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화가, 영웅의 꿈에 날개를 그려넣다.
프랑스 혁명의 광풍 속에 영웅으로 떠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04년 12월 2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왕관을 쓰고 아내 조제핀에게 직접 관을 씌우는 대관식을 거행하며 황제가 됐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역사적 순간을 가로 9.9m, 세로 6.69m의 거대한 화폭에 담아냈다. 이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1805~1807)에는 꼭두각시로 앉아 있는 교황 앞에서 이미 왕관을 쓴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씌울 또 하나의 관을 높이 들고 당당히 서 있는 극적인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평민 출신으로 26세에 치안사령관이라는 막강한 권좌에 올라 프랑스 군대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된 나폴레옹은 1797년 12월 10일 이탈리아 원정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에서 다비드를 만났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와 당대 최고의 화가는 서로 만나고 싶어했고, 이때부터 다비드는 나폴레옹과 그의 영광을 화폭에 담았다. '생 베르나르 고갯길을 지나는 보나파르트(1800~1801), '서재에서의 나폴레옹'(1812),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 '역사적 배경 속에서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한 연작을 내놓고 있는 저자는 나폴레옹의 시대 속에서 다비드의 의미와 가치를 재평가한다.
황제는 대관식이 끝난 후 다비드에게 '황제 최고의 황가'라는 영예를 수여했고, 다비드는 그의 그림을 통해 나포레옹을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다비드는 1750~1830년 유럽에 널리 유행한 신고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였다. 고대 그리스인이 추구한 이상과 이미지들을 부활시켜 단순한 형태와 색채로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적 화풍은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선전을 위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저자는 "다비드의 뛰어난 기교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특징인 단순성과 명료함은 서양미술사에 있어 신고전주의를 완성했다는 칭찬을 받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분히 정치 선전적이었고 관람자를 오도하는 것이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 03.09.20 동아일보 김형찬 기자
프랑스 혁명은 황제 나폴레옹을 낳았고, 나폴레옹은 화단의 권력자 다비드를 낳았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다비드 작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은 '모나리자' 다음으로 인기를 갖고 있지만 정작 화가 자신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았다. 저자는 객관적인지 기회주의자인지, 또 나폴레옹이 시대의 영웅인지 전쟁의 영웅인지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다비드 이 셋의 관계를 이바지하지 못하면 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술사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위해 기획된 '위대한 커플(Great couples)'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충분한 컬러도판이 이해를 돕는다.
// 03.09.20 경향신문 이상주 기자
영웅의 정치와 화가의 미술이 보여주는 운명적인 만남의 모습.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좋아했고 미술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인식한 나폴레옹과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절했던 다비드의 삶을 보여준다.
// 03.09.20 세계일보
화단의 나폴레옹 다비드
그는 기회주의자인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유화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은 루브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세로 6.3m, 가로 9.8m의 이 대작은 나폴레옹 황제 당시 궁정 수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것으로 나폴레옹이 그 앞에 양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황후 조제핀에게 관을 씌워주기 위해 두 손으로 관을 높이 쳐드는 장면을 담고 있다. 19세기 초 신고전주의 개척자 다비드 그는 화단의 '나폴레옹'으로 프랑스 화단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에는 부뤼셀로 망명하는 등 나폴레옹과 같은 인생 곡선을 그린 인물이다.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김광우지음, 미술문화 펴냄)은 나폴레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다비드의 일생과 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비평가인 저자는 다비드의 어둡고 외로웠던 어린시절 로마 유학, 소승인 조제프 마리 비엥 개빈 해밀턴을 만나 신고전주의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 나폴레옹과 만남, '황제의 제1화가'로서의 절정기, 나폴레옹 몰락에 따른 벨기에 망명과 사망등을 연대순으로 다룬다.
다비드를 이야기하려면 신고전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1750년에 시작돼 1830년까지 유럽에 널리 유행한 신고전주의는 고대의 미술, 특히 고대 그리스 미술을 규범으로 삼아 단순한 형태와 색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꾸밈이 없고 기하학적인 이 시기의 작품들은 르네상스의 마지막 거추장스러운 양식인 바로크의 로코코 양식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저자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 경제적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그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다. 그러나 그 작품들은 순수한 미학적 동기에서 그렸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적잖은 사실들이 왜곡됐다. 다비드의 뛰어난 기교와 단순하고 명료한 양식은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신고전주의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내용면에서는 다분히 정치선전적이었다는 비난도 면치 못한다. 다비드는 천재화가인가 기회주의자인가. 해답도 없고 유효기간도 없는 의문이다.
<대한매일 02.09.17 김종면기자>
김광우의 The Great Couples 4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이제 막 출고되어 언론에서 먼저 주목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누가봐도 좋은 책이니까요... ^^
9월 15일 KBS 930뉴스 '눈에 띄는 신간'
나폴레옹의 전속 화가이자 프랑스 화단의 황제였던 다비드의 평전입니다. 화가의 전기인 동시에 시대의 영웅과 화가의 교분을 통해 본 프랑스 혁명사이기도 합니다...KBS뉴스 신성범입니다.
9월 15일 '호남신문'
미술비평가 김광우씨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나폴레옹 시절 궁정화가 다비드 삶과 작품
나폴레옹 황제 당시 궁전수석화가였던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작품세계와 인생을 엮은 책이 나왔다.
미술비평가 김광우가 펴낸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미술문화)'
19세기초 프랑스 화단에 황제로 군림했던 신고전주의의 개척자 다비드는 나폴레옹과 운명을 함께한다. 그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을 그린 작가로 예술,정치적으로 프랑스 화단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나폴레옹 실각 후에는 부뤼셀로 망명했다.
책은 어둡고 외로웠던 어린시절, 로마 유학, 스승인 조제프 마리 비엥과 개빈 해밀턴과 만남으로 신고전주의자로 자리잡기까지. 정치와 인연, 나폴레옹과 만남, '황제 최고의 화가'로서의 절정기, 나폴레옹 몰락에 따른 벨기에 망명과 사망 등을 연대순으로 기술했다.
신고전주의 전반에 대한 해설과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 경제적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다비드의 예술성 못지 않게 정치적 성향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여러점 남긴 그는 순수 미학적 동기에서 그렸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부합되게 그려진 것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다비드의 뛰어난 기교와단순하고 명료한 양식은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신고전주의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내용면에서는 다분히 정치선전적이었고 관람자를 오도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은 이 때문. 책은 다비드에 대한 풀리지 않는 질문 '천재화가인가 기회주의자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 정윤희 기자
9월 16일 '서울 경제'
무수히 살롱전에서 탈락했으나 나폴레옹에 의해 최고의 화가로 선임된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의 일대기. 19세기초 프랑스 화단의 '황제'로 군림했던 다비드는 신고전주의의 개척자로서 르네상스 이후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