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축물에 대해서 평소 안목도 없고 관심도 없고..

빌딩 위주의 도심을 걷다 보면 그게 그 건물 같고,

유명한 거리의 카페, 상점은 입구와 내부만이 궁금할 뿐이고...

이랬던 내가 이 책을 읽고 공간과 건축물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빈 공간에 건축물이 올라가고 건축 입면이 '거리'를 구획한다는 시작점 부터 신선했다.  

도시는 사람에 의해 디자인되지만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면 이내 자생적인 변동 패턴으로 진화한다.  도시를 유기체로 보고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인상적이다.   

 

원시적 도시에 인구가 많아지면서 거주자를 위해 많은 물이 필요해졌다.  고대 로마 도시는 수로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로마 시내로 물을 공급하며 진화했다.  상수도 시설은 생명체의 생명 유지를 위한 혈관의 순환계에 해당한다.  

다음엔 생명체 내의 신경계가 진화한다.  세포간의 정보 교환은 도시에 비유하자면 사람간의 소통을 원할하게 해주는 교통망에 해당한다.  19세기 파리시의 리모델링되었던 도로망은 혁신적인 신경계의 진화였다.

생명체의 다음 진화 단계는 척추 신경계이다.  척추 신경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전화망의 구축..  뉴욕은 20세기 전화 통신 시스템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도시가 되었다. 

 

서울은 인터넷 통신망이 잘 구축되어 있어 척추 신경계까지 진화되었지만, 교통 체증이라는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고 비유했다.   도시를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저자의 통찰이 재미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는 골목 문화는 참 정겹다.  집 앞 거리를 거실로 느낄 정도로 공동체 의식이 높았다.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마당을 시멘트로 발라 주차장으로 만들었고, 골목은 자동차가 다니기에 위험한 곳이 되었다.   마당 있는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인구 절반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아파트 평수는 계속 늘어난다.  그래도 100평의 아파트 보다  마당이 있는 30평 주택이 더 넓어보인다.  왜일까?   마당은 계속 바뀌지만, 아파트의 넓은 거실에서는 인테리어가 계속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는 사시사철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마당이 없으니 시시각각 변하는 TV를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개인 마당 역할을 하던 발코니마저 평형수 확장을 위해 없애버렸다.  빨래가 보이지 않은 삭막한 도시..  사람들의 삶은 창과 벽 안으로 꼭꼭 숨어버렸다.   (보통 아파트는 베란드이고, 외벽에서 튀어나온 것이 발코니라고 알고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의 정확한 명칭이 발코니라고 한다.  베란다는 1, 2층 면적 차이로 생겨난 공간을 활용하는 곳이란다.)  주상복합은 아예 발코니가 없이 지어져, 상업용 건물인지 거주용 건물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한국의 학교 주변, 한강 공원 진입로 주변, 광화문 광장, 코엑스 광장은 걷고 싶은 거리인가?

학교는 도시 계획 초기 단계에서 일정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았을 뿐, 공동체와의 밀접도는 떨어진다.  학교 보안 때문에 교문을 걸어두기까지 한다.   학교 주변에 근린 생활 시설과 상점들이 있다면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도시 경관을 만들 수도 있고 더불어 보안도 해결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광화문 광장은 중심부에 동상과 이벤트가 있어 사람들이 찾을 뿐, 걷고 싶은 길은 아니다. 

코엑스 광장에도 사람이 없다.  코엑스 광장은 상업의 생태계가 없는 광야일 뿐이고, 지하 쇼핑물에 사람들이 모이게 했다.  지하 쇼핑몰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길을 잃기 십상이고 사시사철 변화가 없어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강 공원 주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한강변에는 아파트만이 빼곡하다.   한강 공원은 진입하려면 아파트 단지를 겹겹히 지나가야 하니 운동 이외엔 잘 걷게 되지 않는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사람이 몰리게 된 것은, 한강공원으로 들어가는 토끼굴을 가로수길과 이어지게 만들면서부터라고 한다.   사적인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지 않고, 외부인에게 오픈된 느낌을 주는 길이라 사람들이 걷고 싶게 만든다.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얘기에서 말이 길어졌다.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부분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보다.  저자는 사람들이 걷고 싶은 거리는 변화의 체험도가 높은 곳이라고 말하다.  

상점도 많고, 볼 것과  즐길 것이 많고, 선택할 거리가 많은 이벤트의 거리.   

그런 거리로 명동 거리과 홍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다양한 체험과 문화가 있는 거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용산 미군 기지가 철수하면 그곳이 공원화될 예정이라 기대가 모아진다.   저자는 공원이 폭이 좁고 주변에서 감시하고 내려다 볼 건물이 있어야 안전해서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충분히 넓게 지어서 다양한 시설을 갖추길 기대했던 나로서는 고정된 생각의 틀을 바꿔주는 얘기이다.  

 

그 외에도 냉장고가 사람들의 주거지를 바꾼 이유, 사람들의 공간 지배를 통한 권력 구조,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 사무실 공간 구조 등..  건축이라는 주제에 대해 전방위적인 얘기들을 담고 있다.  건축물과 거리, 공원, 도시에 대해 자꾸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