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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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단어를 뱉자마자 지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구체적인 행복들을 구현하고 그것들을 오롯하게 느끼고 있다. 근래에 느꼈던 가장 큰 행복은 가을의 오고 감을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가을의 순간들을 느낄 때마다 짤막하게 메모해둔 가을의 아름다움은 그때를 완벽하게 형상화할 수는 없지만, 바람과 햇빛과 공기를 다시 재생시켜준다. 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가을을 사랑했다. 그렇게 사랑하던 가을의 한 계절 내내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도 가을이니까 라는 말은, 마법처럼 온화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계절 속에서 나는 <행복의 지도>를 읽고 있었고, 가려는 지금에야 막 끝냈다.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기자 에릭 와이너.

실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소>를 먼저 읽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행복의 지도>를 먼저 읽게 되었다.

그는 실체가 없는 행복의 실체를 사람들에게서 찾기 위해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태국, 영국, 인도 9개국을 여행하고 다시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끝없는 관용

스위스의 새치름한 기색이 아주 살짝 섞인 조용한 만족감

부탄의 담백한 친절

카타르의 석유, 천연가스라는 복권 당첨

아이슬란드의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은 깍쟁이 같은 어둠

몰도바의 ca la moldva. ce sa fac?

태국의 고민은 그만두고 앞으로 나아가라

영국의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이 ‘존재’하는 상태

인도의 삶은 자유와 운명의 조합

미국의 도코미니엄

각기 나라를 여행하는 에릭 와이너의 뒤를 몰래 따라다니며, 나는 약간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행복이라는 건 한 국가 안에서도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국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물론 지금도 내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인용한 영국 태생의 철학자 앨런 워츠의 ‘바깥’이 없다면 ‘안’도 있을 수 없다.는 말에 의해 내가 속한 장소가 따라 개개인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행복에 크게 중점을 두었다기보다 네덜란드에 있는 따듯한 맥주인 트라피스트 맥주를 매일매일 마셔보고 싶고, 스위스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경치를 보고, “cest pas mal”을 말하고 싶고, 부탄에서는 35cm보다는 좀 더 작은(...) 그 나무 조각을 사오고 싶으며, 카타르에서는 (중국 때문에 힘들겠지만) 요소수 외교정책을 슬쩍 강권하고 싶고, 나 역시 조금 더 다양한 생각을 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어를 (많이는 말고) 몇 단어만 배워보고 싶은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매일 술을 마셔야 하니 아무래도 매우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몰도바에서는 좋은 식당을 알려달라고 하는 대신에 좋은 식당을 가보지 않겠냐고 묻고 싶은데 그마저도 ‘50 대 50’이라고 대답하면 나는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 봐야겠고, 살인 사건 발생률이 높은 편인 태국에서는 우선 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좀 멍청하게 굴어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죽었는데 태국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면 나는 억울해서라도 다시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도 했으며, 투덜거리는 거? 나 잘 해! 나 영국에서 잘 살 수 있어! (제롬 K : “(자신의 행복을) 내보이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투덜거려라”) 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나는 커피를 참을 수 없으니 아마 아쉬람에서 수업을 받기는 힘들겠네.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다다라서야 나는, 지금 내 삶이 미국과 좀 닮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516. 항상 한 발을 문 밖에 놔둔 상태로는 어떤 장소도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이전에 내가 그랬으니까. 지금은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나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미국인들이 이사를 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단순히 어딘가 다른 곳에 가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아서. 라는 말에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숨을 꺼내 내쉬어본다. 나 역시 지금 이곳을 벗어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어. 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느꼈던 그 숨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새로움에 대한 갈구를 실현했을 때의 성취감도 엄청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지루함과 무력감이 또다시 고개를 처들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을 일컫는 각기 다른 용어들과 문장들이 내 눈을 끌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회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주관적인 복지(subject well-being)였다.

행복은 예측이 불가능한데, 그것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522page)을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노아 웹스터의 ‘좋은 것을 느낄 때 나타나는 기분 좋은 느낌’을 빌려 덧붙이자면,

결국 행복을 아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내 입가에 웃음이 도는 건 무엇인지 하는 것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는 것이다.

내가 이것에 행복해하는구나.

그렇게 행복이 아닐 수도 있었던 행복을 조금 더 붙잡고 있는 것.

298. “지루함도 선택이다. 부드러운 살사와 주름 잡힌 군복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참 좋은 예시.

지루함 속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라고 말을 해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좋은 핑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행복은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오늘 나의 행복은,

외할머니와 투닥거리며 통화를 한 것과,

컨디션을 묻는 배우자의 자상한 음성,

맑아졌다 흐려졌다 반복하는 가을 날씨에,

앞으로는 원두커피를 마셔야겠다며 주문했던 핸드 그라인더가 드디어 온다는 것과,

지금 마시고 있는 따듯한 차, 그리고 오늘 저녁에 있을 독서모임에 대한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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