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16, 나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리뷰에서 이렇게 썼다.

 

정확하고 절제된 언어로 말하는 여성주의를 보고 싶다면 정희진을 봐라.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지 않는 우아한 문체를 보고 싶다면 정희진을 봐라. 이민경이 있고 정희진이 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있고 페미니즘의 도전이 있다.

 

그리고, 20161022일 한겨레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나는 우아한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편견에 시달려온 여성, 여성주의자로서 자기 검열이다.

 

내가 이해하는 정희진님 문장은 힘이 있되 정제되어 있으며,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문장은 쉽고 아름답다. 나는 그녀 문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우아함을 생각했고, 그것이 가지는 힘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은 우아한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의 소산이다. 편견에 시달려온 여성, 여성주의자로서 그녀는 우아한글을 써야한다는 강박 속에서 글을 쓴다. 그녀의 자기 검열을 통과한 우아한문장만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사회적책무를 부여한다.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비난한다. 페미니스트는 이러면 안 되고, 저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라는 규정 속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페미니스트 중에는 정희진님처럼 한겨울에도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엠마 왓슨처럼 화사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자연보호와 환경보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외출하면 테이크 아웃 커피를 꼭 한 잔 마시려는 사람도 있다. 남자와 구별되지 않는 옷차림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짧은 치마를 입고 나서 스스로의 모습에 흐뭇해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야만 하는 글쓰기에서 정희진님은 우아함을 선택했다. 그녀는 자신의 논지를 우아한방식으로 드러내려 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인지된다. 이민경씨는 좀 더 강력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녀는 발랄하고 전투적이다. 정희진님의 우아함과 이민경씨의 전투성은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때, 여성들이 유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 우아할 수도 있고, 전투적일 수도 있다.

 

지난 115일이었다. 촛불집회로서는 두 번째 집회이고, 나로서는 첫 번째로 광화문 광장에 나간 날이었는데, 730분부터 행진이 시작됐다.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종로-퇴계로를 걷다가 을지로-시청-청계광장을 거쳐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에서 다시 만난 각 노조원들과 대학생들은 깃발 아래 바닥에 착착 앉기 시작했고, 절친 동생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시간을 확인해보니 97분이었다. 단체로 참여해 깃발 아래에 앉은 사람들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족 단위로 나왔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가는 거야? 끝난 거야?”

물론 밤늦게까지 집회를 계속한 분들도 많았겠지만, 진행 본부에서 이제 오늘은 끝났으니, 안녕히 돌아가시라,하니 많은 인원들이, 나중에 보도를 들어보니 30분만에 몇 십만의 사람들이 물밀듯이 광화문 광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가족에게로, 각자의 가정으로 그렇게 평화롭게 돌아갔다.

집 근처 맥도날드에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를 나눠 먹으며 절친 동생에게 말했다.

, 이런 국민들이 있냐? 집에 가래니까 진짜 다 집에 가네. 나도 집에 왔지만.... 진짜 대단하다.”

평화 집회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100만이 주말마다 나와 촛불을 들어도 꿈쩍도 안 하는 이런 정부를, 국민과 검찰, 야당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런 부당한 정권을 언제까지 참아줄 것인가.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어떤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정당한 요구일지라도, 정당한 요구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비춰졌을 때, 폭발적으로 집중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변하지는 않을까,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서해 바다 바로 앞까지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이는 한일 군사정보 협정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이 정권은 어찌 되었건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어떤 방법이 더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싶다.

국민들은 정희진님 방법을 쓰는 거다. 국민들은 우아하게 가는 거다.

국민들은 같이 나와 같이 앉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구호를 외친다.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한다. 의경에게 욕하지 않고, 박사모와 싸우지 않고, 청와대 바로 앞 차벽 앞까지 가서 의경과 경찰들을 감화시킨다. 국민들은 우아한 방법을 쓴다. 우아한 방법이기는 한데 그 우아함을 유지하는 게 조금 힘들 수도 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주말에는 춥지 않고 비도 오지 않기를...

정치인들은 이민경씨의 방법을 쓴다. 전투적으로 간다.

정치인들은 서둘러 탄핵 절차를 합의하고, 합의대로 국회 탄핵 절차를 진행한다. 새누리당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를 지르고, 대통령 면전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피켓을 들고, 대통령을 앞에 두고 하야하라!’고 외친다. 근래에 가장 모범적인 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무위원 한 명이라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직언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겠나. 이 시국에 책임지는 국무위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19604·19 당시 경무대에서 허정 외무장관과 김정열 국방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야를 건의했고 그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국민에 대한 그런 책무감,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한 그런 용기도 없느냐며 국무위원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는 법무부 장관은 어찌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나. 앞으로 어떻게 국민에게 법치를 말하고 국민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말할 수 있나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한겨레 신문 20161122,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71403.html#csidxa159cee05eb90e28047ac65f6c4f8fa>

 

박원순 서울시장은 쭉 이대로 하시면 되겠다. 이민경씨의 방법 그대로 말이다.

국민들은 우아하게, 정치인들은 전투적으로, 투 트랙으로 가는 거다. 국민들은 평화적으로 시위하면서, 우리가 위대한 3.1. 운동의 계승자임을, 비록 우리가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는 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비아그라, 팔팔정 따위를 구매하고 거짓말하는 이런 비루한 대통령을 부끄러워하고 규탄하고 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촛불에 기대어, 촛불을 핑계로, 촛불을 이유로, 촛불에 근거해 청와대와 새누리당, 아직도 대통령 눈치를 보는 정신 못 차린 공무원 사회를 압박한다. 전투적으로, 집중적으로, 강력한 톤과 어조로 압박한다.

우아하게, 또는 전투적으로 그렇게 가자.

더 이상은 쓸 말도 없다. 태반주사 넘으니 비아그라. 에헤라, 팔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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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1-2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국민들고 굳이 우아하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단발머리님의 이 글은 진짜 너무나 좋습니다. 단발머리님 진짜 요즘에 글빨 장난아니신 것 같아요. 아, 뭔가 칭찬이 천박하네.... ㅠㅠ

저는 제가 단발머리님과 이렇게 교류하는 친구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페미니스트 입니다. 그리고 단발머리님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이며, 이런 글을 읽고 쓰는 일들이 무척 소중하다고 여겨집니다. 단발머리님, 아무쪼록 우리 서로 지치지 않게 다독여가면서 함께 나아갑시다.

단발머리 2016-11-24 18:58   좋아요 0 | URL
우아하게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는 해요. 국민들은 우아한데, 상대가 너무 막 나가니까요.
칭찬 감사해요.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기분좋은 칭찬이예요. ㅎㅎ

저는 제가 다락방님과 이렇게 교류하는 친구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릴리로즈 립스틱을 바르는 페미니스트예요. 그리고 다락방님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이고, 이렇게 같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게 무척이나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님, 우리 우아하게 야무지게 손 잡고 함께 나가요.^^

아무개 2016-11-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미니스트가 세상을 바꿉니다!
저는 전투적으로 해볼랍니다^^

단발머리 2016-11-25 15:12   좋아요 0 | URL
네에~~ 좋아요~
아무렴 비율은 1:1이 진리죠!!
우아하게! 전투적으로! 전진!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