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골목 EBS 세계테마기행 사진집 시리즈
EBS 세계테마기행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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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시간과 돈만 충분하다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은 전염병이 덮쳤다.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낄 때나 몸과 마음에 진통제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던 것이 여행이었고, 뜻깊은 날을 기념하는 것도 여행이었는데, 제한할 수밖에 없으니 갑갑함을 풀 경로가 막힌 기분이다. 집 외에는 어느 곳도 안심하고 다닐 수 없지만, 집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공항이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억울하다! 말로 표현하고 보니, 억울함이 증폭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여행책을 찾지만 그만큼 자주 덮는다. 보고 나면 더 가고 싶은데, 대체재가 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들어서였다. 하물며 우리의 경우에는 근교가 뭐야, 집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보고하고 나가야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니 더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자꾸 여행책을 책장에서 뽑아 보다가 다시 넣었다가 다시 뽑았다가 넣었다가 반복 중이라는 말이다. 시샘 가득한 눈길을 해가지고는.




그러다가 가끔 보는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골목을 주제로 책을 냈다기에 기대에 부풀었다. 책은 글보다는 사진이 더 많다. 사진집이라고 봐도 무방하기는 하지만, 화질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아서 좀 아쉬웠다. 책에서 수백 채의 집이 겹겹이 쌓인 푸른 산자락을 떠나 포근히 안겨 있는 산간 마을인 마술레는 물이 귀하고 습지가 귀해서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다고 한다. 그래서 이란인들이 평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휴양지라는데, 사실 사진으로는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해서 책을 덮고 찾아보기도 했고.




그러므로 골목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자 길인 셈이다.

나도 골목이 있던 동네에서 자랐다. 그건 골목이라기보다는 미로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길을 잃으면 주민이 아닌 이상에야 찾아 나올 수 없을걸? 하고 시시껄렁하게 웃었던 날이 있었다. 한때는 나는 골목에서 놀면서 자랐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을 보며 나도 아파트에서 살면 좋을 텐데 하고 내심 바란 적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골목들이 있어서 내가 자랐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의 골목길에서 놀던 나와 우리들이 주는 여운이 깊음을 느낀다. 그건 꽤 귀한 경험에 속한다.




먼저 골목이라는 공생의 공간에 대해.

멀리 골목이 보인다면, 거기에는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골목이라고 하면 음침함, 경계심이라는 단어가 뒤따라오는 걸 보면서 골목이 주는 의미가 조금 많이 퇴색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골목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렇게까지 골목을 경계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히려 그 지역에 대한 경계가 더 심할 뿐이지.

골목, 하면 포르투갈 리스본이 떠오른다. 언덕을 올라갈 때 여러 골목을 거쳤다. 나는 분명 그 골목을 걸었지만, 그 골목을 걷지 않은 것과 같다. 여기가 아까 거기인 것 같고 아까 거기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래도 나 길치인가. 요즈음은 포르투갈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해외여행이 풀리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다. 갈 수 있을까, 언제!?





덧) 포르투갈의 몬산토는 거대한 화강암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덩어리들이 거대하기에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돌에 기대어 집을 짓기도 하고 그 사이로 길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굉장히 신기해서 더 찾아봤더니, 더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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