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김기택 옮김, 임홍빈 해설, 이부록 그림, 유성룡 원작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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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징비록'이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개인적으로 TV를 보지 않으

니, 요즘 무엇이 방영되는지는 잘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 명랑이 그러하였듯이 TV

와 같은 영상 컨텐트가 뜨면, 여기저기서 많은 관련도서들이 등장하기에, 적어도 출판의 흐름

을 유심히 살펴보면, 의외로 오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 수있어, 나름대로 그 깨

달음이 즐겁다.

 

원래 유성룡의 징비록은 과거 조선.한국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접하는 역사서의 성격이 강

하다.   때문에 징비록의 이름을 달고 출판되는 책의 대부분은 그 당시 사용했던 단어, 역사적

사실, 자료등 과 같은 학문적 역활에 충실하는 내용과 부록을 달고 출판되어 실제로 대중들이

(부담없이) 읽기에는 조금 벅찬것이 사실이다.      물론 나도 이 책이 아닌, 다른 징비록을 보

며 공부 할 당시 그 한문적 뜻과, 역사적 의의를 발견하고 연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되도록 원문과 같이' 그야말로 이러한 가치관이 녹아든 책은 그만큼의 높은 허들을 자랑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징비록은 보다, 읽기가 수월하다.    물론 그만큼 역자의 '해석'이 가미되어서 그렇겠

지만, 그래도 징비록이 가진 여러가지 메시지와 사건을 접하는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기에,

한번 '배운다' 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의외로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임진왜란 그것은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 나라 존망을 갈랐던 참혹스러운 전쟁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기록에 드러난 조선의 행동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물론 전투에 있어, 100

년 가까이 전쟁과 폭력으로 단련된 전국시대의 전사들과, 평화에 찌들어 이른바 유생들의 나라

를 유지해온 그 차이점은 극복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은 (중화의) 사대주의

사상에 찌들어 세상의 흐름을 바로보지 못했다는 면에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조정은

자신들의 학문적 믿음을 바탕으로 '왜국'을 깔보았고, 감히 '어른의 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이

라는 망상을 품었다.       심지어 통신사로서 현장을 방문한 신료들 조차도 자신들이 속한 동

인/서인 이라는 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보다는 정치적 의견이 다분한 '희망사항' 을

조정에 보고 할 정도이니, 그 얼마나 한심한 상태였는가?  

 

때문에 전쟁 후 이어진 '유성룡의 징비록'은 후회와 자기반성의 내용이 가득하다.    수도를 버

리고, 백성을 버리고, 주변의 백성들이 굶어 죽어감 에도 불구하고, 원군으로 온 명나라 군사들

을 먹이기 위해, 양식조차 풀지 못하는 현실을 겪으며, 그는 약한 나라가 겪는 모든 수치와 어

려움을 몸으로 겪었다.     일본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명나라 장수에게 굽신거리고, 이순신과 

같은 충신들을 희생시키며 살려낸 조선의 조정...   과연 이같은 조선의 위기와, 회복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후대의 우리들은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나라를 움

직이는 지도자들의 책임감.의무의 강화'다.    그리고 약한 나라가  필연적으로 겪는 아픔과 설

움은 언제나 약한 '백성과 국민의 몫이다' 라는 역사의 진리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이 역

사를 바라보면서, 나라에게는 부강함을, 지도자에게는 청렴과 정의로운 의무를 다하게끔 감독

하고 또 요구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나 자신과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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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배신 - 실미도에서 세월호까지, 국민을 속인 국가의 거짓말
도현신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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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이는 이 나라의 건국이

념이자, 절대로 변질되어서는 안되는 하나의 원칙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수를 대변하

는 소수, 즉 '정치인'에게 그 권력을 집중시키는 오늘날의 시스템은 그 원칙에 위배되는 많은

단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정치인들의 부정'을 들여다보라, 그들은 자신들

에게 부여된 '의무'를 '권력'으로 오해했고, 그것을 자신이나, 자신의 정당을 위해서 휘둘렀

다.     아니... 심지어는 그 권력의 창을 국민들에게 휘둘러 보호하여야 할 국민의 재산과 생명

을 위협한 정치인(이른바 권력자)들도 있었다.  

 

원래 그들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대표해 국정을 이끄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드러

난 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움직인다는 그 배경에 우쭐하고" "부여받았을 뿐인 권력에 취해 방

자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의 권리를 짖밟는다." 국가.정부의 배신 이러할때, 과

연 다수의 국민들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여야 하는가?  과연 국민들은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그 배신자를 향해서 정의의 철퇴를 내릴 칠 수 있을까?  

 

우리들은 흔히 '정의는 승리한다.'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 정의란 과연 누가 정하

는 것인가? 그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정의에 있어서, 국민과 국가의 정의는 각각 다

르다.    6.25 당시 국민들 버리고 대구로 도망친 이승만 대통령도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

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이명박 대통령도, 그 나름대로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의'가 있었

을 것이다.   아니... 지도자로서의 신념이 그러한 사건을 만들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 신뢰보다 혐오를 보이는 이유도 모두, 과거 그들이

정을 운영함에 있어, 자신의 지와 철학을 국민의 의지에 우선하여 실행하였다는 그

독단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일본을 욕하고, 한국 국민들로 하

여금 그 '야만'을 보고 욕하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어째서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자신들이

벌인 '야만'에는 눈을 감고 있는가?  이승만의 거짓 라디오 방송, 박정희의 실미도 사건, 전두환

의 삼청교육대, 이명박의 4대강 낭비...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희생된 많은 가치관 아래서 어째

서 그들은 외면의 차가움을 드러내는가?  

 

그렇기에 국민들은 과거의 역사를 교훈삼아, 국가와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를 이어 나아가야

한다.     "국가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  라는 마음을 품으며, 방심하는 순간, 국민은 어느새 국

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가축이 된다.   지금껏 국가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많은 사건들을

보라, 정말로 국가가 믿음직하게 느껴지는가?    여러분들은 정말로 헌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오

늘의 사회를 만든 그들을 마음으로 부터 신뢰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 라면 당신은 그저

국가의 좋은 호갱님일 뿐이다.  국민은 어때한 때에는 그 무엇보다 무서운 존재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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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들키지만 않으면 악마도 된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한비자의 가르침
하야시 히데오미 지음, 이지현 옮김 / 전략시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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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란 얼마나 교활한 존재인가?   아니...원래 생물체는 살기위해서 교활해질 수 밖에 없

다.     함정을 파고, 적을 속이고, 유인하고, 불시에 적을 습격한다.  그야말로 모든 생물체들

이 보여주는 이같은 행위 '사냥'은 곧 자신의 생존과 연결되는 하나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

나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정신적.물적 문명을 이룬 인류의 문명은 그 같은 동물과는 다른 '선'

의 존재를 발전시켜 왔다.     남을 배려하고, 약자를 돕고, 모두를 위해서 개인에게 '겸손'을 가

르친 문화적 발전의 역사.     그러나 이러한 오랜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남을 사냥

한다.     그것도 문명사회 속에서 발생한 '수 많은 욕구'를 추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사냥도 큰 의미에서 보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이다.   승진경쟁, 순위경쟁과 같은 사회

적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서 얻는 달콤한 보상의 유혹, 때문에 인간은 그 보상을 위해서, 나음대

로의 전략적인 선택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진지하게 싸워서 승리하는 존재는 소수이며, 다

수는 그 소수의 싸움을 지켜보며, 과정을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해 '승자의 편에서' 그 열매만

을 취하려는 이른바 '눈치싸움'의 방식을 선호한다.    이때 만약 여러분이 그 소수의 상황에 선

다면, 아니... 오늘날의 말로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로 '하나의 성과를 이루어야 한다면'

과연 여러분은 무엇으로 그 눈치족들을 이끌어 나아가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과, 상대, 라이벌, 상사와 같은 다양한 환경과 현실을 분석하고,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줄 사람'을 선택 할 것이다.   또한 중립이라는 미묘한 행동의 이면에, 교활함을 숨기

고, 리더가 약해지거나, 힘을 잃음과 동시에, 그 리더를 손쉽게 배신 할 것이다.     오늘날의 세

상에는 '영원한 우정, 충성, 협력' 이라는 존재는 환상에 불과하다.    때문에 리더는 자신에게

소속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그 나름의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저자는 그것의 제일은 '힘'이라 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충성을 기대하지 말고, 이익을 줌으로

서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이기주의자들 이끌고, 공동체를 움직

여야 하는 오늘날의 영웅들!   여러분들은 유비가 아니라, 조조가 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자신

이 살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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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빨간책 - 디지털 시대, 가축이 된 사람들을 위한 지적 반동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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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인터넷과 함께하는 삶을 산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

의 영향으로 그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 할 수 있

다.    동영상, 사진, 체팅, 뉴스열람, 자료검색... 그야말로 인간은 과거 상상만으로 그쳤던 '텔

레파시' 같은 초능력과 같은 능력을 기계를 통해서 해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세상은 그 편리함에 비해서 그다지 행복해진 것 같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현대인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많은 정보를 이용하며, 멍청해지고, 쉽게 화내고, 참을성이 없어지는 일종

의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현대인은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과 표현력이 뛰어나다, 다만 눈앞의 상대와 대화하지 않을 뿐

이다.'  '게임은 사람의 폭력성을 부추킨다' '인터넷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하나로 묶어 획일화

시키는 힘이 있다' '자유 속의 속박' '바보가 되어가는 스마트족' 이렇게 여러 전문가들은 오늘

날의 현실을 진단하며, 많은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편리성에 희생된 사람들은 점점 자

신들이 '나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감'을 모른체, 인테넷이 제공하는 매력적인 기능에 흠

뻑 취한다. 

 

생각해보면, 인터넷은 정보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배출시키는 가장 강력한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다양한 물건들을 인터넷 상점에서

쉽게 구입한다.   심지어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에 흠뻑 취해 '지름신의 부름'을 받기도한다.

때문에 쇼핑에 있어서, 인터넷은 홍보, 판매, 수요조사와 같은 복합적인 정보가 차고 넘치

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각각의 대기업은 일부로 인터넷의 세계를 적극 이용한다.    처음 인

터넷이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인터넷을 비교해보자, 오늘날의 인터넷은 그야말로 '자본주의'

에 점령된 광범위한 쇼핑몰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의 상식으로 한번 인터넷을 바라보자,  오늘날 벌어지는 '인터넷 동영상 유출' '000영상'

 '국정원 덧글' '친북논란' '이슈' 이 모든 정보에 휘둘리는 오늘날의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

는가?    이제 인간은 보다 빠른 정보, 자극적인 정보, 입맛에 맞는 정보, 정보 ~ 정보 ~ 정보 ~

정보 ~ 속도~ 데이터!!!  를 원한다.    이제 인간은 담아두는 법을 모른다.   하나를 접하고,

곧장 새로운 것을 위해서 손에든 것을 떠내려 보낸다.    과연 이것이 스마트의 본질인가?  우리

들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인가?  어쩌면 우리들은 점점 더 쓰레기에 열광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

어가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극에 미쳐 살았던 과거 로마제국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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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김태환 지음 / 밥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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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돌아가다.   오늘날 언론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보면,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점

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그것은 콘크리트를 떠나, 흙을 갈구하는 귀소본능의 일환일까?  아

니면 소수의 인간들이 선택하는 특별한 유행인가?  아니면 단순히 휴식을 원하는 부자들의 단

순한 유희인가?   그것은 각자 보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귀촌이란,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하나의 '선택' 이라고 믿고있다.

 

그러나 신도시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나에게 있어, 귀촌 그리고,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나름

대로의 각오를 요하는 것이다.    도시가스, 난방, 도난예방, 10분 거리의 각종편의시설... 이렇

게 도시에서 누리던 당연한 혜택에서 떠나, 스스로 필요에 따라, 직접 재료를 공수하고, 소비하

며 고생을 해야하는 불편함을 각오해야 하는 삶의 방식,   그야말로 어린시절 시골 뒷산에 올

라 땔감을 줍고, 밤을줍고 잠시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에 멍하니 땀을 식히던 그

삶을 남은 평생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그러한 삶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을 가

지게 되었다.    혼자 남겨졌을때, 그리고 나의 주변이 낮선 것으로 가득 채워졌을때, 그 채워

진 것이 '자연'인가 '물질'인가의 차이애 따라 사람은 우울함을 지닐 수도 있고, 뜻밖의 치유를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지탱해줄 '근본'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근본의 시작은 '땅' 과 '흙' 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굳이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도시' 그리고 '아파트'라는 물질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

제 더이상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휴식을 원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싶다.    직접 매실 나무를 심

어보고 싶고, 비싼 사용료를 지불하며 행하는 활터를 떠나, 마음껏 자유롭게 활시위를 당겨보

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 주인공의 '도전'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물론 소설에서

주인공은 땅을 사고, 집을 지어올리며, 몸고생, 마음고생, 상상을 뛰어넘는 지출을 치루며, 귀

촌생활의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루었다.   땅을 사면서 삐걱~  집을 지으면서 삐걱~  주변을 가

꾸면서 삐걱~~~  그야말로 그의 귀촌생활은  주인공의 나이에 걸맞게 않게 어리숙하고, 실수

투성이의 아이와 같은 미숙함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시골생활을 때려

치우느냐?  그것은 아니다.    후기에 그는 지금의 그 삶이 '혹 자신의 운명이 아니였나?' 하는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리고 점점 귀촌생활을 함으로서의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어쩌면 귀촌은 빠르게, 스마트하게!   이러한 오늘날의 생활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에서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의 가장 처절한?  선택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자유, 관계, 자본주의, 정보, 이

러한 홍수에서 나름 자유로워지기 위한 인간의 노력.   이처럼 귀촌은 여유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좋은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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