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인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꿀 권리가 있다
아르노 그륀 지음, 조봉애 옮김 / 창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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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는 "무장" 하고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위를 목적으로 칼을 차고 다니거나,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국가의 틀속에서 유효한 법률 덕분에 현대인 인 우리들은 개인적인 무장이 없어도, 소속된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예전의 정의( 힘의 정의) 가 아직도 통용 되는것 같다.

 

군사.무기 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의 "뻘짓"이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파괴를 위해서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강철의 기계들.. 그 기계들은 다른기계들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물자를 소비한다.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계이지만, 건설기계는 무언가를 창조하지만, 무기는 모든것을 파괴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그 무기덕분에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서는 전차가 달리고,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창공을 가르며, 바다에서는 항공모함과 전함 잠수함이 활보하며 우리의 권리와

안전을 지킨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러한 무기에 상당히 친숙하다. 동네 문방구, 백화점에 가보면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의 대부분이 칼.활,총기 로 되어있고

어른들을 위한 탱크, 전함, 미사일, 같은 모형들이 즐비하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현재 존재하는 무기들의 성능이나 제원까지 줄~~~줄

외울 정도이다.

 

"무기없는 평화는 없다"

 

그것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절대적인 진리이다.   무기없는 평화란, 어린이들 만화에서나 나오는 허무한 이상향이자,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어째서 무기없는 평화가 불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주제로 이 책을 펴냈다.

인간이 어쨰서 무장해야 하는가?  하는 "냉전시대적" 이야기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우리들의 의표를 찌르는 의외의 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들이 무장하고, 폭력을

당연시 하는 현실의 세상에 대한 원인을 "인간 본연의 망상, 증오, 어릴적 부모에 의한 상처" 가 큰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흔히 "엘리트" 라는 부류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자라는 존경을 받는다.

부유한 재산, 신사적인 처체술, 막강한 권력..사회의 최상층을 이루는 그들은 분명,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신사적인 외모와 품격 속에 숨겨진 , 상처와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독일출신답게 "히틀러" 를 주로 예로 들며 설명한다.   히틀러는 폐전한 독일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언제나 당당했고,

모든 역경을 "대담함"으로 커버하는 영웅적인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언제나 주목받는 위치를 즐겼고,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히틀러는 히틀러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거 청년시절 미술대학에서 인생의 쓴맛을 보아야 했던

그의 "실패의 경험"은 그의 평생의 "트라우마" 로 남았다. 그는 자신을 초라하게 하는 원인을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는것" 이라고

정의하고, 자신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행동에는 본능적으로 참지 못하는 성격이 되어버린다.

그의 강박관념 은 어느덧 "자신의 의견에 의견을 다는 행위조차 참지 못하는" 단계까지 발달했고, 그의 머리에서 나온 "천재적인 작전"

들은 무수한 독일군들을 파괴와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

  

이같이 사람은 사소한 역경에도 주저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어릴적의 상처가 어른이된 자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우리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엄격한 부모의 반대와 제왕학에 결국 냉철하고 냉혹한 대기업 사장이 되어 버린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가문의 엄격함 떄문에 결국 유망한 가문과 정략 결혼을 한 불행한 부부

어릴적 당한 성폭력 떄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결국 살인마가 되어버린 사람까지..

우리들은 문학작품과, 신문, 영화를 통해서 자유로운 자아가 인간의 "사회적 보호막" 때문에 억압받고 제한받는 것을 보아왔다.

국가시스템은 분명 우리들에게 "안정"을 선사했다.  대신 국가는 우리들에게 국가의 "룰"에 따르라는 강제력을 부여한다.

국가의 엘리트가 되기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한다.  그 극단적인 예가 "나치스였다"

 

무기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강철의 무기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강제, 독단의 이유는 사회가 요구하는 엘리트 코스를 따라가서 안정과 부를 얻으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자아는 세속된 요구에 저항하지만, 결국 부모와 힘에의한 권위에 굴복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마음의 상처는

사람을 무감각하고, 냉혹하게 만든다.

(게다가 힘에 의한 정의. 자신을 따르게 했던 "권위를 이용해 타인의 의사를 강제하는 효과의 효율성"을 맹신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사람이 엘리트가 되고, 사람을 효과적으로 부리고,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정신적으로 결함을

안고있는 불안한 사람이 우리들의 지도자가 된다.

 

그 지도자가 중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을 만났을때...

과거의 나치스 같은 역사가 다시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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