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는 건축 - 함성호의 반反하고 반惑하는 건축 이야기
함성호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일반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각시켜준 책이.. 이 책이다.

저자는 명망있는 건축가로서 오늘날 한국의 건축이 흘러가는 추세에 대해서 정면으로 딴지를 거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썻다.

같은 동종의 건축가들은 이 책을 보고 더욱 심도있는 감동이라던가..  두터운 공감으로 동질감을 느끼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기도 벅찬 형편이였다...

 

반하는 건축...이 책의 본질은 그야말로 反하는 건축을 다루고 있다.

이책이 소개하는 내용은 대부분 우울한 이야기를 다룬다. 도시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사람들.. 그들은 도면속에서 "완벽"을 꿈꾸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류가 나타나 무언가를 짓기 시작한 시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웅장하고 영웅적인

건축물은 수두룩하지만, 정작 만민의 행복을 위한 건축은 단 한번도 시작된적이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 단 한명의 야심과 그 당시의 종교관과 세계관이 합쳐진..역사적 괴업의 흔적이다.

오늘날 지어지는 대부분의 건축물은 "자유경제" "자본주의"의 개념에 의해서 지어진다.

건축가는 이상을 위해서 건축을 하지만, 이상이 현실을 만나는 순간...그 본질은 상당히 더러워 진다. 

"자본주의"는 돈에 의한 경제효과를 중요시한다. 건물을 짓기위해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단합, 땅부자들의 집단투기, 건축자재 비리같은

사건들이 끝이지 않는 세상..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미를 발전시키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외국물을 먹은 엘리트들의 악취미" 로 인해서 도배되는 가학적인

건축물 들이 "신개념" 이라는 색안경으로 인해서 통용되는 현실..

 

무멋보다. 사람들의 이상을 통제하고, 생활환경을 강제하며, 심지어는 자살율 까지,고려하며 만들어지는 오늘날 의 도시들..

사람을 위한 건축에서, 사회를 위한 건축으로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상을 꼬집는 책.. 반하는 건축은 그러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인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꿀 권리가 있다
아르노 그륀 지음, 조봉애 옮김 / 창해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인류는 "무장" 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위를 목적으로 칼을 차고 다니거나,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국가의 틀속에서 유효한 법률 덕분에 현대인 인 우리들은 개인적인 무장이 없어도, 소속된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예전의 정의( 힘의 정의) 가 아직도 통용 되는것 같다.

 

군사.무기 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의 "뻘짓"이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파괴를 위해서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강철의 기계들.. 그 기계들은 다른기계들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물자를 소비한다.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계이지만, 건설기계는 무언가를 창조하지만, 무기는 모든것을 파괴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그 무기덕분에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서는 전차가 달리고,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창공을 가르며, 바다에서는 항공모함과 전함 잠수함이 활보하며 우리의 권리와

안전을 지킨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러한 무기에 상당히 친숙하다. 동네 문방구, 백화점에 가보면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의 대부분이 칼.활,총기 로 되어있고

어른들을 위한 탱크, 전함, 미사일, 같은 모형들이 즐비하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현재 존재하는 무기들의 성능이나 제원까지 줄~~~줄

외울 정도이다.

 

"무기없는 평화는 없다"

 

그것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절대적인 진리이다.   무기없는 평화란, 어린이들 만화에서나 나오는 허무한 이상향이자,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어째서 무기없는 평화가 불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주제로 이 책을 펴냈다.

인간이 어쨰서 무장해야 하는가?  하는 "냉전시대적" 이야기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우리들의 의표를 찌르는 의외의 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들이 무장하고, 폭력을

당연시 하는 현실의 세상에 대한 원인을 "인간 본연의 망상, 증오, 어릴적 부모에 의한 상처" 가 큰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흔히 "엘리트" 라는 부류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자라는 존경을 받는다.

부유한 재산, 신사적인 처체술, 막강한 권력..사회의 최상층을 이루는 그들은 분명,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신사적인 외모와 품격 속에 숨겨진 , 상처와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독일출신답게 "히틀러" 를 주로 예로 들며 설명한다.   히틀러는 폐전한 독일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언제나 당당했고,

모든 역경을 "대담함"으로 커버하는 영웅적인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언제나 주목받는 위치를 즐겼고,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히틀러는 히틀러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거 청년시절 미술대학에서 인생의 쓴맛을 보아야 했던

그의 "실패의 경험"은 그의 평생의 "트라우마" 로 남았다. 그는 자신을 초라하게 하는 원인을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는것" 이라고

정의하고, 자신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행동에는 본능적으로 참지 못하는 성격이 되어버린다.

그의 강박관념 은 어느덧 "자신의 의견에 의견을 다는 행위조차 참지 못하는" 단계까지 발달했고, 그의 머리에서 나온 "천재적인 작전"

들은 무수한 독일군들을 파괴와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

  

이같이 사람은 사소한 역경에도 주저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어릴적의 상처가 어른이된 자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우리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엄격한 부모의 반대와 제왕학에 결국 냉철하고 냉혹한 대기업 사장이 되어 버린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가문의 엄격함 떄문에 결국 유망한 가문과 정략 결혼을 한 불행한 부부

어릴적 당한 성폭력 떄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결국 살인마가 되어버린 사람까지..

우리들은 문학작품과, 신문, 영화를 통해서 자유로운 자아가 인간의 "사회적 보호막" 때문에 억압받고 제한받는 것을 보아왔다.

국가시스템은 분명 우리들에게 "안정"을 선사했다.  대신 국가는 우리들에게 국가의 "룰"에 따르라는 강제력을 부여한다.

국가의 엘리트가 되기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한다.  그 극단적인 예가 "나치스였다"

 

무기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강철의 무기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강제, 독단의 이유는 사회가 요구하는 엘리트 코스를 따라가서 안정과 부를 얻으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자아는 세속된 요구에 저항하지만, 결국 부모와 힘에의한 권위에 굴복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마음의 상처는

사람을 무감각하고, 냉혹하게 만든다.

(게다가 힘에 의한 정의. 자신을 따르게 했던 "권위를 이용해 타인의 의사를 강제하는 효과의 효율성"을 맹신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사람이 엘리트가 되고, 사람을 효과적으로 부리고,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정신적으로 결함을

안고있는 불안한 사람이 우리들의 지도자가 된다.

 

그 지도자가 중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을 만났을때...

과거의 나치스 같은 역사가 다시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 라는 역활이란 생각해보면 정말로 손해보는 역활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어머니" "아줌마" "00 엄마" 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게다가 임금 한번 받지 못하는

평생노동인 "집안일"에 매달려 남편의 수입에 기대거나, 능력에 비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번다.

소수의 캐리어 우먼을 제외하면 그들은 평범한 아줌마로서 자식을 낳고, 키우고, 살림을 하고 가족을 뒷바라지 하며,

평생을 보내는것이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느정도 보편화 되었지만, 과거의 "여자"들은 자신의 성취감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

을 강요당했다. 반평생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죽여온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엄마" 라고 부른다.


작가는 "엄마"를 영원히 떠나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작가도 엄마를 떠나 보내면서, 막심한 후회를 한다.   살아계실때 조금이나마 더 좋은것을

먹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같이 있으며 더 효도 할 껄!!!....


그러한 마음을 담은 소설이 바로 이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다.


소설속의 "엄마"도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버린 여느 아줌마와 같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가정보다 더욱 열악하게 사는

아줌마이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무뚝뚝한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수험생인 아들을 챙기느라, 자신의 시간은

꿈도 못꾸는 그녀의 삶..

아가씨에서 어느덧 악착을 떠는 어줌마가 되어버린 그녀는, 자신이 아픈것도 뒤로하며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

가족들도 그러한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녀가 "말기암"의 판정을 받게 된 그 뒤부터, 이야기는 급격하게

우울해진다.


남은 여생조차, 어머니로서 살다간 주인공.. 그러한 신파극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어머니를

돌아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보면서 생각한것은 단 하나이다.

이책은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것,   책속의 주인공 아마리는 각박한 사회속에서

그저 흘러가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뚜렷한 목표도, 야망도, 욕심도 없이 주어진 생활환경에 적응하며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는 전형적인 서민인 것이다.


그러나 29살 마지막 생일을 앞두고 그는 결국 지금껏 마음속에 봉인에 두었던 서러움을 토해낸다.

아무도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파견사원이라는 열악한 신분, 스트레스 폭식으로 비대해진 몸,

바쁜 생활이 만들어낸, 친구 하나 없는 자신의 인간관계... 이 모든 요소가 그를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아마리는 결심한다. "딱 30살이 되는 날 나는 죽을 것이다." 어자피 죽을 목숨 "라스베이거스에서 화려하게 놀다가 죽자!"


모든것을 "라스베이거스의 최후의 날" 을 위해서 쓰기로 결심한 29살의 이 여성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져왔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최종목표에 매달린다.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롯본기 클럽에서 호스트로 일하고,

누드모델이 되어 학생들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하면서 새삼 자신이 지닌 "대담함"에 놀라는 여성 아마리.


그는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져왔던 그들이 삶이 단순한 편견 이였다는것을 깨닫는다.

아마리는 호스트들과 우정을 쌓고, 손님들을 위로하는 기술, 사람과 사람끼리 소통하는 기술을 습득하며, 점차 활동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이 된다.


드디어 운명의 D-Day 그는 자신의 "운"을 시험할 준비를 한다. 드디어 라스베이거스에서 맞이한 30세의 첫날,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수면제한병과, 10만달러의 돈뭉치... 그는 이제 마지막 목표를 위해서 "카지노에 들어간다."




마지막. 즉 "데드라인" 은 우리들을 부지런하게 하는 마법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늘어져도 마감시간에 쫓기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지런해 지지 않는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단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는것과 마찬가지, 한 1분이라도 가치있게 쓰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 노력은 반드시 인정받을 것이다.

주인공 아마리는 스스로에게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내린다.


그리고 단하나의 목표를 세운다. 정직원이 된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하는 거창한 계획이 아닌, 라스베이거스에서 모든것을

뿌리고 죽겠다는 다소 황당한 목표를 세워 그 목표에 매진하는 여성..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고 30세를 맞이한 그는 결국 자신과 싸워 훌륭하게 이겼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해피엔딩일까?    현실이라면, 오히려 라스베이거스에서 모든것을 탕진하고 처음에 계획한대로

한줌의 수면제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는것이 더욱 현실적인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소설은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것이다.

우리는 분명, 이 세상에서 "아마리" あまり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패배의식은 되도록이면 버리도록 노력하자.

이글을 읽고, '힘을 내라!!" 라는 작가의 바램.. 그러한 바램을 외면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수의 정원 - 히틀러와의 1년, 그 황홀하고도 고통스런 기억
에릭 라슨 지음, 원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독일의 히틀러는 역사적으로 광포한 폭군이자, 교묘한 정치가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며, 그의 나치 정권은

유럽세계를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불리우며, 인류의 불행했던

역사이자, 인류의 폭력적인 행동이 낳은 과오로 기억된다.


2차대전중 "독일"이란 국가는 그야말로 전쟁을 위한 "전투공장" 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우리들도 그렇지만, 당시의 독일 사람들도 전쟁을 좋아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히틀러의 통치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가 부르짖는 말도안돼는 슬로건을 명목적으로 따랐다.

당시 독일사회의 분위기가 어떠하였길래 ... 그러한 사회적 폭주가 통용되었을까?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 줄 만한

책을 찾는다면 나는 이 책" 야수의 정원" 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글은 아직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전" 혼란스러웠던 독일에서 살았던 "미국 독일 외교대사" 도드의 기록을 기준으로

작성된 논픽션이다.   그는 가장 민감했던 시대, 그리고 가장 민감했던 나라에 외교관으로서 활동했다. 그는 히틀러를

직접만나,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고, 괴벨스, 괴링같은 나치중역들의 사교활동에 참가해 그들의 의중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유능한 외교대사 와는 거리가 다소 먼 인물이였다.   


그가 독일대사가 된것도 그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독일로 가지 않으려던 당시의 풍조" 가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정도였으니.. 당시 독일이 어떠한 상황이였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도드는 독일에 대해서 상당히 관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과거 독일유학 생활을 했고, 독일에 대해서 긍정적인 "청춘의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인물이였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의 정치 운동에 동원된, 나치 돌격대 (Sturmtruppen) 의 지나친 횡포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광장에서 책이 불태워지고, 나치식 경례가 유행이 되어가고 있으며, 돌격대에 의한 "외국인들의 피해" 가

대사관에 속속 보고되고 있는 형편이였다.


그러나 독일에 도착한 도드는 그러한 행위를 "혁명과정에 발생하는 사소한 트러블" 이라고 정부에 보고했다.

그는 독일의 민주화를 믿었으며, 히틀러가 부르짖는 "평화적 외교" 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그의 믿음은 회의적이 되어간다.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다.

히틀러는, 이번사건으로  정적과 성가신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그만의 독단적인 정치세력을 확립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스스로 "총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국민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갔다.


도드는 이제 나치 정권에 대해서 더이상 믿음과 희망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제 모든 유럽사회와 미국본토가 독일에 대해서 현실적인 견제를 해야 할때"라고 주장했다.     

역사학자였던 그는 (나치를 포함한) 독일인들에게 "카이사르의 결말" 을 예로 들며, 독선의 폭주는 위험하다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 그 결과 미국정부에게는 "쓸데없이 일을 키운다는 핀잔"  독일정부에게는 "간과 할 수 없는 모독이였다는 분노"

를 사게된다.


독일에서 편하게 여생을 살며, 학술논문을 작성하고 싶었던, 독일 대사는 이제 격변하는 전세 한가운데서, 반 나치화를

주장하는 선봉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미국은 전례없는 대공황과, 외부 불간섭주의를 이유로 도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검소한 평민출신인 그의 지위가 "대사로선 맞지않고, 더욱이 그의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한다. 결국 도드는 대사직에서 물러났고, 결국 미국내 자신의 농장에서 나머지 생을 다했다.

그는 독일에서 듣고, 보는 것을 종합해서, 정부에 보고하는 일을 수행했다. 혼란스러운 독일이 전쟁의 파국으로 돌진하고

있다고 판단한 도드는 정부에 강력한 견제를 건의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실각하고 만다.


그러나 도드가 그가 우려하던 "일"은 적중했다.  독일은 폴란드,프랑스를 넘어 영국을 공격했고, 무차별적인 잠수함 작전은

미국선박의 안전을 위협했다.  결국 미국 또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활약했다.


2차세계대전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만약에 도드의 견제정책을 일찍히 미국이 채택하였다면...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힘을 합쳐, 독일의 폭주를 제어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역사는 변했을것이다. 아마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