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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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믿지 말 것. 칼럼을 이어놓고도 그런 척을 하지 않는다. 예컨대, ‘미분의 철학‘(70면)은 <<머니투데이>>이의 [맛있는 과학-‘윤동주 시‘가 교양이면 ‘미적분‘도 교양이다]에 실렸던 글이다. 그러니 중구난방일수밖에... 김상욱 선생을 선생이라 생각했는데 많이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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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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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선물하려구 또 삽니다^^ 정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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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을유문화사, 2020)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효형출판, 1998)

-김주창, 󰡔꼬마빌딩건축실전교과서󰡕, (보누스, 2021)

 

박완서와 소나기와 처마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의 제목은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박완서의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한국의 비극적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친 구체적 영향을 보여 준다. 그런 의미 있는 부분도 좋지만, 여기에서 인용하려는 부분은 소나기를 묘사한 장면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실개천이 합쳐져서 냇물이 된 동구 밖까지 원정을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만나는 소나기는 실로 장관이었다.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겠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벌에서 불안인지 환희인지 모를 것으로 터질 듯한 마음을 부채질하듯이 벌판의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풀들도 축 늘어졌던 잠에서 깨어나 일제히 웅성대며 소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언제나 우리가 마을 추녀 끝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행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장막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자꾸나 뛴다.

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미친 듯한 환성을 지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웅성대던 들판도 덩달아 환희의 춤을 추었다. 그럴 때 우리는 너울대는 옥수수나무나 피마자 나무와 자신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30.).


정말이지 소나기는 군대처럼 쳐들어온다. 그 비를 피하기 위해 맹렬히 달리더라도 우리보다 앞서 간다. 그리하여 옥수수나무나 피마자 나무와 자신을 구별할 수가 없게 된다. 소나기가 사람과 자연물과 인공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적신다. 그 때 폭발한다. 열기가 식으면 추녀에서 비를 그으며 비 듣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우리나라의 가옥에는 추녀가 있다. 아직도 촌티를 벗지 못한 나는, 비 정도는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우산을 챙기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비로 인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잦다. 갑작스러운 비에, 비 그을 곳을 찾다보면 요즘 건물은 더더욱이 추녀가 없어서 난감해진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내가 살던 시골이 아니라 서울임을 절감한다. 동시에 내 안에 여전히 촌스러움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추녀처마처마가 만나는 모서리 부분이다. ‘처마도리밖으로 내민 부분을 말하고, ‘도리는 세로로 세운 기둥위에 건너지르는 나무로, ‘도리가 있기에, 지붕의 중심이자 제일 높은 부분인 용마루에서 용마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은 도리를 향해 서까래를 걸쳐 지를 수 있으며, ‘서까래가 있기에 기와로든 짚으로든 이어 지붕을 얹을 수 있다. 지붕을 덮는 것이 아니라 지붕을 이는 민족이기에, ‘처마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만나는 추녀를 설명하는데 이렇게 많은 용어들이 필요했다. ‘추녀는 지붕의 일부이지만, ‘추녀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서 용마루서까래와 같은 용어들을 거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파른 지붕

처마는 지붕의 일부다. 그런데 지붕은 왜 경사가 진 걸까? 에드윈 헤스코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붕은 건물이 하늘과 만나는 접점이자 천국으로 파고들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이다. (중략)노르웨이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통 주택에서 나타나는 가파른 형태의 지붕는 모든 신화 속 우주의 중심부에 자리한 세상의 산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산은 올림푸스, 발할라, 시나이, 후지 등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한다. 그렇다면 집은 세상의 중심, 즉 신이 거주하는 곳의 축소판이다(󰡔집을 철학하다󰡕, 188.).

 

가파른 형태의 지붕에 대해 헤스코트는 세상의 산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상의 산은 신이 거주하는 곳이고, 그런 산을 닮은 지붕을 만들었다는 것. !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너무도 멋져서 무용한 이 말은 지붕에 경사가 생긴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밥을 먹는 이유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고, 그 밥을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이유는 사람들과 모여 가족을 이루며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사에 대해 사회학적 상호작용이라는 거창한 의미가 덧붙여지고, 왜 밥을 먹는지를 잊어버린 채 그 의미만 쫓게 되고, ‘혼밥족을 비판하는 꼰대가 된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시뮬라크르는 이렇게 탄생된다.

지붕은 신이 거주하는 곳을 본떠 가파르게 만든 것이 아니라 눈비를 피하려고 만들다 보니, 그리고 그 눈비가 지붕에 쌓이면 지붕이 내려 앉을 수도 있으니까, 고이지 말라고, 쌓이지 말라고 경사가 지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필요한 것이라면 보다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졌을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니까. 그래서 지붕이 집을 짓누르는 형상이 아니라, 아주 가볍게 떠 있는 듯이 보이게 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서현은 이렇게 쓰고 있다.

 

지붕이 강조된다면 짓누르는 듯한 것보다는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것이 제맛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지붕을 받치는 부재로 한옥들이 그렇듯이 벽보다는 기둥을 많이 사용한다. 벽은 지붕을 가볍게 받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붙들어 잡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에는 유독 지붕에만 조명을 켜는 건물도 있다. 지붕을 받치는 부분을 어둠 속에 묻어둬서 지붕이 허공에 부유하는 듯이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 여기에 깔려 있는 아이디어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88.).

 

하늘을 향해 치솟은 추녀의 곡선

지붕은 경사가 져 있다. 그래야 빗물이 흘러내리니까. 그런데 처마와 처마가 만나는 부분인 추녀는 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을까? 버선의 코를 닮기도 한 추녀. 아래의 글은 이 추녀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글이다.

 

덧서까래의 매력은 건물 네귀 모퉁이의 추녀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들 귀서까래는 부챗살인양 벽체 밖으로 쫙 펼쳐지면서 처마 끝을 힘껏 들어올린다.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하고 청초하면서도 장중한, 그 거침 없음과 세련됨. 처마선의 백미라 하기에 충분하다. 귀서까래는 모양이 부채를 닮아 선자연(扇子椽)이라고도 한다.

모퉁이 추녀 부분의 서까래를 벽체 가운데 쪽보다 훨씬 길게 빼내고 훨씬 높이 들어올린 것은 멋도 멋이지만 사람들의 착시(錯視)를 막기 위한 절묘한 장치다. 추녀 귀서까래의 길이나 높이를 가운데 부분과 같게 할 경우, 중앙에서 보면 추녀부분은 밑으로 처지고 길이가 짧아 보여 그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모퉁이를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길게 해야 모서리 사방에서 들이치는 빗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덧서까래를 받쳐주는 긴 받침목도 한몫 한다. 모퉁이쪽 추녀선이 올라가게 하기 위해 일부러 휘어진 받침목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붕의 무게로 인해, 자연스레 받침목 가운데가 살짝 내려 앉는다. 이것은 부작용이 아니다. 윤장섭 전서울대교수(건축사)이같은 자연적인 요소나 다소간의 우연적 요소가 오히려 처마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서까래 하나를 올리면서도 자연의 특성, 우연의 측면까지 끌어안았던 우리 전통건축. 처마선을 무애(無碍)의 경지라고 일컫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처마 곡선의 미학, 이광표, 동아일보, 1998.9.27).

 

이 글은 꽤나 유명해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까지했다. 미문은 때로 유해하다. 잘못된 정보, 부정확한 정보를 감추기 때문이다. 이 글은 처마보다 추녀를 훨씬 높이 들어올린이유를 착시를 막기 위해서라고, 다시 말해 미적 아름다움을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모퉁이를 보호하는 추녀의 기능을 부수적인 기능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한국의 추녀가 들어올려진 실제적인 이유에 대해서라면, 알쓸신잡21화 혹은 유투브의 '건축도 과학이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처마 끝 추녀의 치밀한 계산 171027 EP1 #11이라는 영상을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에서 말한 유현준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처마를 만든 것은 비에 취약한 나무기둥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2. 문제는 비가 많이 오면 특히 집의 모서리 기둥이 더 많이 젖게 된다. 그런데 긴 추녀로 인해 모서리 기둥에 드는 빛의 양이 줄어든다.

3. 그래서 추녀를 들어올림으로써 햇빛이 잘 들게 만들었다.

4. 우리나라의 남쪽 지방은 비가 많이 오므로 추녀가 더 급하게 올라가고 북쪽 지방으로 갈수록 추녀의 경사각은 줄어든다.

5. 그러한 변화가 생기는 이유는 태양의 입사각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남쪽 지역보다 더 위도가 낮은 곳, 상하이, 베트남 등지의 추녀는 더 가파르게 올라간다. 위도가 낮은 지역은 태양의 입사각이 급하기 때문에 추녀를 더 높이 들어올려야 빛이 잘 들기 때문이다.

 

경회루


상하이의 정자


그리고 유현준은 덧붙인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디자인의 대부분의 것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온 답이다. 유현준의 말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추녀는 기둥이 썩는 문제에 대한 대안이지, 처음부터 미적 아름다움을 고려하여 추녀를 치솟게 했던 것은 아니다. 미적 아름다움은 사후적으로 덧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용성 없이 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디자인은 대개 도태된다.

 

, 최초의 건축 요소

지붕은 비와 눈을 막기 위한 것이고 처마는 지붕을 이고 있는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외벽 너머로 빼놓은 것이다. 동양의 옛사람들은 눈비를 그을 수 있는 지붕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극단에 정자가 있다. 문도 없고, 문이 없어서 자물쇠도 없는 정자, 누구든 쉬어갈 수 있는 이런 정자를 지었던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관계를 중시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지붕은 비와 눈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와 눈이 드물게 내리는 곳에도 지붕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양일까? 강수량이 현저히 적다면 정말 지붕이 필요없어도 되는 걸까? 유현준은 최초의 건축 요소는 지붕이 아니라 이라고 단정한다. 정말? 그 이유는 최초의 문명이 건조 기후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건조 기후대에서는 비나 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붕이 없어도 되었고, 설사 지붕이 있더라도 평평한 모양으로 집을 덮어도 상관 없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 유적물인 터키의 괴베클리 테베가 이를 증명한다. 기원전 1만 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유적은 지붕 없이 벽으로만 둘러싸여 있다.


벽은 벽 안쪽과 벽 바깥을 구분 짓고, ‘와 타인을 구분한다.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벽을 짓는 것도, 벽을 지어서 개인적 성향이 생긴 것도 아니다. 비가 많이 오는 동양은 벼농사를 짓고, 다소 건조한 서양은 밀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밀은 혼자서 씨를 뿌리고 추수할 수 있지만, 벼농사는 협동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노동의 차이로 인해 동양은 상호 간의 관계를 중시하게 되었으며, 서양은 개인주의적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후 때문에 동양은 지붕을, 서양은 벽을 중시하는 것이다(󰡔공간이 만든 공간󰡕, 39~103).

인간은 저마다 독특한 자아와 영혼을 가지고 있어 신에 버금가는 존재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인간의 자아니 영혼이니 하는 것도 결국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일종의 생존 전략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

벽만 있든, 지붕이 평평하든 가파르든, 처마가 있든 없든, 추녀가 내려갔든 올라갔든, 우리는 집에서 산다. 집은 공터를 채우는 구조물이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만든다. 그래서 집은 오묘하다. 이러한 집은 한국 사회에서 늘 핫한 이슈이다. 왜냐고? 그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만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때문이다. 집을 부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집에 머물며, 나도 집도 서로가 서로에게 친숙하게 되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부동산이 아닌 안락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집에 관한 것이다. 먼저, 서현의 󰡔건축, 음아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권한다. 이 책은 집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설명하고, 그 요소들의 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아주 담백하게 집이라는 현상을 직시한다.

집을 직접 지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김주창의 󰡔꼬마빌딩 건축 실전 교과서󰡕를 추천한다. 정말이지 이 책은 집을 짓는 사람에게 매우 실용적인 참고서가 될 것이다. 예컨대 집의 시공이,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그렇다.

(책과 관계 없이 집짓기에 대해서 한 마디 덧붙자이면, ‘만족할 만한 집을 짓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집을 내가 짓는 것이 아니라 업자가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짓는 일을 하는 업자 중에 내가 좋아하고 가장 믿을 만한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갖고 싶은 집을 짓고 싶다면, 만족할 만한 집을 짓고 싶다면, 열 채 정도는 지어 봐야 그런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니 믿을 만한 업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물론 자신이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개념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신이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말길 바란다.)

만약 당장 집을 지을 수도 가질 수도 앖다면, 그럼에도 이라는 현상에 대해, ‘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유현준의 󰡔공간이 만든 공간󰡕을 추천한다. 이 책은 공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답하며, 동양의 집과 서양의 집의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러한 유현준의 설명은 체스와 바둑의 차이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더 궁금하다면 궁금해만 하지 말고 읽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여기 귀유광의 항척헌지의 서두를 인용하려 한다.

 

항척헌은 쪽방이었다. 방의 크기는 거의 10척 정도라, 겨우 한 명이 살만하였다. 100년 넘게 낡은 집이라 진흙 따위가 떨어졌고, 비만 오면 빗물이

 떨어져 매번 책

상을 옮겨야 했는데, 둘러보아도 책상을 옮겨 놓을 곳이 없었다. 또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정오가 지나면 이미 어둑해졌다. 나는 지붕을 이어 빗물이 스미지 않게 하였고,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는 네 개의 창을 내고, 정원 주위에 낮은 담장을 둘러쌓았다. 그러자 비로소 방안이 환해졌다. 또 뜰에 난초와 계수나무와 대나무를 섞어 심어두었니 오래된 난간의 운치를 더했다. 책을 빌려 서가를 가득 채우고, 그곳에 머물면서 노래나 휘파람을 불기도 하였고, 고요히 정좌하고 앉아 온갖 소리를 듣

곤 하였다. 뜰의 섬돌이 적막하였고, 새들은 날아와 먹이를 쪼았고,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깊은 밤중에 밝은 달이 담장에 반쯤 걸리면 계수나무가 알록달록 그림자를 만든다. 바람이 그 그림자를 옮겨놓을 때 살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좋았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그림자를 옮겨 놓는 집, 그러할 때 나뭇잎이 쌀랑쌀랑 소리를 내는 집, 이러한 귀유광의 감수성을 사랑한다. 귀유광은 항척헌지에서 집과 관련된 여러 추억들을 나열한다. 그러면서 일찍 죽은 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요절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귀유광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지만 그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이기에 소중하게 돌본다. 우리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는다. 집은 탄생과 죽음이 공존한다. 그리하여 집은 오묘하다. 이러한 집은 재산일 수만은 없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집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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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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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용도 형식도 여행과 관련이 없다. 그렇긴 하지만 폐쇄적이고 열등감을 가진 청년이 철학자의 말에 용기를 얻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을 내딛는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자기계발서보다는 수준이 고급하니) ‘삶을 위한 여행 준비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이렇게 모순적인 제목의 책일수록 잘 팔리는 것 같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그랬고,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그렇다. 아파야 청춘이며, 얕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지적 대화가 가능한 시대의 특징을 이 제목들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미움받다라는 동사가 없으므로 어법상 미움 받을이 맞지만, 이 책이 띄어쓰기를 무시한 이유는 미움받다라는 동사를 보편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과, 그러한 미움을 받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미움을 받고 싶다면 미움 받을 짓만 하면 되지만, 미움을 받고도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 미움보다 훨씬 크고 굳센 자기 신념과 자기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러한 용기를 가질 때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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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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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면역학이라는 난해한 과학을, 시적 은유를 동원해 아름답게, 동시에 냉철하게 서술한다. 비스는 아이를 출산하고 맞닥뜨린 두려움(백신이 아이를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맞서면서, 백신과 예방 접종이 실제로 아이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원하고 있는지 규명한다. 또 신화와 역사, 문학을 두루 살핌으로써 우리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의 실체를 밝히고, 강력한 은유를 통해 우리가 질병과 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킨다. 이 책은 과학적 글쓰기의 모범으로서 의학계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은유의 강력한 힘을 증명한 빼어난 문학 작품으로서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비스는 <집단 면역herd immunity>이라는 개념을 특히 강조한다. 어떤 백신이라도 특정 개인에게 면역을 형성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같은 일부 백신은 다른 백신들보다 효과가 좀 떨어진다. 하지만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우리는 제 살갗으로부터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중 보건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이 훌륭한 것은 다른 책들이 면역을 거부하는 행위를 단순한 무지로 판단하는데 반해, 저자는 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면역이 맞지만, 맞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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