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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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책, TV, 블로그, 유튜브, 중고앱, 언어 등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매일 쓰는 미디어 즉,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양한 매체를 소설로 구성한 책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뭘 연결한다는 건지 의아했는데 한 섹션씩 소설을 읽어보니 단편소설이지만 마치 장편 소설을 읽는 것마냥 하나의 주제로 내용이 광범위하게 통일되는 걸 느낀다.


이야기는 인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하고 또 이야기가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주체가 대개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나 또한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꾼이 되는데 스스럼이 없으니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통해 배워 나간다.


연결하는 소설은 마치 논문처럼 정해진 주제가 재밌는 이야기로 탈바꿈해 전달되는 재밌는 책이다. 읽는 내내 "아, '말'이란 추상적인 단어가 이런 서사를 가질 수 있구나" 감탄했고 TV 매체가 얼마나 큰 영향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지 재확인했다.


이제 우리도 쉽게 미디어를 활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구독자 수 증가, 광고수입 증대의 달콤한 상 뒤엔 어떤 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미디어는 양면의 습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 점에서 한계 지어질 수밖에 없다.


소수 언어 박물관에는 약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고독하게 살고 있다. 아주 드물게 부부, 부모 관계도 있으나 거의 홀로 언어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살아지고 있고 '이 안에서 어떤 이들은 고독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고독을 예상하는 고독 때문에 조금씩 미쳐갔다<p21>'는 말처럼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이상 자신이 상징하는 그 언어를 내뱉을 일이 좀처럼 없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부족 사람들과 대화할 일도 없고 관리자조차 언어의 고유성을 핑계로 교류를 막았으니 많이 쓰고 퍼져야 할 언어가 점점 작은 세계로 좁아지는 아이러니함이 남았다.


이 소설은 마치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각자 할 수 있는 말이 있지만 입으로 내뱉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타이핑 치면서 카톡, 게시판, 오픈톡에 줄줄 써대기만 하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침묵의 미래에 살게 되는 걸까. 함께 있지만 소통하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세계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동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며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 담당 복지사가 말한 것은 고가의 '나이키' 운동화라는 이야기에 후원자가 어이없다는 투로 게시글을 썼다. 기초 수급 대상자인 저소득층인 아이가 이런 고가의 선물을 바라는게 놀라웠고 선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담당자의 말에 자신의 선의가 속물로 보인 것이 불쾌하단 이야기가 여러 SNS에 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후원 재단에서 일하는 윤미도 한 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이력이 있는, 그 모습을 대중에게 공개해 후원금을 받았던 사회 복지사다. 미디어의 영향 덕분에 저소득층 후원 아동은 바르게 클 수 있었지만 그 장면을 위해 보이기 위해 엄마와 윤미가 살아왔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했고 이번에 터진 사건에서 혹여 후원 아동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하는 윤미.


윤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프로그램의 방향이 정해졌다. 메인 작가는 윤미의 교복 치마가 반질반질 닳아서 반짝일수록, 운동화 뒤축이 납작하게 눌릴수록 좋은 그림이 나온다며 윤미를 설득했다. 생크림이 눈처럼 뿌려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던 안방의 시청자들이 전화기를 들어 후원금을 보낼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없느느 사람'임을 윤미의 입을 통해 드러내선 안 되었지만, 미디어라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면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다. <후원명세서, P79>


이제는 방송국놈들이란 말을 쉽게 할 만큼 자극적인 소재를 위해 어느 정도방송의 연출이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걸 뻔히 보면서도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요소 없이 담담하고 건조한 장면을 외면하고야 만다. 결국 미디어의 영향을 키우는 건 대중들이고 그걸 잘 이용하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판별할 수 없다. 우리는 복잡하게 연결돼 있지만 그 교류가 차라리 단절이 나았을 정도로 불행해지는 건 한 순간이니까.



연결하는 소설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설은 고요한 시대다. 아무래도 언어를 다루고 카피를 매만지는 직업과 연관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국립대학에서 인지 언어학 강의를 하는 주인공 신영희가 여당의 한 의원으로부터 '어떤 놈을 떨어뜨릴 문구 하나만 만들어 달라'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언어는 무기다. 특히 정치판에서 표 하나를 얻기 위한 전략은 언어, 정당 구호에서부터 시작하며 어떤 프레임으로 본인을 포장하고 또 상대를 곤란에 빠뜨릴 것인지 정하는 주요 전략. 포털 게시판에 댓글 정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이 언어는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데 능숙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 언어도 점점 소통의 낡은 도구로서 사양될 위기에 처하고 과연 우리의 미래에 언어라는 게 지금과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인터넷 초창기만 해도 소통의 혁명이 가져올 찬란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어요. 집단 지성의 노래를 합창했죠. 그 희망이 사라진 게 언제부터인 줄 아세요?"

"언제부터였는데?"

"나라와 기업이 개입하면서부터요. 공무원과 직장인들이 돈을 받고 군인들이 상부 명령으로 댓글과 게시물을 퍼붓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지금 인터넷에는 텅 빈 죽은 말만 가득해요. 늙은이들이나 남아 있죠."

<고요한 시대, p178>


뜨끔. 우리는 수없이 텅 빈 말에 둘러 싸여 살아간다. 정보라는 포장지를 입었지만 막상 뜯어보면 속빈 강정과 다름없는 말들밖에 남아 있지 않고 이 속에서 진주같은 이야기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말, 글, 언어대신 우리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다른 대체제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과연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


언어에 생각이 담긴다.

하지만 만약 다음 세대가 언어를 생각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은 앞으로 어디에 담길까?

<고요한 시대, p187>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중 하나, 연결하는 소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미디어를 다루며 생길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 또한 미디어의 한 구성으로 작가와 독자는 서로의 얼굴을 볼 필요 없이 각자 쓴 문장과 읽는 문장에 기대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며 결국 연결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 이 소통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연결되려는 이유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함께 살아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침묵, 언어, 몸짓, 익명의 공간, VR의 세상, 소리없이 글들로 채워진 세계- 연결의 지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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