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


 "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 자살했다."  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이 만화는 스페인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역사의 부대낌을 온 몸으로 겪어내여 했던 한 민초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다. 유럽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라는 스페인에 이런 역사가 존재했었다는 것에 놀라고, 그런 역사를 가졌음에도 지금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는 스페인 사람들의 표정이 신기하다. 그들은 과거를 잊은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속내를 우리는 그저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일까. 낭만적이고 아무런 근심없이 살아가는 듯한,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페인에서 이런 만화가 나왔다는 사실이 저으기 의아스럽더라. 그러나 이 책이 스페인 만화 대상을 받았다는 것에서 보듯, 그들이 과거를 아예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 듯하다. 90세의 나이에 드디어 속세를 살아야 한다는 형을 중지받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마감해버린 아버지를 그리워 하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하지만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대견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그저 자신의 아버지라는 틀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 살아온 삶에 대해 반추한다, 연민과 안스러움과 사랑을 담아. 아버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징표 아닐런지... 90년에 걸친 고난에 가까운 그의 인생을 그나마, 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라고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이렇게 자신을 잘 이해하는 속깊은 아들이 있었기 때문 아닐런지...특히나 이해받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하지만 대부분 이해받지 못해 고통받았던 사내의 일생이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던 책, 그들이 한때는 소년이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가장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던 작품이다. 제목만 보면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복잡한 책이 아닐까 싶은데, 오해 마시길. 그저, 역사를 잘못 골라 태어나 무진장 고생 하신 재수없는 한  사내의 일생을 다룬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들이 살아온 처절한 백년의 역사에 대해 감히 우리가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들뿐. 다만, 나 역시도 저자의 견해에는 동조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살한게 아니라 자유를 얻은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우치다 야스오


★★★☆☆


훈남 탐정이라는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의 결정판이라는 작품. 결정판이라서 그런가 모르지만서도, 아사미 시리즈중 끝까지 읽은 것은 이책이 처음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은 초반을 넘어가면 흥미를 잃기가 일쑤여서,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만 읽어보기로 한 것. 엄청나게 재밌진 않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은걸 보면 다른 시리즈에 비해 재밌긴 했었던 것 같다. 다만 마지막 결론이 다소 이해가 안 가긴 했지만서도, 그외에도 그곳에만 가면 하룻밤새에 정분이 나게 된다는 사찰도 그렇고...완벽하게 짜여졌다는 느낌을 받기엔 5% 부족해보이는 이음새였지만, 그럼에도 눈감고 넘어가면 그럭저럭 봐줄만 한 추리 소설이 아니었는가 한다. 일본적인 색채가 가득한, 그리고 일본적인 정서가 가득한 책이라, 일본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조금 어색하다고 느끼실지도. 특히나 명문가를 특별하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현대화가 된지 언젠데...과연 일본 천황이 존재하는 나라답가 싶기도 하고.


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라카와 히로


★★☆☆☆


 고양이를 소재로 택하면 저절로 이렇게 되는가는 모르겠으나, 힐링용으로 적당한 책이다. 지나치게 착하고, 그래서 현실감이 좀 없는게 흠. 좀이 아니라 많이 없다고 해야 할까? 고양이를 키우신다면 이 정도는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메뉴얼을 보여주려 한 듯한데, 사실 말이지, 인간의 사랑을 이처럼 극대화 하는 것에도 난 역시 거부감이 생긴다는 것이지. 그냥 적당히 착하면 안 될까?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책임감 느끼고, 적당히 이해하고. 이런 사랑은 왠지 신파의 조작된 사랑같이 느껴져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는 것이지. 아무래도 난 세상을 너무 많이 살아온 모양이다. 무조건 선함이나 착함에 회의적인 반응부터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천사같은 돈 악마 같은 돈/ 사이바라 리에코


★★☆☆☆


 그 유명한 사이바라 리에코의 책. 일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임을 제발 잊지 말라고, 부탁하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 담긴 책. 가볍게 읽기 좋으며, 돈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걸 이겨내려면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사는 수밖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자살해 버린 의붓아버지, 돈때문에 절절매면서도 딸의 미래를 위해 전재산을 털어 동경으로 딸을 보낸 어머니, 그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사이바라 리에코. 그녀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피를 토하며 삼박사일을 이야기해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을만한 이야기인데, 리에코 여사의 담력 하나는 보통이 아니시라 그런지 , 피는 토하지 않고 이야기하시더라. 별다른 무기 없이 인생이라는 장에 떨어지게 되면 아마도 그녀처럼 담대할 수밖엔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무던하고 현실적인 성격이 고난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게 된 것인지 알길이 없지만서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너무도 대견해서. 이렇게 살아남아줘서 고마워서 말이다. 무엇보다 정신이 건강한 것에. 그 누구보다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을 많이 봐 온탓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았던 것 같은데,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이처럼 견고하게 꾸려가고 있는 것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역시나 아줌마는, 아니 엄마는 강한 것일까? 그들에게 박수를...그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라본다.


 상속의 법칙/ 클레어 베드웰 스미스


★☆☆☆☆


 18살에 어머니를 여위고, 그 후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여위게 된 과정과 그 이후의 슬픔을 토로하고 있는 책. 현재 호스피스 심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는 저자는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과 그 과정들에 대해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그녀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고 주제기에. 


그렇다. 물론 20대 시절에 부모를 여위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녀의 좌절과 절망과 그리움과 충격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부모를 잃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란 것이지. 세상 모든 좌절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책 한권을 빼곡히 적어놨던데, 가소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보다 훨씬 더 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니까. 타인의 고통이 나보다 적어서 가소롭다는 것이 아니라, 엄살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고통을 씹고 씹고 또 씹으면서 자신을 가엾어 하는 것도 어찌보면 자기애의 연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 그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실을 겪을 수밖엔 없다. 거기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도 우스운 것이고 말이다. 그저 그런 일이 닥쳤을때 잘 이해하고 넘어가길 바라는 수 밖엔 없는 것인지도...저저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도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가득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데, 난 그 이상을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