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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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 한 권에 거의 이십여 일의 시간을 들였다.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허비했다와 소비했다 중 한 단어를 고르려다가 시간을 들였다.라고 끝맺음을 지어본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청소년기를 껴안아주지 못하는 고약한 어른이 되는 것만 같아서인데, 그것과 동등하게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을, 기꺼이 껴안아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지.’라고 짐짓 젠체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답답함이 머리에서 어깨를 지나 무릎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얼른 떨쳐내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바운더리가 학교 기숙사였을 때 홀든은 궁금증을 품기 좋은 상대였는데, 그 바운더리가 무너지면서 거리를 배회하는 홀든을, 나는 자주 내버려 두곤 했다. 그를 술집에, 택시에, 클럽에, 호텔에, 그대로 감금시켜버리기도 했다. 그와 발걸음을 함께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기 때문에 그렇게 당분간 그를 버려두고 청정한 공기를 맡고 싶었다.

그는 굉장히 어긋나있는 상태였다. 그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과 허약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의 허영과 오만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제멋대로 내 머릿속을 침범하여 나를 괴롭혔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조차도 그는 내게 힘들고 어렵고 버거운 상대였다. 한 마디로 찌질한 남자애였다. 너는 상대도 안 되지, 덤벼봐! 라고 해서 발로 툭 찼더니 픽 쓰러지는 그런 남자애.

204. 가면서 계속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울었다. 지독하게 외롭고, 우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허둥지둥, 우왕좌왕, 얼렁뚱땅, 갈팡질팡인 그를, 마지막까지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의 허영을 비웃음으로 일관했는데, 그의 고백을 같은 방식으로 일관해서는 안 됐다. 아직 나는 덜 큰 어른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누군가의 고백을 짓밟을 만큼 옹졸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갑자기 정(情)이 생겨서 그의 방황을 인정하는 일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존중은 해주고 싶었다. 곁에 두기엔 여전히 버거웠기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앨리가 좋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 이렇게 너랑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여동생 피비가 그에게 무얼 좋아하는지 한 가지를 말해보라고 했을 때, 그는 간신히 몇 가지를 늘어놓는다. 피비가 재촉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그게 온전히 그가 좋아하는 것들일까? 그에게 숨 쉴 구멍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면서였다. 고작 세상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 따위를 숨 쉴 구멍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던 그를 측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는 세상에 만연해있는 속물을 경멸하며 순수를 좇지만, 순수는 점점 더 줄어들어 그가 본 것은 고갈 상태의 순수뿐이었을 것이다. 순수함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을, 그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이니까, 간절하니까, 그래서 어떤 건 끝까지 가보아야 알 수 있는 법이니까.

229.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 건……

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그건 시야. 로버트 빈스가 쓴 거잖아.

230.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10대에 걸맞은 순수함이 있고,

20대에 걸맞은 순수함이 있고,

30대에 걸맞은 순수함이 있고,

+0대에 걸맞은 순수함이 있다.

그 나이에 맞는 순수함은 시기가 도래하면 한편에 예쁘게 포장해서 넣어두고 우리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을 부르며 연석을 걷던 아이를 보며 기분이 나아짐을 느끼던 홀든처럼, 그 순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을 보며 그때의 순수함을 몰래 꺼내어 들여다보고 닦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책의 끝에 다다라서야,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지키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아쉬움과 후회를 구태여 동반해야 하는 것이 돼버린다면… 나는 조금 덜 후회하기 위해 현재를, 오늘을, 지금을, 순간을 살아야겠다며 이제 기지개를 편 가을바람을, 가을냄새를, 가을햇볕을 좀 더 입가에 머금는다. 나 역시 아직도 여전히 세상을 방황하며 허겁지겁 살고 있는 중이지만, 나는 홀든보다 아주 조금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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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상담 - -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17명의 상담사례와 30가지 심리치료
최고야.송아론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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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든 일이 들이닥쳤을 때,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갈 때, 주변 지인들은 내가 상담 센터에 방문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은근하게, 조금은 강하게 권유를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병원의 원장님은 “괜찮다고요? 근데 아직도 울잖아요. 꼭 가봐요, 꼭.”이라고 갈 때마다 말씀을 하셔서... 그래서 오히려 그 병원을 못 가고 있다. 전보다 나아졌지만 뜻하지 않게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기에.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게 되면서 치유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치유를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내게는 그것이 죄책감과 같을 것이어서.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라도, 그게 가끔 표출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쯤은 마음속에 묻어두어도 된다고 혼자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과 괴로움으로 삶이, 일상이, 하루가, 너무나도 힘이 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낫다. 시간이 지나 무뎌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때가 오기도 하니까. 그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더더욱.

나는 심리 상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타인을 상담하거나 치료를 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나와 내 가족을 다시 수면으로 올리기 위해서.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아픔들에 공감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 공감하는 방식이, 나는 여전히 너무나도 어렵다. 사람마다 아픔에 공감을 원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데, 내가 공감하는 방식이 다시 아픔이 될 수가 있어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때 그 위에 자신의 안도를 살포시 놓는 경우를 왕왕 느꼈다. 그것은 볼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느낌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실체는 없어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기쁨보다 슬픔에 대해 더 단속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슬픔을 잘 위로하는 사람이기보다 가감 없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는데, 어쩌다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17명의 상담사례를 쓴 <벼랑 끝, 상담>을 읽었다. 상담사례 하나마다 전반적인 스토리, 내담자 증상 진단, 치료 순으로 되어있다.

환경치료, 명상 최면치료(억눌린 감정 풀어주기, 내가 나를 인정하고 위로하기, 부정적인 장면 없애기, 세부감각 지우기, 부정적 감정 없애기, 부정적 감정을 없애고 긍정적 감정 덮어씌우기, 부정적 분아 내보내기), 인지치료(나이테로 보는 내 인생, 자화상 그리기, 내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것들, 생각바꾸기, 신념 바꾸기, 집단상담), 상황극치료, 놀이치료, 감정치료, 코딩치료(게임), 입장 바꿔 생각하기, 목표설정, 연기치료, 타임라인, 행동교정하기, '어린 나' 만나기, 영웅의 여정, 서로에게 담아준 것, 서로의 문제 알아보기,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의 길 이라는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 내담자의 상황에 맞게 여러 치료방법들을 적용하며 내담자를 치료한다.

마음을 가장 크게 술렁거리게 했던 것은 환경치료였는데, 환경치료라는 것은 내담자를 힘들게 했던 대상을 각성시키는 작업이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시키고 내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유도한다. 그렇게 해서 내담자가 처한 ‘부정적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것이었다. 쉽게 사과를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사과를 하지 않으려고 박박 우기다가도 결국은 사과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사례엔 등장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내가 그 내담자가 되기라도 한 듯 마음이 콕콕 아팠다. 피해를 본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가해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니.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은 그럴 때 갚으라고 있는 것일 텐데...

“심리치료의 최종 목적은 내담자를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거야. 그냥 심리치료만 땡 하고 끝나는 게 아냐.”

요즘의 내 상태는 무척 평온하고도 고요한 상태인데, 상담사례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읽으며 세상에는 여러 이유로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고요한 마음에 여러 개의 돌멩이들이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주변의 누군가들은 마음에 병이 들어 삶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며, 몇몇의 얼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 속의 그들은 완벽한 타인이지만, 그들의 치료 과정에 나를 욱여넣어 나 역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저기, 상담 좀 할 수 있나요.”




_오탈자

17. “환경치료는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환경치료가 되지 않으면 상담은 실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말하는지 사례를 보도록 하자.” → 2번 반복되어 있다.

41. 두 번째 사례에서 내담자의 이름이 첫 장에서는 연희 이후에는 지윤으로 되어있다.

361. 왜냐면 그사 람 시점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거든. → 그 사람

361. 마치 너에게 문제가 있 는 거 같으니 가보자 → 있는 거

(이건 오탈자는 아니지만 잠시 멈칫했던 부분)

178. 그래서 그 사람이 쓴 글을 보면 항상 악이 승하고 선이 져. → 악이 이기고 선이 져 혹은 악이 승하고 선이 패해

라고 쓰는 게 더 읽기 쉽지 않을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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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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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단어를 뱉자마자 지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구체적인 행복들을 구현하고 그것들을 오롯하게 느끼고 있다. 근래에 느꼈던 가장 큰 행복은 가을의 오고 감을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가을의 순간들을 느낄 때마다 짤막하게 메모해둔 가을의 아름다움은 그때를 완벽하게 형상화할 수는 없지만, 바람과 햇빛과 공기를 다시 재생시켜준다. 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가을을 사랑했다. 그렇게 사랑하던 가을의 한 계절 내내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도 가을이니까 라는 말은, 마법처럼 온화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계절 속에서 나는 <행복의 지도>를 읽고 있었고, 가려는 지금에야 막 끝냈다.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기자 에릭 와이너.

실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소>를 먼저 읽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행복의 지도>를 먼저 읽게 되었다.

그는 실체가 없는 행복의 실체를 사람들에게서 찾기 위해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태국, 영국, 인도 9개국을 여행하고 다시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끝없는 관용

스위스의 새치름한 기색이 아주 살짝 섞인 조용한 만족감

부탄의 담백한 친절

카타르의 석유, 천연가스라는 복권 당첨

아이슬란드의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은 깍쟁이 같은 어둠

몰도바의 ca la moldva. ce sa fac?

태국의 고민은 그만두고 앞으로 나아가라

영국의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이 ‘존재’하는 상태

인도의 삶은 자유와 운명의 조합

미국의 도코미니엄

각기 나라를 여행하는 에릭 와이너의 뒤를 몰래 따라다니며, 나는 약간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행복이라는 건 한 국가 안에서도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국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물론 지금도 내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인용한 영국 태생의 철학자 앨런 워츠의 ‘바깥’이 없다면 ‘안’도 있을 수 없다.는 말에 의해 내가 속한 장소가 따라 개개인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행복에 크게 중점을 두었다기보다 네덜란드에 있는 따듯한 맥주인 트라피스트 맥주를 매일매일 마셔보고 싶고, 스위스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경치를 보고, “cest pas mal”을 말하고 싶고, 부탄에서는 35cm보다는 좀 더 작은(...) 그 나무 조각을 사오고 싶으며, 카타르에서는 (중국 때문에 힘들겠지만) 요소수 외교정책을 슬쩍 강권하고 싶고, 나 역시 조금 더 다양한 생각을 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어를 (많이는 말고) 몇 단어만 배워보고 싶은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매일 술을 마셔야 하니 아무래도 매우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몰도바에서는 좋은 식당을 알려달라고 하는 대신에 좋은 식당을 가보지 않겠냐고 묻고 싶은데 그마저도 ‘50 대 50’이라고 대답하면 나는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 봐야겠고, 살인 사건 발생률이 높은 편인 태국에서는 우선 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좀 멍청하게 굴어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죽었는데 태국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면 나는 억울해서라도 다시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도 했으며, 투덜거리는 거? 나 잘 해! 나 영국에서 잘 살 수 있어! (제롬 K : “(자신의 행복을) 내보이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투덜거려라”)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나는 커피를 참을 수 없으니 아마 아쉬람에서 수업을 받기는 힘들겠네.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다다라서야 나는, 지금 내 삶이 미국과 좀 닮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516. 항상 한 발을 문 밖에 놔둔 상태로는 어떤 장소도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이전에 내가 그랬으니까. 지금은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나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미국인들이 이사를 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단순히 어딘가 다른 곳에 가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아서. 라는 말에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숨을 꺼내 내쉬어본다. 나 역시 지금 이곳을 벗어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어. 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느꼈던 그 숨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새로움에 대한 갈구를 실현했을 때의 성취감도 엄청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지루함과 무력감이 또다시 고개를 처들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을 일컫는 각기 다른 용어들과 문장들이 내 눈을 끌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회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주관적인 복지(subject well-being)였다.

행복은 예측이 불가능한데, 그것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522page)을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노아 웹스터의 ‘좋은 것을 느낄 때 나타나는 기분 좋은 느낌’을 빌려 덧붙이자면,

결국 행복을 아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내 입가에 웃음이 도는 건 무엇인지 하는 것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는 것이다.

내가 이것에 행복해하는구나.

그렇게 행복이 아닐 수도 있었던 행복을 조금 더 붙잡고 있는 것.

298. “지루함도 선택이다. 부드러운 살사와 주름 잡힌 군복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참 좋은 예시.

지루함 속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라고 말을 해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좋은 핑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행복은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오늘 나의 행복은,

외할머니와 투닥거리며 통화를 한 것과,

컨디션을 묻는 배우자의 자상한 음성,

맑아졌다 흐려졌다 반복하는 가을 날씨에,

앞으로는 원두커피를 마셔야겠다며 주문했던 핸드 그라인더가 드디어 온다는 것과,

지금 마시고 있는 따듯한 차, 그리고 오늘 저녁에 있을 독서모임에 대한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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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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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는 나에게 친숙해질 예정인 나라였다. ‘친숙해질’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2020년의 여행지로 우리는 조지아와 터키를 꼽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2019년에 이미 대한항공에서 조지아 직항을 두어 달의 기간 동안 운행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면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직항이 생기지 않을까? 하며 희망을 품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갑작스레 해외로 여행을 가지 못할 이유가 생겼고, 그 이후에는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그때로부터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코로나19는 우리를 볼모로 잡고 놔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꽉 막힌 채로 지낼 수는 없기에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이라는 협약이 새로 생겨났다. 아무래도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트래블 버블 국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언젠가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조지아로 가는 항공편을 찾아보겠지?



저자는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카즈베기, 다시 트빌리시, 시그나기, 메스티아, 다시 트빌리시로 여행을 한다. 다른 지역을 가려면 트빌리시를 꼭 거쳐야만 한다니 말이다. 나는 여행을 갈 곳을 정하기만 했지 루트를 짜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의아한 마음에 조지아 지도를 펼쳐보니 정말 그렇다. 이 이야기를 j에게 했더니, 그는 “꼭 대전 같네?”라고 말했지만, 트빌리시가 교통의 요충지라고 하기엔 어쩐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다른 방도가 없어서 무조건 트빌리시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라 이동 시간의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정말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교통의 요충지라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무래도 트빌리시에 사는 사람뿐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녀의 조지아를 구경했다.




조지아의 날씨는 9월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저자가 체감한 카즈베기의 9월 날씨는 변덕이라고 했다. 카즈베기는 카즈벡 산 트레킹을 목적으로 한 여행자들이 많은데 날씨가 가장 좋다고 하는 9월마저 변덕이라니,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날씨가 선선하다는 10월의 피렌체에서 우리는 습기와 더위를 느껴 반팔을 챙겨가지 않은 것을 기억해내곤 그때의 날씨운이 아닐까 살며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트레킹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카즈베기까지 가보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아마 다녀오면 살이 5kg 정도 빠진다는 전제하에 다녀올 수는 있을 것도 같...고? 하지만 그만큼 고생을 해야 하니 여행지에서 살짝 뒤로 슬쩍 밀어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트빌리시를 가야겠다. 아니, 트빌리시만 가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우선 왔다 갔다 하는 이동 시간과 그에 맞먹는 피로도를 이겨낼 재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가고 싶었던 이유도 트빌리시의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사진을 지금은 찾을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조금 지루해서 한 지역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시그나기는 어떨까? 싶었다. 와인을 저렴하게 사오기 위함이라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포르투갈의 신트라를 조지아의 시그나기에서 설핏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참, 책에는 포르투갈이 종종 언급이 되는데, 포르투갈에 대한 저자의 그리움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나 역시 포르투갈이 와락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저자는 조지아의 한 줄 평을 <유럽의 동남아>라고 했는데, 까닭으로는 유럽이 품은 자연과 올드시티의 이국적인 분위기, 아직은 발달이 덜된 교통편과 도시 상황, 저렴하기로는 최고인 물가를 꼽았다. 내가 이제까지 여행을 다닌 곳은 (선택사항에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물가가 대체로 저렴한 편이었는데 조지아도 그렇다고? 라고 말하고 혼자 웃었다. 그러면서 나를 맞이할, 내가 다녀올 조지아는 어떨까 사뭇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어쩌면 허황된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이 고개를 처든다. 책을 읽으며 조지아의 지도부터 시작하여 단편적인 면모들을 보았지만, 현재 나는 떠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언젠가의, 나의 그루지야를 꿈꾼다.





덧. 그러나저러나 조지아의 언어가 너무 귀엽고 동글동글해서 그림 그리듯 그려보고 싶어서 몇 번을 그려보았다. 눈으로 봐도, 손으로 그려봐도 참 귀엽지만 강단이 있어 보이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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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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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을 두 번째로 찾았다.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혼자 다녀오고 매우 큰 실망을 했었지만, J가 가보고 싶다고 하여 약간의 망설임 끝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창원의 영록서점 같은 분위기일 줄 알았던 그 역시 실망의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러던 중에 우리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이곳에서 <동물농장>을 구매하자. 마지막 서점에도 없으면 발길을 돌리자 했는데, 그곳에는 중고가 아닌 새 책으로 버젓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책을 20%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책을 구매한 지 어느덧 네 개의 계절이 지나 다시 여름이 도래했다. 언젠가 읽겠지 하고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그가 먼저 읽어보고 감상평을 이야기하는데 솔깃해서 나도 뒤따라 읽기 시작했다.


11.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현명하고 자애롭고 위엄이 넘쳐 보이는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말에, 동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메이저가 죽고 난 뒤 새로운 지도자가 생겼고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동물들은 존즈를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메이너 농장은 동물농장으로 바뀌면서 그들에게는 일곱 계명이 생기게 된다.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우유과 사과가 시발점이 되면서 이후의 동물들의 삶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농장은 그 자체로는 전보다 부유해졌으면서도 거기 사는 동물들은 하나도 더 잘살지 못하는 (물론 돼지와 개들은 빼고) 그런 농장이 된 것 같았다.

동물들은 분명 더 잘 살기 위해 그와 같은 방법을 택한 것일텐데, 그들은 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형태만 달라졌을뿐, 결과는 조삼모사였다. 어떤 형태든지간에(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지도자가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뻔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많지 않다. 순응하거나 타협하거나 맞서거나. 당신이 속한 가정은, 기업은, 국가는 어떠한가요.


71. 뭐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모두 <스노볼이 그랬다>가 되었다.

보자마자 포옥,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대상들을 거울로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너,라고.


123.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걸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를 중심으로 조금씩 그들에 맞춰 바뀌어있는 계명들은 결국 하나의 계명으로 축약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다른 동물인가.


책은 구소련인 러시아를 풍자하기 위해 쓰였지만, 나는 읽으며 북한을, 한국을, 내가 경험했던 우리 사회의 한 어두운 면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나 나폴레옹과 스노볼 같은 사람이 있고, 스퀼러 같은 사람이 있으며, 벤자민 같은 사람이, 뮤리엘 같은 사람이, 모지즈 같은 사람이, 클로버 같은 사람이, 복서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마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복서가 나올 때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과 측은함 등 여러 가지 마음들이 어지럽게 공존했다. 나는 복서가 되지 않기를 바랐고, 벤자민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성격이라면 나는 절대 복서도, 그렇다고 벤자민도 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뮤리엘이 되기를 바랐다. 선하고 착한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기에 니가 너무 몰라서 그런 거잖아.라고 감히 비난할 수는 없지만, 조금만 더 알아보려고 했더라면, 조금만 더 꾀를 내었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는 없었다. 결국은 내가, 네가, 우리가 원하는 이상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했다. 마음이 어지럽다.


이 책을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릴 때 읽어보았더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여기에서 더 어릴 때라 함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인 10대의 나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아는 청소년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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