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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밤 고향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토속 음식을 나누며 기억 속 똬리를 틀고 앉은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핸드볼 선수로 활약하던 친구들은 그 시절 지도 교사의 맹훈련에 지쳤을 때 물오른 앵두나무 가지를 꺾어 알알이 달린 앵두를 먹으며 달콤함에 젖었던 순간만큼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고 하였다. 순리를 따르며 하늘의 명을 받아들인다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아련한 기억 속 향수를 토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면소재지에 위치한 양조장에서 구매한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하고 햇고사리 넣어 묽게 쑨 들깨죽으로 요기하면서 연로한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였다.
연륜이 쌓이고 인생이 깊어질수록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아 푸념할 때가 늘어나고 궤도를 이탈한 행성처럼 좌충우돌하며 지낼 때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하여 근심을 덜어줄 때가 있다. 뜻하지 않은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좌절하고 실의에 젖기도 하지만 달갑지 않은 상황을 감내하며 극복하는 삶의 지혜를 발현하며 살아갈 뿐이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갈 때 인생의 후회는 줄어들 것이라 믿으며 현재에 충실한 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구절에 담을 때가 있다.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한 채 동동거리며 살아내느라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지내다 몸에 적신호가 들어왔을 때에서야 발병 사실을 확인한 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 이승을 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남편을 여읜 어머니는 집안일과 생계를 병행하며 사느라 지쳐갔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가 온 세상이 암흑이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와 퉁퉁 부은 다리를 펴고 고꾸라질 듯 잠들기 일쑤였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떠나면 고아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치를 많이도 살피며 지냈다. 살가운 모녀 지간이 아니라 엄마 눈치를 살피며 애어른 흉내를 내며 일찍 철이 들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가정을 이루고 가족들을 돌보며 살고 있지만 칠순이 넘은 엄마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은 모양이다. 그냥 엄마는 엄마인 채로 살면 된다고 해도 오히려 자식들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는 듯해 애처로울 때가 늘어난다. 서로 눈치 안 보면서 가족을 배려하며 살면 될 텐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참견하며 그것이 간섭인 줄도 잊고 지낸다. 성인이 되어 딱 한 번만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저자의 생각은 지난한 시간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림으로 동심을 보듬고 살아가는 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동화 작가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동고동락하며 넉살좋게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위선과 가식으로 본질을 위장한 채 살기보다는 창피한 일을 무릅쓰더라도 가슴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왔다. 패악을 쓰기보다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따스한 한마디처럼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공생하는 유기체에게 사랑을 전한다. 나이 들어도 소녀 감성을 품고 세상을 낙천적으로 살고 싶은 독자는 저자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일부터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전송하고 오는 길을 떠올리며 정이 흐르는 살풍경을 연상한다.
아버지의 권위에 굴종하며 살아온 가족 구성원들은 자기 방어책으로 저마다 비상구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했을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있는 환상 같은 소설 속 가정을 떠올리며 소녀 소설에 빠져들었다. 뒤늦게 우리 사는 세상이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현실임을 깨닫지만 살아보지 않는 한 발견하기 힘든 것 중 하나다.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얽히고설켜 살면서 제 빛깔을 띠고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인 가족의 일상은 감춰진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진솔한 삶의 가치를 비춰주는 거울로 기능한다. 지나고 보면 불운했다 여겼던 일들도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이었음을 깨닫고 살아 숨 쉬며 읽고 싶은 책을 접하며 사색하는 가운데 표현하는 일상이 고마움 선물임을 일깨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