에 들어가는 새로운 아기들의 숫자가 점점 줄었으면 한다.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고자 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게 누가 됐든 아이를 잉태하고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는 일에 책임에 비중을 더했으면 한다.

 

 

 

 

125. “괜찮다고 해 줘. 누구보다 당사자가 제일 힘들 테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에 나쁜 사랑은 없어.”

“아픈 사랑은 있겠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한 친구가 생각났다. 유부녀를 사랑했던 대학 친구,라고 한 문장으로 점철해둔 친구이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친구는 유부녀를 좋아한 게 아니라, 이혼을 앞둔 어린 딸을 둔 여성을 사랑한 것이었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그 친구의 사랑은 너무나도 무모했고, 위험했으며, 어리석다고까지 생각했기에 나는 그 사랑을 지지해 주지 못했다. 교수님도 그 친구의 재능을 높이 사서 본인의 사업장으로 데려가고 싶어 할 정도로 우수했던 친구였기에 “네가 왜?”라는 얘기가 오갔다. 하지만 이미 그 친구는 그 여성을 사랑했기에, 그 여성의 딸마저 자신의 딸로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고, 1년 후 (아니, 어쩌면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연락이 닿았을 때엔 가족과 절연하고 그 여성을 선택했으며 그 여성의 어린 딸 밑으로 또 다른 딸을 두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그래, 잘했어. 네가 원하는 삶이 그거라면. 어쨌든 잘 살아야지.’ 하지만 그 친구는 알았을 거다. 내가 정말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이해하는 척을 했다는 것을. 얼마간의 소통 이후에 소식이 끊겼다. 누가 먼저 끊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선택한 그 친구를 부담스러워했던 나였는지, 그런 나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 친구였는지는.

내가 보편적인 가족의 형태를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기로 결심하면서는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그 친구에게 진솔한 진심을 내보일 수도 있을 텐데, 이미 늦었다.

그 친구는 잘 살고 있겠지, 현명한 녀석이니까.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너 이 새끼, 엄~청 행복해 보이네? 말하며 한바탕 웃고 싶다.

 

 

 

131. “그래, 친구잖아.”

 

가장 친한 친구이자 속마음을 다 터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이었던 성하, 아마 노을에게는 큰 힘이 될 거다.

세상에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을 테니까.

 

중간에 동우의 이야기는 다름을 이야기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약간 머쓱할 정도로 개연성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그들도 ‘친구’라는 프레임 안에서 자유롭게 안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성빈이 나왔을 때 노을이 성빈이를 사랑하는 줄 알았거든.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주제로 튀어나올 줄도 알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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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골목 EBS 세계테마기행 사진집 시리즈
EBS 세계테마기행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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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시간과 돈만 충분하다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은 전염병이 덮쳤다.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낄 때나 몸과 마음에 진통제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던 것이 여행이었고, 뜻깊은 날을 기념하는 것도 여행이었는데, 제한할 수밖에 없으니 갑갑함을 풀 경로가 막힌 기분이다. 집 외에는 어느 곳도 안심하고 다닐 수 없지만, 집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공항이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억울하다! 말로 표현하고 보니, 억울함이 증폭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여행책을 찾지만 그만큼 자주 덮는다. 보고 나면 더 가고 싶은데, 대체재가 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들어서였다. 하물며 우리의 경우에는 근교가 뭐야, 집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보고하고 나가야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니 더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자꾸 여행책을 책장에서 뽑아 보다가 다시 넣었다가 다시 뽑았다가 넣었다가 반복 중이라는 말이다. 시샘 가득한 눈길을 해가지고는.




그러다가 가끔 보는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골목을 주제로 책을 냈다기에 기대에 부풀었다. 책은 글보다는 사진이 더 많다. 사진집이라고 봐도 무방하기는 하지만, 화질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아서 좀 아쉬웠다. 책에서 수백 채의 집이 겹겹이 쌓인 푸른 산자락을 떠나 포근히 안겨 있는 산간 마을인 마술레는 물이 귀하고 습지가 귀해서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다고 한다. 그래서 이란인들이 평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휴양지라는데, 사실 사진으로는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해서 책을 덮고 찾아보기도 했고.




그러므로 골목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자 길인 셈이다.

나도 골목이 있던 동네에서 자랐다. 그건 골목이라기보다는 미로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길을 잃으면 주민이 아닌 이상에야 찾아 나올 수 없을걸? 하고 시시껄렁하게 웃었던 날이 있었다. 한때는 나는 골목에서 놀면서 자랐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을 보며 나도 아파트에서 살면 좋을 텐데 하고 내심 바란 적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골목들이 있어서 내가 자랐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의 골목길에서 놀던 나와 우리들이 주는 여운이 깊음을 느낀다. 그건 꽤 귀한 경험에 속한다.




먼저 골목이라는 공생의 공간에 대해.

멀리 골목이 보인다면, 거기에는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골목이라고 하면 음침함, 경계심이라는 단어가 뒤따라오는 걸 보면서 골목이 주는 의미가 조금 많이 퇴색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골목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렇게까지 골목을 경계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히려 그 지역에 대한 경계가 더 심할 뿐이지.

골목, 하면 포르투갈 리스본이 떠오른다. 언덕을 올라갈 때 여러 골목을 거쳤다. 나는 분명 그 골목을 걸었지만, 그 골목을 걷지 않은 것과 같다. 여기가 아까 거기인 것 같고 아까 거기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래도 나 길치인가. 요즈음은 포르투갈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해외여행이 풀리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다. 갈 수 있을까, 언제!?





덧) 포르투갈의 몬산토는 거대한 화강암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덩어리들이 거대하기에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돌에 기대어 집을 짓기도 하고 그 사이로 길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굉장히 신기해서 더 찾아봤더니, 더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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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선.황사빈 지음 / 에듀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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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큐 프로그램에서 은퇴를 앞둔 여성이 직업상담사를 취득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렴풋 한 번 찾아보고 말았을 뿐이었다. 아, 그런 게 있구나. 그런데 1,2급으로 나뉘어있으면 국가 기술 자격증이 아니라 민간이겠네? 했고. (참고로 직업상담사는 국가 기술 자격증에 속한다.) 그러다가 별 관심이 없이 그대로 사그라들었었다.


그러다가 내 은퇴 시점을 선을 그어놓고 생각하다 보니,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직업상담사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쓸모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타인의 직업을 상담해 준다는 것은 어쩐지 매력 있게 느껴졌다. 그냥 가지고만 있어도 뿌듯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갖 것들에 관심을 갖는 나는 만만해 보였다.



여타 시험이 그렇듯, 직업상담사 역시 1차 필기시험과 2차 실기시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대개 나는 실기를 찾아보지 않고 필기시험을 치른다. 실기가 어려우면 그때 포기하면 되지,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거꾸로 되었다. 실기를 먼저 손에 들게 되다니. 1차 시험은 보지도 않았지만, 우선 어떤 종류의 것인지 차근차근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실기는 서술형 or 암기형 or 면접형 or 작업형으로 or 이루어지는데, 직업상담사의 실기시험은 서술형이었다. 다른 시험과 마찬가지로 직업상담사 실기시험 역시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이를테면, 직업심리검사에서 측정의 기본 단위인 척도의 4가지 유형을 쓰고 각각에 대해 설명하시오.라든지 규준참조검사와 준거참조검사의 의미를 각각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라는 게 있다. 답을 한 줄만 써도 충분한 게 아니라 설명도 해야 한다니, 머리가 지끈 지끈해지면서 이걸 합격한 사람들은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참, 계산문제도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에듀윌 직업상담실무 핵심 이론서는 직업상담사를 독학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붙들어준다. 문제에 대한 책은 답을 제시하고, 완전한 복습을 위해 표로 보기 쉽게 요약하기도 하고, 꿀팁과 더 나아가 그 문제를 확장시켜 설명한 것도 있다. 중간중간에 키워드 퀴즈가 있어 서술형으로 가득 차서 포화상태인 머리를 식히는 부분도 있고, <최신 5개년 기출 족보>로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복습할 수 있도록 얇은 책자도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어떤 공부든 수험자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공부든 독학으로 하려면 더 힘든 것은 당연하겠지만, 시험의 원리와 책을 적절히 잘 사용하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기를. 나는 현재 다른 과목의 공부를 하고 있어 지금 당장은 이것에 대한 공부는 힘들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공부해보고 싶기는 하다. 아리송해서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 하는 안일한 생각도 한몫하기도 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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