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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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맨 앞에 보이는 빨간색 석류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군. 로봇 손 같은 건 여기 담긴 소설과 조금 다르게 보여. <릴리의 손>에 나온 손은 사람 손과 똑같다고 했거든. 이 책 《트로피컬 나이트》에는 단편 여덟편이 담겼어. <할로우 키즈>가 가장 짧군. 유치원 핼로윈 행사 때 사라진 아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여기에선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는데, 어쩌면 거기엔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재이 부모는 재이를 유치원에 늦게까지 맡겨두고, 정장을 입은 어머니와 술 냄새를 풍기는 아버지가 데리러 왔다고 해. 부모가 아이를 학대한 걸까. 이건 그저 내가 떠올린 것일 뿐이야. 여기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는 건 아니기를 바라.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면 쓸쓸할까. 사람은 죽으면 남이 뒤처리를 해줘야 하지. 그런 거 해줄 사람이 없으면 죽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발견되겠지. 지금은 그런 일 자주 일어나기는 해. <고기와 석류>에서 옥주도 남편이 죽고 그런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를 텐데. 옥주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그것을 집에 들이고, 언젠가 자신이 죽은 뒤에 그것이 자신을 먹으리라 생각했어. 고기를 바라는 그것 눈이 빨간색 석류처럼 보여서 옥주는 그것을 석류라고 해. 가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과도 마음을 나누지. 석류는 반려동물도 아닌데. 옥주는 암인가 봐. 석류와 함게 살고는 옥주는 살려고 해. 옥주는 자신을 잡아 먹을지 모르지만 석류가 있어서 살 마음이 생긴 거 아닐까.


 세번째 이야기 <릴리의 손>에서는 세상 곳곳에 틈이 벌어지고 사람이 거기에 빠지기도 했어. 틈에 빠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다른 곳으로 가지. 하지만 잘못하면 죽기도 했어. 틈에 빠진 사람은 지난날이나 앞날로 가는가 봐. 그렇게 가기만 하면 좋을 텐데 기억이 사라져. 이건 그리 좋지 않지. 틈을 지나 다른 곳에 간 사람은 기억을 잊어도 가끔 그리워해. 알지도 못하는 것을. 연주와 릴리 이야기 조금 쓸쓸하게 보여. 한사람은 잊어도 한사람은 기억하니 조금 나을까. <새해엔 쿠스쿠스>는 가장 많이 현실과 닮은 이야기야. 엄마가 딸을 자기 멋대로 기르려고 하는 모습이 나오거든. 엄마와 고모가. 유리와 연우는 사촌 사이로 연우는 뭐든 잘했어. 잘한다고 해도 엄마 때문에 힘들었어. 유리도 다르지 않았는데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어. 연우는 결혼식 날 사라지고 유리는 힘든 학교 일을 그만둬. 그 학교는 엄마가 아는 사람이 소개해준 곳이야. 유리가 당한 여러 가지 일을 엄마한테 말했는데도 엄마는 참으라고 해. 유리와 연우가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해서 다행이야. 앞으로는 둘 다 엄마한테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겠어.


 지금보다 시간이 흐른 앞날엔 미세먼지가 더 심해지고 먼지 바람이 나타나기도 할까. <가장 작은 신> 속 세상에선 바깥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해.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하다니. 수안은 먼지 바람이 생기고 두해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았어. 집 밖에 나오지 않고도 살다니. 물건은 택배로 받았어. 코로나19가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세상이지. 수안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택배 일을 하는 사람은 있군.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수안을 고등학교 동창 미주가 찾아와. 미주는 수안이 걱정돼서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수안한테 물건을 팔고 다단계 회사 영구회원으로 만들려고 다가온 거였어. 수안이 속는 건가 했는데, 수안은 그걸 알면서도 미주가 찾아오는 걸 기다려. 혼자 지내는 게 쓸쓸했던 걸지도. 미주는 수안을 속이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수안을 그만 만나려고 했어. 수안은 미주와 연락이 잘 안 되자 미주를 걱정하고 미주를 찾으려고 집 밖으로 나와.


 누가 걱정된다고 해도 어디 있는지 알아야 구하든지 할 텐데. 다행하게도 수안은 미주를 구해. 하지만 나쁜 건 다시 찾아온다고 해. 그거 바이러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나쁜 꿈과 함께>에서 몽마는 은성 꿈에 찾아가고 몸이 뜯긴 곰인형이 돼. 은성은 그런 곰인형을 꽉 안아. 몽마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기분이 이상했어. 은성한테 마음 쓰던 몽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다시 은성한테 가.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은 SF군. 외계고양이가 지구에 왔다는 설정이고 외계고양이 별에 큰일이 일어나서 지구를 떠나는 거야. 외계고양이가 큰일을 해결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면 좋겠군. <푸른 머리칼 살인마>는 <푸른 수염의 아내>를 새롭게 쓴 것 같아.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읽고 나면 마음이 따듯해지는 거군. 끝이 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야. 릴리와 연주는 멀리 떨어졌지만. 사람한테는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좀 낫겠지. 그 사람이 가까이 있지 않다 해도.




희선





☆―


 이야기가 끝날 때면 고모는 엄마가 일부러 골라 내놓은 무른 배를 포크로 찍으며 늘 이렇게 말했다.


 “연우는 내가 만든 작품이야.”


 연우에게 내 인생을 다 갈아 넣었다고.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새해엔 쿠스쿠스>에서, 127쪽)



 “네가 사립학교 일이 처음이라서 그래. 부장 비위 좀 잘 구슬려서 맞춰보렴. 이사장 조카라며. 학교 이사장이 이 일대 유지란다. 한번 말뚝 박으면 평생 교사 소리도 듣고, 그거보다 괜찮은 직장이 없어. 지금은 힘들어도 다 빛 볼 날이 있다. 엄마가 너한테 들인 게 얼만데 아무 일이나 하면 안 되지.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참고 극복할 줄도 알아야 해. 넌 할 수 있어. 우리 유리,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건 내가 지금껏 느꼈던 어떤 감정보다도, 가장 강렬하고 커다란 배신감이었다.  (<새해엔 쿠스쿠스>에서, 138쪽~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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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분노 나츠메 형사 시리즈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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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도 많은 사람은 그런 걸 모르고 살기도 한다. 아니 정말 그럴까. 사건 사고도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다. 혹시 아나 언젠가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차별받고 살지. 그런 일은 없겠다. 집이 아닌 먼 곳에 가는 거 싫어하니. 난 돈을 벌기보다 그냥 가난하게 살 테니. 이런 생각하는 건 내가 그렇게 가난하지 않은 건가. 하루 한끼도 못 먹고 사는 사람 있겠다. 난 조금 움직이면 한끼는 먹고 다른 걸 사다 먹을 돈도 있으니. 그래도 몇십원 몇백원 싼 곳에 가려고 하는데, 가끔 귀찮다. 그게 정말 아끼는 건지. 어떤 건 잘못해서 더 비싸게 사기도 했다.


 요며칠 나츠메 노부히토 형사 시리즈를 잇달아 세권 보았다. 이번 《형사의 분노》에서 네번째 이야기 <형사의 분노>를 볼 때는 처음부터 의심한 사람이 있는데, 내 생각이 맞았다. 이번 책 보면서 안 좋은 사건 이런 데 안 나오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두번째 <제물> 보면서 그랬구나. 이런 소설, 범죄 소설에 사건이 안 나오면 안 되겠지만. 세권을 죽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황혼> <제물> <이방인> <형사의 분노> 이렇게 네 편이 실렸다. 나츠메는 히가시이케부쿠로 경찰서에서 일했는데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긴시 경찰서로 옮겼다. 형사도 인사이동발령이 나는구나. 경시청 형사는 좌천되지 않으면 죽 거기에 있으려나.


 이 책은 일본에서 2018년에 나왔다. 다섯해 전이니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일어난 사건이 오래된 느낌이 든다기보다 지금 일어나는 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혼>은 딸이 어머니 시신을 몇해 동안 여행 가방에 넣어둔 사건이었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딸은 그걸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 이런 것만 보면 딸이 대체 어떤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겠다. 딸은 자수하고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나츠메는 그걸 알아채고 딸이 왜 그랬는지 알려고 했다. 나츠메는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에 가야 하고 이사할 집을 보러 가서도 그 일을 생각했다. 늘 일만 생각하면 같이 사는 사람이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나츠메 아내 미치요는 그런 나츠메를 이해했다. 나츠메는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싶다. 다른 소설에서 본 형사는 거의 아내와 헤어졌는데.


 나이를 먹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어야 기운 내고 살겠다. <제물>에는 성폭력 당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일을 겪으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는 게 힘들겠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몰아붙이기도 한다. 왜 늦게 다니고 옷은 왜 짧은 치마를 입었냐고. 이건 어느 나라나 같겠다. 여자든 남자든 밤거리 자유롭게 다니면 안 될까. 남자는 여자가 무서워하는 걸 모른다. 여자가 되지 않는 한 모르겠지. 여성이 밤거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모른다 해도 그걸 조금은 알려고 해야 할 텐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


 세번째 이야기 <이방인>을 보면서는 한국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 노동자 말이다.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왔다가 안 좋은 일 겪은 사람도 있던데.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기는 한데. 베트남 유학생 반 쿠엣은 민간인 통역 요원으로 등록했던가 보다. 경찰서에 가서 쿠엣은 통역을 하면서, 쿠엣 자신도 같은 나라 사람을 차별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 마음 알 것 같다. 난 다른 나라에 간 적 없지만. 세번째 이야기는 대충 짐작했다. 베트남 사람이 뭔가를 훔치려고 남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만.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경찰서에 있던 여자는 자신이 베트남 사람이어서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다 여기고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 사는 외국 사람에도 그런 생각하는 사람 있을 것 같다.


 책 제목과 같은 <형사의 분노>를 볼 때는 나카야마 시치리 소설 《닥터 데스의 유산》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건 안락사를 생각하게 한 거지만. 나츠메와 하야토는 아픈 딸이 있구나. 둘은 다르지만. 여기에 나온 건 안락사가 아니다. 어쩐지 나츠메는 안락사 안 좋아할 것 같다. 아니 나츠메는 하야토 딸 사야카가 말한 것과 같은 생각을 하겠다. 아이가 아프다 해도 살아주기를 바라는. 나츠메는 살려고 한 사람을 죽인 범인한테 무척 화를 냈다. 두번째는 자신이 한 일을 숨기려고 한 것과 같았다. 난 처음에 그 사람 나왔을 때부터 의심했는데. 이런 소설을 자꾸 보다 보면 감이 온다. 형사는 감으로 범인 잡으면 안 되겠지.




희선





☆―


 일본인의 넉넉한 생활을 뒷받침하려고 수많은 외국인이 낮은 임금으로 일한다.  (<이방인>에서, 211쪽)



 자신한테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애쓸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죽 살아갈 희망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뿐이다.  (<형사의 분노>에서, 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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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11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딱 보자마자 범인을 맞추는 희선님은 감이 좋으시군요~! 형사 하셔도 될거 같습니다 ^^

희선 2023-10-12 02:02   좋아요 1 | URL
소설엔 글이 나오니 그걸 잘 보면 조금 의심스런 사람이 보여요 일부러 그렇게 쓰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형사는 감으로 범인을 잡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다 누명을 씌우기 쉽겠습니다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희선

2023-10-11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2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 창비시선 480
유혜빈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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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자고 일어나도 하나도 편하지 않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벼워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일어나기 힘들고 몸은 자꾸 무거워. 꿈 때문일까. 이런저런 꿈을 꾼다는 건 기억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아. 그저 별로 꾸고 싶지 않은 꿈이군 할 뿐이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와서. 만났으면 하는 사람은 꿈에 잘 나타나지 않기도 하지. 언젠가 겪은 안 좋은 일을 꿈속에서 또 겪기도 하고. 똑같지는 않지만. 꿈은 꿈일 뿐이겠지. 그러기를 바라. 꿈은 자신을 해치지 못할 거야. 안 좋은 꿈도 즐겨야 할까. 그러면 좀 더 나을 것 같아.


 한번은 과학소설 같은 꿈을 꾸기도 했어. 이건 깨고 나서 생각한 거야. 그 꿈을 잊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 시집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를 보고 꿈을 잠깐 생각했어. 여기 나오는 시에서는 꿈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 그래도 꿈이어서 다행이군. 아니 그건 다른 일이 안 좋은 꿈으로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어. 꿈이 좋으면 좋을 텐데. 꿈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군. 자기 무의식은 다스리기 어렵기도 하지. 깨어 있을 때 좋게 생각하면 무의식을 달랠 수 있으려나. 나도 잘 못하는데 이런 말을 했군. 아니 이런 생각을 하니 깨어 있을 때 우울하고 어두운 생각보다 좀 더 나은 생각을 해야겠다 싶기도 해.




 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만히 누워 잠을 기다리고 있으면 오래된 기억들이 초대를 시작하지 좋은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이미 지나온 길을 거슬러 가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시간의 일이니 유리 조각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따가울 따름이야 그건 당연한 거야 발이 만신창이인데 피는 흐르지 않는 꿈 나 혼자서만 이게 아프구나 할 수 있는 꿈 손톱으로 아무리 긁어도 자국만 남고 흉터는 남지 않는 꿈


 너덜너덜한 발로 꿈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두 발은 깨끗하겠지 나는 버려지고 쫓기고 두려움에 잠기기도 하며 누군가의 시선 끝에 있기도 하다 내가 들고 있는 사랑이 산산조각 나기도 하고 연인은 하얀 금 바깥에 영원히 서 있을 뿐이다 운이 좋으면 금방 죽임을 당할 수 있다 나는 꿈에서 운 적 없고


 잠이 온 것인지 꿈이 온 것인지 나는 모른다

 오랜 꿈의 말로는 바다를 보는 것이었지 파란 바다가 밑으로 흐르며 햇빛에 빛나고 있는 장면 곧 세상이 바다에 잠긴다고 하던가 약속된 시간에 밀려오기로 한 바다를 바라보는 건 아름답고 다급하고도 평화로운 일이었는데


 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 몇 개를 끌어안고 가라앉는 배일까


 지나간 꿈이 쪽지를 남겼나


 나를 보라고 나를 기억하라고 나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란다


 -<고요의 바다>, 64쪽~65쪽




 꿈을 말하는 시는 여러 편이야. <고요의 바다>는 거기에서 하나야. 마지막 말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군. ‘나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란다’ 가. 이건 어린시절 겪은 슬픔이나 아픔 같은 걸까. 그때만 아픔이나 슬픔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신 안에는 어린아이가 살기도 하지.




그건 정말이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잠들도록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일이야


늦은 여름 아침에 누워

새벽을 홀딱 적신 뒤에야

스르르 잠들고자 할 때


너의 소원대로 스르르

잠들 수 있게 되는 날에는


저 먼 곳에서

너는 잠깐 잊어버리고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한 사람이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멀리서 너의 이마를 아주 오래 쓰다듬고 있다는 걸


아무래도 너는 모르는 게 좋겠지


-<낮게 부는 바람>, 66쪽~67쪽




 이 시 <낮게 부는 바람>은 <고요의 바다> 다음에 실린 시야. 여름에 낮잠 잘 때가 생각나게 하는 시야. 여름이어도 바람이 살살 불면 잠이 스르르 들잖아. 그 바람은 누군가 멀리서 자기 이마를 오래 쓰다듬어주는 거군. 난 누가 이마 쓰다듬어주면 잠 못 잘 것 같아.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나 할 수 있겠군. 난 그저 낮게 부는 바람만 좋아할래.


 다른 시 더 옮겨볼까 했는데 그만 할래.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시를 잘 보고 나도 멋진 시나 글 쓰고 싶은데, 시를 봐도 잘 못 쓸 것 같아. 소설 봐도 이야기 못 쓰는데. 그것보다 뭘 써야 할지 모를 때가 더 많군. 내게 다가오는 건 별로 없어. 없어도 생각하지만. 잘 못 써도 쓰는 걸 즐겁게 여겨야겠어. 쓰기 힘든 것도 있겠군. 그런 것도 쓰고 나면 좀 나을지. 유혜빈은 쓰기 힘든 것을 쓴 것 같기도 해. 뚜렷한 건 모르겠지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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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 나츠메 형사 시리즈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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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텔레비전을 안 보지만, 예전에는 텔레비전 보다가 가끔 뉴스도 봤다. 뉴스에서는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을 더 자주 말했다. 그런 거 보면서 뉴스를 많이 보면 사람이 참 우울해지겠다 생각했다. 안 좋은 걸 자꾸 생각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 같다. 세상에는 뉴스에 나오는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텔레비전 뉴스 안 본다고 안 좋은 걸 아주 안 보는 건 아니다. 컴퓨터를 켜면 이런저런 기사 제목을 보고 글을 보기도 한다. 그런 거 봐도 알 수 있는 건 얼마 없지만. 예전엔 몰랐는데 인터넷엔 가짜 뉴스도 많다고 한다. 그런 거 본 적은 없는데, 내가 가짜를 알아볼지 모르겠다.


 형사와 검사는 범인이 죄를 인정하면 그걸 그대로 믿겠지. 본래와 다르게 말한다 해도. 외과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보였는데, 검사 시도 키요마사는 그 의사가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다 여기고 경찰한테 재수사 하라고 했다. 나츠메도 그 사건을 맡아야 했는데, 나츠메는 여러 남자한테 한사람이 맞는다는 신고가 들어온 걸 알아봤다. 두 가지 일이 상관없어 보이지만, 상관있었다. 키요마사가 짐작한 게 맞기는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키요마사는 범인만 잡으면 된다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모르겠다. 그것보다 자기 아버지가 정치가한테 죽임 당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사건이 끝나서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키요마사는 잡지 기자였던 아버지를 죽인 정치가를 잡으려고 검사가 됐나 보다. 그 이야기 언젠가 나올지. 나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차례가 바뀌었지만 세번째 책 《형사의 약속》을 보고 느낀 걸 이 책 《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를 보고도 느꼈다. 나츠메는 첫번째 책에서도 그랬을 거다. 형사지만 형사처럼 보이지 않고 범죄보다 사람을 본다는 것. 나츠메가 이번 사건에서 참된 것에 이르게 도움을 준 사람은 검사 키요마사다. 세번째에서도 이 검사 이름 본 것 같은데. 네번째에도 나올지. 그건 책을 봐야 알겠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되겠지. 사람을 죽이고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그걸 알아도 어느 순간 살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일어난 일을 알게 된다면. 의사는 한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 말이다. 경험이 없는 의사가 잘못하면 경험 있는 의사가 도움을 준다. 그게 안 좋은 일은 아니겠지. 나도 잘 모르지만 의사는 쉽게 되지 않을 거다. 오래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의사가 될 거다. 자기 잣대로 사람을 재면 안 될 텐데. 의대에 들어가려고 공부해도 잘 안 되는 아이한테 안 좋은 일을 겪게 하고 의사가 되는 걸 그만두게 하다니. 그건 잔인했다. 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그런 건지.


 일본은 부모가 의사면 자식도 의사기를 바란다. 어느 집이나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 많을 거다. 그런 거 드라마에서 자주 봤구나. 부모가 의사라고 해서 자식도 의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그것도 적성에 맞아야 할 거 아닌가. 돈으로 자식을 의대에 넣는다고 괜찮은 의사가 될까. 대학에 떨어지면 재수 삼수 하게 하고 학원비는 아주 비쌌다. 그런 거 중압감 느껴지겠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괴롭겠지. 한국에도 그런 부모 있겠다. 부모가 하는 일을 자식도 하고 싶어한다면 응원해줘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둬야 한다.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이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 길을 찾아가기를 지켜봐주는 게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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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약속 나츠메 형사 시리즈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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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는 사람보다 병을 본다는 말이 있다. 병도 보고 사람도 보는 의사가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의사보다 아픈 게 낫기를 바랄지도. 내가 병원에 간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담당의사나 간호사 제대로 안 봤다. 간호사는 조금이 아니고 여럿이고, 어차피 잠시만 보는 거니 그랬구나. 그러면서 의사나 간호사가 친절하기를 바라다니. 드라마에서는 의사 간호사가 환자와 잘 지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 많지 않을 거다. 작은 병원이라면 모를까. 큰 병원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만나는 시간 그리 길지 않다. 병원엔 아픈 사람이 가고 꽤 많기도 하다.


 경찰과 의사 비슷한 면 있지 않나. 사람보다 범죄와 병을 본다는 거. 마음 따듯하다고 할까, 형사에도 왜 범인이 죄를 저질렀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 있을지 모르겠다. 경찰은 죄를 지은 사람을 잡기만 하고 벌은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재판에서 정해진다고. 재판이 잘못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다. 예전에 야쿠마루 가쿠 소설 《형사의 눈빛》을 보고 나츠메 노부히토라는 형사를 알았다. 시리즈가 되고 네번째까지 나왔다. 아직 두번째는 못 보고 세번째 《형사의 약속》을 먼저 봤다.


 첫번째 책에서 본 나츠메 형사가 이번 책 <호적 없는 아이>에서 달라 보여서 왜 그런가 했다. 나츠메가 형사가 된 건 딸이 묻지 마 폭행을 당하고 식물인간이 돼서였다. 자기 손으로 범인을 잡으려고. 첫번째에서 범인을 잡았지만 시효가 돼서 벌을 주지 못했던가 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겠다. 그 책 《형사의 눈빛》 보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잊어버렸다. 나츠메는 생활 안전과 청소년계 후쿠치 히로코와 DVD 가게에서 DVD를 훔치려다 일하는 사람한테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달아난 아이를 찾으려고 한다. 그 아이는 다른 경찰서에서 데리고 있다는 연락이 오지만,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츠메는 5시 15분에서 10초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아이 일을 알아봤다(경찰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15분이다).


 아이는 자신과 함께 살던 사람도 말하지 않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도 아이를 모른다고 한다. 아이와 아빠는 사정이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호적을 얻고 시간이 흐르면 아빠를 만날지. 나츠메는 두 사람한테 있었던 일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실제 그런 형사 있을까. 두번째 <불혹>에서는 나츠메가 조금 달라 보였다. 앞에 사건이 일어나고 시간이 흘러설까. 두번째에서는 나츠메가 다닌 고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소년법 이야기를 하는 건가 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그 죄를 잊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야쿠마루 가쿠는 어릴 때 죄 지은 사람이 그 죄를 잊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아무리 형무소에서 형을 살고 나온다 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츠메는 동창인 쿠보타가 가진 다른 마음도 알아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마음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텐데. 상대가 상처 받는다 해도. 상대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면.


 세번째 네번째 <피의자 사망>과 <마지막 거처>에서도 나츠메는 그 사람이 왜 그 일을 했는지 알아낸다. <피의자 사망>에서는 범인이 왜 사람을 죽였는지 헤어진 아내한테만 알려준다. 그런 걸 세상에 말하면 상처받을 사람이 있으니. <마지막 거처>를 볼 때는 초고령화 사회도 생각나고 좀 그랬다. 자식이 죄를 지어서 부모가 자식과 인연을 끊었다 해도 부모는 자식을 생각한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랐다기보다 자식이 피해자를 생각하고 속죄하고 살기를 바랐다. 억울한 일이 있다 해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 되겠다.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자신보다 둘레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안 좋은 마음 먹었다 해도 둘레 사람을 생각하면 멈출 텐데. 아니 나도 모르겠다.


 이번 책 보면서 식물인간이 된 나츠메 딸이 깨어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 이야기 <형사의 약속>에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오래 잠들어 있어서 앞으로 사는 게 쉽지 않겠지. 나츠메는 딸 에미가 살아가는 걸 지켜보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약속도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마음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아쉬웠다. 형사와 범인 식구여서 나츠메가 그 아이를 생각해도 만나러 가지 않았겠지. 나츠메가 그 아이를 가끔 만났다면 달랐을 것 같기도 한데,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구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겠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한테 마음을 써주면 그게 힘이 되겠지. 나이가 어릴 때는 더.




희선





☆―


 “지금 당장 답을 찾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정말로 내게 소중한 것이 무언인지 알게 될 때까지 충분히 헤매고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불혹은, 쓸데없는 세상 가치관에 미혹되지 않고 내가 내 삶 주체가 되어 끊임없이 헤매고 고민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기로 했어.”  (182쪽)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있는지조차 모르는 답을 찾아 외롭게 헤매는 건지도 모르겠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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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05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죄 보다 사람을 봐야죠.
몇년 전에 이 비슷한 일본 영환가 드라마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그것도 원작이 있었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억력이 원망스럽군요. 흐흑~
암튼 뭔가 훈훈한 소설일 것 같아 읽어보고 싶네요.^^

희선 2023-10-05 23:47   좋아요 1 | URL
다른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츠메 형사 이야기 드라마(<형사의 눈빛>) 만들기도 했어요 첫번째 책으로... 그것만 나온 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저도 그거 본 지 오래돼서 잊어버렸네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군요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나를 생각해야 할지... 가끔 그런 게 아주 없는 사람도 있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