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마시지 마라 - 하루 8잔의 물을 마시는 당신에게
하워드 뮤래드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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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수분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좋다. 현재 내 몸 상태를 알고 난 뒤라면 저자의 이야기가 훨씬 쉽게 이해되고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본문을 펼치면 리스트가 기재되어 있으니 귀찮다고 넘기지 말고 재미삼아서라도 한 번 참여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물을 마시지 마라는 책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은데 나 역시도 물 마시는 일을 좀 싫어라 하는 사람이라서 왠지 위안이 되는 기분이다. 사실 내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귀찮음’이다. 물 많이 마신 후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게 되면 오히려 이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인데 많은 이들이 나에게 ‘좋은 피부’와 ‘체질 개선’ 혹은 ‘신진대사’를 위해 많은 물을 마셔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 통에 요즘엔 오히려 물 마시는 일이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다.
그러던 차 이 책의 제목이 어찌나 반갑던지^^. 많은 사람이 예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처럼 누군가 내 소심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물 많이 마시는게 오히려 몸에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나름대로의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연구기간 30년, 5만명의 사례연구를 통해 <워터 시크릿>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만들어낸 저자는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지표로 ‘위상각’(Phase Angel, PA)을 언급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건강검진 시 피검사를 통해 발견되는 지표들이 아니다. 즉, 세포를 통해 사람의 건강상태를 측정한다는 말인데 물을 가득 머금은 젊은 세포들이 이 지표의 핵심으로 보인다. 자신의 PA를 간략하게나마 테스트 해보고 싶다면 웹사이트 http://www.thewatersecretbook.com/ 으로 접속해보면 된다.

저자에 따르면 노화는 세포 내 수분상실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다면 간단한 이치가 아닌가? 세포의 수분을 유지하도록 하면 저절로 노화를 예방할 수 있다니. 몇 십 만원짜리 고가의 화장품이나 관리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동안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건강한 세포를 유지하고(수분을 가득 채운) 노화를 막는 프로그램이 바로 ‘워터 시크릿’이다.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먹자는 모토로 하루 2.5L의 물을 억지로 마실 것이 아니라 수분이 충분한 야채와 과일을 섭취해야한다. 단, 야채를 가열하거나 건조시키면 수분이 날아가므로 되도록 날것 그대로를 섭취해야 함에 주의해야 한다. 야채와 과일에 포함된 물은 세포 속으로 쉽고 빠르게 들어가는 걸 도와주는 분자들로 둘러싸여 있어 최적의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이론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워터시크릿을 직접 체험하고 습관화할 수 있도록 10단계의 실천 프로그램을 정말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이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세세하냐면 하루 하루 먹는 식단은 물론 어떤 식품이 어디에 좋고 나쁜지, 또 운동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어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충분히 잠을 자야한다는등..)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절한 영향과 건강을 위한 수분까지 고려한 독특한 식단은 정말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극적이고 영양가 없는 인스턴트 식단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좀 힘들겠지만 10주가 아니라 한 3일만 그 식단을 그대로 따라한다면 몸이 훨씬 건강해질 것이 분명해 보였으니 현대인들이 섭취하는 식단에 문제가 많기는 한가보다.

아무튼 물 마시지 말고 먹으라는 그의 이론은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독특하게 다가왔고 건강한 세포를 유지하여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않을까? 요즘엔 오래 사는 것 보다 어떻게 오래 사는냐하는 삶의 질, 건강의 질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이니 만큼 아프지 말고 건강한 삶을 위해 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바꾸는 기회가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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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 노마드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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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 제목과 부제에 낚였다. 아니, 그렇다고 이 책이 절대로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고 저자가 말하는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현재, 더 나아가 인생의 목표와 가치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꽤나 파란만장했으니까.

앞서 내가 낚였다고 한 건 책 내용이 아니라 단지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요 단어 때문이라고 고백하련다. 이상하리만큼, 아니 남들보다 쫌 심하게 나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그래도 서울 4년제 대학졸업했고, 대학원도 서울서 나왔음^^)

사회에 나와 보니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절실히 느꼈지만 이제 그런 열등감쯤은 쿨하게 넘겨주어도 될 나이인데 소위 말하는 SKY앞에서는 괜히 주눅드는 몹쓸병이 아직 고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어린 시절 에릭시걸의 “닥터스”를 읽은 후 사랑도 공부도 몸살 나도록 정열적으로 하는 대학생, 아니 바로 “하버드 대학생”에 대한 환상이 뼛속까지 박혀 있는 상태가 아직 그대로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연유로 “하버드”가 언급된 어떤 것이라도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가고 귀가 커져 온 정신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버린다. 이번 책 역시 출간소식과 함께 책 소개 글을 보자마자 “이건 읽어야 돼”라고 이미 마음을 정한 터였다.

 

책의 저자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로 한국 이름은 이만열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 책은 외국인이 쓴 책을 번역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역자가 없이 저자 이름만 달랑 보여 좀 당황했는데 내용을 읽고는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 편집자가 손을 보았는지는 몰라도 모든 문장, 단어사용, 게다가 동양학적 뜻과 풀이까지... 도저히 외국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의 글이라고 생각되지가 않았다. 학벌은 또 어떤가! 말 그대로 엄친아 저리 가라다.

예일대, 동경대, 대만국립대, 서울대,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라 한다. 여기에서 또 한번 저자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본문을 보면 흔한 외국인들의 한국 체류기처럼 이 책 역시 저자가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질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속내, 여러 해 동안 살며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등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흔한 한국체류 에세이류와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저자의 독서노트라고 밝힌 부분과 인문교육의 위기로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한 부분이었다. 특히 독서노트 부분은 쉽게 말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기술한 부분인데 언급된 책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연암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시작으로 장자의 나비이야기, 홍루몽, 살아남은 자의 아픔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가 깨달은 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풀이를 보면 저자의 학문적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가 한문도 알고 동양의 유수 대학들을 거친 학력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이 독서노트를 읽노라면 문학과 동양사상을 총체적으로 연결시킨 독자적인 시각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빨리 빨리 경쟁에 너무 몰입한 대한민국 교육, 더 나아가 인문학이 부재된 현재 상태에까지 시각을 넓힌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독서교육과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물론 저자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그냥 쉽게 읽고 지나가는 에세이가 아님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세상의 이치를 통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의 부활이야말로 찬란한 한국 문화유산을 빛나게 해 줄 원동력이라는 그의 말이 점점 깊이 각인되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제목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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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붙잡는 여자들의 1% 비밀 - 10년차 워킹맘이 욕심 있는 후배들에게
권경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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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일하는 엄마라면 왠지 능력 있고 멋있어 보이는 여성으로 생각되었다.
부모님이 항상 일하시느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던 내 친구는 하교 후 집에서 티비를 보며 빈둥대거나 맛있는 사탕과 과자만 먹어대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 속으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특히 숙제해라, 공부해라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 다는 점 때문에 왜 우리 엄마는 밖에서 일을 하지 않으실까 살짝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 당시 철없던 나에게는.
그런데 자라고 보니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했던 학창시절 엄마가 곁에 계셔서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행운아였는지를 생각해보니 그저 감사드리고픈 마음뿐이다. 숙제나 준비물을 빼먹고 와도 쉬는 시간에 쪼르르 달려 나가 엄마에게 당당히(?) 전화를 했고, 상장이라도 받은 날이면 빛의 속도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엄마의 칭찬을 온몸으로 느끼며 행복해 했었다. 만약 그런 날 집에 갔는데 엄마가 안 계시면 괜히 심통나고 짜증나 상장도 던져 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이런 행복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그저 빈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엄마를 기다리거나 학원셔틀을 하며 시간을 때우겠지 싶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가슴 아프게 이런 말을 한다. 워킹맘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 엄마의 아이들이라고 말이다. 참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능력 있고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강한 여성들을 집안에 앉혀 놓는 것도 국가적 손실이 분명하다. 맞벌이를 해야만 유지가 되는 경제적인 요인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고.

저자는 누구보다도 이런 워킹맘의 불안한 심정과 힘에 부치는 현실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당찬 커리어우먼이다. 두 아이의 엄마지만 여전히 직장에서 승승장구 하고 저녁에는 MBA석사과정도 등록했고 이렇게 책 까지 출간했으니 그녀의 하루가 얼마나 촘촘하고 빡빡할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워킹맘들을 응원하고 현재의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자의든 타이든 워킹맘의 길로 들어섰으면 멋지게 그 길을 나아갔으면 하는 선배의 간절한 바램이 바탕이 된 것이리라.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좌불안석하지 말고 포기할 건 깨끗이 포기하고 얻을 것은 당당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령도 필요한데 저자는 바로 이러한 노하우를 알려 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일하는 엄마가 프로다워지는 11가지 방법, 일하는 엄마의 전략적 자원분배를 위한 7가지 방법, 남편으로부터 일하는 아내에 대한 배려와 외조를 이끌어내는 8가지 방법등은 그녀가 일하는 엄마였기에 알 수 있었던 유용하고도 현실적인 조언들이기에 공감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승진 대상이 된 해에는 임신하지 말라는 날카로운 조언은 어쩌면 너무 일에 집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도 잠깐 들었지만 이내 커리어경력을 쌓으려면 길게 봐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상당한 워킹맘들이 엄마와 커리어우먼 사이에서 희미한 경계선을 긋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엄마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일로 승부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도와주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실질적인 조언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고급 노하우를 생생하게 전하는 인생 선배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워킹맘들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일하는 엄마의 전쟁은 냉혹하다. 그 전쟁은 아이와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과의 전쟁, 시댁과의 전쟁, 직장과의 전쟁으로 확전되기도 한다. 이 전쟁에서의 관건은 힘을 많이 빼지 않고 얼마나 평화롭게 끌고 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일하는 엄마가 이기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의 목적 자체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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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 미망인들 (보급판) 지만지 고전선집 4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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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시 교양과목으로 ‘연극의 이해’라는 수업을 선택해 들었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보여서(?) 수강신청을 했는데 수업이 쉽지는 않아 괜히 신청했나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리포터를 작성하는 과제는 수업과는 달리 꽤나 재미있고 유쾌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뻔질나게 소극장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연극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는데 지금은 일 년에 3편을 볼까 말까 싶을 정도로 문화생활을 못 누리다보니 그때가 자꾸 그리워지곤 한다.

 

이런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집어든 책이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바다 한가운데서/미망인들』이라는 희곡이었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영화의 장면 장면을 연상하는 재미가 있다면 희곡은 연극이라는 무대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게다가 이 저자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블랙코미디가 이런 맛이구나라는 쾌감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을 만큼 풍자적인데 읽으면서 낄낄 거리는 대사들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었는데 폴란드 드라마의 아버지로 불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2010년에 국내에서 공연된 ‘탱고’도 이 저자의 작품이였다하니 어떤 이들에게는 익숙한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는 2편의 희곡이 실려 있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와 ‘미망인들’이 그것이다. 먼저 ‘바다 한가운데’를 살펴보면(개인적으로 이 희곡이 너무 재미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뗏목에 세 명의 조난자가 타고 있었다.


뚱뚱이,보통이,홀쭉이로 명명된 이 사나이들은 식량이 부족해지자 셋 중 한명을 잡아먹기로 하고 서로가 왜 잡아먹히면 안 되는지, 그렇다면 왜 상대가 잡아먹혀야 하는지를 각자의 논리대로 주장을 펼치는데 이들의 대화가 무척이나 풍자적이다. 특별한 이름 없이 별명처럼 붙여진 이들의 명칭은 앞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뚱뚱이=자본가 혹은 욕심쟁이를, 보통이=기회주의자를, 홀쭉이=노동자 혹은 빈곤층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그렇게 이해가 되었다.


특히 뚱뚱이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며 홀쭉이를 점점 압박하는데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론을 펼치던 홀쭉이가 어느 순간 자신이 희생되는 것이 맞다며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에서는 씁쓸한 연민마저 감돌게 한다. 게다가 이 작품이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쓰여졌다 하니 저자는 뚱뚱이를 통해 독재자에 대한 어떤 적나라한 모습을 풍자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뚱뚱이: 당신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는 무책임한

인간이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에게 판단을 맡겨야 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마땅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우리가 당신을 먹어치우는 거요.

(보통이에게) 친구, 어서 상을 차려요. [P.57]

 

홀쭉이: 저는 이제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획득했습니다. 마침내

자, 이제 마지막으로 상황을 살펴보죠. 여기 이렇게 우리 세 사람이

있지만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건 오직 나뿐입니다.

죄송하지만 자유에 관한 잠시 이야기해도 될까요? [P.65]

 

이런 식의 대화가 흐르고 보통이는 뚱뚱이의 발언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며 딸랑이 역할을 자처하는데 이 세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대사들은 현대 정치판에서의 모습과도 흡사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숨긴 채 그럴듯한 말로 대중들을 현혹하며 지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저 징글징글한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사하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해보며 웃었다. 그런데 뒷맛은 쓰다. 정말 쓰다...

 

두 번째 작품은 ‘미망인들’로 ‘바다 한가운데서’ 만큼의 큰 임팩트는 얻지 못했기에 간단하게만 언급하겠다. 그렇지만 이 희곡 역시 까페라는 한정된 공간에 인물과 사건들이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 마치 반전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게다가 허망된 욕망을 향해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던져 버리는 이 한심한 인간들을 보자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란 참...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나는 까페 안에서 남편을 잃은 두 미망인이 만나 서로에 관해 말하다가 상대가 각각 남편이 숨겨두었던 애인이었음이 밝혀지는 황당하면서도 그럴듯한 설정이 하나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한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결투를 벌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사건의 주인공은 단연코 전체 무대를 관망하는 ‘웨이터’였다는 깨달음에 이르렀을 즈음 우리는 또 다른 블랙코미디의 무대를 관람했음을 알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짧은 두 작품을 실제 무대에서 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것과 왜 이 저자가 폴란드의 위대한 극작가로 불리는지, 그리고 풍자와 유머의 맛이 어떻게 희곡에서 살아나는지를 오랜만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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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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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우리나라의 휴대폰 교체주기가 26.9개월로 2년 정도라는 것을 알았고 스마트 기기의 대세로 휴대폰수도 2개 이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 난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라서 새로운 물건들을 자주 구입하지도 않고 구입하더라도 기존의 물건을 바로 버리는데 상당히 망설여진다.

휴대폰을 사용한지 12년째이지만 지금 쓰는 건 3번째이고 바꾸게 된 계기도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수리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을 경우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카톡이니 어플이니 하는 말이 딴 나라 세상 이야기다. 오늘도 2G폰을 무상으로 교체해 주겠다는 홍보전화를 2통이나 받았고 주위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느니 트렌드를 역행한다느니 말이 많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각종 어플을 다운받아 즐거운 디지털 세상을 맛보는 것보다는 아직까지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걸 더 좋아라하기 때문이다. 전자책 기능이 좀 부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필요 이상의 제품 교체나 소비에는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나의 신념이 더욱 굳건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이상 전 세계의 쓰레기장, 광산, 공장, 농장 등을 찾아다니며 모든 물건의 라이프사이클을 집요하게 조사하여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물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나라하게 들려주고 있었는데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도 않았고 불편한 진실을 다시 확인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모든 쓰레기는 각각 광산에서의 추출, 삼림이나 농장에서의 수확, 공장에서의 생산, 공급망을 따라 이동하는 기나긴 여정 등을 아우르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추출과 생산과 유통에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여놓고는 그 자원들을 땅에 파묻다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이 지구상에 있는 자원의 양은 유한하다. 우리는 그것을 다 써가고 있다. 땅속에 자원을 파묻어버리는 것은 아주 멍청한 짓이다. [본문 중]

 

물건을 만들고 버리기까지 ‘추출-생산-유통-소비-폐기’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지구는 점점 생명을 잃어갈 것이고 한정된 지하자원은 인류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단계이다. 당장 내 앞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기에는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피해가 엄청나다. 소비, 특히 과소비로 인해 이런 위험한 사이클은 가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당장 소비를 중단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과소비를 줄이고 재활용품을 활용하고 전자기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모든 이들이 상기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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