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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수플레는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변덕스러운 마음과도 같다.
오븐을 여는 순간, 수플레의 한가운데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부풀어 있지만,
한순간 폭삭 꺼져버린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처럼…. (책 띠지 中)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먼저 수플레의 이미지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수플레는 프랑스 디저트인데, 달걀 흰자를 거품내서 그밖의 재료를 섞어서 부풀려 오븐에 구워낸 것이다. '수플레'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에는 그냥 쉽게 접하던 디저트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제대로 된 수플레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수플레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한 요리사는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들도 손님이 이 전설적인 음식이나 디저트를 주문하면 두려워한다. 파리의 카르나발레 박물관에 걸린 19세기 회화에 요리 작가의 선조인 미식가 그리모드가 수플레 접시와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다 거기에 있다. 음식 비평가는 어떤 레스토랑을 칭찬하거나 망하게 하고 싶다면 항상 이 악명 높은 요리를 선택한다. 평범한 수플레란 없기 때문에 중간도 없다. (155쪽)
조리법에 나온 재료들을 다 쓴다고 제대로 된 수플레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책에도 수플레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이 없으며, 그 어떤 사람도 수플레를 완벽하게 만드는 법을 말할 수 없다고.
수플레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나니 그야말로 인생과 잘 연결되는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부터 작가가 보여주는 의미에 감탄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수플레를 지켜보며, 나 자신의 수플레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을 보면, 수플레와 우리네 인생을 연결시켜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생은 어느 순간 폭삭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순간이 오기도 하고, 달콤한 디저트로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것이니….
요리가 나오고 달콤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싶었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소설,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을 만나고 싶다.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제목만으로도 이끌렸다. "주저앉아버린 영혼을 다시 일으켜주는 인생 레시피"라는 수식어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수플레와 세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는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애슬리 페커. 터키 이즈미르 출생이다. 현재 오르한 파묵, 엘리프 샤팍 이후로 세계 문학계가 주목하는 터키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세 번째 작품인《수플레》는 이스탄불, 뉴욕, 파리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 겪는 인생의 좌절과 회복을 프랑스 디저트인 수플레에 은유적으로 풀어낸 소설로, 유럽, 미국뿐 아니라 대만, 중국 등 아시아까지 약 23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고통을 겪을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겪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고통을 택할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
이 소설을 펼쳐들면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세 명의 주인공, 릴리아, 마크, 페르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소설은 시작된다. 견디기 힘들고 푹 꺼져버리는 듯한 순간이 그들에게 찾아왔다. 소설을 읽으며 처음부터 집중하게 된 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주변의 누군가의 이야기이거나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법했기 때문이다. 가정에 헌신해왔지만 남편과 자식들에게 무시만 당하는 중년의 주부 릴리아, 삶의 전부인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마크, 병든 엄마에게 매여 한 순간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페르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삶의 답답함마저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것은 섬세한 묘사로 그들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라는 생각이 드는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는 답답함에 짓눌리지만, 또다른 순간에는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해서 이들의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폭삭 주저앉아버릴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이 와도 무언가를 계기로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수플레는 들려준다. 한동안 기억에 남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