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비움 공부 - 비움을 알아간다는 것
조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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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알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 고전이라고 한다.

장자 역시 본인 이름으로 된 책이 있지만, 정작 그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학창 시절 노장사상을 배울 때 노자, 장자에 대한 언급 정도로 넘어갔고, 이후 그 유명한 호접몽(胡蝶夢) 고사 정도 떠올리겠다.

인문학자 조희가 쓴 <장자의 비움 공부>는 장자의 철학에 심취한 저자가 현대인이 쉽게 장자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그 핵심 사상을 전달하는 책이다.

책 제목에도 나오지만, 장자의 핵심 철학은 '비움'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 역시 '비움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욕망의 사다리에서 위로만 위로만 올라가려는 현대인에게 장자의 이러한 내려놓음 철학은 자칫 한가한 유유자적 음풍농월 세계관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저자 조희에 따르면 장자의 사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오히려 깊이에 있어서는 '공자왈 맹자왈'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공자의 논어를 보면서 그것을 실천하려면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장자의 사상이 공자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의 도는 공자의 사상을 보완하고,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하는 큰 도를 주장하기 때문에 더 실천하기 어렵다고 느껴졌다." - P 95

"공자의 말보다도 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장자의 사상이다." - P 154

무위자연을 최고의 선으로 두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장자 철학의 원문을 100개의 단락으로 정리하고, 개별 문장에 대한 주석을 현대적으로 저자가 해설해 주는 구성이다.

있는 것을 그대로 두는 장자 철학의 핵심을 가슴 깊이 이해한다면, 책에서 반복되는 내용들이 어느 정도 눈이 아닌 마음에 와닿는다. 자연친화적이고, 억지로 뭔가를 이루려 하지 않고, 큰 욕심을 부리며 아웅다웅하지 않고 물 흘러가는듯한 인생관!

인생을 고(苦)로 파악하고, 공(空)의 가치를 강조한 불교 철학과도 장자는 닮은 데가 많다.

 

"즉, 진정 도를 깨닫는 사람은

삶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것을 탓하거나 성공을 과시하지도 않고,

억지로 일을 꾸미지도 않는다." - P 254

 

<장자>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장자의 비움 공부>에서는 공자와 그 제자에 대한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자연스레 공자와 장자의 세계관을 비교하게 되는데, 입신양명에 큰 비중을 두었던 공자에 비해 장자의 품은 넓어 포용력이 있다. 이를 저자는 '배움을 강조하는 공자가 당신을 압박한다면, 비움을 중시하는 장자는 당신에게 휴식을 줄 것이다.'라고 정곡을 찌른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공자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장자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장자의 비움 공부>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지나친 경쟁과 남과의 비교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만족이란 단어를 뇌세포에서 지운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니라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미니멀한 심플 라이프를 추구하고자 하는 현대인이라면 장자와의 궁합은 좋다. 우리는 누구나 미생이지만, 각자의 쓰임새가 있다.

코로나 역시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가 맞이한 반대 급부 아니겠는가! 시대적으로 장자가 부활할 여건은 조성되었다. 뭔가를 무조건 더하고자만 하는 삶에서 비움의 가치는 소중하고, 장자의 내려놓음 철학은 시대의 해독제로 기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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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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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리커버 에디션)을 접하기 전 약간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SF인데다가, 그 분야에서는 '그랜드 데임 Grand Dame'으로 추앙받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무게, 무엇보다 처음 읽은 그의 <와일드 시드>를 힘겹게 페이지를 넘긴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킨>은 이 모든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한다.


「작가로 현대를 살아가는 다나는 인텔리 흑인 여성이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백인 케빈이고 역시 작가다.

원인 모를 특이한 현상으로 다나는 100여 년 전 노예 시대 뉴욕의 아래쪽에 위치한 메릴랜드 주로 시간 이동하는데, 거기서 오래전 조상 루퍼스를 만난다. 루퍼스는 백인 농장주의 아들인데 그가 위기에 빠지면 다나가 소환되고, 다나가 죽을 위험에 처하면 현대로 복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나는 애증의 대상인 루퍼스의 평생을 목격한다. 다나가 목격하고 체험하는 건 그때 그 시절 흑인 노예들의 처참한 삶이다.」



"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였다." - P 236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는 주인 맘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었다. 인권은 배부른 소리요 사치다.

도망치다가 잡히면 귀가 잘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교화' 차원에서 등 가죽이 벗겨지도록 채찍질을 당하고, 어젯밤까지는 성적 노예로 봉사하다 다음 날이면 노예 상인에게 팔리고, 엄마의 피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녀들은 팔려서 이산가족이 되고, 결국 흑인 부부는 자녀라는 판매가 가능한 생산물을 낳고(다다익선이다) 계속 주인을 위해 봉사하도록 딴 맘먹지않게하는 안정화 장치일 뿐이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건방진 검둥이보다 더 나쁜 건 없는' 시절이다. <킨>은 인류의 아픈 기억을 들추어낸다.

현대 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던 다나가 어느 날 갑자기 야만의 시대로 내던져지면서 선명한 대비를 통해 충격은 배가된다. 애당초 과거 시점에서 주인공 1인칭 화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현대 독자에게 전달되는 아픔은 몇 배는 고통스럽다. 맨 처음 다나가 채찍질을 당하는 순간, 마치 내 등 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통증이 전달된다. 다나의 선조인 루퍼스는 불쑥 나타난 특이한 존재 다나에 대해서 호의적이고 다른 농장주에 비해서 덜 악랄한 사람일 수는 있으나, 그 역시 도긴개긴이다. 다나는 외모를 닮은 앨리스를 보고 본능적으로 유전자를 느끼고, 루퍼스는 다른 육체지만 다나와 앨리스를 거의 동일한 인물처럼 느낀다. 다나의 선조가 백인 루퍼스와 흑인 앨리스라는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 꽃 피는 나무'가 아니었다는 점과 앨리스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비극성은 고조된다.

타임슬립은 SF에서는 흔한 장치지만 이토록 효과적인 방식은 인상 깊다. <킨>을 읽고 직접적으로 선조들의 고된 삶을 느끼고 피눈물을 흘릴 현대의 흑인 독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주인공 다나와 함께 하는 추체험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독서 체험이다. 기대 이상으로 페이지는 잘 넘어가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지만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당신 영혼에 문신을 새길 강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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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 이택광 묻고 지젝 답하다
슬라보예 지젝.이택광 지음 / 비전C&F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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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중국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 했을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몇 달의 세월이 흐르고 '코로나'라는 단어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전 지구적인 팬데믹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간단한 인연이 아니었던 거고, 일상생활의 기본값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방송이나 출판가에서 코로나는 반드시 다루어야 할 과제가 되었는데, SBSCNBC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라는 4부작을 기획했다. 1부 철학, 2부 정치, 3부 생태, 4부 교육으로 나누어 석학들의 고견을 들어보는 프로인데 그중 1부 철학 편에 나온 석학이 국내에 특히 인기 높은 슬라보예 지젝이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은 1부 철학 편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고, 인터뷰는 제자로 지젝을 만나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진행했다.(위 방송은 네이버 TV에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19 사태는 미래에 올
지구 온난화와 경제 위기에 대한 예행 연습일 뿐이다."
- 유럽의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 P 95

 

 

우선 대담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코로나에 대한 몇 가지 전제다.

1.

코로나 팬데믹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가해진 오지심장파열술이다.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면서 무한 성장을 꾀한 자본주의 체제가 더는 계속될 수 없다는 징후이고,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P 84)

결국 이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기후 변화를 비롯한 자연재해에서 유래되었다.

☞ 오지심장파열술⇒ 다섯 손가락을 사용해 상대의 심장 주위의 혈맥을 터뜨리고 결국 심장을 파열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최강의 암살 기술로 영화 <킬 빌 2>에서 베아트릭스가 빌에게 사용한다.

2.

세계는 '코로나 이전 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 AC. 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코로나가 종말을 고한다 하더라도 결코 코로나 이전의 라이프스타일로는 돌아가기 힘들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는 그만큼 본질적이고 창대하다.

3.

코로나는 끝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코로나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언제든 '제2, 제3의 코로나'는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코로나 이후('포스트 코로나')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뉴노멀')이며,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대처해야 하는가 세계적인 철학자 지젝의 지혜를 구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기존에 선진국으로 추앙받았던 미국이나 유럽의 민낯을 보았다. 위기에 실력이 드러난다고 코로나에 대한 대응은 다소 기대 이하였고, 오히려 한국, 홍콩, 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대처능력이 돋보였다. 여기에 미국이나 유럽은 자유주의 정서가 강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의 통제가 심한 전체주의 경향이 강하다는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어디 가나 QR 코드를 통해 동선이 파악되고, 시시때때로 재난 관련 문자가 날라오다 보니 마치 빅브라더가 현실에 나타난 느낌마저 들지만, 지젝은 최소한 공공의 안전이라는 '선한 이유'로 통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이다. 다소 불편할 순 있지만 필요악이라는 견해로 읽힌다.

"생물학적 바이러스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이데올로기 바이러스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우려스럽습니다. 가짜 뉴스, 편집증적인 음모론, 인종주의 같은 것들 말이예요. 제가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문제들이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 P 89~90
 

코로나 같은 재앙이 일상을 침범했을 때, 역시 빈부의 차이는 후과(後果)가 크다.

고소득층은 부동산이라든가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을 통해 소득 수준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키면서 큰 타격 없이 살 수 있지만,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버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언택트 기조 속에 버티기가 힘들다. 단골 카페는 물론, 심지어 오래된 노포 음식점마저 폐업한다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한국은 택배 강국이라 비대면으로 온라인 주문만 하면 편하다 하지만, 이는 택배 근로자의 노동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결국 누군가는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돈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현재 세계에는 빈곤한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어쩌면 바이러스의 위협보다 더 좋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감염의 위험성보다는 당장 식구들을 먹여살리고 보금자리를 구하는 일이 더 시급한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양극화는 더욱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P 87~88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각자도생이라곤 하지만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고통을 모른 척 넘어가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코로나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병으로 인한 후폭풍은 사회적, 국가적 대안이 필요하다. '착한 임대인 운동'이나 '재난지원금' 같은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고 보다 근본적인 숙고가 필요하다.

 

그럼 코로나로 인해 바뀐 뉴노멀 시대에 지젝의 대안은 무엇일까?

지젝은 조심스럽게 '전시(戰時) 공산주의(communism)'란 개념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주의는 구 소련이나 북한, 중국처럼 국가체제로서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 공적 영역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적어도 '공공의 것'은 공공재로 남겨둬야 한다는 개념인데, 어떤 위기 상황에도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물, 전기, 쓰레기 처리, 인터넷 등은 최소한 보장돼야 한다는 거다. 이러려면 역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코로나 백신을 맞는데 비용이 아주 비싸서 저소득층은 접종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되겠나?

지젝은 적어도 자신이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최소한의 공공 영역이란 기본 요소는 살아남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가 보기에 지금은 '새로운 공동체의 삶을 발명해야 하는 정치적 상황'이다.

 

코로나가 세계적인 감염이 되면서 나라마다 이동이 차단되다 보니 자연스레 폐쇄적인 쇄국정책을 취하게 된다. 미국은 코로나 발병지로 중국 탓을 하고, 영국은 브렉시트를 단행하고, 이방인에 대한 혐오는 커진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순식간에 전 지구로 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특정 나라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아프리카의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발병한 또 다른 팬데믹이 '제2의 코로나'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나.

그래서 지젝은 결론으로 '전 지구적인 나눔과 협력'이 바탕이 되는 새로운 국제주의를 제안하며 대담을 마친다. 여기에 이택광 교수는 뉴노멀 시대의 키워드로 '그린 Green, 생명 Life, 인류애 Humanity'를 덧붙인다.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은 지젝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 중에선 가장 읽기 편하지만,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적잖은 통찰을 제시하는 책이다.

 

에필로그 >

대담의 마무리, 이 교수는 지젝에게 한국민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한다.

지젝은 자신은 오히려 한국인의 대응을 보며 배우는 입장이라고 특별히 더할 말이 없다고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

대담 이후 작년 말 한국은 백신 확보에 있어서는 지각생이란 사실이 드러났고, 동부구치소에서 보듯 방역에 있어서도 일부 허점이 밝혀졌다. 늘 한국 상황을 모니터링한다는 지젝의 현재 견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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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혼돈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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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지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슬라보예 지젝은 경희대학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석학교수(Eminent Scholar)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 그런지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고 여러 매체를 통해 무수히 많이 인용되는 '록스타'급 철학자다. 이미 발간돼 있는 많은 저서들과 달리 <천하대혼돈>이 독보적인 까닭은 지젝의 20년 지기인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직접 제안해 원저 없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주로 2018년도 하반기에, 글쓴이가 여러 언론 매체에 기고한 짧은 글들을 묶은 게 <천하대혼돈>인데 그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인지라 전 지구의 논쟁적 사안들을 거의 망라한다. 새로운 세계 질서, 현대정치와 포퓰리즘, 디지털 정치학, 문화와 권력... 그리고 '대혼돈을 넘어'까지.


"천하대란, 형세대호

천하가 대혼란이지만 기운은 상서롭다."

- 마오쩌둥, P 119


25쪽에 달하는 "우파 포퓰리즘을 향한 좌파의 응답" 정도를 제외하곤 그다지 장문의 글은 없다. 언론 기고라는 특징상 긴 분량으로 투고하긴 어려웠던 결과겠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우선 보통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철학적인 용어와 인용이 많고, 이러한 단어들이 연결되는 문맥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여간 쉽진 않다.

예를 두 개 들어보자.

"그 좌파적 변형은 칸트적 의미에서 훨씬 복잡하게 허위이다. 좀 막연하지만 하나의 적절한 상응 관계로 보면, 적대적 관계에서 적을 구성하는 일은 칸트의 도식주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 P 96

"그는 모든 특정한 정체성을 해체하는 자본주의의 동력학이 민족적이고 성적인 정체성에도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터이다. 또한 성적인 '일면성과 편협성은 더욱더 불가능해지며', 성적 실천의 경우도 '모든 굳은 것들은 남김없이 녹아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들은 더렵혀'져서, 자본주의는 표준 규범적 이성애를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정체성과 성향의 확산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 P 205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런 사악한(!) 글을 쓰는 것도 재주다. 이런 글을 번역한 강우성 교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철학서적이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라 많이 읽진 않았어도, 이 정도면 내게는 거의 암호 해독 수준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지젝은 '급진적 보편주의자'라고 한다. 그의 관심사는 동시대의 세계 곳곳에 뻗쳐 있고, 적당히 의뭉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라 사안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밝히는 태도의 선명성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도 뉴욕대 아비텔 로넬 교수가 제자 님로드 라이트먼로부터 당한 고소에 대해 로넬 교수를 지지하는 글을 써서 논란의 대상이 됐었던 일화가 소개된다. 오해가 있을까 봐 밝히자면, 로넬 교수는 여자고 제자 님로드는 남자로 일반적인 성폭력이나 권력 남용의 위치와는 정반대다.

사우디아라비아, 보스니아, EU, 미국, 이스라엘, 중국, 영국...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다루는 국가와 지역이다. 보통 신문에서 사람들의 눈길이 제일 안 가는 지면이 외신면이라 하는데 슬로베니아 출신의 지젝은 G2로 통용되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여성 운전은 허용되었으나 운전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여성이 있는 사우디, 정부에 의해 살해당한 반체제 인사를 기리는 민중 집회 당시 놀랍게도 민족을 초월한 연대를 통해 작은 기적을 보여준 보스니아, 해리 왕자와 결혼한 흑인 페미니스트 때문에 시끌벅적한 영국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이더망에 안 걸리는 지역이 없다. 또한 그의 관심사는 지구온난화, 섹스봇, 카톨릭 교단의 소아성애 범죄, 한 장의 사진 「전쟁의 공포(The Terror of War)_닉 우트」 (워낙 유명한 베트남전 사진이라 찾아보면 금방 안다)의 페이스북 이미지 삭제로 촉발된 보도지침 논란, 1~2년 사이 부쩍 국내 언론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 '포퓰리즘' 등 동시대의 이슈를 지나치는 법이 없다.

앞서 지젝의 문장이 어렵다는 말을 했다. 마치 대학교재를 초등학교 우등생이 의욕적으로 읽고자 하는 느낌이다. 반드시 어려운 책이 좋은 건 아닐 거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고수의 한 수'겠으나 지젝은 그럴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 듯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교양인, 아니 적어도 교양인이 되길 바라는 독자라면 세계 곳곳의 대혼돈을 파헤치고 나름 대안을 제시하는, '지젝 입문서'로는 마춤인 이 책에 도전해보길 권한다. 매번 본인 입맛에 맞는 한정된 책의 범위에서 한 번쯤은 벗어나, 읽은 이의 머릿속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문장으로 가득 찬 <천하대혼돈> 같은 책도 접해 보자. 머릿속이 더욱 혼란으로 가득 찰 수도 있지만, 잠 못 드는 밤 최적의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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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숲의 사랑
장수정 지음 / 로에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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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검은 숲의 사랑>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국립공원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는 장수정이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이 책 이전에 '숲을 통해 바라본 삶'을 그린 수필집 <안드로메다의 나무들>을 썼다.

이 소설은 주인공 남녀의 불륜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일본 샐러리맨 만화의 전설 '시마 과장' 시리즈를 즉각 떠오르게 하는 남자 주인공은 한국 이름 같지 않은 50대 '시마'로 그는 나름 탄탄대로를 달리다 건강상의 문제로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요양차 휴양림을 찾았다 그곳에서 숲 해설사로 일하는, 자살한 여동생과 많이 닮은 30대 중반의 '소유'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숲에서 사랑을 나눈다.


소설의 주요 무대는 소유가 일하는 휴양림과 근처에 위치한 시마의 별장이다. 저자의 직업이자 소유의 직업이기도 한 숲 해설사를 전면에 내세워 글로 읽는 자연도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숲의 생태계를 이루는 나무, 동식물, 곤충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소설 전반에 배어 있다. "피톤치드 소설"이라고나 할까. 

사회 통념상 지탄받는 불륜을 다룬 연애소설일지라도 그들의 원초적 본능이 숨 쉬는 공간이 숲이기에, 숲이 가진 원시적인 생명력과 자연적인 치유력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소설의 독특한 오라를 뿜어낸다.

국문과 출신 장수정은 어떤 장면의 묘사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고 다양한 단어를 사용해 한글의 바다를 넓힌다. 저자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은 빈틈이 없고 밀도가 높다.

"소유의 그곳은, 역치점에 이르렀으나 검이 아니고는 끊을 수 없는 그러한 지점까지 탄성이 치솟아, 가장자리에는 두족류의 치설 같은 연질의 자디잔 돌기가 오톨도톨 돋아, 비비면 다륵다륵 빨래판 긁히는 소리를 낼 것 같았다." - P 107

세상의 모든 불륜이 그렇듯 결말은 지리멸렬하고 맑고 향기롭지 못하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혹은 '이런 게 바로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만 시마와 소유 모두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가정의 모습 역시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 없는 외양을 유지한다.

이 둘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승전결을 보며, 흔히 남자는 불륜을 저질러도 웬만해서는 가정까지 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통념이나 성장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있던 소유가 결국에는 감정 변화가 심하다는 심리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겠다. 소설은 시마의 시선에서 기술되고 있지만, 정작 궁금한 건 소유였다. 시마가 조기 살점을 발라 소유에게 얹어준 그 순간 그녀는 시마에게 평생 충성하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소유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진정성을 가진, 순수하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런 소유의 마음에 불을 지핀 건 시마지만, 그는 선을 넘기에는 너무 소심하고 유약한 중년 사내일 뿐이다. 매뉴얼대로 삼십 년간 회사 생활을 한 시마에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꽃같은 사랑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다.

소설 속 휴양림은 자작나무숲으로 유명한 곳이라 하는데 우선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떠오른다. 터널이 뚫려 구도로로는 고개를 잘 안 넘는다는 언급은 미시령 터널이 생긴 이후 미시령 옛길을 염두에 뒀나 싶고, 한국 최초의 스키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지역은 잘 모르겠다. 양미리와 도루묵이 먹거리로 나오는데 이건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에선 빠질 수 없는 겨울철 별미인지라 특정 지역으로 한정하기엔 내 공력이 부족하다. 강원도 지역을 잘 아는 독자라면 소설에서 묘사된 지역 제이령이 대략 어디인지 추측해보면 더욱 재미있겠다.

현직 국립공원 해설사가 공들여 쓴 <검은 숲의 사랑>에서 숲은 단순히 소설의 배경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숲이 주인공인 '숲의, 숲에 의한, 숲을 위한' 흔하지 않은 소설이다. 숲 내음 그윽한 책을 읽는 동안 BGM으로는 신이경의 <비 오는 숲>이나 GEORGE WINSTON의 <FOREST>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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