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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행복은 간장밥 - 그립고 그리운 법정 스님의 목소리 ㅣ 샘터 필사책 1
법정 지음, 샘터 편집부 엮음, 모노 그림 / 샘터사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먼저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행복은 간장밥"이라. 행복은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아니라 소소하고 사소한 작은 것에서 온다는 생각이 들기에 제목을 보며 공감한다. 거대한 무언가를 찾다가 사소한 행복을 놓치고 살아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가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꼈던 순간도 큰 돈 들여가며 맛집이라는 데에 찾아가서 맛본 음식이 아니라 갓 지은 밥에 마가린, 간장넣고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벼먹은 그 때, 그 순간, 편안한 사람들… 그런 것이기에 사무치는 무언가를 느끼며 이 책《법정 "행복은 간장밥"》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밥해 먹고 사나?"
"스님, 제가 혼자 자취를 해서요. 갓 지은 밥에다 간장 넣고 참기름 몇 방울 똑똑 떨어뜨려서 그렇게 간단히 때웁니다."
"그래, 그 밥…… 참 맛있지."
2000년 봄 길상사에서 (책속에서)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2010년 3월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강원도 산골 작은 오두막에서 청빈과 무소유를 실천했으며,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나무처럼 곧고 청청한 글을 통해 세상에 전했다. 스님이 생전에 쓰신 맑고 향기로운 글들은 각박한 현대인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그날 스님이 주신 씨앗과 모종만이 남아', 2장 '인간 법정: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3장 '스님의 글쓰기', 4장 '스님이 아낀 말과 침묵'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복의 안목,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한다, 깨어 있음에 대하여, 열린 귀는 들으라, 단순하게 더 소박하게, 물건을 나누는 일, 길 없는 길, 탐구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영혼에 큰 울림을 준 그곳, 오두막에서 온 편지, 종교인의 덫,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하여, 바람결에 실려 보낸 풋풋한 이야기, 맑은 하늘에서 울리는 영혼의 소리, 대지로 돌아가라, 침묵에 귀 기울이라, 법정 스님이 아껴 읽으신 경전과 불교의 명언 등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샘터 필사책이다. 법정 스님이 남긴 말씀과 대화, 곁에 두고 아껴 읽은 경전들을 따라 읽고 따라 쓰며 행복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찬찬히 음미하며 읽다가 손으로 따라 쓰면서 다시 읽고 마음 속에 머금어본다.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들이 톡 튀어나오며 의미를 던져준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삶, 무언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때에 내 손을 붙잡아주고 길을 정비할 수 있도록 쉼표가 되어준다. 나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준다.
요즘처럼 시끄럽고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는 강인한 자기 억제와 투철한 자기 질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말고, 듣지 않아도 될 소리는 듣지 말며, 읽지 않아도 될 글은 읽지 말고,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꼭 볼 것만을 보고, 들을 것만을 듣고, 읽을 것만을 읽고, 먹을 것만을 가려서 먹어야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덜 때 묻고, 내 삶이 덜 시듭니다. 보람된 인생이란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0쪽_자신의 질서)
천천히 읽으며 음미해야 더 크게 다가오는 책이다. 4장에는 '스님이 아낀 말과 침묵'이 담겨있는데, '경전은 눈으로 읽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로 두런두런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메아리가 영혼에까지 울린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눈으로만 흘려읽지 말고 손글씨로 적어가며 가슴에 새기면, 특별한 나만의 경구가 될 것이다.
지나가 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 때,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은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_《중부 대가전연 일야현자경》(180쪽)
자, 이제 남의 책은 덮어 두고 자기 자신의 책을 읽을 차례다.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다. (189쪽)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얼만큼 깊이 읽는 것이 중요한지 절실한 요즘, 이 책은 깊이 읽는 법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특히 법정 스님의 글이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고 기획이 잘 된 필사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사의 효능은 눈으로만 읽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청량하고 정갈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