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

사상도 범죄가 되는 시대. 아버지의 사회주의 사상 때문에 유일민, 일표 형제는 끔찍한 감시와 신원조회의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 거주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 학업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란 용납되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법대는 따먹지 못하는 감 이었고, 고학생의 희망인 ROTC는 지원도 하기전에 포기 해야만 했다. 연좌제의 낙인은 이제 대입을 앞둔 동생 일표까지 옳아 메고 있었다.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동생에게 차마 직접 말하기 곤란하여 자신의 일기장을 책상에 펴놓는 유일민. 동생을 포기 시켜야만 하는 고통은 자신이 포기해야만 하는 고통 보다도 더 큰 고통 이었다.

"...... 하나씩 인생의 길이 끊기고 인생의 문이 닫히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길이 끊기고 문이 닫힐 것인가. 그러나 이 비극은 나한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동생도 되풀이해서 당해야 한다..."

고민 고민하다가 끝내 마음에 없는 철학과를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일표가 격은 최초의 좌절이었고, 그런 좌절을 안긴 세상에 대한 보복감의 표출로 한 휴학은 유일한 저항의 한 방법 이었다. 그렇게 그들 형제는 세상이 문을 닫거나, 자신이 미리 세상을 향하여 문을 닫어 버리고 있었다.

" ... 어쩌자는 것인가. 차라리 이 땅에서 살지 말고 죽어 없어지라는
것인가.... " 유일민은 그 불길의 공포에 짓눌리며 암담한 좌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릴적 동네 친구들과 놀때면 꼭 억지 쓰는 아이가 있었다. 그럴때면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곤 했다. "야, 너 공산당 이냐, 너네 아빠 빨갱이지" 그때는 무슨 뜻인지, 의미 인지도 모르고 했던 말들 이다. 나와 혹은 무리와 반대 되는 의견을 내면 무조건 빨갱이라며 놀렸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입 시킨 반공 교육의 효과 였다. 전쟁이 끝나고도 한 참이 지난 80년대 중반 때였다. 1980년에 연좌제가 완전히 폐지 되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법적인 폐지 일 뿐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반공 의식이 많이 묻어 있었다. 그 시절에 내 이웃에 그런 아픔을 격는 이들이 있었을 터인데 그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놀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배척해야 하는 무리라고 생각 했다. 지금에사 그들의 낙인이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까를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연좌제를 종식 시킨 중심 인물이 허화평 이다. 전두환, 노태우 등과 함께 12.12 쿠테타에 참여한 사람으로 그의 형은 일제 시대 사회주의에 경도 되었다가 이후 이름을 바꿔 살았고, 막내 동생은 형의 영향을 받아 월북한 후 간첩으로 남파되어 체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가 육사 17기 육군사관학교에 간 것도 기적 같은 일이며, 그 한으로 ‘연좌제 폐지‘를 밀어 붙였고, 5공화국의 헌법에도 반영 되었다. 그럼에도 그 뒤로도 얼마든지 연좌제는 자행되었다. 힘있는 권력자에게만 적용되었던 연좌제 폐지 법. 법은 만인 평등이 아니라 만인 불평등 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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