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제목에서 오는 느낌은 에세이 이다.
읽는 내내 일기를 읽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만큼 현실적이고 직설 적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기자 출신 작가인데 글이 딱딱하지 않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다.
얇밉지 않게 할말 다하는 사회 초년생, 그러면 서도 주눅들어 하고, 어쩔수 없이 눈치를 보게 된다. 열정을 부르짖는 그의 상사들 때문이다. 일명 "라떼"(나때는 말이야) 때문이다.

"다 그만두고 싶다. 다 그만두고, 내 맘대로 살던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 겨우 스물다섯 살에서 스물여섯 살이 된 것뿐인데, 세상은 나를 다른 사람 취급한다. 다른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요 한다.
제일 무서운 건 누적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힘들게 참았다. 이를 악물고 화장실로 뛰어가서는 주먹을 꼭 쥐었다. 향후 며칠간은 날 무시 한 인간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나한테도 빌어먹을 내성이 생긴다. 눈물이 나지 않고, 화가 나지도 않고, 족팔리지도 않는다. 그냥 생활이 된다. 이제 금방 실실 웃으면서 사과라도 넙죽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이 한권에 직장내 성희롱, 성차별, 학벌주의, 끼리끼리 문화, 짬짬이 문화 등. 사회 생활을 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접하게 된다. 실제 기자였던 작가의 경험이라 현장감이 있어 흡입력이 있다. 사회 초년생, 기자 준비생이 참고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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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대할때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한다. 귀찮고, 엮이면 번거롭고, 진실을 아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모른척 외면해 버리면 안 일어난 일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가정폭력 이라는 우리가 대현하기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 불편함을 느껴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을 때마다 우리를 부르고 있다.

"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그대를 찾아 머리를 기울여본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모른척 하자.

"그대는 고모리를 기억하나."

속이 불편하다, 역겹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귀찮아 진다, 뒤돌아 서고 싶어진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외면하지 못하게 잘 따라 오는지 저만치 서서 고개를 빼고 서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아동 양육자 가운데 지난 1년간 아동을 학대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6%로 나타났다. 여가부는 지난해 8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9,060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실태를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서 아동폭력 가해율은 3년 전 부모에 의한 자녀 학대율 조사 때 나온 수치인 27.6%와 같다. 아동 학대 경험이 있는 여성이 32.0%, 남성은 22.7%였다. 폭력 유형별로는 정서적 폭력 24.0%, 신체적 폭력 11.3%, 방임 2.0% 순으로 높았다. - 서울경제 (2020.3/26일) -

어릴적에 우리집 알람은 뒷집 아줌마의 고함 소리였다.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욕하며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 빗자루 들고 아이를 쫒아 뛰쳐 나오는 소리에 잠은 자동으로 깰 수 밖에 없었다. 하루가 멀게 그야말로 아이들을 두들겨 팼다. 매일을 온 동네가 시끄럽게 난장을 쳐도 어느 집 하나 나서는 일은 없었다. 우리 엄마조차 교양머리 없다며 쯔쯔 혀를 차셨을 뿐이다. 그건 그집의 가정사에 간섭 했다간 큰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기에 그 정도가 학대 인지는 모르겠다.

이정도 가지고 이게 무슨 아동 학대야! 이정도는 누구나 다 맞고 자라. 버릇 고치기에는 매가 최고야. 흔히들 듣고 내뱉던 말들 이다.
학대 정도 까지야 아니더라도 폭력은 폭력 이다. 어른이야 주먹으로 콕 쥐어 박았을 뿐이지만, 조막 만한 아이 입장에서는 바윗덩이로 맞는 기분일 게다.

뉴스에서 종종, 계모, 계부,,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나온다. 관련 법이 강화되고, 엄격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한다고 떠들다가도 어느새 사그라져 버린다. 대중은 다른 이슈에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을 향해 짧게 나마 보냈던 위로를 거두어 들인다.

작가는 가벼운 위로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해결책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이야기를 들려줄 뿐 이다. 지속적으로 얘기 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듣게하고, 기억하게 하고, 따라 가게끔 만든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감독하게 만든다.

책 내용은 시종일관 무겁고 우중충하고 우울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타 동일 소재의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처음 첫 줄을 읽는데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 요소는 중간 중간에 더러 나타난다. 엘리시어라는 이름에서 부터 판타지 느낌 이다. 엘리시어가 앨리스가 되어 끝없는 토끼굴 속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장면은 그의 고통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으며, 아동학대의 무한반복 됨을 의미 한다. 또한 여장 부랑자 엘리시어가 사거리에서, 주위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이 서있는 모습을 이야기 첫 부분과 끝 부분에 반복적으로 얘기 함으로 언제고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니 그때는 불쾌해 하거나 불편해 하지 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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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약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트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통하여 한 말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꼬프는 자신의 살인 동기를 사회악을 척결하기 위함 이라고 합리화 시킨다. 수전노 고리대금 업자인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은, 노파에게 수탈 당하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에 입각한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럼 선함의 기준은 ? 가치의 판단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박정희도 선한 의도로,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쿠테타를 일으켰다. 그는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 장면 정부의 무능함으로 배 곯는 국민을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임금의 공원들과, 광부, 간호사들, 전쟁터에 나갈 군인과 민간인이 필요했다. 일본과의 굴욕적 협상도 상관 없었다. 오직 국민을 배불리 먹여 살리기 위해 서라면 그까짓 ‘개인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차관만 들여 올 수 있다면 국민을 저당 잡히는 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래서 누가 배불리 살았나? 저임금 공원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 월남파병 군인들이? 한 가지는 확실한것 같다. 지금 우리들..그들을 밟고 산 지금의 우리들 이다. 그래도 나는 그가 옳았다고 말할 수 없다.

역사는 한 사람으로 인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의 노력으로 사회가 변화 되지도 않는다.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영웅 주의. 내가 발판을 만들고 다음 사람이 터를 닦고, 다음 사람이 기둥을 세우고, 다음 사람이 건물을 올리 듯이. 당대에 꼭 무엇인가를 평가 받고 업적을 이루려는 성급함이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4월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뭔가를 이루려고 안달인 사람 보다는 발판을 만들어 대물림 할 줄 아는 사람을 뽑고 싶다.

http://aladin.kr/p/xFs5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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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제‘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

사상도 범죄가 되는 시대. 아버지의 사회주의 사상 때문에 유일민, 일표 형제는 끔찍한 감시와 신원조회의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 거주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 학업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란 용납되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법대는 따먹지 못하는 감 이었고, 고학생의 희망인 ROTC는 지원도 하기전에 포기 해야만 했다. 연좌제의 낙인은 이제 대입을 앞둔 동생 일표까지 옳아 메고 있었다.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동생에게 차마 직접 말하기 곤란하여 자신의 일기장을 책상에 펴놓는 유일민. 동생을 포기 시켜야만 하는 고통은 자신이 포기해야만 하는 고통 보다도 더 큰 고통 이었다.

"...... 하나씩 인생의 길이 끊기고 인생의 문이 닫히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길이 끊기고 문이 닫힐 것인가. 그러나 이 비극은 나한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동생도 되풀이해서 당해야 한다..."

고민 고민하다가 끝내 마음에 없는 철학과를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일표가 격은 최초의 좌절이었고, 그런 좌절을 안긴 세상에 대한 보복감의 표출로 한 휴학은 유일한 저항의 한 방법 이었다. 그렇게 그들 형제는 세상이 문을 닫거나, 자신이 미리 세상을 향하여 문을 닫어 버리고 있었다.

" ... 어쩌자는 것인가. 차라리 이 땅에서 살지 말고 죽어 없어지라는
것인가.... " 유일민은 그 불길의 공포에 짓눌리며 암담한 좌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릴적 동네 친구들과 놀때면 꼭 억지 쓰는 아이가 있었다. 그럴때면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곤 했다. "야, 너 공산당 이냐, 너네 아빠 빨갱이지" 그때는 무슨 뜻인지, 의미 인지도 모르고 했던 말들 이다. 나와 혹은 무리와 반대 되는 의견을 내면 무조건 빨갱이라며 놀렸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입 시킨 반공 교육의 효과 였다. 전쟁이 끝나고도 한 참이 지난 80년대 중반 때였다. 1980년에 연좌제가 완전히 폐지 되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법적인 폐지 일 뿐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반공 의식이 많이 묻어 있었다. 그 시절에 내 이웃에 그런 아픔을 격는 이들이 있었을 터인데 그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놀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배척해야 하는 무리라고 생각 했다. 지금에사 그들의 낙인이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까를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연좌제를 종식 시킨 중심 인물이 허화평 이다. 전두환, 노태우 등과 함께 12.12 쿠테타에 참여한 사람으로 그의 형은 일제 시대 사회주의에 경도 되었다가 이후 이름을 바꿔 살았고, 막내 동생은 형의 영향을 받아 월북한 후 간첩으로 남파되어 체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가 육사 17기 육군사관학교에 간 것도 기적 같은 일이며, 그 한으로 ‘연좌제 폐지‘를 밀어 붙였고, 5공화국의 헌법에도 반영 되었다. 그럼에도 그 뒤로도 얼마든지 연좌제는 자행되었다. 힘있는 권력자에게만 적용되었던 연좌제 폐지 법. 법은 만인 평등이 아니라 만인 불평등 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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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역사 시작.

전쟁의 폐허 위에서 수립된 정부는 권력을 틀어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58년 7월 진보당 당수 조봉암 등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사형을 시킨 정치 탄압을 비롯해, 12월에는 반공을 앞세워 기존의 국가 보안법을 대폭확대 강화하여 ‘신보안법‘을 만들었다. 이는 여당인 자유당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작 이었다.
3.15 부정 선거와, 마산항쟁, >김주열 사망, > 4.19의거 > 대학교수단 시위 > 이승만 하야로 1권은 끝을 맺는다.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우리 민족의 투쟁은 끝난것이 아니었다. 해방과 이념 투쟁이 아닌, 자유, 인권에 대한 투쟁이 시작 되었다. 그 속에서 지식인 이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의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오는 갈등과 연민을 볼 수 있다.

" 지식은은 당연히 자기 아버지의 행위까지도
냉정하게 비판해야 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지식인이 아니고 인간 말종이야. 너는
단순히 자유당 국회의원 딸 이라는 것 때문에
이 소중한 기회를 피하려 하고 있어. 느네
아버지가 국회의원 자리를 잃는다 해도 그걸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작정을 하고 데모에
나서야만 넌 올바른 사학도고 참된 지식인이야.
어떡할래. "

자유당 국회의원인 아버지 때문에 학생 데모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강숙자에게 박영자가 던진 일침 이다. 박영자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자신이 누리는 모든것이 자유당 국회의원인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알기에 강숙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울것같은 얼굴로 자신은 그래도,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강숙자의 말에 박영자는 더 이상의 강요를 않고 뒤돌아 데모대 속으로 뛰어간다. 박영자는 그럴수 밖에 없는 강숙자의 선택을 이해 했다. 그러나 혁명이 성취되고 강숙사와의 관계에 왠지모를 껄끄러움을 느낀다.

" 감정을 끝내 행동화하지 못한 자신은 참으로
하잘것 없고 한심스러운 인간벌레였다."

빨치산 활동을하고 북으로 올라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라는 올무에 걸린 유일민의 딜레마. 어머니는 그런 아들들에게 애절하고 절박한 마음이 절실하게 흐르 편지를, 밑줄까지 쫙쫙 그어가며 쓰셨다. "느그덜 못난 사내 맹글라는 것이 아닝께 말이여‘.
데모에 참여하지 않는것이 못난 사내라는걸 어머니는 아신다. 그럼에도 절대로 데모에 참여하지 말라는 당부의 편지를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쓰신 이유 또한 못난 사내 맹글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이다. 연좌제가 얼마나 무섭고 징한 것인지를 알기에, 유일민은 선뜻 어머니의 그 간절한 호소대로 따르지 못한채 데모대에 휩쓸려 들어갔다가도 어머니의 간절한 편지를 떠올리며 행동화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 파렴치한.... 그 어느 것도 합당하지가 않음을 느끼고, 자신이 인간벌레 같은 부끄러움과 혐오감을 묻힌 채 동생을 찾으러 데모대 속을 헤집고 다닌다.

김선오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딜레마.
자유당 강기수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남천장학사의 지원을 받고있는, 가난한 농부 집안의 가난한 고학생. 강기수 의원은 데모에 참여자는 남천기숙사에서 모두 쫓아낸다고 엄포를 놓았다. 기숙사의 학생들은 참여자와 불참자가 50:50 이었다. 김선오는 처음에는 은근히 데모에 참여했다가 중간에 슬쩍 빠져 나왔다. 강기수의 지원없이 고등고시 최연소 합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책임 져야할 동생과 조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유일민에게 느끼는 연민을 느낄수가 없다. 김선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데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척 행동 함으로 기숙사에서 눈치보며 기죽어 지내지도 않았고, 사업가 집안의 딸인 박영자에게 잘보이려 기숙사에서 주워들은 무용담을 자신의 것인양 떠벌렸다.

참여자와 불참자가 있었고, 죄책에 괴로워하는 자와 편승하는 자가 있었다. 한강의 물은 이들을 하나로 합쳐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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