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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무탈하게 지내던 건강한 이의 부음은 돌연한 죽음으로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뜻밖의 상황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게 회한을 덜 남길 수 있음을 일깨운다. 역사학자로서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여읜 상실감과 허탈함은 남은 식구들이 감내하기 힘든 시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버지를 여의고 생전에 역사학자였던 아버지가 가고 싶어 했던 페루를 찾아 길 위에 섰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아버지의 영혼을 느끼고 싶었던 마음은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를 이어준다는 신비로운 동물 콘도르를 보기 위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참척의 슬픈 소식은 맥을 추스르기도 힘들 정도로 꺾여 힘을 모아 살아갈 동기조차 앗을 때가 있다. 인생의 큰 고비를 맞을 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일상을 벗어난 여행은 미답의 공간에서 만난 이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소통과 교감으로 이어져 고통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원천으로 자리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남미 대륙에서도 페루는 잉카 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보고(寶庫)로 많은 이들이 신들의 거처라 불리는 마추픽추로의 여행을 동경한다. 노쇠하여 기력이 딸리기 전에 남미 몇 나라라도 여행해야겠다는 막연한 계획에 작가의 페루 여행기는 그동안 심연에 자리했던 여행의 세포들이 살아나 달뜨게 했다.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고 부족한 물자를 조달하기도 힘든 점을 감안해 목록을 작성해 여행 짐을 꾸린 여행자는 디트로이트를 경유해 애틀랜타를 거쳐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 도착했다. 페루를 떠나서는 심장과 영혼이 평화로울 수 없다는 친구 이야와 만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맞춰 그녀의 고향 쿠스코를 찾아 마추픽추에 동행할 계획을 세웠다. 지구 저편에 살던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어 함께 하는 일은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밀림 지대에서 위협적인 모기의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험대장이 이끄는 정글프로그램에 참여해 대자연 속에 깃든 생명체의 신비로움에 젖을 수 있었다. 열대우림답게 폭우가 쏟아졌다 금세 비구름이 걷히는 날씨 변화에도 현지인은 여유를 잃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치를 역설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한 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에 제주도 여행을 떠났을 때 공항을 지나쳐 버려 탑승을 놓치고 고가의 항공료에 저가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 덕분에 친절한 청년을 만나 제주도 여행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비행기 결항으로 만찬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갈 때 식당 아주머니가 전한,

   ‘젊은 아가씨,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에요. 인생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당신도 부디 행복하세요.’ 92

   한마디는 작가의 여행기를 읽는 내내 소중한 가치는 거창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일깨웠다.

 

   잉카인들의 경제적·종교적·정치적 요충지였던 도시 쿠스코를 찾기 전에 고산병 적응을 위해 그보다 해발이 낮은 마추픽추를 먼저 찾았다. 위를 최대한 비우고 마추픽추 등반에 나선 길은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고 위대한 자연 앞에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교만함을 버렸을 때 영혼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가르쳐줬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 위의 도시를 건설하고 잉카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대로 살면서 자연을 숭배하면서 섭리를 따르는 생활을 잇다 신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떠났을 것 같은 오랜 유적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반문한다.

 

   이야의 고향 쿠스코를 찾아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한 가족이 오랫동안 지내면서 특별한 날에 심은 나무들로 조성된 정원은 가족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안데스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퓨마를 닮은 쿠스코의 코발트 빛 하늘은 탐내는 마음 없이 사는 질박한 삶이 잣는 인생의 문양이다. 쿠스코 여행을 마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티티카카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현지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자연적 질서를 거역하지 않는 순응으로 일생을 살면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었다. 콜카 캐니언 협곡에서 창공을 비행하는 콘도르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딸은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페루가 내세우는 생태계의 보고인 바예스타 섬은 새똥들이 쌓인 섬으로 작물을 기르는 비료의 재료로 페루 경제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니 놀라웠다. 무용지물처럼 보이던 새똥도 무엇인가를 성장케 하는 촉진제로 작용하는 것처럼 여행은 아집을 꺾어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넉넉함까지 선물해주는 명약 같은 것이다. 쿠스코의 하늘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일정을 미루고 들른 그곳의 마을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그레고리와 동행하며 누린 경험은 이방인을 환대하는 현지인들의 정성과 사랑이 빚어낸 향연이었다. 따뜻한 미소로 타인의 삶에 안녕이 깃들기를 바라며 행복하게 지내기를 빌어주는 마음을 간직한 이들을 추억하며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묘약으로 기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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