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새/ 케빈 파워스 

   ★★★★☆ 


   바빠서 셜록 찍을 시간도 없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그 바쁜 와중에도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는 호기심에 들여다 보게 된 책. 생각보다 얇아서 내용이 빈약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적어도 작가가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다하긴 한 듯하다. 얼핏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플래튠> 을 연상되던데, 25년전에 월남전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면, 이젠 이라크 전을 배경으로 신병들의 이야기가 쏟아질때가 된 모양이다. 얼마나 비현실적인 느낌일까? 미국이란 나라에서 별 할 일 없이 빈둥대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에 갑자기 떨어졌을때 말이다. 다른건 몰라도 천번 째 사상자가 되는 병신짓은 하지 말자고 농담삼아 다짐하던 두 전우, 바틀 이병과 머피의 이야기. 그저 멀쩡히 고향에 돌아가기만 바라던 그들은 실은 군대에 적응한다는 것조차 돌을 씹는 것처럼 힘들다. 살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 역시 만만찮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농담을 해대며 전투에 임하던 둘의 나이를 대충 스무살 안짝.  나중에서야 바틀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어리고 무지했었는가를 깨닫고는 기막혀 한다.  그리고 머피의 죽음을 되돌아 보게 되는데...음.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합격점. 다소 감상적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플래튠의 마지막 장면과 마찬가지로, 심금을 울리는 마지막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초반이 다소 밋밋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끝까지 읽어 보시길 권해드린다. 작가가 진심을 다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숨겨 두었으니 말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 다비트 지베킹 

  ★★★☆☆


오해를 했다. 이 책의 제목 <나를 잊지 말아요> 가 엄마가 가족들에게 말하는 것인줄 알았던 것. 알고보니,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향해 아들이 말한 것이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아들인 나를 이라고 말이다. 지적이고 아름답던 한 여성이 치매에 걸리면서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막내인 저자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치매로 서서히 정신과 건강을 잃어버리는 엄마가 죽음에 굴복하기까지 5년의 세월을 작가는 빼곡히 일기와 영상으로 담아낸다. 그것의 결과가 바로 이 작품.


엄마를 잃게된 이후에야 엄마를 알아가게 되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렇게 아름답고 지적이었으면서도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살았던 엄마를 아들은 추억한다. 과연 그녀는 행복한 시절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린 그녀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것일까 하고.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우리나라보단 유럽에서 활성화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직접 본인의 일로 닥치기 전까진 대부분의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된다는걸 이 책을 보고서야 이해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치매로 정신이 없는 엄마를 어떻게 간병하고,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두고 우왕좌왕하던데, 그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인가 보더라. 그렇지, 이런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 누가 그것에 적응하고 정답을 확실하게 내릴 수 있겠는가. 다들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놀라고, 당황하고, 애닮아 하다가 이별을 고하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아들을 몰라보는 아름답던 엄마에 대한 아들의 절절한 애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름이 없는듯. 그녀의 고통이 끝났음에 안도를...


 네메시스/ 요 네스뵈

  ★★★★☆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중 가장 재밌게 본 작품. 별 네개 반을 주려 했는데, 별 반개 짜리를 찾을 수 없어 그냥 네개로 한다. 복수의 여신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뭐, 풀어낼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건 내가 요 네스뵈의 상상력을 얕잡아 본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 결론을 알기 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요네스뵈의 스토리 텔러로써의 역량을 다시 보게 해준 작품으로, 이야기를 꼬아 내는 솜씨가 대단하더라. 줄거리는 신출귀몰, 증거를 남기지 않은 은행 강도 사건이 터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고 사라진 강도는 다만 은행원을 살해하기 전에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양새를 남김으로써 형사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완벽한 강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살해된 파트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 거기에 양육권 분쟁을 해결하러 러시아에 가 있는 여자친구등, 해리의 머리는 터질듯하다. 하지만 기대하시라. 우리의 영웅 해리에게 이 정도의 고난으로 작가가 성이 차겠는가. 전 여자친구의 전화에 아무 생각없이 응한 해리는 초대받은 다음 날 그녀가 죽은 채로 발견되자 깜짝 놀라고 만다. 문제는 여자친구 집에 들어간 후, 자신의 집에서 정신이 든 사이에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 과연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해리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 모든 의혹이 그에게 쏠리는 가운데 해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데...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 계속 헷갈리게 만들면서 독자를 애태우게 하던 작품이다. 사건의 의혹이 하나둘씩 풀려 가면서 인간의 본모습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된다는 점이 장점.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해리와 둘러싼 인간관계의 모습들이 흥미진진했다. 나중에 해리의 유력 조력자로 나오는 베아테와의 만남과 앙상블이 좋다. 그녀가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구나 싶어 작가에게 믿음이 간다. 요 네스뵈, 언젠가부터 믿을 수 있는 추리 소설 작가로 등극하신 분. 다음 작품이 빨리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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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살자들> 유시 아들레드 올센

★★★★☆


형사계의 외인구단 격인 특별 수사반 Q의 활약을 그려낸 추리 형사물이다. 실력은 출중하나 사회성은 부족해 경찰서 지하실에 반 하나를 꾸려서 쥐죽은 듯 살아가라고 명령을 받은 칼 뫼르크 형사, 그 앞에 20년전의 사건 파일이 난데없이 등장한다. 어린 오누이가 잔인하게 맞아 죽은 사건으로, 아이들의 아버지인 형사는 현장을 목격한뒤 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사건의 비극성과 잔혹함을 뒤로하고 범인이 잡힘으로써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보였으나, 어딘지 석연치 않은 범인의 모습. 칼과 동료는 범인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배후를 쫓던 칼 일행은 범인의 고등학교 기숙사 친구들을 주목하게 된다. 그들이 벌인 짓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과거에도 상류층이었고, 지금도 상류층이라는 것.  그들은 갖은 통로를 통해 칼의 수사를 방해하고 훼방을 놓는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수사를 진행해가던 칼과 부하직원 아사드는 그들이 사립탐정까지 고용해 '키미' 라는 여성을 쫓는다는걸 알게 된다. 과거 같은 패거리였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숙자가 되어 떠돌고 있는 키미, 과연 그녀는 왜 그들의 추적을 받게 된 것일까? 그리고 패거리 안에서의 그녀의 역활은? 칼은 그녀를 핵심인물로 보고 그녀의 자취를 따라가게 되는데...


전형적인 북유럽 추리 소설의 느낌이 나던 작품. 복지의 천국이라는 곳,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나라에서 왜 이런 끔찍한 추리 소설이 유행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재미를 보장한다는 점에서만큼은 사실인 듯 싶다. 전형적인 모범형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마초적인 동시에 허당 매력을 제대로 풍겨주고 있는 칼 형사, 그리고 부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비밀을 안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대는, 거기에 허허실실 못하는게 없는 아사드, 그리고 깡다구 끝판왕인 여 형사까지...형사계의 외인구단Q의 세 주인공의 매력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다. 개성 넘치는 세 주인공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세의 앙상블까지 꽤 그럴듯해서 연작으로 만들어져도 성공할 듯하다. 뭐, 이미 성공해서 3편까지 만들어졌다고는 하는데, 내 말은 더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작품이 계속 번역되어 나와주었음 싶었다. 칼 형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나온다면 아마 반색해서 읽어보게 될 듯...


 <마일즈의 유혹>/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


 우리의 왜소하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영웅 마일즈, 그가 이번에는 세타간타 행성의 황태후 장례식에 바라야 제국 대표해 외교 특사로 파견된다. 아무일 없이 장례식에만 참석하면 될줄 알았던 여정은 세타간타 행성에 내리기 직전 모르는 사내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으로 어그러지고 만다. 그가 자신에게 맡긴 막대를 수상하게 여긴 마일즈는 동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내와 막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닌다. 그를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의 손에 세타간타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이 상황을 마일즈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여성적인 취향이 물씬 풍기는 SF물. 하긴 여성 작가가 썼으니 여성적인 시각이 담겨져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야기 자체는 그럭저럭 잘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시녀들과 못생기고 초라한 마일즈라는 대비가 줄곧 이어지는 것이 그닥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서도, 왜 마일즈는 늘 외모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고, 재치와 두뇌로 인해 승리감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것이 작가의 세계관이라면 저항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 가만 보면 부졸드 여사가 마일즈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미워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창조해낸 주인공에게 늘 시련과 모욕을 동시에 가해주시는 가학성이 농후한 작가, 부졸드 여사. 그럼에도 재밌게는 읽었다. 보다 균형적인 시각에서 책을 쓴다면 이보다 더 재밌게 볼 것 같지만서도, 난 부졸드 여사가 아니고, 마일드를 쓰는 것은 부졸드 여사이니. 그저 입닥치고 읽는 수밖엔...


 <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


미국에서 알아주는 깡촌 미시시피를 떠나지 못하고 줄곧 살고 있는 래리. 그의 인생은 20년전 정지된 채 동결되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카 센터를 운영하면서 쓸쓸하게 살고 있는 그를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은 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데 , 그건 그가 20년전 한 소녀의 실종 사건에 연류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데이트 나선 여고생이 실종되었다. 그 상대 데이트남이었던 래리는 그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과연 그는 소녀를 살해한 것일까? 그가 주장하는대로 래리가 결백하다면 그 소녀는 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세월을 하염없이 흘러가고, 나름 평화를 찾았다고 생각하던 시점, 마을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한다. 20년전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10대 소녀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 마을 사람들 이하 경찰들은 일제히 래리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오지만, 래리는 담담하기만 하다. 과연 래리를 그녀의 실종에 관련된 것일까? 그가 20년이 지난 뒤 다시 같은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일까? 사건의 의혹은 점점 미궁으로 치닫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던 탄탄한 입담을 자랑하던 추리 소설이다. 20년전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래리의 현재 모습이 가여워서 끝까지 보게 된 소설이었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던 책. 그리고 비겁함과 소심함에는 피부색이 관련이 없다는 것도.


 < 쿠쿠스 콜링> 조앤 롤링


★★★★☆


<해리 포터>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린 조앤 롤링의 추리 소설. 과연 그녀가 아이들 용이 아닌 어른 소설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도 추리 소설에? 라는 의문 부호를 달고 읽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괜찮았다. 오히려 저자가 조앤 롤링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더 후하게 점수를 주었을지도 모르는 추리 소설 데뷔작으로 성공적이지 않았는가 한다. 내용은 상이군인 탐정 코모란 스트라이크가 유명한 모델 롤라의 자살 사건을 의뢰받으면서 시작한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더이상 나올 것이 없을 것 같은 사건을 그 아이는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면서 수사를 부탁한 사람은 롤라의 의붓 오빠인 존 브리스토. 명망가에 입양한 남매였던 존은 롤라는 행복의 정점에 있었다면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코모란을 설득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건을 담당하게 된 코모란은 언론의 발표와 달리 수상한 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과연 롤라는 살해된 것일까? 살해된 것이었다면 누가 왜?


결론만 놓고 보자면, 이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사건은 일단 작가가 다 짜놓고, 등장인물들은 변죽만 올려놓은 듯한 인상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품새가 과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 작품이었다. 탄탄한 이야기, 코모란이라는 특이한 개성의 탐정과 그의 매력적인 비서 로빈, 그리고 행복을 손에 잡으려는 순간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는 롤라의 이야기까지... 읽는 재미가 쏠쏠하던 추리 소설이다. 이 책을 내려 놓으면서 시리즈를 만들어내는대는 이미 일가견이 있는 롤링 여사께서, 이번에는 코모란을 주인공으로 연작 추리소설을 내놓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마 그것도 꽤나 재밌는 연작 소설이 될 듯...그녀가 그래주길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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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지막 순간 - 삶의 끝, 당신이 내게 말한 것
브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서가를 서성이다 우연히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라는 제목의 책을 보곤 웃고 말았다. 맞아.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런데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하긴 화만 나나? 두렵기도 하고, 병이 든 내가 멍청이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 병원에 대해 이런 저런 불평 불만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서도, 이미 아프고 슬프고 짜증이 날만큼 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들의 고충 역시 짐작이 되긴 한다. 불행에 푹 잠기다 못해 좌절한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누구도 쉬운 일이 아닐터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보통때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사고한다고 자부하던 나도, 병원에서만큼은 못난이처럼 군 적이 있다. 불행한 것도 모자라 탈출구가 없다는 좌절감에 압도되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 난 그랬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너무 어이없고, 그럼에도 정신이 나간 나를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 않는 그들의 사려깊음에 놀라곤 한다. 그들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침묵을 했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였을까? 아니면 불행을 당한 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것도 아님 그저 워낙에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난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안다. 내가 운이 좋았었다고, 왜냐면 내가 만난 의사들은 그래도 나보다는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고 나니 그런 사람들보단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불평보단 고마움을 더 먼저 떠올린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여유를 찾았다는 뜻일게고, 그리고 균형감각 역시 찾았다는 말일게다. 환자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자, 비로서 보이더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그들의 모습이.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예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던 그들이 말이다. 난 한때 내가 의사라면 그들보다 나을 것이라 주저없이 자부했지만 지금은 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왜냐면 나는 그들보다 나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겸손이나 열등감때문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그래서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것에.  


그럼에도 문득, 이제 점점 더 존경받는 의사라는 이미지가 사라져 간다는 생각에 슬퍼지긴 한다. 이젠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듯해서 말이다. 멸종위기에 놓인 종 같다고나 할까.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든 동력이었다. "의사가 된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의사로서의 임무에 헌신하는, 좀처럼 보기 드문 구식 의사" 라는 문구에 솔깃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정말로 이 말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일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읽어보니 정말로 사실이더라. 아직도 이런 의사가 있다니 하면서 놀라고 말았다. 내가 놀랄 일은 그외에도 더 있었다. 그는 말로만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였다. 환자의 삶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해 언제나 고민하고 전력을 다해 생각하는 의사로서 그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환자에 대한 것이라면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고려하고. 그런 넓은 시야와 확고한 집중력이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환자의 병력을 파악하게 하고 사람들 살리게 한다. 하지만 그가 토로하건대, 의사 역시 인간이고, 인간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그는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이 구하지 못한 환자 한 명을 떠올린다. 그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그리고 잊지 않기로 결심했던 한 노신사에 얽힌 이야기다. 오래전에 일어난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그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을 두고 내린 결정을 통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의 그런 고민이 담겨져 있던 작품이다.


일단은 의사로써 이렇게 존경받을만한 분의 책을 읽게 되어 영광이었다. 그건 단지 그가 24시간, 7일을 환자를 위해 일해서가 아니다. 그보단 진지하게 환자를 대하는 그의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환자를 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랬고, 의료의 중심이 결국 ' 사람' 이라는 공허한 구호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분이라서도 그랬다. 은퇴를 고려해도 좋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인간다움과 생명에 대해 고민하는 점도, 좋은 의사란 어떻게 길러 지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직까지도 이런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고 할만큼, 그는 완벽한 의사였다. 우리가 꿈꾸는 그런 의사, 이젠 더이상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기대한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한 그런 의사. 그런 의사가 실재한다는게 참 신기했다. 공룡처럼 멸종이 되어 버린 한 시대의 영웅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때 우리가 돈보다 생명과 명예를 중시하는 진정한 의사를 가졌었다는 증표로써, 이 책은 너무도 아름다운 가치를 지녔지 않는가 한다.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좋지만, 의료계 종사자들도 읽으면 재밌게 볼 수있지 않을까 한다. 일단 누구나 읽어도 재밌도록 쓰여졌다. 이 작가분이 의사 노릇만 잘 하시는게 아니라 글도 잘 쓰셔서,  재능이 불공평하게 치우쳐졌다고 항의 하고픈 맘 굴뚝같지만, 이런 사람에게 몰아주는 재능은 결코 불평할 수 없다. 왜냐면 자신의 재능을 올바르게, 옳은 일을 위해 쓰셨으니 말이다. 신이 있다면 재능을 몰아준 자신의 결정을 흐믓하게 생각했을 듯 싶다. 굳이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데도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르던 한 점잖은 노의사의 한평생에 걸친 의료 이야기. 그가 생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주저주저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는걸 보고 이 분이 어떤 성품의 의사인지 짐작이 되더라. 이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생각 하나는. 바라건대, 이런 의사들이 멸종되지 않고 번성하기를...부디...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나는 꾸련다. 왜냐면 인간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해내는 이상한 종족이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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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


 "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 자살했다."  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이 만화는 스페인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역사의 부대낌을 온 몸으로 겪어내여 했던 한 민초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다. 유럽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라는 스페인에 이런 역사가 존재했었다는 것에 놀라고, 그런 역사를 가졌음에도 지금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는 스페인 사람들의 표정이 신기하다. 그들은 과거를 잊은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속내를 우리는 그저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일까. 낭만적이고 아무런 근심없이 살아가는 듯한,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페인에서 이런 만화가 나왔다는 사실이 저으기 의아스럽더라. 그러나 이 책이 스페인 만화 대상을 받았다는 것에서 보듯, 그들이 과거를 아예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 듯하다. 90세의 나이에 드디어 속세를 살아야 한다는 형을 중지받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마감해버린 아버지를 그리워 하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하지만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대견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그저 자신의 아버지라는 틀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 살아온 삶에 대해 반추한다, 연민과 안스러움과 사랑을 담아. 아버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징표 아닐런지... 90년에 걸친 고난에 가까운 그의 인생을 그나마, 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라고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이렇게 자신을 잘 이해하는 속깊은 아들이 있었기 때문 아닐런지...특히나 이해받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하지만 대부분 이해받지 못해 고통받았던 사내의 일생이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던 책, 그들이 한때는 소년이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가장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던 작품이다. 제목만 보면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복잡한 책이 아닐까 싶은데, 오해 마시길. 그저, 역사를 잘못 골라 태어나 무진장 고생 하신 재수없는 한  사내의 일생을 다룬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들이 살아온 처절한 백년의 역사에 대해 감히 우리가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들뿐. 다만, 나 역시도 저자의 견해에는 동조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살한게 아니라 자유를 얻은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우치다 야스오


★★★☆☆


훈남 탐정이라는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의 결정판이라는 작품. 결정판이라서 그런가 모르지만서도, 아사미 시리즈중 끝까지 읽은 것은 이책이 처음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은 초반을 넘어가면 흥미를 잃기가 일쑤여서,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만 읽어보기로 한 것. 엄청나게 재밌진 않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은걸 보면 다른 시리즈에 비해 재밌긴 했었던 것 같다. 다만 마지막 결론이 다소 이해가 안 가긴 했지만서도, 그외에도 그곳에만 가면 하룻밤새에 정분이 나게 된다는 사찰도 그렇고...완벽하게 짜여졌다는 느낌을 받기엔 5% 부족해보이는 이음새였지만, 그럼에도 눈감고 넘어가면 그럭저럭 봐줄만 한 추리 소설이 아니었는가 한다. 일본적인 색채가 가득한, 그리고 일본적인 정서가 가득한 책이라, 일본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조금 어색하다고 느끼실지도. 특히나 명문가를 특별하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현대화가 된지 언젠데...과연 일본 천황이 존재하는 나라답가 싶기도 하고.


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라카와 히로


★★☆☆☆


 고양이를 소재로 택하면 저절로 이렇게 되는가는 모르겠으나, 힐링용으로 적당한 책이다. 지나치게 착하고, 그래서 현실감이 좀 없는게 흠. 좀이 아니라 많이 없다고 해야 할까? 고양이를 키우신다면 이 정도는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메뉴얼을 보여주려 한 듯한데, 사실 말이지, 인간의 사랑을 이처럼 극대화 하는 것에도 난 역시 거부감이 생긴다는 것이지. 그냥 적당히 착하면 안 될까?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책임감 느끼고, 적당히 이해하고. 이런 사랑은 왠지 신파의 조작된 사랑같이 느껴져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는 것이지. 아무래도 난 세상을 너무 많이 살아온 모양이다. 무조건 선함이나 착함에 회의적인 반응부터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천사같은 돈 악마 같은 돈/ 사이바라 리에코


★★☆☆☆


 그 유명한 사이바라 리에코의 책. 일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임을 제발 잊지 말라고, 부탁하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 담긴 책. 가볍게 읽기 좋으며, 돈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걸 이겨내려면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사는 수밖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자살해 버린 의붓아버지, 돈때문에 절절매면서도 딸의 미래를 위해 전재산을 털어 동경으로 딸을 보낸 어머니, 그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사이바라 리에코. 그녀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피를 토하며 삼박사일을 이야기해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을만한 이야기인데, 리에코 여사의 담력 하나는 보통이 아니시라 그런지 , 피는 토하지 않고 이야기하시더라. 별다른 무기 없이 인생이라는 장에 떨어지게 되면 아마도 그녀처럼 담대할 수밖엔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무던하고 현실적인 성격이 고난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게 된 것인지 알길이 없지만서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너무도 대견해서. 이렇게 살아남아줘서 고마워서 말이다. 무엇보다 정신이 건강한 것에. 그 누구보다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을 많이 봐 온탓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았던 것 같은데,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이처럼 견고하게 꾸려가고 있는 것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역시나 아줌마는, 아니 엄마는 강한 것일까? 그들에게 박수를...그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라본다.


 상속의 법칙/ 클레어 베드웰 스미스


★☆☆☆☆


 18살에 어머니를 여위고, 그 후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여위게 된 과정과 그 이후의 슬픔을 토로하고 있는 책. 현재 호스피스 심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는 저자는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과 그 과정들에 대해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그녀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고 주제기에. 


그렇다. 물론 20대 시절에 부모를 여위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녀의 좌절과 절망과 그리움과 충격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부모를 잃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란 것이지. 세상 모든 좌절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책 한권을 빼곡히 적어놨던데, 가소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보다 훨씬 더 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니까. 타인의 고통이 나보다 적어서 가소롭다는 것이 아니라, 엄살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고통을 씹고 씹고 또 씹으면서 자신을 가엾어 하는 것도 어찌보면 자기애의 연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 그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실을 겪을 수밖엔 없다. 거기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도 우스운 것이고 말이다. 그저 그런 일이 닥쳤을때 잘 이해하고 넘어가길 바라는 수 밖엔 없는 것인지도...저저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도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가득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데, 난 그 이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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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미래,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지구는 멸망 위기를 맞고 있다. 끝없는 패배의 행진 속에 단 한번의 승리를 이끌어낸 지구인들은 사기가 충전해 이제 전세를 바꾸어 놓을만한 총 공세를 펼치기로 한다. 아군의 활약상을 홍보하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온 미군 공보관 빌 케이지는 최전선에 가서 홍보물을 찍어 오라는 장군의 명령에 식겁한다. 다니던 직장이 망하는 바람에 백수보단 낫겠지 싶어 택한 직업이 군인이었을뿐, 싸움이라면 질색인 그에게 전쟁터 근처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아뜩했기 때문이다. 결국 장군을 협박해 어떻게 해서든 최전선에 가는 것만은 막아 보려던 그의 잔꾀는 곧바로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전장에 투입되게 시나리오로 막을 내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조차 모른 채 전쟁터에 내린 케이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계인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이상한 것은 정신을 잃은 그 다음 그가 깨어난 곳이 바로 신병으로 차출된 그곳이라는 점이다. 영문도 모른 채 어제로 돌아간 그는 죽을때마다 다시 전투에 투입되는 상황을 무한반복하게 된다. 처음엔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살려 보려 애를 쓰던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걸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나 여성 전쟁 영웅인 리타가 자신의 눈 앞에서 죽는걸 본 케이지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살리려 애를 쓰나 여의치 않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리타를 구하던 케이지는 그녀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면서 내일 깨어나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에 어리둥절해 하는데...

 

 

 

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내일이 무한 반복된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때, 도대체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놀라웠었다. 신선한 전개이지 않는가. 전쟁터에서 죽고나면 다시 어제로 리셋되는 능력이라니...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서도, 문제는 이 능력을 소유한 케이지 중령이 무뉘만 군인이지 전혀 군인다운 점이라고는 없다는 점. 해서 그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하염없이 내일이라는 무한반복속에서 죽고 살고를 되풀이 하게 된다. 다행이라면 그가 영리한데다  전투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처지라 이것저것 잴 여력이 없다는 것. 해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 동료들을 구하고 외계생명체를 물리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그 과정속에서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었던 리타를 만나게 된 케이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과연 이 둘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이 영화를 보는 주요 관람 포인트가 되겠다.

 

기대도 하고 우려도 했는데, 일단은 재밌었다. 무엇보다 톰 크루즈의 활약이 눈부셔서, 도무지 이런 영화에 저런 설득력을 가지고 연기를 할만한 배우가 그말고 다른 누가 있을까 싶었다. 똑같은 하루를 지겹게도 반복하는 과정속에서 그가 미묘하게 다르게 반응하는 과정들을 차근차근 보여주는데, 감탄스럽더라. 자칫 잘못하면 반복이라는 패턴에 갇혀 지루해지기 쉽상일텐데도, 하루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혈안이 된 그의 연기가 너무 진지하고 리얼해서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말았다. 이런 무한반복된 하루라는 소재는 오래된 영화인 <사랑의 블랙홀>에서 활용된 적이 있는데, 그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으로 잘 연출했지 싶다. 특히나 무한 반복이 계속되면서, 자신을 전사로 키우는 리타에게 서서히 연정을 갖게 되는 케이지와는 달리 늘 케이지가 처음 보는 사람인 리타의 관계의 온도차가 참 재밌게 다가왔다.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 마냥 리타가 한없이 사랑스러운 케이지와 달리, 저 녀석은 뭐야? 라는 표정으로 냉정하게 거리를 두려는 리타의 모습이 비교되서 말이다. 해서 처음엔 스승 같은 존재였다가 나중에는 보호하고픈 상대가 된 리타를 위해 케이지가 애를 쓰는 모습이 긴박감 넘치는 이 영화에 숨통을 트여주고 있었지 않나 한다.

둘째는 톰 크루즈와 리타로 나오는 에밀리 블런트와의 캐미가 상당히 좋았다. 영화가 둘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데, 톰에게 밀리지 않는 에밀리 블런트의 모습이 매력적이기 그지 없어서 말이다. 화려한 외모에 연약하고 속물적인 여성상이 어울릴 것 같은 그녀에게서 이렇게 강인한 모습이 뿜어져 나올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꽤나 잘 어울렸다. 전투씬이 많고, 입고 있는 것이라곤 군복에 얼굴에는 검댕이 칠을 해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출연한 어떤 영화속 모습보다 아름답더라. 톰 크루즈 역시 오십이 넘은 나이에 신병 연기를 한다고 해서 욕심이 과한것 아닌가 했는데, 초반을 지나고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눈에 뜨이는 것은 톰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성장해 나가는 신병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연기하는 톰의 진정성이었다. 사생활에 관한 이런 저런 소문이 들려올때마다 그에 대한 의문이 생기긴 하지만서도, 다른건 몰라도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은 감히 나 같은 사람이 뭐라 할 수 없는 것이구나 싶었다. 오히려 궁금하더라. 그는 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영화를 찍는 것일까 하고. 도대체 어떤 동력이 그를 이렇게 영화판에 밀어붙이게 하는 것일까? 

 

 해서 결론은 재밌게 볼만한 영화였다는 것. 원작과 결말이 바뀐 것에 대해 아마도 원작 지지자들은 불만이 있겠지만서도, 난 오히려 원작과 결말이 달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지막 장면의 톰 크루즈를 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게 뭔 말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관에 가서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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