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티브가 된 단편소설 <반딧불이>부터 30주년기념 리미티드 에디션판까지
1. 존 업다이크 <켄타우로스>
열 여덟살의 나에게 최고의 책은 존 업다이크의 <켄타우로스>였는데, 몇번 되풀이해 읽는 사이에 그것은 처음의 광채를 약간씩 잃게 되었고,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게 베스트 원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후 줄곧 내게는 최고의 소설로 남아있었다.-58쪽
2. 스콧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나가사와선배)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59쪽
3. 조셉콘래드의 <로드 짐>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지만,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고,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서 뒹굴며, 나가사와 선배에게 빌려왔던 조셉 콘래드의 <로드 짐>의 나머지를 읽어버렸다.-96쪽
4.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5. 오에 겐자부로오의 <성적 인간>
6.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전쟁과 평화>도 없고, <성적 인간>도 없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없지. 그게 고바야시 서점이야. 그런 것들만 팔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부럽다는 거야? 자기도 부러워?-107쪽
레이코 씨는 눈꼬리에 주름을 깊게 잡으며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생은 참 이상한 말투를 쓰네"하고 레이코 씨가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흉내는 내고 있는 건 아닐테고"-164쪽
7. 마르크스의 <자본론>
"자기 <자본론> 읽어 본적 있어?"하고 그녀가 물었다.
"읽어 봤어.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었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어. <자본론>을 정확히 읽으려면, 먼저 그걸 이해하기 위한 사고 시스템의 습득이 필요해. 물론 총체적으로는 마르크시즘을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278쪽
8. 윌리엄 포크너의 <8월의 빛>

그렇게 미도리 부친의 일을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차츰 처량한 기분이 들어, 나는 서둘러 옥상의 빨래를 거둬들이고, 신주쿠로 나가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붐비는 일요일의 거리는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통근 전철처럼 혼잡한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포크너의 <8월의 빛>을 사들고, 가급적 소리가 클 듯 싶은 재즈 다방으로 찾아 들어가, 오네트 콜만이라든가 버드파웰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뜨겁고 진하고 맛없는 커피를 마셨고, 방금 산 책을 읽었다.-308쪽
9.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하지만 뭔가 읽을 거리가 필요해서 오랜 재고로 등표지가 변색되어 버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고르고, 책값에 해당되는 돈을 카운터에 놓았다. 적어도 그만큼은 고바야시 서점의 재고가 줄어든 셈이다.
나는 처음으로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은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였다. 그리고 8년 후, 나는 여자의 집 부엌에서 한밤중에, 그것도 여자친구의 죽은 아버지가 생전에 입었던 사이즈가 작은 파자마를 입은 채 같은 제목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뭔가 참 기묘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만일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면, 내가 <수레바퀴 밑에서>를 다시 읽는 일이란 없었을 것이다. <수레바퀴 밑에서>는 진부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소설이었다.-356쪽
10. 토마스 만의 <마의산>

그녀들은 동석한 상대가 나라는 데서 약간은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저녁에 면도도 했으며, 게다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열심히 읽고 있었으니까.-137쪽
한권의 책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뻗어나온다.
그의 책을 읽으면 할일이 많아진다. 어떤 광고보다도 더 소비욕구를 자극한다.
책과 재즈, 그리고 감각적인 문구들.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한번은 꼭 가리라 동경하기도 한다.
그래서 혹자들은 하루키는 PPL이라고 하나보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이런 유혹을 경험해보고 실천해봤으리라 생각한다.
흔히들 책이란 쓰여질때는 작가의 몫이지만 출간하고나서부터는 온전히 그 책은 독자들의 것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독자들은 이처럼 자기만의 PPL에 조금씩 중독되어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