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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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맨 앞에 보이는 빨간색 석류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군. 로봇 손 같은 건 여기 담긴 소설과 조금 다르게 보여. <릴리의 손>에 나온 손은 사람 손과 똑같다고 했거든. 이 책 《트로피컬 나이트》에는 단편 여덟편이 담겼어. <할로우 키즈>가 가장 짧군. 유치원 핼로윈 행사 때 사라진 아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여기에선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는데, 어쩌면 거기엔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재이 부모는 재이를 유치원에 늦게까지 맡겨두고, 정장을 입은 어머니와 술 냄새를 풍기는 아버지가 데리러 왔다고 해. 부모가 아이를 학대한 걸까. 이건 그저 내가 떠올린 것일 뿐이야. 여기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는 건 아니기를 바라.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면 쓸쓸할까. 사람은 죽으면 남이 뒤처리를 해줘야 하지. 그런 거 해줄 사람이 없으면 죽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발견되겠지. 지금은 그런 일 자주 일어나기는 해. <고기와 석류>에서 옥주도 남편이 죽고 그런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를 텐데. 옥주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그것을 집에 들이고, 언젠가 자신이 죽은 뒤에 그것이 자신을 먹으리라 생각했어. 고기를 바라는 그것 눈이 빨간색 석류처럼 보여서 옥주는 그것을 석류라고 해. 가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과도 마음을 나누지. 석류는 반려동물도 아닌데. 옥주는 암인가 봐. 석류와 함게 살고는 옥주는 살려고 해. 옥주는 자신을 잡아 먹을지 모르지만 석류가 있어서 살 마음이 생긴 거 아닐까.


 세번째 이야기 <릴리의 손>에서는 세상 곳곳에 틈이 벌어지고 사람이 거기에 빠지기도 했어. 틈에 빠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다른 곳으로 가지. 하지만 잘못하면 죽기도 했어. 틈에 빠진 사람은 지난날이나 앞날로 가는가 봐. 그렇게 가기만 하면 좋을 텐데 기억이 사라져. 이건 그리 좋지 않지. 틈을 지나 다른 곳에 간 사람은 기억을 잊어도 가끔 그리워해. 알지도 못하는 것을. 연주와 릴리 이야기 조금 쓸쓸하게 보여. 한사람은 잊어도 한사람은 기억하니 조금 나을까. <새해엔 쿠스쿠스>는 가장 많이 현실과 닮은 이야기야. 엄마가 딸을 자기 멋대로 기르려고 하는 모습이 나오거든. 엄마와 고모가. 유리와 연우는 사촌 사이로 연우는 뭐든 잘했어. 잘한다고 해도 엄마 때문에 힘들었어. 유리도 다르지 않았는데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어. 연우는 결혼식 날 사라지고 유리는 힘든 학교 일을 그만둬. 그 학교는 엄마가 아는 사람이 소개해준 곳이야. 유리가 당한 여러 가지 일을 엄마한테 말했는데도 엄마는 참으라고 해. 유리와 연우가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해서 다행이야. 앞으로는 둘 다 엄마한테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겠어.


 지금보다 시간이 흐른 앞날엔 미세먼지가 더 심해지고 먼지 바람이 나타나기도 할까. <가장 작은 신> 속 세상에선 바깥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해.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하다니. 수안은 먼지 바람이 생기고 두해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았어. 집 밖에 나오지 않고도 살다니. 물건은 택배로 받았어. 코로나19가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세상이지. 수안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택배 일을 하는 사람은 있군.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수안을 고등학교 동창 미주가 찾아와. 미주는 수안이 걱정돼서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수안한테 물건을 팔고 다단계 회사 영구회원으로 만들려고 다가온 거였어. 수안이 속는 건가 했는데, 수안은 그걸 알면서도 미주가 찾아오는 걸 기다려. 혼자 지내는 게 쓸쓸했던 걸지도. 미주는 수안을 속이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수안을 그만 만나려고 했어. 수안은 미주와 연락이 잘 안 되자 미주를 걱정하고 미주를 찾으려고 집 밖으로 나와.


 누가 걱정된다고 해도 어디 있는지 알아야 구하든지 할 텐데. 다행하게도 수안은 미주를 구해. 하지만 나쁜 건 다시 찾아온다고 해. 그거 바이러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나쁜 꿈과 함께>에서 몽마는 은성 꿈에 찾아가고 몸이 뜯긴 곰인형이 돼. 은성은 그런 곰인형을 꽉 안아. 몽마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기분이 이상했어. 은성한테 마음 쓰던 몽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다시 은성한테 가.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은 SF군. 외계고양이가 지구에 왔다는 설정이고 외계고양이 별에 큰일이 일어나서 지구를 떠나는 거야. 외계고양이가 큰일을 해결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면 좋겠군. <푸른 머리칼 살인마>는 <푸른 수염의 아내>를 새롭게 쓴 것 같아.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읽고 나면 마음이 따듯해지는 거군. 끝이 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야. 릴리와 연주는 멀리 떨어졌지만. 사람한테는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좀 낫겠지. 그 사람이 가까이 있지 않다 해도.




희선





☆―


 이야기가 끝날 때면 고모는 엄마가 일부러 골라 내놓은 무른 배를 포크로 찍으며 늘 이렇게 말했다.


 “연우는 내가 만든 작품이야.”


 연우에게 내 인생을 다 갈아 넣었다고.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새해엔 쿠스쿠스>에서, 127쪽)



 “네가 사립학교 일이 처음이라서 그래. 부장 비위 좀 잘 구슬려서 맞춰보렴. 이사장 조카라며. 학교 이사장이 이 일대 유지란다. 한번 말뚝 박으면 평생 교사 소리도 듣고, 그거보다 괜찮은 직장이 없어. 지금은 힘들어도 다 빛 볼 날이 있다. 엄마가 너한테 들인 게 얼만데 아무 일이나 하면 안 되지.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참고 극복할 줄도 알아야 해. 넌 할 수 있어. 우리 유리,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건 내가 지금껏 느꼈던 어떤 감정보다도, 가장 강렬하고 커다란 배신감이었다.  (<새해엔 쿠스쿠스>에서, 138쪽~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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