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속성 - 사람은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레이 피스먼.티머시 설리번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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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장을 가든, 백화점을 가든 아니면 손가락으로 온라인 쇼핑을 하든 인간의 상업적인 활동은 시장(market)을 통해 이뤄진다. <시장의 속성>(원제 The Inner Lives of Markets)은 최근 60년간 시장의 변화와 혁신을 이끈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창조적 이론을 일별해 보는 책으로 부제는 '사람은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가장 중요한 경제학 논문들만을 엄선해, 거기에 담긴 획기적 착상들이 단순히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시장을 설계해 실험하고 우리 삶과 세상을 변혁하기까지 이르렀는지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포로들도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책의 서두를 여는 리처드 래드퍼드의 논문 <포로수용소의 경제적 조직>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장을 만들어내고, 시장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예시라 하겠다.

조지 애컬로프의 <'빛 좋은 개살구' 시장>에선 정보 비대칭 시장의 대표적인 예로 중고차 시장을 든다.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고객들은 호구가 되기 쉽고, '혹시 속아서 사는 거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 김하성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했단 뉴스가 들려왔는데, 5장 '경매 이론'을 통해 미국 포스팅 시스템의 변화를 소개한다. 초창기 과열에 따른 문제점을 시정한 결과 계약 규모는 김하성이 크지만 키움 구단은 과거 박병호나 강정호 때보다 적은 돈을 받게 된다. MLB 입장에선 보다 합리적인 지출 가이드라인을 만든 셈이다.

6장 '플랫폼 경제학'에서는 어떻게 VISA라는 카드계의 공룡이 탄생했는지, 왜 DVD 표준화 전쟁에서 승리한 소니가 치명타를 입고 가전 제국의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었는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현대는 플랫폼 기업이 굴뚝 산업을 완전 이긴 듯 보이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업계의 수위를 차지한 기업은 그 강력한 파워를 남용하기 쉽다는 유혹('갑질')을 피하기 어렵다.

7장 '시장 설계와 자원 배분'에서는 '학교 배정'을 예로 들어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자원 배분이 얼마나 이상향인지 논하며, 8장에선 신장 기증을 둘러싼 공정성의 문제와 공유경제 전성시대의 빛과 그늘을 살펴본다.

책에서 인용된 논문들은 대부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들이다. 이런 논문들을 일반인들이 접할 리도 없고, 구태여 찾아 읽지도 않겠지만 <시장의 속성>은 그런 이론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증되었는지 잘 설명한다. 아무리 쉽게 전달한다 하나 내용이 마냥 말랑말랑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학문적인 경제 이론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그 속에 담긴 생각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생명을 이어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저자들의 노고는 매우 값지다.

교양 과목으로도 경제를 접하지 않은 내가 이 책을 온전히 다 이해했는가 다소 의구심이 들긴 한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언제나 시장은 최적화를 찾고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라는 진리와 '시장의 속성'에 대한 이해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인위적인 손길이 때론 필요하고, 정부는 무소불위의 통제를 통해 결과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만 언제나 시장은 통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의 일독을 권하며, 이 책을 통해 "시장의 속성"에 대해 통찰력을 높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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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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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리즈 1편에서 우주로켓 발사의 꿈을 이루어낸 쓰쿠다 제작소. 전편에서 회사에 해를 끼치고 퇴사한 마노는 쓰쿠다의 도움으로 연구소에 재직 중인데, 생소한 의료기기 분야 협업을 쓰쿠다에게 제안한다. 

이름하여 '가우디 프로젝트!'

<변두리 로켓> 시리즈 2편은 이 가우디 프로젝트의 탄생에서 성공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정해진 악역들이 등장하고, 언제나 그리고 시리즈의 남은 앞으로도 그렇듯 변두리 공장 쓰쿠다 제작소의 무기는 오로지 "품질 하면 쓰쿠다, 쓰쿠다 프라이드" 기술에 목숨 거는 장인 정신이다.

수술 실력은 '신의 손'이요, 논문 또한 탁월하지만 흑심 있는 지도 교수에게 공을 뺏긴 지잡대 출신 명의 이치무라, 딸아이 죽음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생업마저 팽개친 사쿠라다, 특허받은 기술력은 인정받지만 언제나 불면 날아갈 중소기업이라고 괄시 받는 쓰쿠다, 이 3인방이 모여 출세에만 눈이 먼, 오만방자한 갑들의 연합군에게 결국 회생 불가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이야기가 언제나처럼 통쾌하게 펼쳐진다. 이치무라를 물 먹인 기후네 입장에서는 본업보다는 성공의 사다리에만 집착하다 결국 의사의 소명을 깨닫는 처절한 실패담이다.

다만 학습효과의 영향일까 내러티브 안에서 짜인 위기와 갈등 요소는 결국 쓰쿠다의 승리로 귀결되리란 걸 미리 당연하게 예측하고 읽기에 긴장감은 전작들보다 덜한 느낌이었다. 작년 이후 발간된 이케이도 준의 책은 모두 읽었고, <가우디 프로젝트>는 8번째 도서다. 이젠 익숙함이 되어버린,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전편의 로켓 개발도 그렇지만, 이번 소설의 주요 소재인 인공판막 관련된 세부 묘사는 그럴듯한데, 의학적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선 무리 없이 설득력을 지닌다.

명대사 몇 개로 마무리한다.

"요즘 세상에 성실함이나 한결같은 노력을 강조하면 구식이라고 비웃음당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사람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건 그것뿐이야." - P 346

"뭐, 일도 많고 탈도 많고 복도 많고."

쓰쿠다는 말했다. "그런 게 인생 아니겠어?" - P 391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니까요. 꿈이 없는 일은 그냥 돈벌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재미없어요. 안 그렇습니까?" - P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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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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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瞻星) 정호승은 시인이다.

시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이기에 그의 시집을 읽은 적은 없지만,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으로 읽었다. 일반 독자들은 이런 산문집으로 정호승을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시인이다. 80년대 중반 가수 이동원이 불러 큰 인기를 얻은 <이별노래>가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곡이란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썼으나 김광석의 목소리에 실린 <부치지 않은 편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도 사용되었고, 시인이 쓴 시 중에서 그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단 한 편의 시로 꼽는다는 <산산조각>은 추미애 장관이 최근 인용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에세이로는 7년 만에 낸다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시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산문으로도 큰 인기를 얻은 저자가 시와 산문이 한 몸인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인데 그래서 이 책은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인 동시에 '정호승의 산문이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저자가 고른 시 60편이 실려 있고, 거기에 대한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정호승은 이 책이 시 해설집이거나 평론집이 아니라 했으니 본인의 시에 대한 해설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한 편의 시가 쓰였는가' 뒷배경에 대해 주로 말한다. 대부분 창작의 기원을 밝히지만, 저자의 《한마디》 시리즈처럼 향기로운 그의 산문은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제격이다.

저자는 이제 70대에 접어들었다.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으나, 아무래도 이젠 다가올 찬란한 미래보다는 지나간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는 나이이고, 이제는 '인생은 이런 거다' 후배들에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연령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산문집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상당하다. 추억 돋는 장소 섬진강변 정자 섬호정과 경주 불국사, 시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정호승 시의 모성적 공간 범어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의 원작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바친 찬사, 무덤을 찾을 정도인 윤동주에 대한 사랑,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에 대한 애정, 백두산 여행 등을 그의 시 60편과 함께 읽다 보면 거의 600쪽이 한달음이다.

또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직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할애된다. 어느덧 노년이 된 저자는 무뚝뚝하지만 늘 소나무 같은 사랑을 보여준 아버지와 궁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시를 습작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진혼곡을 바치며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부모님 외에 법정 스님,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황순원, 시인 천상병이 추억 속의 인물로 등장하며 이외에도 저자를 문인의 길로 이끌고 격려한 은사들, 땅 위의 직업이 얼마나 축복받은 지를 알려준 이름 없는 광부, 우리 사회의 사표(師表) 김수환 추기경이나 훈맹정음을 만든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박두성, 아들의 성화에 의해 기르게 되었지만 17년이나 함께 한 바둑이까지 많은 인연들이 정호승의 일생을 이룬다. 더불어 시인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 20여 장도 곁들여져 저자에겐 추억의 앨범을 넘기는 듯한 회고록의 성격도 띤다.

"인생에는 형식이 없다. 인생에 형식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쓴맛을 보지 않고는 결코 단맛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 P 187

"나도 누군가가 나를 때려주어야만 내 존재의 종소리를 낼 수 있다. 내 삶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종으로서 내 존재의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 P 261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이전 산문집 《한마디》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은 기존 독자는 물론 새로운 세대의 누구라도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이끌 책이다. 아울러 웃다가 울다가 책을 읽는 동안 얻게 되는 인생의 지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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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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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는 김은진이 쓴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부제처럼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에 대한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우선 '올해의 표지 디자인' 상이라도 주고픈 공들인 표지가 눈을 끄는데, 표지 정중앙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려있고, 그 사이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중 한가운데 위치한 '아담의 창조'의 아담의 모습이 보이는 구조인데, 첫 장의 우측은 잘려 나가 입체감을 준다. 책의 내용에 걸맞은 표지 디자인은 석윤이가 담당했는데, 표지에서부터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아직도 우리는 고전 회화 대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이걸 위해 몇 시간의 비행시간을 참고 견디며, 찰나의 순간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줄을 선다. 유럽 여행의 핵심은 미술관 순례가 아니던가.

대부분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 이 작품들이 비교적 좋은 상태로 유지가 돼서 관람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데는 분명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별로 드러나지 않고 음지에서 일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고 미술 애호가들은 이들에게 큰 은혜를 입고 있다.

보존가로 일한 저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미술품 치료, 복원, 재생, 유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펼쳐 놓는데, 분명 미술을 다루는 소재지만 내용의 상당 부분은 화학을 필두로 한 과학이다.

미술 작품은 아티스트가 작업을 완성한 이후부터 세월의 흐름을 견뎌내야 하는 숙명에 놓인다. 치열한 판정을 거쳐 소수의 작품들만 보존의 영광을 얻어 후세에 전달될 자격을 부여받지만 그다음부터는 과학의 영역이고, 여기서 보존가와 보존과학자가 등장한다.

보존가는 실제적인 작업을 담당하고, 보존과학자는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 분담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보존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손상이 발생했을 때 가장 원본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한다. 순간의 판단 착오가 원작의 훼손을 일으킨다면 이는 복원 자체가 거의 불가하므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피 말리는 직업이다. 심혈을 기울여 복원 작업을 해도 원작을 망쳤다는 비난과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회화는 기본적으로 습도와 빛의 관리가 중요해서 박물관은 대부분 어둡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림도 나이를 먹고, 변색되거나 오염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때 그림의 생명 연장술을 시도하려면 최우선의 원칙은 '원본 보존'이다. 시대는 흘렀지만 원본의 오리지널리티에 최대한 근접하게 복원을 해서 창작자의 의도를 살려야 마땅하지만, 세월은 흘러 재료부터 당시 것을 사용하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보존과학자의 제대로 된 과학적 분석과 아주 약간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보존가의 상상력이 결합되어야 하겠다.

이에 반해 뭉크나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유명 화가는 그림을 의도적으로 자연 상태로 놓아두는 방식으로 '숙성'시키기도 했다. 뭉크가 작업한 스튜디오의 많은 작품들은 지붕이 없는 넓은 공간에 그냥 걸어 두었기에, 비와 눈을 맞고 때로는 매서운 바람과 먼지를 견디며 시간의 아픔을 맛보도록 했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그렇게 두기를 바란 이유는 그런 세월의 흔적도 작품 일부라는 소신 때문이었다고. 뭉크나 리히텐슈타인이 그저 그런 화가였다면 이 작품들은 모두 폐기 처분되었겠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았기에 보존가들은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책에 소개된 다채로운 사례는 '예술을 유지 · 보존하기 위한 과학의 헌신'이다. 특히 고흐의 <들꽃과 장미가 있는 정물> 아래 숨겨져 있던 '2명의 레슬러' 그림을 찾아내는 과정은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미술품 복원과 치료는 서구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신기술이 개발되어 발전되는 분야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실정은 걸음마 단계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라고 한다.

그림을 쉽게 접하게 하고 읽어주는 책들은 무수히 많았다. 미술 관련 도서를 즐기고 시시때때로 미술관, 박물관을 가는 독자라면 <예술가의 손끝>은 필독서다. 아울러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도 좋은 길라잡이가 될 신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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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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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교수가 쓴 <탄소 사회의 종말>(부제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이하 <탄소 사회>) 제목을 보고 과거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 석탄이나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사회를 회고하면서 한 시대의 종말을 통해 '다음 세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전망하는 책으로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었다. 지은이는 인권학자였고 <탄소 사회>는 부제에 오히려 집중한 '사회와 인권의 관점에서 설명한 기후위기 입문서'다.(사실 그렇게 보자면 <탄소 사회의 종말>이란 제목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작명이 아닌가 싶다.)

우선 도입부 '들어가며'에서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따지는 대목부터 뼈 때리는 통찰을 제시한다.

"코로나19가 왜 발생했는가? 가장 단순하게는 박쥐, 천산갑 같은 야생동물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 사슬로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병원균이 소수의 생물종에만 집중되지 않는 '희석효과' 덕분에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해질수록 병원체의 확산효과가 커진다.

유엔환경계획 UNEP은 산업형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가축이 매개 역할을 하여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연구도 발표했다. 이런 공장식 축산의 배후에는 자본주의의 거대 농축산업이 있다.(···)

또 지구화로 이주, 여행, 운송이 급증해 바이러스의 이동이 용이해졌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수렴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 P 10

모든 이를 마스크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결국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으로 알았던 무지한 날 일깨우는 신선한 도입부다.

인권학자인 저자는 일반인들이 별로 시급하지 않게 생각하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집요한 질문 5가지를 던지며, 그걸로 책의 5부를 구성했다.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거다. 하지만 이게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냐고 한다면, 의견은 엇갈릴 수 있다. 중요도에서나 우선순위에 있어서나.

조효제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내내 상기시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뚜렷한 사시사철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봄 · 가을이 없어졌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여름은 또 왜 이렇게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지 마치 동남아 지방의 기후와 점점 닮아가는 듯하고, 지루한 여름이 끝났다 싶으면 가을 옷을 입을 새도 없이 바로 날씨는 쌀쌀해진다. 우리에게도 이상 기후변화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름은 항상 비 피해, 폭우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이 됩니다." - 환경학자 김해동, P 35

타고 다니는 오래된 SUV가 저감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미루고 미루다 얼마 전 장치를 달았다. 10여 년 전 차를 살 때는 경유차가 좋다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차를 못 바꾸는 신세도 서러운데 노후 경유차라 시내에 진입하면 벌금을 물린데나 뭐라나. 아직도 쌩쌩하기만 한데. 이 사례 역시 매연 절감이라는 환경 이슈, 탄소 사회의 종말에 대한 가장 피부에 와닿는 사례가 아니겠는가.

화석 연료에 의존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끝없이 팽창했고, 그 결과가 한계에 다다른 작금의 기후위기를 유발했다. 주로 선진국이 위치한 북반구는 이미 성장의 과실을 따먹고 '불공평한 혜택'을 입었기에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데, 기후 문제가 발생하자 전 세계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며 아직 발전이 더딘 남반구에게도 공동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기까지 해서 세계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과거에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생태 비용을 외부화할 수 있었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이제 남반구까지 이런 양식을 본받았으므로 외부화할 수 있는 '외부'가 사라졌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 P 99~100

"인류의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인구를 가진 북반구 선진국들이 '대기의 식민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함부로 배출하면서 개도국들도 함께 사용해야 할 대기환경을 미리 선점해버린 것이다." - P 100

"더욱 충격적인 것은 196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개 회사가 전체 온실가스의 3분이 1 이상을 뿜어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 12개가 국영기업이고 나머지는 민간기업이다.(···)

누적분 상위 10위 회사는 사우디아람코, 셰브론, 가즈프롬, 엑손모빌, 이란국립석유, BP, 로열더치셸, 인도석탄, 페멕스, 베네수엘라석유 순이었다." - P 113 

이러한 '북반구 대 남반구'의 갈등은 개인의 차원으로 가면 피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 이주민, 주거 환경이 열악한 주민, 유색인종 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부자들은 위기가 닥쳐도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수 있지만 이런 약자들은 우선적으로 피해의 직격탄을 맞는다. 개발도산국에서는 기후위기가 문제가 되어 가장이 실직하게 되면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된다.

"예를 들어 2011년 열대성사이클론이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섬을 두 차례 연이어 강타하여 큰 피해를 초래했다. 그 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이클론 이전보다 무려 300퍼센트나 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이상기후 때문에 가뭄이 장기화되어 농사를 망쳤을 때 농부들이 심리적 대응책으로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흔히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 P 184

이게 세대 이슈로 넘어오면 이기적인 현재 세대가 근시안적인 행동으로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래세대의 '불확실한 효과'를 위해 오늘 나의 '확실한 이익'을 양보하기는 어렵다." - P 128 

결론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파렴치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실제로 분쟁과 갈등을 부추긴다는 사실 또한 이제는 상식이다.

'역사상 최초의 기후갈등'으로 소개되는 수단 다르푸르를 시작으로 시리아, 예멘 같은 곳에서 일어난 분쟁은 환경 요인과 정치 요인이 결합되어 무장 충돌로 이어져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전 세계에서 국제 평화 유지 인력이 제일 많이 파견되어 있는 10개 나라 중 8개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 콩고,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다르푸르), 아베이(남수단)가 그런 나라들이다." - P 276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그 저변에 깔려 있다.

"원래 건조한 중동 지역에 기후변화로 강수량과 저수량이 더욱 줄어든 상태인 데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공평한 물 통제 정책까지 더해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으로 비교하면 팔레스타인은 80.9리터에 불과한 반면, 이스라엘은 245리터에 달하는 실정이다."  - P 265

이쯤 되면 환경과 기후 이슈는 무기나 다름없다.

또한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는 2007년 펴낸 「기후변화 결말의 시대」 보고서를 통해 예상되는 기후위기에 대한 세 가지 섬뜩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2040년까지 1.3도 상승할 경우, 질병 창궐, 경제 충격, 국가들 간의 자원 전쟁, 지정학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둘째, '극심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40년까지 2.6도 상승할 경우, 팬데믹 만연, 난민 급증, 광신적 종교 활동, 무장 충돌, 핵전쟁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째, '재앙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2100년까지 5~6도 상승할 경우, 인간 사회에 상상 불가능한 결과가 초래되고 기후 붕괴와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동시다발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한다." - P 266


"현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늦지만 마지막인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를 경제성장과 바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김아진(초등학생), P 299


책의 내용은 논문까지는 아니어도 보고서 수준으로 시종일관 빡빡하고, 동어반복인 느낌이 많아 다소 지루했고, 그래프나 도표, 통계 같은 시청각 자료도 전혀 없기에 읽는 맛은 덜했다. 기후위기를 논하면서 재미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건가?

<탄소 사회>를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문제는 심각한데,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해서 의식이 깨어 있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기후위기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또한 심각성은 느끼지만 일개 개인이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정말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의 영향력 있는 정상들과 석학들이 모여 해법을 제시하고 더 늦기 전에 이를 정확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문제 제기에만 그치지 않고 5부 '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을 통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 놓았다.

꼭 기후위기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이 아니라도, 여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많은 걸 얻어 갈 수 있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책이다.


"그러나 희망은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의 창조물임을 기억하자. 한편에 과학의 법칙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연대심, 정의감 그리고 창의적인 적응력이 있다. 양쪽 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나오며,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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