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할 때 프런트에 있던 이는, 정확히 이 주 전 체크아웃할 때 숙박 요금을 정산해 준 프런트맨이었다.

그게 아니면 어떻게든 입학하고 나서 그럭저럭 졸업하더라도 이력서에는―얼룩만큼의 자국밖에 안 남는 대학이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온 건가?

일층 로비에는 인적이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호텔 수준은 특급이라 할 수 없지만 조용한 것만은 일품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

액자 여백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씌어 있다.

구 가모 저택 쇼와 23년 4월 20일
촬영자 오노 마쓰키치

가모 저택. 여기는 개인 저택이라는 뜻이다.

군인 특유의 씩씩한 분위기가 흠씬 전해졌다.

육군대장 가모 노리유키

대장의 유서는, 전쟁 전 우리 정부와 군부가 처한 상황과 당시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 끝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로 대미개전對美開戰과 그 후의 패배까지 예상하여 군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놀라운 선견지명으로 가득 차 있어 현재까지 역사 연구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두려워했던 것, 대기업의 ‘지인’이 말단 중에 말단이고, 더더군다나 자신은 그 말단에게조차 이런 호텔이나 대충 소개받고 뒤에서 비웃음이나 사는 하찮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걸, 영세한 지방 회사의 무지렁이 사장일 수밖에 없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게 되리라.

프런트에 서 있는 새로운 투숙객이―덩치가 작은 중년 남성이었다―심하게 ‘어두웠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어두웠다. 그가 서 있는 주위만이 빛이 닿지 않는 방구석처럼 어두침침했다. 원래 로비 조명 자체가 그다지 밝지는 않지만, 일단은 제대로 켜져 있다. 그런데도 카운터 일부분에만 검정물이 스며든 것처럼 보인다.

조용한 건 분명하지만 그야 처량하게 혼자 있으니 그렇지. 게다가 이번 전망은 최악이야. 그렇게 말해 버릴까 하다가도 결국 아버지가 듣기 편한 소리만 내뱉는다. 자동으로 거짓말 기계가 돼 버리고 만다.

긴자로 나가 영화를 봤다. <쥬라기 공원>. 작년 가을 화제작을 이제야 본다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집에 있을 때는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 마음이 불편해 영화관에 가기가 쉽지 않았다.

"저기, 제일 뒷자리에 있던 아저씨, 기분 나쁘지 않았어?" 여자아이가 묻는다.

"응, 뭐라 해야 하나, 엄청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던데."

"딱히 어둡기만 한 게 아니라, 뭐랄까, 그 아저씨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유리창을 할퀴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느낌이더라고."

그렇다……. 잔인하지만 정확한 표현이다. 다카시는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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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색할 때는 홀로 자신을 돌보는 데 힘쓰고窮則獨善其身,일이 잘 풀릴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通則兼善天下."『맹자』의 가르침이다.
인생살이에는 궁과 통이 있게 마련이다. 궁만 있고 통이 없을 수없고, 통만 있고 궁이 없을 수 없다.

잘 풀릴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궁색할 때이다.
구석에 몰렸을 때 자기를 보존하고 자신을가다듬을 방법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좋은 방법의 하나가 산山과 사寺에 가는 것이다. 산에 가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산이 있다.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우리 땅의 7할이 산이다. 국토의 7할이 산으로이뤄진 나라는 네팔이나 스위스 빼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7할도 아주 양질의 산이다. 한국의 산들은 해발 1천 미터 내외이다.
4~5천 미터가 되면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동식물도 살기 어려운 죽은 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산들은 살아 있다.

내게 왜 산에 가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사람이 그리워서 간다‘고 대답한다. 산에는 사람이 있다. 산사람들이다. 산사람을 만나러 산에 간다. 시시해진 세상을 버리고 산에 들어온 사람, 세상에서버림받아 들어온 사람, 운명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들어온 사람………… 약초 캐는 사람, 백일기도하는 사람, 산을 좋아해 사업을 정리하고 자청해 들어온 사람, 도를 닦으려고 들어온 사람. 그렇게 산사람에겐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산에 살면서 깨달은 나름의 소식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산을 좋아하다보면 사찰을 좋아하게 된다. 절은 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한국의 절에는 산수가 있고 출가한 산사람이 있다.
선조의 문화와 사상이 있고, 깊고 너른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초 단위로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이지만, 우리에겐 천 년 넘게 지속해온 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불교이다. 다른 것은 남아 있는 게 거의없다. 그 역사의 비바람 속에서도 아직 버티고 있는 게 산속의 사찰이다.

절은 번뇌를 없애기 위한 장소이다. 거기에는 불교 사상이 있다.
사찰과 종교적 영험을 분리할 수 없다. 한국의 절에는 영험이 서려있다. 어떤 절에서 도를 통하고, 어떤 절에서 병을 고쳤는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절에는 그 배면에 풍수가 있다.

산과 절의 이야기는 천 년을 변치 않지만, 변치 않기에 역설적으로 찰나를 사는 우리에겐 늘 새로울 수밖에 없듯이, 이 책이 세월을뛰어넘어 조금이나마 산과 절을 찾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길 기대해본다.

서울 북한산 승가사
동국여지승람의 5대 명산
북한산이 깃든 기도도량

삼국시대 당시 고구려 백제·신라는 한강과 북한산을 차지하기 위해 국운을 걸었다. 뺏고 뺏기는 일진일퇴가 계속되었다. 최종 승자는 신라였다. 진흥왕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북한산의 한 바위 봉우리 위에 순수비를 세웠다. 이 바위 봉우리 아래,북한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승가사가 있다. 서울에 있기에 저평가되고 있는 북한산은 사실 예부터 빼어난 명산으로 꼽혀왔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북한산은 해동오악 중의 하나에 속한다. 북에는 백두산이, 동에는 금강산이, 서에는 묘향산이, 남에는 지리산이 있고 그 가운데에 북한산이 있다고 했다.

빼어난 명당 서울을 둘러싼 산과 물의 이야기한국의 명산에는 악산이 많다. 악산이란 바위가 돌출된 험한 산을 말한다. 하지만 험한 산이 영양가가 높다. 사람도 ‘성질 있는 사람이 성질 값을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산도 악산에 먹을 것이많다. 여기서 먹을 것이란 ‘기도발‘과 ‘영험‘을 가리킨다. 기도발과 영험이 있어야 진부한 속세를 초월할 수 있다.

바위산은 악산이다. 그러므로 악산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에서 이름난 악산으로 강원도의 설악산이 있다. 설악산 다음의 악산은 어디인가. 내가 보기에는 서울의 북한산이다.

예로부터 북한산을 일컬어 ‘산형절어천하山形絶於天下지덕도어해동地德渡於海東이라 했다. "산의 형상을 보니 천하에 으뜸가는 산이요, 땅의 덕은 해동에 널리 퍼질 곳이다"라는 뜻이다.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한산화산 등으로 불렸으나 북한산성이축성된 이후로 북한산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되었다고 한다.

설악산 다음가는 아름답고 기운 센 명산이서울의 병풍 역할을 하고, 한국의 제일가는 강인 한강이 동남쪽을둘러싸고 있으니 조후용신調候用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북한산의바위 봉우리에서는 불기운이 타오르고, 한강은 유유히 흐르면서 화기를 식혀주니,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조후調候가 조절되는 것이다.
이처럼 절묘하게 불과 물을 두루 갖춘 수도는 세계에서도 드물다.

풍수적으로 볼 때 도읍지에 해당하는 곳은 네군데의 방향에 산이 있어야 한다. 신라의 천 년 수도 경주를 보아도동서남북에 산이 있다. 동쪽에는 명산이, 서쪽에는 옥녀봉과 선도산이, 남쪽으로는 금오산(남산)이, 북쪽으로는 금강산(북악)이 자리잡고 있다. 후백제 견훤이 도읍지로 잡았던 전주 역시 동서남북 사방에 산들이 포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하필 네 군데를 고집하는 이유는 하늘의 28수를 4로 나누면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형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뤄진 일이 땅에서도 이뤄진다‘는 주기도문처럼 하늘의 청룡·백호, 주작•현무는 지상에서 그대로 구현돼야 한다. 그러자면 네 군데 산이 있어야 한다.

북한산을 거의 빨치산 수준으로 오르내리는 전문 산꾼들 사이에서는 ‘불수사도북‘이라는 전문 용어가 통용된다. 하루 동안에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완주하는 코스를 말한다. ‘불수사도북‘은 도상 거리로는 45킬로미터이지만 실제 도보로 60킬로미터 거리가 된다. 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하는 것이다.

바위의 기운으로 삶의 번뇌를 씻다북한산 등반에서 가장 위험한 코스는 인수봉과 염초봉이다. 인수봉에서는 바위 타다가 사고가 자주 난다. 염초봉 역시 마찬가지이다.
등산용품으로 유명한 회사 K2의 사장이 2003년에 염초봉에서 바위 타다가 안타깝게도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바위 절벽에3~4시간 매달려 있다 보면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장거리 종주에서 10대가 포기를 가장 많이 한다. 그다음에는 20대가 포기를 많이 한다. 가장 포기하지않는 연령대는 의외로 50대이다. 50대는 살아온 연륜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어려움을 인내할 줄 안다는 뜻이다. 육체적인 지구력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최고인 것 같다.

언제 하룻밤 유숙하고 싶은 절이었지만, 비구니들이 거처하는 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친구인 춘산의 소개로 인연이 닿아 드디어 하룻밤을 묵을 수 있게 되었다.

머리에 두건을 쓴 것은 중국의 풍습으로, 겨울에 좌선하려면 춥기 때문에 두건을 쓰는 것이다.

주지의 방에는 ‘백초시불모是佛‘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만공스님 필체를 탁본한 것이라고 한다. "백 가지 풀이 모두 부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고가 아니다. 모두가 다 의미가 있다. 결국 분별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부정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처음에는 쉽지만갈수록 어렵고, 긍정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갈수록 쉽다고 한다. ‘백초시불모‘는 대긍정으로 들어가는 노선이다.

승가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날이 마침 보름이라, 저녁이 되니까 동편 산봉우리 너머로 둥그런 보름달이 떠오른다. 산에서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을 보면 세속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다.

서울은 대단한 도시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불과 40~50분이면 유목의 경계를 넘어 은둔으로 진입할 수 있는 도시가 서울이기 때문이다.

하동 지리산 칠불사
49일간 온기가 남았던 전설의 아자방과 개운 조사의 금강굴 이야기

동안거 중의 좌선이란 방바닥에 때를 묻히는 작업이다. 좌선이란 장시간 방바닥에앉아 있어야만 하기에,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차가워도 안 된다. 그런가하면 좌선하는 사람이 불을 지피려 아궁이에 자주 들락거려도 분위기가 산만해지고시간을 뺏긴다. 그러므로 한 번에 몽땅 불을 때놓고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돌방이 좋은 선방이다. 지리산 칠불사의 아자방은 한 번 불을 때면 무려 49일동안 온기가 남았었다고 전한다.

한국인들에게 지리산은 속세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 있는 하나의 탈출구이자 해방구이다. 지리산은 쫓기는 자들이 마지막으로숨어 지냈던 은둔처이다.

"이제 금강산은 인연이 다했으니 남쪽으로 내려가자."
보화 선사가 20년 동안 머물던 금강산 영원암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멈춘 곳이 바로 지리산 한가운데 있는 칠불사였다.

금강굴 주변에는 무협지에서 말하는 ‘진법‘이라는 것이 설치돼 있기때문에 속인의 눈에는 절대 띄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시공이 다른 차원의 세계일 것이다. 제발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란다.

불교 전래에 대한 정설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372) 북쪽의 전진으로부터 들어왔다는 북래설이다. 북쪽 그러니까 고구려를 통해 육로로 들어왔다는 게 정설로 돼 있다.그러나 일연 스님은『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48년에 인도의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이 가야국의 김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불교도 함께 들어온 것으로 설명한다.

칠불사는 한국에 처음 불교가 수입된 통로가 고구려가 아닌 가야이고, 전래 연대도 무려 3백 년 이상 소급시킬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절인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학계에서 남래설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인물이 북한의 간첩으로 밝혀진 단국대의 무함마드 깐수 교수였다는 사실이다.

구전에 따르면 이 구들은 신라 때의 구들 도사 ‘담공 선사‘의 작품이라고 한다. 하도 구들장을 잘 놓아서 구들 도사라고 불렸던 담공 선사의 대표작이 바로 칠불사 아자방이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나오는 "백 년 동안 탐낸 물건은 하루아침에 먼지가 되고, 삼 일 닦은 마음일지라도 천 년의 보물이 된다百年貪物-朝塵三日修心千載"

6·25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 일대에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 4만 명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근거는 이렇다. "2000년대 초반지리산 생명평화운동을 할 때 지리산에서 죽은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의 위령제를 합동으로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양쪽 죽은 사람 가족들의 위령제 신청을 받아보니까 그 숫자가 4만 명쯤 되었습니다." 지리산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증언이다.

이 보광당 멤버들을 속칭 ‘구빨치‘라고  부른다. 반면 광복 이후로 지리산에 들어온 빨치산들은 ‘신빨치‘라고 한다.

지리산 빨치산 총대장이었던 이현상이 빗점골에서 1953년 9월에죽었다. 이현상 이후에도 박영발이 남아 있었다. 이현상보다는 카리스마가 약간 덜했지만 나름대로 한가락 했던 박영발은 1954년 3월에 죽었다. 이현상이 죽고 난 후에도 대략 6개월이나 더 버티다가죽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이 어떻게 6개월이나 더 버틸수 있었을까다. 수만 명의 군경 토벌대가 이 잡듯이 지리산을 뒤졌는데, 어떻게 그 촘촘한 수색망을 피해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은신할 수 있었을까?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박영발은 토벌대에 발각되어 사살당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폭했다고 전해진다. 심한 부상이 있었고,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먹을 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스스로  자폭한 것이다.

희한하게도 신선의 수행터와 발치산의 비트가 동일 장소였던 것이다. 삶의 커다란 아이러니다.

귀거래사‘를 입으로 옮기는 많이 읊지만 이걸 실행에 옮긴 인물은 많지 않다

천 석이 들어가는 큰 종을 보시오
看千石鐘
크게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네
大打無聲
어찌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을 수 있을까
天嗚不嗚

지리산은 예전부터 도교적 체취가 강한 산이었다. ‘지리산에 상주하는 도사가 5천 명이다. 계룡산에는 8백 명의 도사가 항상 머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계룡산의 몇 배인가? 여섯 배가 넘는다. 그만큼 지리산은 도사들의 천국이었다. 도사는 유교의 선비보다는 탈속적이다. 도시보다는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사에 일정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불교보다는 좀 더 세속적이다. 머리를 기르고 있어서 언제든지 시중에 내려와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불교 승려는 시중에 내려오면 바로 눈에 띈다. 유교와 불교의 사이.
그 중간 위치에 도사가 있다. 평소에는 숨어 살지만, 유사시에는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작업할 수 있는 존재가 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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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우깡 좋아하거든요. 자갈치도 좋고 꽃게랑도 좋고. 최고는 고래밥! 완전 해물 모둠이잖아요.

"이제 소진 씨 내가 가물치라고 부를 겁니다. 힘센 가물치 씨. 그러니까 호구로 살지 말고 포식자로 살라고요. 알았죠?"

꼰대 오브 꼰대

투명 글라스의 반을 맥주로 채운다. 뒤이어 소주를 톡 털어 넣는다. 비율이니 뭐니 다 필요 없고 그냥 양념 치듯 소주를 첨가하면 된다. 그게 진짜 소맥이고 그게 이 더위와 스트레스에 찌든 자신을 풀어줄 유일한 처방이라고 최 사장은 생각했다.

아무튼 가게라는 건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직원과 손님들 모두 행복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진 이곳은 망해가는 가게의 특징들만 독버섯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여보. 나 최 사장이야. 여기 청파 제일 정육식당이고. 이 동네에서 우리 소고기 안 먹어본 사람 없잖아.

"도대체 자기가 한 짓은 생각을 안 하고 만만한 게 아들이라고, 오나가나 꼰대 짓만 하고 있어!"

"뭐? 꼰대 짓?"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텅 빈 가게 중앙에 혼자 숨 죽은 배추처럼 서 있었다.

고깃집이라는 건 단체로 와 먹어야 맛도 나고 수익도 났다. 왁자한 기분에 고기를 추가하고 술병도 늘어야 매출이 오르는 건데, 두 명이 먹으면 좀처럼 추가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 너무 부정적으로다가 생각 마시구요. 그 왜 옛날에 팔던 진로 소주 상표에 나오는 두꺼비 있잖아요. 완전 귀여운 두꺼비. 그 두꺼비에서 독만 빼시면 돼요."

지난번에 모기가 많다고 투덜댔더니 홍금보 녀석이 미리 피워놓은 듯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놈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고쳐먹으며 다시 소맥을 말았다.

"자네 정체는, 싸가지 있는 놈이야."

"그게, 소신 있는 꼰대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문제는 자기 말만 해서 아닐까요? 대체로 꼰대들이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안 듣거든요."

"이 나이에 발전은 무슨 발전을 해. 하던 거나 잘해야지. 그거라도 지키려고 꼰대로 사는 거야. 그걸 너무 폄하하지 말란 말이야 내 말은!"

"아, 몰라! 자네같이 가족도 없고 태평한 놈은 그럴 수 있는데 난 아니라고!!"

"꼰대 아니고 상꼰대십니다. 꼰대가 버럭도 하면 진짜 상꼰대거든요. 아하하."

집에 와 방에 누웠다. 큰아들 방이다. 1년 전 아내는 코 고는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각방을 제안했다. 살이 찐 뒤로 코골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기에, 최 사장은 군대에 간 큰아들 방에서 자게 됐다.

"내 말만 안 듣는 줄 알았더니 남 말도 안 듣는 게 일관성 있네. 그 사람이 맞는 말만 하니까 당신이 더 발끈하더라. 그러니 안 웃겨?"

"외식 와서 이런 말 해서 나도 그러네."

"겁이 나."

아내가 그의 말에 집중해주는 게 느껴졌다. 최 사장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내가 잘라 준 수박을 와작 씹었다. 아내가 맥주를 따라줬다. 기분이 좋았다. 장사 따위 안 돼도, 집에서 아내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 아닌가?

"이거 왜 이래! 나 꼰대야. 꼰대 시절 러브 샷 좀 하자."

아들이 또 이것저것 수다를 떨어댔다. 저 녀석, 누구 닮아 저리 말이 많은지…… 너도 늙으면 꼰대 당첨이다.

"엥? 아들 말 듣고 가게 이름을 바꿨다고요? 우와, 이름 지키는 거야말로 고집 중에 상고집인데…… 완전 꼰대 탈출이시네!"

투 플러스 원

세상은 불공평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빠는 비 오는 날만 아니면 늘 현장에 나가지만 버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고 자신의 집도 불공평투성이다. 민규는 어떻게든 불공평과 더위에 찌든 집에서 벗어나길 바랐고, 그러던 차에 발견한 곳이 있었다.

"아니, 어제 알려준 걸 반도 모르면 어떡해요? 까마귀 고기를 드셨나. 내일부터 혼자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어요?"

아빠는 공부를 못하면 여름엔 더운 데서 일하고 겨울엔 추운 데서 일한다고 했지만, 편의점은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따뜻하지 않은가!

"이게 브라질 작가 책인데 아저씨 어릴 때 아주 인기가 있었어. 제제가 밍기뉴한테만 속 얘기를 막 하고 그러잖아. 그게 참 좋더라고. 사람은 속 얘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거든."

"간단히 말해서 로켓에게는 때론 궤도 수정이 필요하단다. 동현이도, 우리 집도 지금은 궤도 수정이 필요한 때 같다고 아빠는 생각해."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게 있는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더라.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더라고."

역시 취한 아빠와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고스톱 치다 싸는 소리 하시네. 당신은 골프 같은 거 칠 일 없으니 잘 모르는 거야. 그리고 모르는 건 좀 입 닫고 있어."

서민준은 왜 내기 골프인지를 쳐 가지고 엄마도 화나게 하고 아빠도 돌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안 먹는다고? 야! 밍기뉴, 우리 솔직해보자. 너랑 나 같은 체형들은 밥 먹었다고 뭘 더 못 먹지 않아. 그건 선택의 문제지,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치? 그리고 이 돈가스 삼각김밥 완전 실해. 돈가스 샌드위치보다 백 배 나아."

밤의 편의점

손님이 없는 한여름 밤 편의점은 냉장고 같다. 밤의 고요 속 쉼 없이 일하는 냉장고처럼, 편의점도 스물네 시간 멈추지 않고 가동된다.

"너 자취한다며? 우리 동아리 들어오면 밥은 안 굶어. 그리고 너 국문과라며? 국문과 취업 쉽지 않아. 두고 봐라. 연기 배워두면 밥은 안 굶는다. 우린 일종의 기술자라고. 몸 쓰는 기술자. 어른들 말 하나도 안 틀려. 기술 배우라고 하잖아."

하지만 다음 해 근배 역시 배고프고 할 일 없어 보이는 후배들을 동아리방에 데리고 왔고, 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대학 생활은 취업이 전부가 아니라고 훈계하고 있었다.

근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어르신 내가 말 많이 하니까 지지 않으려고 자기도 말씀을 많이 하시네.’ 그럼에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었다. 근배는 편의점 일을 만만히 여겼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선배가 연기 배우면 밥은 안 굶는다고 했잖아요!"

"마, 그때 내 나이가 지금 너보다도 어릴 때다. 내가 뭘 알았겠냐? "

편의점은 점장님 같은 분만이 아니라 사연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었다.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

걱정 따위 지우고 비교 따위 버리니, 암 걸릴 일도 독 퍼질 일도 없더라. 물론 근배에게 산다는 건 걱정거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하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너 알바

이생망.
지난 1년간 민식은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준말을 감탄사처럼 내뱉곤 했다. 특히 된소리 욕과 결합된 ‘이생망’은 그의 피폐해진 육신과 정신에 가하는 자조 어린 채찍이었다. 그나마 민식의 이번 생만 망한 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지구 전체에 망조가 든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ALWAYS

아들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휘청했다. 다행히 벽을 짚은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 놓인 갈색 캠핑 의자에 앉으니 녹음으로 가득한 정원이 한눈에 담겨왔다.

편의점을 차린 것도 어떻게 보면 분주히 보내야 하는 날들이 필요해서였다. 24시간 내내 불 켜진 그곳이 방범 초소인 양 내 삶을 호위하길 원했다. ALWAYS편의점이 남편의 빈자리를 그 이름처럼 ‘언제나’ 채워주길 희망했다.

"각자를 자각해야 각각이 되는 거야. 가족이자 각각이어야 오래갈 수 있는 거고."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불편한 편의점
—여러 계절이 흐른 뒤
학원 골목을 빠져나온 시현의 시야에 길 건너 남영역이 들어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굴다리 아래로 컴컴한 길이 보였다. 저 길을 지나면 청파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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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 오선숙

출근하던 선숙은 사람들의 시선이 연달아 자신에게 꽂히고 나서야 마스크를 안 쓴 걸 깨달았다.

불편한 편의점 2 | 김호연 저

참, 새 야간 알바의 이름은 근배다. 황근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얇은 목소리로 재잘대는 편이다.

대화도 들리지 않는 해상도 낮은 화면임에도 선숙은 연속극 보듯 빠져 들어갔다. 자신이 힘을 보탠 그 재회 장면에 흡족해하면서.

소울 스낵

753,452원.
모니터 화면에 뜬 현재 통장 잔고이자 전 재산을 바라보자니 소진은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숨만 쉬어도 한 달에 80만 원 넘게 드는 서울살이에 소진은 진저리가 쳐졌다. 정말이지 ‘서울살이’가 아니라 ‘서울 살인’이다.

고로 서울에서 도시빈민으로 지내는 것보다 고향 집에서 집세와 식대로 나가는 돈을 절약해 사람답게 사는 게 합리적이었다.

소주는 왠지 아저씨들이 마시는 술 같아 어색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망함 따위 뒤로하고 구매할 정도로 이제 좋아한다. 그 쓰지만 시원하고 투명한 액체가 주는 위안을 체화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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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진미 도시락

염영숙 여사가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저

많이도 배고픈 걸 보니 그의 정체는 서울역의 맹주, 비둘기의 친구, 노숙자가 확실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GS 박찬호 투 머치 찬 많은 도시락 4,900원’이라 떠 있었다. ‘음료수는 안 사 먹은 거 보니 염치는 있나 보군.’

"박찬호…… 도시락…… 없어요……."

"여긴 GS편의점이 아니에요. 박찬호 도시락은 GS에서만 팔거든요. 여기도 맛있는 거 많아요. 한번 골라봐요."

"……박찬호가, 도시락도 잘해요……."

"두 놈이면…… 나 이겨요. 셋은…… 힘들어. 걔들…… 다음에 따로 나한테 혼나요."

"분하지만 그 사람 말이 맞네."
"예?"
"경우가 있어. 시현이 넌 배려가 있고."

"제가 보기엔 작정한 거라니까요.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도시락 폐기 시간 딱 맞춰 오더라니까요."

"……경우가 있어. 역시."

"역사 교사로 정년을 보낸 내가 한마디 하자면, 국가고 사람이고 다 지난 일을 가지고 평가받는 거란다. 네가 그동안 한 짓들을 떠올려봐라. 너는 너 자신을 믿을 수 있니?"

인정하기 싫지만 아들은 못난이에 준사기꾼이다. 며느리 역시 그걸 알게 되었는지 결혼 후 2년이 되어갈 즈음 부랴부랴 이혼했고, 그때는 며느리의 야멸찬 결정에 분노했지만…… 결국 잘못은 대부분 아들에게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누군지…… 모르잖아요."
"뭘 몰라. 나 도와주는 사람이죠."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시현의 수많은 알바 인생의 종착점이 편의점이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여대생들이 수다를 떨며 들어와 편의점의 공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좋을 때다. 근데 너희들도 얼마 안 남았어. 대학을 벗어나는 대로 나처럼 최저시급을 받으며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올 거란다.

삼각김밥의 용도
오선숙, 그녀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가 셋 있다.

첫째는 남편. 30년을 같이 살아오면서도 이 남자의 내일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아들. 외아들에 홀로 키우느라 애지중지했건만 피는 못 속이는지 나이가 들수록 남편같이 이해할 수 없는 꼴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한 달 전부터 편의점 야간 알바라며 등장한 미련 곰탱이, 독고 씨였다. 그가 노숙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하긴 했지만 그때는 사장 언니가 야간 업무를 보느라 힘들 때였고 자신 역시 그녀를 도울 수 없었기에 별 도리가 없었다. 편의점을 유지하려면 햄스터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였기에 반대할 여지가 없었다.

독고 씨는 선숙에게 남편과 아들에 이어 이해 못 할 세 번째 남자였지만, 변하지 않는 실망을 주어 이해할 수 없게 만든 두 사람과 달리 이번엔 변신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 이해할 수 없게 만든 경우였다.

물론 곰 역시 개가 아니므로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원 플러스 원

경만은 마음속으로 그 편의점을 ‘참새방앗간’이라 부르곤 했다. 그래, 오늘도 방앗간이지. 참새는 경만 자신이다.

오늘 밤은 ‘참참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선택해온 경만의 최적의 조합이 바로 이것이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이것이 경만의 1선발이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하루의 마감이고 빈자의 혼술상 최고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아저씨,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마치 경만을 노숙자 취급하는 듯한 말이었다.

암, 능률 올라가고 월급도 올라가고 직급도 올라가서 대박나지.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옥수수수염차로 목욕하고 처자빠져 자는 소리 하고 있네.

불편한 편의점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인경은 트렁크를 끌기엔 너무 낡은 보도를 힘겹게 나아갔다.

인경은 지난가을을 원주 박경리 토지문화관에서 보냈다. 『토지』를 집필하신 故 박경리 선생님이 후배 작가들을 위해 지은 그곳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에게 집필실과 삼시 세끼를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었는데, 그녀는 작가가 되고 처음으로 그곳에 입주하게 되었다. 큰맘 먹고 입주한 토지문화관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가 생활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짜증이 난 인경은 어찌 해야 할지 두리번대던 중 계산대에 놓인 A4 용지를 발견했다. 거기엔 검정 매직으로 크게 휘갈긴 글씨가 적혀 있었다.

급똥! 잠시만요.

허!

그러니까 똥을 지려 빨리 화장실 가느라고 문을 못 잠갔다는 건데, 비위가 상해 당최 들어줄 수가 없었다. 듣다 보니 사내의 몸에서 똥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고, 정말이지 더럽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급똥이라…… 죄송했어요."

"아이 참! 밥 사 가는데 똥 얘기 좀 그만해요!"

넌 급똥이냐? 난 급분노다! 출입문을 밀던 인경은 사내를 돌아보고 꽥 소리 질렀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 대학로 버럭대장 정인경이거든!

게다가 참참참은 또 뭔가? 패키지 상품으로 팔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인경은 독특한 사고를 가진 이 골 때리는 사내에게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저씨, 원래 조폭 뭐 그런 거였어요?"

"아, 아뇨."

"그럼 교도소 같은 데 다녀와 갱생하는 중이에요?"

"그런 사람…… 아닌데요."

"아니면, 기러기아빠?"

네 캔에 만 원

민식은 자신의 불운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체로 불운했던 그의 인생이지만 언제부터 그 불운이 그의 삶에 멱살잡이를 해왔는지를 되짚어보았다.

"내가 그렇게 꽉 막힌 줄 아니? 예수님이 처음 행한 기적이 잔칫집에서 포도주 모자라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든 거였어. 술을 마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술 마시고 실수하는 게 문제인 거지."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이럴 거면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낫겠네.

ALWAYS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아니, 언제나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 있다면? 그 한 가지 생각이 고통으로 점철된 기억이라면? 고통에 흠뻑 잠긴 뇌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떨쳐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망망대해에 빠지게 된다면, 뇌는 커다란 추가 되어 거대한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갈 것이다.

왜 옥수수수염차냐고? 술 대신 마실 음료를 찾아야 했을 때 그것이 원 플러스 원 메뉴였기 때문이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몰라도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 한결 갈증이 풀렸고 음주 욕구를 조금이라도 눌러놓을 수 있었다.

역지사지. 나 역시 궤도에서 이탈하고 나서야 깨우치게 된 단어다. 내 삶은 대체로 일방통행이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고, 남의 감정보다는 내 감정이 우선이었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내치면 그만이었다.

오랜 시간. 나는 아내가 내 말에 수긍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 아내는 나를 견뎌주었을 뿐이었다.

가족의 해체, 내 인생의 불행, 아내와 딸을 잃어야 했던 것은 내 무심함과 오만함 때문이었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 신성을 얻은 자는 의느님이 아니다. 사장님같이 남에 대한 헤아림이 있는 사람이 그러한 자일 것이다.

"죽어야 될 놈을…… 살려……주셨어요. 부끄럽지만…… 살아보겠습니다."

대답 대신 그녀는 마주 안은 채 작은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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