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캐피털리즘 - 균열혁명의 멜로디 아우또노미아총서 39
존 홀러웨이 지음, 조정환 옮김 / 갈무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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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모든 분노, 저 모든 창조성은 단지 자본주의의 새로운 스타일을 위한 기초를 놓았을 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란으로 출발하여, 약간의 고상한 보조금과 약간의 전문적 자문 및 훈련의 도움을 받은 후에 비정부기구로,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의 핵심요소로 끝나고 마는, 저 모든 자치적 그룹들을 보라. 노동시간에 대한 엄격한 시간관리에 대항하는 저 모든 바란들이, 노동시간의 유연화에 의해, 그리고 사람들의 삶 전체에로의 노동시간의 확장을 통해 흡수된 것을 보라. 너무 순진하지 말라, [고 그들은 말한다.] 어떤 도피구도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125면).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동학은 모든 혁명이 불가능한 것처럼 과장함으로써 자신의 균열을 감추고 있다. 저자는 자본의 그러한 포즈를 꿰뚫어본다. 자본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지금여기에서‘의 혁명은 그렇게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언제든 가능하며, 실패하지도 패배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하나, 반란은 미래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68혁명은 하나의 축제였고, 기쁨과 창조성을 풀어놓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이것이 실패라고, 4.19혁명, 촛불시위, 점령하라(occupy)를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저 모든 분노, 저 모든 창조성은 단지 자본주의의 새로운 스타일을 위한 기초를 놓았을 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란으로 출발하여, 약간의 고상한 보조금과 약간의 전문적 자문 및 훈련의 도움을 받은 후에 비정부기구로,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의 핵심요소로 끝나고 마는, 저 모든 자치적 그룹들을 보라. 노동시간에 대한 엄격한 시간관리에 대항하는 저 모든 바란들이, 노동시간의 유연화에 의해, 그리고 사람들의 삶 전체에로의 노동시간의 확장을 통해 흡수된 것을 보라. 너무 순진하지 말라, [고 그들은 말한다.] 어떤 도피구도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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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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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는 사람은 그 작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90쪽).
이에 반해 정신이 산만한 대중은 예술작품이 자신들 속으로 빠져들어오게 한다(91쪽).
베냐민은 순진했거나, 틱톡, 쇼츠, 릴스 같은 것들이 의식하지도,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침투하여 시간을 갉아먹고 무의지적 기억조차도 형성하지 않은 채 휘발되어버리고 마는지.

예술작품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는 사람은 그 작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90쪽).
이에 반해 정신이 산만한 대중은 예술작품이 자신들 속으로 빠져들어오게 한다(91쪽).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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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이 사진이 바람을 찍지는 찍지는 못하였으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은 백석과 박해일의 머리로만 분다. 하여 바람 머리한다.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백석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모더니즘 문학에 심취했으며, 독일어나 러시아어에도 능통했다. 1934년에 귀국한 백석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여성>지의 편집을 담당하였고, 틈틈이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외국 작가의 작품이나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때로 <여성>지에 원고가 펑크가 나면 직접 수필을 써 때우면서도 1936년에 시집 <사슴>을 출간하였다. 같은 해에는 영생고보에서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는데, 수려한 외모의 그를 많은 학생들이 흠모했고, 백석은 얼굴 갚을 하느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2008년에 개봉한 <모던 보이>의 주인공인 박해일의 일명 바람 머리스타일은 백석을 따라한 것이다.

  1930년대 그야말로 모던 보이였던 백석은 자신의 외모나 이력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게 고향인 평북 정주를 배경으로 한 시를 썼다. 백석보다 한참이나 어린 오장환이란 애송이 시인은, 백석의 시가 지방색곳간에 볏섬 쌓듯이 그저 구겨 넣은것에 불과하다는 독설을 내뱉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백석은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다. 비록 시의 제재가 촌스러웠는지는 몰라도, 그의 시는 세련되고 고상한 품격을 지녔다.

  1930년대 시인들은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 그룹이 계급 투쟁에 동참하여 계급적 시를 썼다면, 다른 그룹은 근대 문물에 관심을 보이며 도시에서의 삶을 노래했다. 이와 달리 백석은 대대로 나며 죽으며한곳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어촌이나 산골 사람들의 삶을 노래했다. 이러한 그의 시에는 유독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눈이 수북이 와서 토끼나 산꿩이라도 잡히는 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먹는 국수, 털이 드문드문한 돼지고기, 이름도 낯선 무징게국, 흰밥에 얹어 먹는 흰 가자미 등등. 어쩌자고 백석은 음식 따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 답을 이 시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국수에는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으젓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국수를 먹는 행위는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를 대면하는 일과도 같다. 백석은 한때를 때워야 하는 끼니의 차원이 아니라 누대의 걸친 조상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음식이라고 말하며, 우리 일상과 너무도 밀접해 있어서 관심 밖이었던 음식을 격상시켜 놓는다.

  백석이 살던 시대에 음식은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다면, 오늘날의 음식이나 요리는 지나친 관심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연예인들이 모여 요리하는 프로그램, 먹보 개그맨들이 출연하여 개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 미혼이거나 돌싱인 연예인이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 등등. 음식과 요리가 넘쳐 나는 세상.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그니처 요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음식에 대한 지식이나 자신이 먹은 음식을 맛깔스럽게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은 갖추어야 한다. 그런 당신을 위해 두 부류의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하나는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에 대한 지식을 채울 수 있는 책이다.

 

그때 그 음식의 그 맛

  1999, <<요리왕 비룡>>이라는 TV 애니메이션을 처음 보았을 땐, ‘뭐 이런 병맛이 다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땐 병맛이라는 단어도 없을 때였지만, 뭐 여튼, <전설의 누렁지탕>에 등장하는 누룽지탕은 좀 특별하다. 비룡은 누룽지에 탕수로 볶은 갖은 해산물을 넣은 뒤 가마솥 두 개를 합쳐 놓은 듯한 모양의 조리기구에 넣어 회전시키면서 다시 누룽지를 구워, 공 모양의 누룽지탕을 완성한다. 시식자인 총독 앞에 이 둥근 누룽지를 올려놓으면 누룽지는 탕수가 배면서 저절로 갈라진다. 그러면 누룽지의 구수한 향이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간다. 총독은 이미 음식의 특색 있는 모양과 향에 취해 있다.

  드디어 총독이 맛을 본다. 그 순간 번개를 맞은 듯한 강렬한 느낌이 총독의 머리를 때린다. 총독은 우주 멀리로 날아가 폭발하고, 누룽지탕을 처음 맛보았던 과거로 소환되었다가 현재로 되돌아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총독은 말한다. “바삭바삭 잘 구어진 누룽지에서 퍼져 나오는 이 구수한 풍미. 향이 빠져나가지 않아 감칠맛을 더 해주는 탕수. 그래. 틀림없어. 30년 전에 먹어 본 바로 그 맛이야.”

  이 정도의 평가이라면 언제라도 좋다. 고래, 아니지 요리사가 공중제비 2회전은 하고도 남겠다. 이왕 요리를 칭찬할 작정이라면 이 루틴을 잘 기억해야 한다. 식감, , , 그리고 추억…….

  왕년에 먹었던 눈물 젖은 초코파이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은, 눈물을 흘리게 했던 고통스러운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과거를 헤쳐 나와 현재에 이른 대견스러운 나 자신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겉을 감싼 단단한 초콜릿, 그 내부의 희고 달콤한 마시멜로가 조화된 초코파이를 먹으며, 고단한 과거의 삶을 이겨낸 나 스스로에게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질끔질끔 흘리곤 한다. <전설의 누룽지탕>에 등장한 총독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풍미의 법칙>(나비클럽)의 저자 닉 샤르마라면, 비룡에게 박수를 쳤겠다. 닉 샤르마는 풍미를 만들어내는 요소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한쪽은 기억(감정), 그리고 다른 한쪽은 비주얼, 소리, 식감, , 맛이다. 이 책은 풍미의 요소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100가지 레시피를 총 7가지 맛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레시피는 1)작가의 경험과 결부된 레시피에 대한 간단한 소개 2)재료 소개, 3)풍미 내는 방법 4)조리 순서로 구성된다. 이 중 흥미로운 레시피 하나를 소개한다면 겉을 살짝 태우고 너트 마살라를 올린 아스파라거스이다. 이 요리의 풍미 내는 방법는 이렇다.

  아스파라거스는 겉을 살짝 태웠을 때 은근한 쓴맛이 줄어들고, 캐러멜화와 마야르 반응으로 완전히 다른 풍미를 낸다. 아스파라거스를 석쇠에 구울 때, 소금 플레이크 또는 천일염은 마무리용으로 마지막에 뿌려야 한다. 아스파라거스에 열을 가했을 때 색이 더 화사한 녹색으로 바뀐다.

닉 샤르마, <풍미의 법칙>, 115.

  닉 샤르마는 왜 아스파라거스의 겉을 살짝 태우는지를 설명해 준다.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소금 플레이크나 천일염을 마지막에 뿌리라는 것은 바삭거리는 식감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며, 열을 가했을 때 아스파라거스가 더 화산 녹색으로 바뀐다고 적은 것은 이 요리의 비주얼을 위해서일 것이다.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은 일종의 나침반이다. 요리를 잘하려면 다른 사람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고하여 자신이 구현할 수 있게 재구성해야 한다. 성공한 재구성을 창조라는 말로 바꾸어 불러도 좋다.

그런데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 중에서, 왜 특정 요리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식감을 높이고, 비주얼을 돋보이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은 드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풍미의 법칙>은 레시피를 나열하는 책들과는 구분된다. 다만, 주로 오븐이나 그릴 요리가 대부분이며, 책값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낯설고 이국적인 새로운 요리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허영만은 <식객> 1권에서 밥상의 주인은 밥이라고 한 뒤 다음과 같이 쓴다. “찬은 밥을 위해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자 마스터이며 우두머리는 어디까지나 밥이다. 밥이 맛있으면 간장 한 종지, 김치 한 보시기의 찬도 너무 많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한식을 더 맛나게 먹고 싶다면 <1분 요리 뚝딱이형>(뚝닥이형, 길벗)을 권한다. 이 책의 레시피는 주로 줄 서서 먹는 유명 맛집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것들이다. ‘요리 노하우라는 코너에는 왜 이렇게 요리를 해야 하는지, 요리 할 때 주의할 사항이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저자는 유튜버이기도 해서 해당 요리를 영상으로 보면서 구현할 수도 있다. 주로 고춧가루와 고추 베이스의 자극적인 요리가 많긴 하지만.

 


음식의 이름들

  전에는 오다가다 맛도 모르고 멋도 모르고 과메기를 먹었는데, 11월의 어느 날 포항에서 갓 올라왔다는 이 이름마저 특이한 과메기라는 음식에 반했다. 제철의 과메기는 찰졌고, 비릿한 향은 과하지 않아 그 찰짐 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며 들었다. 함께 했던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어우러졌고, 그 흥겨움의 열기는 겨울 초입의 쌀쌀한 날씨를 데웠다.

  그러다 문득 과메기가 어쩌다 과메기로 불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갑작스럽고 엉뚱한 나의 이런 질문에 사람들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는 듯 쳐다보았는데, 한 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분은 배추 위에 과메기, 다시마, 마늘과 고추를 차례로 얹으며 느긋하고도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저는 이 배추가 왜 배추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사물이 어쩌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배추는 숭채에서 파생되었다고도 하고, ‘백채가 변하여 배추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말들의 어원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규경(李圭景 : 1788~1863)<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算稿)>청어편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聯貫目)이라 한다고 썼다. 연관목에서 관목은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청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쓴 <규합총서>(이 책은 여성인 빙허각 이씨의 생활지식과 실학서의 내용을 종합한 일종의 가정 백과사전이다.)청어 두 눈이 말갛게 서로 비칠 정도가 되는 신선한 것을 관목(貫目)이라고 한다. 청어 2천 마리에서 관목 한 마리를 얻을 정도로 귀하다라고 쓰고 있다. 즉 관목이 눈을 꼬챙이로 꿰다라는 뜻이 아니라 눈이 맑아서 한쪽 눈에 다른 눈이 비칠 정도로 맑은 청어를 뜻한다는 것이다.

  관목어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관목어의 에서 이 탈락되어 가 되고, ‘은 포항 사투리인 메기로 바뀌어 과메기가 되었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보릿고개를 지날 때 먹었다 하여 과맥(過麥)’으로 불리던 것이 과메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것이 맞는지 알 길은 없다. 과메기의 이름이 어떻든 과메기는 맛있다.


  과메기(여기서부터는 과메기는 꽁치 과메기만을 뜻한다)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11월 중순부터 날씨가 풀리는 설날 전후까지 말리는 것이 원칙이다. 과메기의 맛을 보면 단순히 그냥 건조된 꽁치가 아니다. 보름 정도 밤낮의 일교차에 의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말려지는 과정에서 숙성을 한다. 지방이나 단백질은 공기 중에 장기간 두면 산패하는데, 꽁치는 껍질이 막처럼 살을 싸고 있어 산패 없이 숙성을 한다. 잘 숙성된 과메기는 꽁치의 기름내가 맑고 살코기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약간 물컹한 듯하지만 부드럽게 입안에서 풀리는 맛이 있다.            황교익, <수다쟁이 미식가를 위한 한국음식 안내서>, 33.


<수다쟁이 미식가를 위한 한국음식 안내서>(시공사)는 음식의 어원, 내력, 변천 과정, 음식의 맛 등을 적고 있으며, 음식에 대한 잘못된 지식도 교정해 준다. 무엇보다 음식의 토대에 대해 사유하는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농사일에 이용되었던 귀한 소를 먹기 위해서는 비육하는 소가 사육되어야 하고,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비육하는 돼지가 사육되어야 한다. 즉 비육우와 비육돈이 있어야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이 당연한 것을 간과한 채 전통 음식을 논해 온 것은 아닐까. 이러한 시각으로 음식을 보면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삶과 우리의 역사가 보이게 된다.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의 저자 한성우는 음식 자체보다는 음식의 언어에 집중한다.

밥은 방언을 아무리 뒤져봐도 다른 변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 땅의 모든 곳에서 ''이라 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모든 문헌을 뒤져봐도 그렇다. '''' 또는 ''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 그런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휘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같은 계통의 말 하나만 있었다는 것이다.

한성우, <우리 음식의 언어>, 21.

한성우는 은 어휘적 변천도 없고, 밥의 사투리도 없다는 흥미로운 사실에서 출발하여 그 범주를 잡곡밥, , 분식, 국 등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 책을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어크로스)의 한국어판 격으로 보면 큰 오산이다. <음식의 언어>가 음식 언어에 담긴 계급성에 주목하여 값비싼 음식과 싼 음식에 서로 다른 언어가 사용된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이와 달리 <우리 음식의 언어>는 우리 음식을 언어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그 유래를 살피는 한편, 언어의 변천 과정에 따른 생활의 변화를 보여 줌으로써 현재의 삶 속에서 자리 잡은 우리 음식을 부각한다.


곤혹스러운 밥

세상에 진리가 뭐 얼마나 있겠냐 마는, 진리에 버금가는 것 중 하나는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먹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파 온다는 것이다. 김훈은 언젠가 이렇게 썼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김훈, <칼의 노래>, 232.


전쟁 중에도 끼니는 돌아오고 모든 끼니는 닥쳐올 끼니에 무효하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이순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먹을 것이 없을 때나 요즘같이 먹을 것이 넘쳐 날 때나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은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떤 곳에서’, ‘얼마의 가격으로먹을지라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늘어났다는 것 정도.

어차피 먹을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음식이나 요리의 전문가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니 말마저 살찌는 이 계절에 음식을 먹지만 말고 음식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떠신지?



*이 글은 기획회의 594에 게재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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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GRIT (골드 에디션)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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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설명이다. 이론은 무수히 많은 사실과 관찰 내용들이 무슨 뜻인지 가장 기본적인 용어로 설명해준다. 이론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그릿, 70쪽)

사실을 집적하고,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이렇게 찾은 공통점을 압축하여 더 단순하고 단단한 이론을 구축한다.
이론에서 벗어나는 사실이 발견되면 다시 이론을 수정한다.
그 끊임없는 반복의 과정이 학문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런 이론은 해석으로 바꾸어 불러도 좋다

이론은 설명이다. 이론은 무수히 많은 사실과 관찰 내용들이 무슨 뜻인지 가장 기본적인 용어로 설명해준다. 이론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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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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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늦었음에 멈추어 있고, 그 늦었음을 향해 달려 가야한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하시딤 마을의 초라한 주막 안에 안식일 저녁 무렵 유대인들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은 그 고장 뜨내기로서 매우 남루한 차림을 하고 구석의 어두컴컴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 한 사람이 제안하기를 만일 각자 한 가지씩 소원이 허락된다면 무엇을 바라는지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사위를, 어떤 사람은 목수 작업대를 갖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빙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자기 소원을 이야기하고 나자 어두운 구석에 있는 걸인 한 명만 남게 되었다. 그는 마지못해 머뭇거리며 사람들 질문에 대답했다. "난 내가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 되었으면 싶소. 그리하여 넓은 땅덩어리를 통치하면서 밤이 되면 누워 내 궁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국경을 넘어 적들이 침입해 와서,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기마병들이 내 성 앞까지 쳐들어왔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없고, 나는 잠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 옷을 입을 시간도 없이, 단지 내의 바람으로 도주 길에 올라야 했고, 산을 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숲과 언덕을 넘으면서 쉼 없이 밤낮으로 쫓기다가 결국 여기 당신네들 마을의 한 벤치 위까지 안전하게 도착했으면 하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외다."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당신은 그런 소원에서 무엇을 바라는 것이오?"라고 한 사람이 물었다. "내의 한 벌이오."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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