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한국 장르 문학의 무서운 신인 강지영이 초대하는 서늘한 환상의 세계
사채를 빌려 성전환 수술을 받고 살해당한 트렌스젠더, 벌집 끝자의 양딸을 탐내 싸움을 벌이는 조선족 입분과 흑인 혼혈녀 티파니, 현실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이 한줄도 쓰지 못하는 자신의 소설을 능가하는 무궁화빌라의 소설가 지망생, 산채로는 영원히 나디아를 소유할 수 없는 연쇄살인마 벙어리, 서로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샴쌍둥이와 사향나무 아래서 야한 소설을 탐닉하는 기괴한 노파, SM 클럽에서 벌어진 진짜 살인사건과 지옥에서 간신히 탈출했는데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무환순환선 같은 인생의 자동차세일즈맨,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다시 진정 죽을 수 있는 환생한 좀비들. 그들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죽이고, 만지고, 애틋해 하고, 속이고, 어이없는 일을 벌이고, 포기하고, 다른 존재를 꿈꾸고, 자살하지만 이 여러 층위가 섞인 무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진심으로 죽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Happy deathday To you!"
강지영의 소설은 '굿바이 파라다이스' 이 책이 처음이다. 처음 접했을 때의 내 기분은 당황스러움+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안녕, 나디아를 읽을 땐 정말 최고조에 달아서 '나머지를 어떻게 다 읽어야하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며 중단하게 한 책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외면할 수 없었던건 지금 현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강지영이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이란 잔인함을 뛰어넘어 참혹하고 희망을 향해 두 팔을 뻗지만, 희망은 전혀 찾을 수 없는 곳에서의 삶이다.
또한 강지영의 조금은 과장스러움이 없지않아 있지만, 인물묘사와 심리를 정확하게 짚어내며 그려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단편 중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읽으면,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 안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광대들처럼 우리는 그런 삶 속에서 그렇게 죽은 듯이 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여기서 나오는 '나'는 실제로 우리의 아버지네들의 인생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할 것이고, 그에 자식된 도리로 적어도 무언가는 해야겠다는 다짐까지는 약속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샴 쌍둥이를 소재로 다룬 [하나의 심장]은 서로 다른 남자가 하나의 심장으로 엮여있다. 분리가 되기 위해선 개 중 하나는 희생되어야 하고, 서로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인간의 탐욕스러움이 고개를 든다. 과연 인간의 욕심이 어떤 결말을 낳게 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단편집 중 하나다.
파라다이스란 '걱정과 근심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라고 사전에 명백히 나와있다. 그런 이 책의 제목은 '굿바이 파라다이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삶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테니..
[p 264]
"이번 정차하실 역은 7월 23일, 7월 23일입니다. 내리실 분은 환한 빛을 따라 걸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문이 열리고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입고 있던 낡은 양복이 사라지고 보드랍고 붉은 피부의 몸이 느껴졌다.
누군가 나의 발목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괜한 서러움이 왕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