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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흔이 넘은 엄마를 보면서 언젠가는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리라 마음먹으면서도 여행지에서의 다툼으로 틈새를 벌이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함께 여행을 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버렸다. 엄마의 여생이 그리 길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여행을 떠나는 게 맞을 것이다. 둘이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딸과 함께 떠난 여행을 기획하리라 마음먹고 작가가 엄마와 단둘이 떠난 발리 여행은 그동안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온 엄마의 희생적인 삶에 대한 정신적 보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리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의 바람은 접어두고 지내 온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며 함께 보낸 시간을 뒤로 하고 딸은 엄마를 고국으로 떠나보내고 발리 우붓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

 

   신들의 피난처라 불리는 나라, 종교와 삶이 일체된 나라, 파괴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화려하고 이국적인 힌두 문화가 남아 있는 사원들, 유연하고 관용적인 주민들의 태도 등에 끌려 많은 예술가들이 찾았던 곳 발리의 우붓은 다음 여행지로 찜해두었다. 종합 버라이어티쇼 같은 오달란, 1년에 200일의 종교 의식이 있는 나라 발리는 일상이 의례고 의식인 곳으로 비춰졌다. 손재주가 뛰어난 발리 현지인들의 수공예품은 소장하고 싶은 열망을 더하고 제 힘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손수 제작하여 사용하는 주체적인 삶에 동화되는 일상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시간에 기속도가 붙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생각지 않은 채 살아온 시간에 쉼을 주고 잊고 지낸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중년인 내가 인생에 어떤 물음을 던지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나답게 사는 길일 것이다. 다랑이 논에서 쑥쑥 자라는 벼들의 녹색 향연에 비해 속력을 멈추고 느리게 움직이며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곳 발리에서 두 달을 지낸 작가의 행보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새 스리랑카 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의 남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인도의 눈물로 불리는 스리랑카 차의 고장답게 조성된 차밭의 푸른 물이랑은 오욕으로 찌든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정화제 기능을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 계속 되어 주변을 돌아다니기 힘들었지만 숙소에서 책을 읽으며 빗소리를 듣는 시간도 운치 있어 보인다. 비가 그치고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자 초록으로 물든 차밭이 모습을 드러내자 청신함에 빠져들 새도 없이 차밭에서 진종일 일하며 6000원 남짓을 벌기 위해 일하는 열일곱 소녀의 모습에 처연해졌다. 엘라에서 시작된 엘라록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걸어서 귀착지로 왔을 때 기운은 소진되었지만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었다는 사실에 감격해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나이를 잊게 하는 객기가 묘약으로 치환될 때가 종종 있다. 배를 타고 원양으로 나가 흰 수염고래를 보고 돌아오는 길 생명체의 공존과 상생을 생각하는 저자의 자연친화적인 삶에 점점 가까워진다.

 

   저자는 여행길에 든든한 동행이 되어 줄 책을 챙겨 읽으며 기다리는 시간의 간극을 메웠다. 힘에 부치거나 심드렁해질 때면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묘미가 큰 만큼 여행자에게 책은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치앙마이에 머물 집 계약을 마치고 예전에 머물렀던 기억을 더듬어 지난 시간으로 회귀하는 시간은 추억 여행과 흡사하다. 요리학교에서 요리 강습을 받으며 현지인들의 음식 문화에 발을 디디고 뭔가를 스스로 해결하는 기쁨은 음식점에서 먹는 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을 선물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빈둥거리며 지내기 좋다는 빠이로 가는 길은 험난한 데다 상업적인 마을로 변모해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멀어져버렸다니 문명의 이기가 비집고 들어선 곳은 어디를 가나 씁쓸함을 준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다운이네 식구들과 반캉왓에서 함께 지낸 시간은 외로움과 따스함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이가 감당하고 살아야 할 몫은 감내하며 살아갈 밖에.

 

   개발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연적 흐름대로 살아가는 라오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먼지 폴폴 날리는 길을 자전거로 오가는 이들 사이로 걸어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에서 개발 이전의 1960년대를 연상케 하는 라오스 풍경 속 라오인들의 선한 미소는 욕망을 채우려 아귀다툼을 벌여 왔던 지난시절을 반성케 한다. 루앙프라방의 탁밧 행렬에 동참하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미명의 새벽에 탁발이 이뤄지는 거리로 나가 발우를 메고 나온 승려들에게 미리 주문한 찰밥을 공양물로 바치는 시간은 가난한 이들과 공양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카르스트 지형의 산과 메콩강이 흐르는 풍경을 보면서 라오 비어를 마셨던 한적한 여행을 떠올리던 것과 달리 저자는 십여 년 전 찾았던 방비엥에서의 추억과는 대별되는 일들로 아쉬움은 더하였다.

 

   여행했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일이 흔하지 않은 나로서는 미답의 공간을 한 번만 가보았기에 그곳을 찾았을 때의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하며 지내는 편이다. 일상에 얽매어 사는 시간을 쪼개 떠나는 여행인 만큼 찾고 싶은 곳도 많고 느끼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한 곳에서 두 달 정도를 머물며 느긋하게 뒹굴며 찾고 싶은 곳을 누비는 여행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떠날 수 없는 일상의 연속일 때 떠나고 싶은 마음이 심장까지 전해져 올 때 여행기를 꺼내 든다. 저자가 걸어온 길을 따라 풍경을 떠올리며 새로운 공간을 동경하는 시간은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방편이다. 욕심 내지 말고 조금씩 마음을 비우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통해 걷고 또 걸으며 사유하는 인간으로 늙어가고 싶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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