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순간 - 삶의 끝, 당신이 내게 말한 것
브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서가를 서성이다 우연히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라는 제목의 책을 보곤 웃고 말았다. 맞아.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런데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하긴 화만 나나? 두렵기도 하고, 병이 든 내가 멍청이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 병원에 대해 이런 저런 불평 불만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서도, 이미 아프고 슬프고 짜증이 날만큼 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들의 고충 역시 짐작이 되긴 한다. 불행에 푹 잠기다 못해 좌절한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누구도 쉬운 일이 아닐터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보통때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사고한다고 자부하던 나도, 병원에서만큼은 못난이처럼 군 적이 있다. 불행한 것도 모자라 탈출구가 없다는 좌절감에 압도되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 난 그랬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너무 어이없고, 그럼에도 정신이 나간 나를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 않는 그들의 사려깊음에 놀라곤 한다. 그들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침묵을 했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였을까? 아니면 불행을 당한 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것도 아님 그저 워낙에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난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안다. 내가 운이 좋았었다고, 왜냐면 내가 만난 의사들은 그래도 나보다는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고 나니 그런 사람들보단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불평보단 고마움을 더 먼저 떠올린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여유를 찾았다는 뜻일게고, 그리고 균형감각 역시 찾았다는 말일게다. 환자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자, 비로서 보이더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그들의 모습이.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예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던 그들이 말이다. 난 한때 내가 의사라면 그들보다 나을 것이라 주저없이 자부했지만 지금은 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왜냐면 나는 그들보다 나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겸손이나 열등감때문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그래서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것에.  


그럼에도 문득, 이제 점점 더 존경받는 의사라는 이미지가 사라져 간다는 생각에 슬퍼지긴 한다. 이젠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듯해서 말이다. 멸종위기에 놓인 종 같다고나 할까.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든 동력이었다. "의사가 된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의사로서의 임무에 헌신하는, 좀처럼 보기 드문 구식 의사" 라는 문구에 솔깃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정말로 이 말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일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읽어보니 정말로 사실이더라. 아직도 이런 의사가 있다니 하면서 놀라고 말았다. 내가 놀랄 일은 그외에도 더 있었다. 그는 말로만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였다. 환자의 삶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해 언제나 고민하고 전력을 다해 생각하는 의사로서 그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환자에 대한 것이라면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고려하고. 그런 넓은 시야와 확고한 집중력이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환자의 병력을 파악하게 하고 사람들 살리게 한다. 하지만 그가 토로하건대, 의사 역시 인간이고, 인간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그는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이 구하지 못한 환자 한 명을 떠올린다. 그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그리고 잊지 않기로 결심했던 한 노신사에 얽힌 이야기다. 오래전에 일어난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그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을 두고 내린 결정을 통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의 그런 고민이 담겨져 있던 작품이다.


일단은 의사로써 이렇게 존경받을만한 분의 책을 읽게 되어 영광이었다. 그건 단지 그가 24시간, 7일을 환자를 위해 일해서가 아니다. 그보단 진지하게 환자를 대하는 그의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환자를 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랬고, 의료의 중심이 결국 ' 사람' 이라는 공허한 구호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분이라서도 그랬다. 은퇴를 고려해도 좋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인간다움과 생명에 대해 고민하는 점도, 좋은 의사란 어떻게 길러 지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직까지도 이런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고 할만큼, 그는 완벽한 의사였다. 우리가 꿈꾸는 그런 의사, 이젠 더이상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기대한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한 그런 의사. 그런 의사가 실재한다는게 참 신기했다. 공룡처럼 멸종이 되어 버린 한 시대의 영웅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때 우리가 돈보다 생명과 명예를 중시하는 진정한 의사를 가졌었다는 증표로써, 이 책은 너무도 아름다운 가치를 지녔지 않는가 한다.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좋지만, 의료계 종사자들도 읽으면 재밌게 볼 수있지 않을까 한다. 일단 누구나 읽어도 재밌도록 쓰여졌다. 이 작가분이 의사 노릇만 잘 하시는게 아니라 글도 잘 쓰셔서,  재능이 불공평하게 치우쳐졌다고 항의 하고픈 맘 굴뚝같지만, 이런 사람에게 몰아주는 재능은 결코 불평할 수 없다. 왜냐면 자신의 재능을 올바르게, 옳은 일을 위해 쓰셨으니 말이다. 신이 있다면 재능을 몰아준 자신의 결정을 흐믓하게 생각했을 듯 싶다. 굳이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데도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르던 한 점잖은 노의사의 한평생에 걸친 의료 이야기. 그가 생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주저주저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는걸 보고 이 분이 어떤 성품의 의사인지 짐작이 되더라. 이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생각 하나는. 바라건대, 이런 의사들이 멸종되지 않고 번성하기를...부디...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나는 꾸련다. 왜냐면 인간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해내는 이상한 종족이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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