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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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에 대해서 평소 안목도 없고 관심도 없고..

빌딩 위주의 도심을 걷다 보면 그게 그 건물 같고,

유명한 거리의 카페, 상점은 입구와 내부만이 궁금할 뿐이고...

이랬던 내가 이 책을 읽고 공간과 건축물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빈 공간에 건축물이 올라가고 건축 입면이 '거리'를 구획한다는 시작점 부터 신선했다.  

도시는 사람에 의해 디자인되지만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면 이내 자생적인 변동 패턴으로 진화한다.  도시를 유기체로 보고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인상적이다.   

 

원시적 도시에 인구가 많아지면서 거주자를 위해 많은 물이 필요해졌다.  고대 로마 도시는 수로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로마 시내로 물을 공급하며 진화했다.  상수도 시설은 생명체의 생명 유지를 위한 혈관의 순환계에 해당한다.  

다음엔 생명체 내의 신경계가 진화한다.  세포간의 정보 교환은 도시에 비유하자면 사람간의 소통을 원할하게 해주는 교통망에 해당한다.  19세기 파리시의 리모델링되었던 도로망은 혁신적인 신경계의 진화였다.

생명체의 다음 진화 단계는 척추 신경계이다.  척추 신경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전화망의 구축..  뉴욕은 20세기 전화 통신 시스템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도시가 되었다. 

 

서울은 인터넷 통신망이 잘 구축되어 있어 척추 신경계까지 진화되었지만, 교통 체증이라는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고 비유했다.   도시를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저자의 통찰이 재미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는 골목 문화는 참 정겹다.  집 앞 거리를 거실로 느낄 정도로 공동체 의식이 높았다.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마당을 시멘트로 발라 주차장으로 만들었고, 골목은 자동차가 다니기에 위험한 곳이 되었다.   마당 있는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인구 절반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아파트 평수는 계속 늘어난다.  그래도 100평의 아파트 보다  마당이 있는 30평 주택이 더 넓어보인다.  왜일까?   마당은 계속 바뀌지만, 아파트의 넓은 거실에서는 인테리어가 계속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는 사시사철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마당이 없으니 시시각각 변하는 TV를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개인 마당 역할을 하던 발코니마저 평형수 확장을 위해 없애버렸다.  빨래가 보이지 않은 삭막한 도시..  사람들의 삶은 창과 벽 안으로 꼭꼭 숨어버렸다.   (보통 아파트는 베란드이고, 외벽에서 튀어나온 것이 발코니라고 알고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의 정확한 명칭이 발코니라고 한다.  베란다는 1, 2층 면적 차이로 생겨난 공간을 활용하는 곳이란다.)  주상복합은 아예 발코니가 없이 지어져, 상업용 건물인지 거주용 건물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한국의 학교 주변, 한강 공원 진입로 주변, 광화문 광장, 코엑스 광장은 걷고 싶은 거리인가?

학교는 도시 계획 초기 단계에서 일정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았을 뿐, 공동체와의 밀접도는 떨어진다.  학교 보안 때문에 교문을 걸어두기까지 한다.   학교 주변에 근린 생활 시설과 상점들이 있다면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도시 경관을 만들 수도 있고 더불어 보안도 해결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광화문 광장은 중심부에 동상과 이벤트가 있어 사람들이 찾을 뿐, 걷고 싶은 길은 아니다. 

코엑스 광장에도 사람이 없다.  코엑스 광장은 상업의 생태계가 없는 광야일 뿐이고, 지하 쇼핑물에 사람들이 모이게 했다.  지하 쇼핑몰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길을 잃기 십상이고 사시사철 변화가 없어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강 공원 주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한강변에는 아파트만이 빼곡하다.   한강 공원은 진입하려면 아파트 단지를 겹겹히 지나가야 하니 운동 이외엔 잘 걷게 되지 않는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사람이 몰리게 된 것은, 한강공원으로 들어가는 토끼굴을 가로수길과 이어지게 만들면서부터라고 한다.   사적인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지 않고, 외부인에게 오픈된 느낌을 주는 길이라 사람들이 걷고 싶게 만든다.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얘기에서 말이 길어졌다.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부분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보다.  저자는 사람들이 걷고 싶은 거리는 변화의 체험도가 높은 곳이라고 말하다.  

상점도 많고, 볼 것과  즐길 것이 많고, 선택할 거리가 많은 이벤트의 거리.   

그런 거리로 명동 거리과 홍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다양한 체험과 문화가 있는 거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용산 미군 기지가 철수하면 그곳이 공원화될 예정이라 기대가 모아진다.   저자는 공원이 폭이 좁고 주변에서 감시하고 내려다 볼 건물이 있어야 안전해서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충분히 넓게 지어서 다양한 시설을 갖추길 기대했던 나로서는 고정된 생각의 틀을 바꿔주는 얘기이다.  

 

그 외에도 냉장고가 사람들의 주거지를 바꾼 이유, 사람들의 공간 지배를 통한 권력 구조,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 사무실 공간 구조 등..  건축이라는 주제에 대해 전방위적인 얘기들을 담고 있다.  건축물과 거리, 공원, 도시에 대해 자꾸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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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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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글을 경향 신문 칼럼으로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름에서 묻어나는 서민적인 힘에 혹하더니, 냉철한 시각을 해학으로 풀어낸 그의 글을 읽고는 반해버렸다.

 

그의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게 아니었다. 

보통 글은 읽기에서 시작한다는데, 그는 무조건 쓰기에서부터 시작했단다.

유머가 섞인 대학 동아리 회보에서부터.. 

못생긴 외모를 유머가 담긴 글이라도 써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못생겼다는 말을 어찌나 자주 하던지..  못생겨서 공부라도 잘해야 결혼할 수 있겠다 싶어 열심히 공부한 덕에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글쓰기가 배우자의 미모도 좌우한다고 믿는다.  자신은 글쓰기 덕에 이쁜 아내를 만났고, 아직도 글쓰기로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내가 이쁜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아내에게 편지 쓰는 남자라니.   신혼 초 이후로 쪽지도 못받아본 나로선 부럽기만 하다.  이 책에 아내에게 쓴 편지 두 편이 실려 있다.   이러다가 남자들의 공공의 적으로 등극하는건 아닌지... ^^

 

저자와 취향이 비슷한 한 편집자가 다행인지 비극인지 저자의 치기어린 글을 책으로 발간해 주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팔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퇴근과 함께 서점으로 다시 출근했지만 책이 팔리는 것은 도통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서점에 간김에 다른 책들을 훑어 본 이후에야 자신의 글이 얼마나 쓰레기인지를 깨닫게 되었단다. 

그 때부터 책에 빠져 들었고, 글을 잘 쓰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어디서나 펜과 종이를 놓치 않았고 블로그라는 공간을 통해 남들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다. 

 

자신의 전공을 살린 두권의 책은 말아먹었고, 

한겨레 신문 칼럼을 쓸 때는 글쓰기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마감에 맞춰 글쓰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았다.   칼럼을 쓰는게 갈수록 힘들다 느껴져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서민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겨레에서 물러선 후 3년간 훈련으로 단련되었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때 어디선가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고, 2009년 드뎌 경향신문 컬럼니스트가 되었다.   이후 서민만의 독특한 유모식 컬럼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2013년에 발간된 <서민의 기생충 열전>은 드뎌 베스트셀러가 되어 기생충학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1부 "나는 쓰면서 상장한다"에서는 글쓰기의 지혹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2부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는 경향 신문 칼럼니스트가 된 이후 자신만의 글쓰기 비법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동안 화제가 되었던 글도 실려 있는데, 반어법이 들어간 풍자는 유쾌 상쾌 통쾌하다.  서평쓰기, 재밌는 댓글 다는 법 등도 조언해 주고 있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성장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계속 성장중일 것이다.   아!  저자는 추상적인 성장 말고 물리적인 키도 컸다는데, 왠지 글쓰기 성장이 키 성장으로 이어진 것만 같다.   나도 키 성장까지 보장된다면 한번 열심히 써볼텐데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좋은 글은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책 중간 중간 실린 저자의 코믹한 전신 사진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못생겨서가 아니고 예상치 않았던 사진이라 ^^).   인터뷰 책도 아니고 글쓰기 책에 전면 사진이 몇장이나 실려 있다니..  취지에 맞지 않는 사진을 보면서 저자가 귀엽기까지 했다.  외모 컴플렉스는 이제 완전 극복한 걸까?  이제 자신감이 넘쳐나 보인다.  저자의 삶을 180도 바꿔 놓은 것은 모두 글쓰기 덕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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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2016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브런치 시리즈 2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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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브런치>라...   브런치를 좋아해서 그런가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책의 저자는 중심적인 역사의 흐름을 짚어 주면서, 그와 동시에 위대한 역사가들의 원전을 적절한 문맥에 적절한 분량으로 곁들였다.   저자는 철학 고전들이 '획득한 입맛'을 필요로 하는 기본 재료들과 같다면 역사책은 우리가 그냥 집어 들고 즐기면 되는 브런치 메뉴와 비슷하다며, 역사책을 곁들인 이 책을 맛있는 <세계사 브런치>라고 이름하였다.

 

작가의 의도대로 원전을 곁들여 읽는 맛은 새로웠다.  언제 내가 그 유명하고 위대한 원전들,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기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어보랴.  이 책을 통해서나마 약간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리스와 로마사를 포함하여 고대사를 다루는 비중이 커진 듯하다고 우려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술술 읽혔다.    특히, 서양 역사를 보는 눈을 밝게 해주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장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중 크레타 섬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곳으로 지중해 하면 떠오르는 곳인데, 이곳이 신화와 마법의 섬이었다.   크레타 섬은 신 중의 신 제우스의 탄생지인데다가 이 섬에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두었던 미궁이 있다는 거다.   신화속 이 미궁은 그 왕궁터가 20세기 초 발견되면서 신화는 역사가 되었다.  

 

또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허문 사례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트로이 전쟁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평생을 바친 인물, 하인리히 슐리만.  그는 마침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해 내어 트로이 전설을 역사로 만들어내었다.    

 

<마스터 오브 로마>의 시리즈 중 <로마의 일인자1,2,3>을 읽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로마 제국에 대한 얘기는 항상 흥미롭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기번은 로마 제국이 왜,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촛점을 두고 있어 초기 로마보다는 중반 후반의 로마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통 우리가 알기로 로마 제국은 서기 476년에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되었다.   기번에 따르면, 로마의 멸망이라는 것은 로마 황실을 폐쇄시키고, 행정권을 로마 시 경계에만 미치는 도시국가로 퇴락시킨 것을 말한다.  이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은 로물루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로마를 세운 시조의 이름도 로물루스로 끝과 마지막이 같다.   동로마 제국은 그 이후에도 천년 가까이 존속하였으나 이는 비잔틴 국가로 정통 로마와는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고대 역사도, 중세와 르네상스 명장면들도 연대기별로 원전을 곁들여 재미있고 유익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의 혁명을 차례로 다룬 부분도 유익했다.    특히 혁명과 관련한 저작들을 소개해 주면서 혁명 당시 저작들이 공개되었을 때의 상황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영국 의회 혁명 시대를 대변했던 대표적인 지성으로 <리바이어던>의 왕당파 토마스 홉스와 <실낙원>의 공화파 존 밀턴을 대비해준다.  미국 식민지 독립을 당위성을 역설한 토마스 페인의 <상식>과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집대성한 토마스 칼라힐의 <프랑스 혁명사>도 실려 있어 그 맛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을 날줄로 공간을 씨줄로 해서 인간이 남겨 온 발자취, 역사.  위대한 사상가들은 역사를 어떻게 봤을까?

 

E.H. 카는 그 유명한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고,

 

아널드 J.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고 했다.

 

나는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에게 역사는 알면 알수록 새롭고 내가 알고 있던게 정말 얕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분야라는 것이다.  역사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이런 책이라면 역사에 대해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라서 무한 반복을 해야하지만 말이다.  ^^  이번 해에 책누에 북클럽에서 함께 교재를 정해서 서양사를 공부해 보기로 했다.  흥미진진한 이런 역사책도 함께 읽어준다면 이런 저런 각도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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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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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은 2016년 들어 산아 제한 정책, 중국어로 표현하면 '계획생육"을 35년만에 전면 폐지했다.  

"계획생육'은 1가구 1자녀만이 가능하고 농촌의 경우 첫애가 딸이면 일정 터울이 지나야만 둘째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이었다.  중국은 최근 경제적인 면에서 급성장하다보니 산업화 및 선진화와 더불어 문제시되는 고령화와 노동 인구의 감소라는 문제가 벌써부터 대두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1가구 1자녀 정책은 폐지해야 하는 구시대 법이었다.

 

이 소설은 최초 중국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모옌의 자전적 얘기이다.  작가는 주로 자신의 고향 산둥성 가오미 현을 주요 무대로 소설을 창작해 왔다.   모옌의 대표작으로 영화로 더 유명한 <붉은 수수>도 고향이 배경이다.  이 소설은 가오미 현에서 5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일한 모옌의 고모가 주된 인물이다.  고모에 대한 이야기는 '계획생육'을 떠나서는 얘기할 수 없다.  고모는 '계획생육'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당사자였기에 이 소설은 우리를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한다.

 

이 소설의 화자는 모옌이라고 할 수 있는 샤오파오이다.   샤오파오와 그 친구들 대부분은 고모가 받아줬다.  샤오파오가 동네 친구 런메이와 결혼한 해가 1979년..  계획생육이 전면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고모는 약혼자 파이롯이 대만으로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당에 대한 충성도를 더욱 보여줘야 했다.  첫애를 낳은 남자들을 찾아가 정관수술시키는 과정도, 둘째를 가지고 몰래 숨어있는 여자들 찾아내 중절 수술시키는 과정도 얼마나 열심히 능청스럽게 해내던지...  아이를 낳으려는 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당국이 만나 벌어지는 해프닝들은 단지 재미있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재미있다.   고모는 마오 주석의 지시, 당의 지시인 국가 정책 계획생육을 철저히 실시하여 '살아있는 염라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한다. 

 

샤오파오의 아내 런메이는 첫애로 딸을 낳았고 출산과 동시에 고모가 루프(피임기구)를 설치해줬다.  하지만 런메이는 아들을 꼭 낳고만 싶었다.   위안싸이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흐름을 잘 파악하는 인물.  동네 여인들의 루프를 제거해 주는 일로 돈을 버는데,  런메이도 그로부터 루프를 제거하고 둘째를 갖기에 이른다.  당시 군인이던 샤오파오의 진급을 위해서도 런메이가 둘째를 낳는 것은 안된다.  고모도 조카 며느리라도 얄짤없다.  런메이를 찾아내서 중절수술시키는 과정은 가히 여장부감이다.  그러나 런메이는 이상 체질로 중절 수술 중에 죽게 된다.  

 

악랄한 면을 보여주던 고모도 탄생 앞에서는 약해질 수 밖에..  임신 7개월째이던 산모를 중절수술시키겠다고 추격하다가, 그 산모가 일찍 출산하려고 하자 기다려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산모는 도망중이었기에 아기를 낳다가 피를 너무 흘려 죽게 되고..   '계획생육'은 아기를 못낳게 했지만 시대적인 아픈 역사는 많이 낳았다.  

 

20년 후.. '계획생육' 초반기엔 혼란기였다면 이제 정착된 상태에서 체념도 하고 나름 방법을 찾기도 한다.  돈이 있는 가정은 당당히 벌금을 내고 둘째, 세째도 낳고, 호적에 올리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본처가 능력이 안되고 후처를 갖는 것이 여러모로 말썽이 많으니 대리모를 이용해 아이를 갖는 가정도 늘어난다.  시대의 조류를 타는 위안싸이는 개구리 양식장으로 위장하여 대리모 출산소를 운영한다.  샤오파오도 60의 나이가 다 되서 대리모를 이용해 아들을 얻게 되고..  세태는 많이 변했다.  소설의 주된 플롯도 어떻게든 피임시키려는 구조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가지려는 구조로 변했다. 

 

고모도 변했다.   자기가 유산시킨 아기들이 개구리로 변해 자신을 뒤쫓아오는 악몽을 꾸는 등..  괴로운 말년을 보낸다.  고모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닮은 점토 인형을 만들면서 죄책감을 덜어 본다.   시대를 비난할 수도, 고모를 비난할 수도 없는 시대였다.  시대의 희생자만 남을 뿐.  

 

이 소설의 제목 개구리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애기 우는 소리가 개구리 울음 소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개구리 와(蛙)는 다산의 상징이고,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상으로 '인형 와'와 같고, 인류의 시조 '여와'의 두번째 음절과도 같다.  그래서 인류의 시조를 큰 개구리로 생각하기도 한다고.   정자의 모양은 올챙이 모양과 비슷한데 수십만개 중에 한개의 정자만이 수정되는 것과 수천개 중에 한개의 올챙이만이 개구리로 변태되는 것도 비슷하다.    개구리가 소설 여기 저기 튀어나와 이 소설의 제목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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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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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아둔함, 이기심과 교활함에 이렇게까지 분노하게 한 소설이 있었나? 

읽는 중간 중간 책을 덮고 잠시 화를 식혀야 했으니 말이다.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책누에 북클럽에서 함께 읽어보았다.  <성역>을 읽었을 때 잘 느끼지 못했던 포크너의 소설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초반은 죽음과 장례를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실존적 태도와 욕망을 표현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두워 읽기에 수월치는 않았다.   장례를 치루기 위한 여행으로 넘어가는 초중반부터는 죽음을 대하는 가족의 민낯과 위선이 드러나면서 희극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왜 이런 대책 없는 장례 여행을 해야만 하는지 화가 나면서도 궁금해서 책 속에 빠져들어갔다.   시신 부패 냄새가 나는 땡볕 속에서 그들과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끔직하기만 했다.  

 

이 소설은 다중 시점의 열린 구조라고 평해진다.  각 장마다 짧게는 한 두페이지 길어도 10페이지 정도로 화자가 계속 바뀌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누가 얘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기도 해서 진실은 무엇인지 불확실할 때도 있다.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를 열어 두었다.  

 

소설의 제목에서 말하는 나는 죽어가고 있는 앤디이지만 화자로 나오는 장은 하나밖에 없다.  한 장으로도 그녀의 실체를 알기엔 충분했다.   앤디는 주변에서 지나가듯 서너번 본 남자가 집도 있고 농장에 있다는 말에 이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첫애를 낳고 사는 게 힘들다는 것,  말이란 것도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다.  말하려는 내용과 내뱉어진 말이 전혀 맞지 않다는 데에서 오는 남편 또는 사랑의 공허함, 모성의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거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온 그녀..  이제 고독하고 공허한 생을 끝낼 준비가 되었다.  앤디는 남편과 죽어서도 나란히 눕히는 것을 원치 않았을까.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처녀적 살던 땅 제퍼슨에 묻어달라고 한다.

 

남편 앤스는 자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고 운이 없는 것은 자식들 탓으로 돌리고, 가난해서 의사를 부르지 않은 것도 아내가 어제보다는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위선자이다.  아내의 장례에 남에게 폐를 끼치서는 안된다며 자식들만 죽어나게 부려먹고 고생시키는 인물이다.   앞날을 대비하고 위기에 대처하기 보다는 지나간 일에 후회하고 미련을 보이는 어리석음도,  ~했어야 했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자식들의 희생은 당연하게 알고 자신은 땀을 흘리면 죽는다면서 몸을 끔직히 아끼는 이기주의까지..   그 시대 미국 남부의 가난하고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첫째 아들 캐시는 엄마가 창가에서 지켜보는 중에도 톱질 소리 요란하게 관을 만들기 바쁘다.  둘째 아들 달은 가장 판단하기 힘든 인물이다.  이웃집 아줌마가 보기엔 엄마에게 가장 잘하는 아들이었고 식구들에게는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만큼 생각이 많은 이상한 아들이었다.  셋째 아들 주얼은 엄마가 사랑한 남자에게서 낳은 아들로 가장 아꼈지만, 엄마보다는 말에 더 애정을 보인다.  네째 딸 듀이 델은 죽어가는 엄마 옆에서 부채질을 계속 해주며 임종을 지키지만 자신만의 문제에 몰두해 있다.  다섯째 바더만은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를 보면서 엄마의 죽음과 물고기의 죽음을 동일시한다.  

 

가족은 땡볕에 관을 마차에 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떠난 여행은 한편의 코미디와도 같다.  폭우로 강을 건너기 힘들어져 여울목을 찾아 돌아가게 되고, 무모하게 강을 건너다 관을 빠뜨리고 빌린 나귀는 휩쓸려 죽고, 캐시는 다쳤던 다리를 또 다치고..  이런 상황에도 아버지는 제 몸 사리기만, 캐시는 물에 잠긴 자신의 공구만, 딸은 자신의 문제에만, 주얼은 자신의 말에만..  모두 이기적일 뿐이다. 

 

무더운 날씨에 시신은 물속에 잠겼다 나왔으니 금새 부패하기 시작하고.. 

캐시의 다친 다리를 고정시키겠다고 시멘트로 고정시키고.. 

나귀를 빌려야 하는데 아버지는 죽어도 빌릴수는 없다 하고..  아내가 남한테 빌린 나귀는 싫어할거라는 게 이유다.   짜증나는 대목은 가족의 여행이 계속될수록 더해만 간다.    

 

묻어달라고 하는 데에 묻어주는 것으로 할 도리는 다했다 이건가..  엄마이자 아내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은 금새 잊혀진다는 데에서 또 한번 놀라웠다.  가난 속에서는 자신의 문제가 우선이기에 슬픔조차 느낄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은 제작기 상실감을 새로운 대체물로 채우고 다시 삶 속으로 돌아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겠지.

 

달만이 엄마의 상실을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하지 못했다.   엄마를 끌고다니는 여행을 끝내 주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 것.  달에겐 옳은 일이라 판단하여 저지른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분명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그대로 보통은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달은 미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미치거나, 완전히 정상일 수는 없는 거다.  마음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는 것이 쉽진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냐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2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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