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의 사랑
장수정 지음 / 로에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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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검은 숲의 사랑>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국립공원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는 장수정이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이 책 이전에 '숲을 통해 바라본 삶'을 그린 수필집 <안드로메다의 나무들>을 썼다.

이 소설은 주인공 남녀의 불륜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일본 샐러리맨 만화의 전설 '시마 과장' 시리즈를 즉각 떠오르게 하는 남자 주인공은 한국 이름 같지 않은 50대 '시마'로 그는 나름 탄탄대로를 달리다 건강상의 문제로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요양차 휴양림을 찾았다 그곳에서 숲 해설사로 일하는, 자살한 여동생과 많이 닮은 30대 중반의 '소유'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숲에서 사랑을 나눈다.


소설의 주요 무대는 소유가 일하는 휴양림과 근처에 위치한 시마의 별장이다. 저자의 직업이자 소유의 직업이기도 한 숲 해설사를 전면에 내세워 글로 읽는 자연도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숲의 생태계를 이루는 나무, 동식물, 곤충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소설 전반에 배어 있다. "피톤치드 소설"이라고나 할까. 

사회 통념상 지탄받는 불륜을 다룬 연애소설일지라도 그들의 원초적 본능이 숨 쉬는 공간이 숲이기에, 숲이 가진 원시적인 생명력과 자연적인 치유력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소설의 독특한 오라를 뿜어낸다.

국문과 출신 장수정은 어떤 장면의 묘사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고 다양한 단어를 사용해 한글의 바다를 넓힌다. 저자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은 빈틈이 없고 밀도가 높다.

"소유의 그곳은, 역치점에 이르렀으나 검이 아니고는 끊을 수 없는 그러한 지점까지 탄성이 치솟아, 가장자리에는 두족류의 치설 같은 연질의 자디잔 돌기가 오톨도톨 돋아, 비비면 다륵다륵 빨래판 긁히는 소리를 낼 것 같았다." - P 107

세상의 모든 불륜이 그렇듯 결말은 지리멸렬하고 맑고 향기롭지 못하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혹은 '이런 게 바로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만 시마와 소유 모두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가정의 모습 역시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 없는 외양을 유지한다.

이 둘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승전결을 보며, 흔히 남자는 불륜을 저질러도 웬만해서는 가정까지 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통념이나 성장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있던 소유가 결국에는 감정 변화가 심하다는 심리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겠다. 소설은 시마의 시선에서 기술되고 있지만, 정작 궁금한 건 소유였다. 시마가 조기 살점을 발라 소유에게 얹어준 그 순간 그녀는 시마에게 평생 충성하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소유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진정성을 가진, 순수하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런 소유의 마음에 불을 지핀 건 시마지만, 그는 선을 넘기에는 너무 소심하고 유약한 중년 사내일 뿐이다. 매뉴얼대로 삼십 년간 회사 생활을 한 시마에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꽃같은 사랑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다.

소설 속 휴양림은 자작나무숲으로 유명한 곳이라 하는데 우선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떠오른다. 터널이 뚫려 구도로로는 고개를 잘 안 넘는다는 언급은 미시령 터널이 생긴 이후 미시령 옛길을 염두에 뒀나 싶고, 한국 최초의 스키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지역은 잘 모르겠다. 양미리와 도루묵이 먹거리로 나오는데 이건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에선 빠질 수 없는 겨울철 별미인지라 특정 지역으로 한정하기엔 내 공력이 부족하다. 강원도 지역을 잘 아는 독자라면 소설에서 묘사된 지역 제이령이 대략 어디인지 추측해보면 더욱 재미있겠다.

현직 국립공원 해설사가 공들여 쓴 <검은 숲의 사랑>에서 숲은 단순히 소설의 배경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숲이 주인공인 '숲의, 숲에 의한, 숲을 위한' 흔하지 않은 소설이다. 숲 내음 그윽한 책을 읽는 동안 BGM으로는 신이경의 <비 오는 숲>이나 GEORGE WINSTON의 <FOREST>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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