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역사 시작.

전쟁의 폐허 위에서 수립된 정부는 권력을 틀어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58년 7월 진보당 당수 조봉암 등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사형을 시킨 정치 탄압을 비롯해, 12월에는 반공을 앞세워 기존의 국가 보안법을 대폭확대 강화하여 ‘신보안법‘을 만들었다. 이는 여당인 자유당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작 이었다.
3.15 부정 선거와, 마산항쟁, >김주열 사망, > 4.19의거 > 대학교수단 시위 > 이승만 하야로 1권은 끝을 맺는다.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우리 민족의 투쟁은 끝난것이 아니었다. 해방과 이념 투쟁이 아닌, 자유, 인권에 대한 투쟁이 시작 되었다. 그 속에서 지식인 이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의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오는 갈등과 연민을 볼 수 있다.

" 지식은은 당연히 자기 아버지의 행위까지도
냉정하게 비판해야 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지식인이 아니고 인간 말종이야. 너는
단순히 자유당 국회의원 딸 이라는 것 때문에
이 소중한 기회를 피하려 하고 있어. 느네
아버지가 국회의원 자리를 잃는다 해도 그걸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작정을 하고 데모에
나서야만 넌 올바른 사학도고 참된 지식인이야.
어떡할래. "

자유당 국회의원인 아버지 때문에 학생 데모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강숙자에게 박영자가 던진 일침 이다. 박영자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자신이 누리는 모든것이 자유당 국회의원인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알기에 강숙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울것같은 얼굴로 자신은 그래도,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강숙자의 말에 박영자는 더 이상의 강요를 않고 뒤돌아 데모대 속으로 뛰어간다. 박영자는 그럴수 밖에 없는 강숙자의 선택을 이해 했다. 그러나 혁명이 성취되고 강숙사와의 관계에 왠지모를 껄끄러움을 느낀다.

" 감정을 끝내 행동화하지 못한 자신은 참으로
하잘것 없고 한심스러운 인간벌레였다."

빨치산 활동을하고 북으로 올라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라는 올무에 걸린 유일민의 딜레마. 어머니는 그런 아들들에게 애절하고 절박한 마음이 절실하게 흐르 편지를, 밑줄까지 쫙쫙 그어가며 쓰셨다. "느그덜 못난 사내 맹글라는 것이 아닝께 말이여‘.
데모에 참여하지 않는것이 못난 사내라는걸 어머니는 아신다. 그럼에도 절대로 데모에 참여하지 말라는 당부의 편지를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쓰신 이유 또한 못난 사내 맹글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이다. 연좌제가 얼마나 무섭고 징한 것인지를 알기에, 유일민은 선뜻 어머니의 그 간절한 호소대로 따르지 못한채 데모대에 휩쓸려 들어갔다가도 어머니의 간절한 편지를 떠올리며 행동화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 파렴치한.... 그 어느 것도 합당하지가 않음을 느끼고, 자신이 인간벌레 같은 부끄러움과 혐오감을 묻힌 채 동생을 찾으러 데모대 속을 헤집고 다닌다.

김선오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딜레마.
자유당 강기수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남천장학사의 지원을 받고있는, 가난한 농부 집안의 가난한 고학생. 강기수 의원은 데모에 참여자는 남천기숙사에서 모두 쫓아낸다고 엄포를 놓았다. 기숙사의 학생들은 참여자와 불참자가 50:50 이었다. 김선오는 처음에는 은근히 데모에 참여했다가 중간에 슬쩍 빠져 나왔다. 강기수의 지원없이 고등고시 최연소 합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책임 져야할 동생과 조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유일민에게 느끼는 연민을 느낄수가 없다. 김선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데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척 행동 함으로 기숙사에서 눈치보며 기죽어 지내지도 않았고, 사업가 집안의 딸인 박영자에게 잘보이려 기숙사에서 주워들은 무용담을 자신의 것인양 떠벌렸다.

참여자와 불참자가 있었고, 죄책에 괴로워하는 자와 편승하는 자가 있었다. 한강의 물은 이들을 하나로 합쳐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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